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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복합미생물공장 대부분 가동중단”
REPUBLIC OF KOREA 관리자 603 2007-11-09 10:07:21
데일리NK 2007-11-08 11:56

90년대 중반 김정일 지시로 도입…소식통 "3년만에 공장 문닫아"

북한이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 식량 증산을 위해 전국적으로 건설한 ‘복합미생물 비료공장’ 대부분이 현재 가동 중단 상태라고 내부 소식통이 알려왔다.

이 소식통은 “1996∼1997년 사이 함경북도 경성군에 건설된 복합미생물 비료공장은 건설된 한 해 동안만 생산을 하고 그 이듬해부터는 생산이 중단되었다. 지금은 빈 터만 남았다”고 말했다.

북한 매체들은 최근까지도 북한을 `복합미생물 기술의 선진국'이라고 치켜세우며 북합미생물기술과 자연농법에 대해 '식량위기를 해결하는 데서뿐 아니라 생태환경을 보호하는 데서도 큰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했다. 우리 언론들도 북한의 새로운 미생물 생산 기법을 긍정적으로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소식통은 “전국적으로 상황은 마찬가지다. 복합미생물공장들이 대부분 건설돼 얼마 생산을 못했다. 김정일의 지시니까 어쩔 수 없이 생산하다가 1년 지나서 흐지부지 됐다. 지금은 공장 상태가 폐허나 마찬가지가 됐다”고 말했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시기 알곡수확을 늘일 수 있는 비료가 턱 없이 부족하게 되자 전국에 110개 이상의 ‘복합미생물 비료 공장’을 건설하였다.

복합미생물이란 유용미생물 발견자인 히가 데루오(比嘉照夫) 류큐(琉球)대학 교수가 이름지은 일종의 자연농법이다. 일반퇴비에 비해 100배 이상의 영양물질을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경기도 이천 등 일부 지역의 친환경농법에도 이용되고 있다.

북한은 농업과학원 등은 90년대 중반 알곡 생산이 급감하자 김정일은 토양 산성화를 원인으로 지적하고 흙구이(흙을 불에 구워 밭에 뿌리는 것) 흙보산비료(퇴비와 흙을 섞은 것에 화학비료를 조금 섞어 밭에 뿌리는 것) 풀거름(여름철 풀을 베어 썩힌 것을 밭에 뿌리는 것) 생산운동을 벌였다.

이러한 조치가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김정일은 “전국적 범위에서 복합미생물 비료를 대량생산하여 알곡생산을 늘리라”는 방침을 내렸다. 조총련을 통해 복합미생물비료 생산을 위한 공장건설을 추진해 1997년 6월에 완공한 ‘애국복합미생물센터’를 비롯해 1년간 전국에 1백여 개의 복합미생물 비료공장을 건설했다.

복합미생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사탕가루가 투입돼야 하지만 원료가 비싸 대부분 일반 알곡(강냉이와 쌀)을 투입했다. 먹을 것이 없어 사람이 떼로 굶어 죽는 상황에서 3년 후에 효과가 나오는 복합미생물 생산을 위해 알곡을 투입할 여건이 아니었다.

양강도 혜산시 ‘애국복합미생물비료공장’ 노동자 출신 탈북자 김영화(가명) 씨는 “1톤의 발효 원액을 만드는데 350kg의 강냉이를 소비하여야 했다. 옥수수 350kg이면 한 사람이 충분히 1년 먹고 살 수 있는 양이 아닌가. 1997년부터 2년간 공장을 돌리면서 38t 이상의 옥수수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복합미생물 제조과정은 기사 하단 ‘제조공정’ 참조)

김 씨는 “종업원들에게는 특별히 식량공급을 했는데도 강냉이가루부터 발효 액까지 눈치를 보며 도둑질 했다”면서 “주변사람들은 우리에게 ‘강냉이(옥수수)로 비료를 만든다는 게 사실이냐고 묻고는 하나같이 ‘미생물이 사람을 잡는다’며 분개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생물을 생산해도 이를 운반할 차량과 기름이 없어 애를 먹었다. 이를 보관할 용기들도 분실되거나 파손된 것이 많아 저장도 어렵고, 액체다 보니 뿌릴 때도 힘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당시 농업일꾼들이 3년 후가 되면 땅 속에서 질소를 생산하는 균이 왕성하게 자라게 된다고 설명해도 주민들은 믿지 않았다고 한다. 옥수수를 계속 공급할 상황도 아니고 생산된 미생물을 농장에 뿌리는 데도 관심을 두지 않아 결국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토양 산성화를 지적하는 남측 전문가들의 의견도 꾸준히 제기된다. 북한 토양에 유기질 비료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식량난 조건에서 알곡을 원료로 하는 복합미생물단지는 현실과 괴리감이 너무 크다고 탈북자들은 말한다.

북한농업과학원 출신 이민복 씨는 “1979년부터 토양 산성화가 심각해 김정일의 교시까지 내려왔다. 미생물 단지가 일부 개선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농업구조, 치산치수, 화학비료 및 유기질 비료 생산 환경 구축 등 종합적인 대책이 없는 한 암환자에게 쑥물을 주는 것 밖에는 안된다”고 말했다.

내부 소식통은 “1996년부터 갑자기 복합미생물 비료에 대해 떠들었는데 실제 효과가 없으니 1999년부터는 자연히 사라지게 됐다”면서 “평양의 애국복합미생물센터, 라선의 미생물 공장 같은 대규모 시설 몇 군데 외에는 대부분 건물 형체만 남은 상태”라고 말했다.

북한이 복합미생물 비료에 관심을 가진 것은 충분한 퇴비와 화학비료를 생산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정부는 올해 북에 화학비료 30만t, 내년에는 40만t(협력기금 1천511억 원 배정)을 지원할 예정이다.

김정일은 2004년 5월에도 전세계적으로 화학비료 생산이 감소되는 추세라며 미생물비료 이용을 강조했다고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러한 김정일에게 “김 위원장은 자기 체제에 대한 분명한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중국 옌지(延吉) = 이성진 특파원, 문성휘 기자



양강도 혜산시 ‘애국복합미생물비료공장’ 노동자 출신 탈북자 김영화(가명) 씨에 따르면 발효탱크로부터 저장용기에 이르기까지 일체 중국산이었다. 조총련은 자금만 지원했고 필요한 설비들은 중국에서 들여왔다고 한다.

김 씨는 “복합미생물 비료는 땅속에서 질소를 만들어 내는 미생물을 배양한 액체비료이다. 화학비료로 말하면 ‘질소비료’에 속한다”고 말했다.

그는 “생산은 아주 간단했다. 무균탱크와 발효액을 담을 수 있는 용기가 전부였다. 미생물 원균은 위(애국복합미생물 센터)에서 공급됐다”고 전했다.

◆김 씨가 증언한 미생물비료 생산공정

①옥수수를 가루 내어 보리효소를 섞어 엿을 만든다.
②엿을 물에 풀어 탕도가 40%정도 되는 원액을 만든다.
③70리터 가량의 원액에 1그램 정도의 원균을 넣으면 12시간 숙성
④여기에 다시 옥수수가루와 엿을 녹인 물을 넣어 며칠간 발효 시킴

미생물을 생산한 후에 농지에 바로 뿌리지 않을 경우 죽게 됨. 따라서 균을 관리하기 위해 적당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이 필요함. 그러나 당시 공장에는 그러한 시설이 전혀 준비가 안돼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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