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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진호 선원 12명의 엇갈린 운명
동지회 968 2005-02-21 11:47:01
동진호 선원 12명의 엇갈린 운명


북한에 의해 납치된 동진27호 선원 12명의 운명은 크게 엇갈렸다.

이들 가운데 3명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남쪽 가족들과 만났다. 북한 이산가족 상봉에 내세울 정도면 북한에서 어느 정도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한다는 게 탈북자들의 말이다.

다른 사람들 중 2명은 1999년 북한 관영 매체의 체제 선전물에 나와 “(북에서) 잘 살고 있다”고 말했다. 납북자들은 수시로 북한 매체에 등장한다. 또 다른 1명은 우리 고위당국자가 생존을 확인했다.

그러나 임국재씨를 포함한 6명은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임씨처럼, 이들 중엔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 사람들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함께 납북됐는 데도 왜 이처럼 운명이 갈렸을까. 국내에 들어온 납북자 출신 탈북자들에 따르면, 북한이 남한에서의 경력, 북한의 전향 요구에 대한 순응 태도 등에 따라 서로 다른 대우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1970년 4월 봉산22호와 함께 납북됐다가 2000년에 탈북·입국한 이재근(66)씨는 20일 “납북어부들 가운데서도 남한으로 돌려보내달라고 했던 사람들은 결국엔 수용소로 갈 수밖에 없다”며 “귀향을 포기하고 북한에서 하라는 대로 따라 해야만 북 체제에 적응할 수 있다”고 전했다.

북한 고위 관리 출신의 한 탈북자도 “납북자들은 이미 남한 생활을 경험해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아무리 당에 충실해도 북한 당국으로서는 신뢰할 수 없다”며 “북한 당국에서 보기에 순응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은 유배지나 수용소에 수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동진호의 경우 갑판장이었던 강희근씨는 2000년 12월 2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 어머니를 만났고, 기관장이었던 김상섭씨는 납북 후 평남 순천시에 거주하다 2003년 9월 8차 상봉 때 역시 어머니를 만났다.

가장 최근에는 황해북도 은파군에서 공장기술자로 일하던 선원 양용식씨가 작년 3월 9차 이산가족 상봉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김영현씨와 정일남씨에 대해서는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1999년 4월 20일 체제 선전 보도에서 각각 평안남도 문덕군과 평안북도 양덕군에 거주하고 있다고 밝혀 생존이 확인됐다.

어로장이었던 최종석씨는 정치범수용소에 있던 것으로 알려지다가, 박재규(朴在圭)·정세현(丁世鉉) 전 통일부 장관이 남북 장관급회담 우리측 수석대표로 있던 2001~02년 사이에 두 차례나 남측 가족에게 생존 사실을 확인해준 적이 있다.

이번에 구명을 요청한 임국재씨는 선장 김순근씨와 선원들인 노성호·박광현·진영호·추영수씨와 함께 지금까지 한 차례도 북한 관영 매체에 등장하거나 소개된 적이 없다. 임씨를 제외하곤 생사여부를 알 수가 없는 상태다.

납북자 지원단체의 한 관계자는 “탈북에 실패한 임씨가 현재 연락이 두절됐다면 탈북기도 사실이 적발돼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됐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nk.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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