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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교수 북한판 '왕자의 난' 전망
Korea, Republic o 관리자 948 2008-02-22 21:30:28
세계일보 2008-02-22 14:45

"(북한에서) 앞으로 있을 왕자의 난에 대해 얘기하겠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인) 김정남이 (이복동생인) 김정철의 권력 승계를 가만히 보고만 있겠습니까. 폴란드 대사로 있는 (김 위원장의 이복동생인) 김평일이라는 멋진 친구가, 김정일 여동생의 남편인 장성택이라는 멋진 친구가 있는데 이 사이에서 무사하겠느냐 그것이 문제시되고 있습니다.”

북한 김형직사범대학 로어과 교수와 김정일 일가 과외교사를 지내다 1992년 탈북한 김현식(76.사진) 미 조지 메이슨대 교수가 지난 19일 오후(현지 시각)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듀크대학에서 강연을 했다. 수년전부터 한 쪽 몸을 쓰지 못하는 김 교수는 주변 사람 도움을 받아 단상에 오를 정도로 불편해 보였고 발음도 일부 부정확했으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그는 교수와 학생 300여명이 참석한 강연에서 38년간 북한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경험한 북한 사회 실상을 소개하고 폐쇄성과 김정일 부자 신격화, 인권유린 등을 신랄히 비판했다.

김 교수는 1994년 남북 정상회담을 1주일 앞두고 숨진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관련해 타살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김일성이 사망 얼마 전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60살이 청춘이고 90살이 환갑이다’면서 ‘(통치를)맏아들에게만 맡겨서는 안되겠다’고 했다”면서 “24시간 의사가 따라다니고 인공심장까지 단 그가 밤중에 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산골에서 숨졌는데, 죽었는가 죽였는가는 앞으로 역사가 말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김일성 사망 이후 세계는 북한이 3년내 망할 것으로 봤으나 그렇게 되지 않은 건 북한이 김일성교 종교국가이기 때문”이라면서 “김일성 부자는 신이고 국민은 신자이며, 바이블은 김일성 부자의 어록, 교회는 전국 공산당학습소”라고 규정지었다.

그는 북한의 김일성 부자에 대한 우상화 실상과 북한 주민이 문명사회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 최고 권력자인 김 국방위원장의 이중성 등에 대해 각각 일화를 들어 설명하기도 했다.

특히 김 교수는 “김정일이 1달러 외화도 아까워 하면서 정작 아이들은 제네바에 데려다 뒀다”면서 “그들의 두뇌, 지식, 인품을 알리지 않음으로써 신비롭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김정일이 등장한 1974년부터 지금까지 대중 앞에서 한 연설이라고는 군대 열병식 때 ‘조선인민군 장병들에게 영광 있으라’라고 한 것 외엔 없다”면서 “이 또한 신비롭게 보이기 위한 목적”이라고 덧붙였다.

북한 권력 승계와 관련, 김 교수는 “김일성이 62살 때 32살인 김정일에게 권력을 넘겨줬는데 지금 김정일이 66살이니 권력을 넘겨줘야 할 때”라면서 “지금까지는 36살 맏이인 김정남이 거론됐으나 요새 바꿔서 26살인 김정철에게 넘겨주려고 한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후계자 교체 배경과 관련해 “김정남은 (김정일을 만나기 전 이미 결혼한) 유부녀한테서 태어나 시원찮은데 반해 김정철은 고영희라는 무용배우와 사이에서 태어나 깨끗하다”고 언급했다.

김 교수는 강연을 끝마칠 무렵 “미국에 크게 사죄할 일이 있다”고 운을 뗀 뒤 “1950년 전쟁 때 북한군으로 참전했을 때 미군에게 수류탄을 던졌는데 숨진 미군 병사 옆에 있던 배낭에는 부인과 군인 사이에 어린 딸아이가 있는 사진이 담겨 있었다. 내가 던진 수류탄으로, 지금 85세, 60세 가량 되었을 모녀에게 큰 죄를 저질렀다”면서 눈물을 쏟았다.

김 교수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벌이고 있는 ‘북한 주민에게 영어 사전 보내기 운동’을 소개하고 “북한의 영어교육을 도와주면 그걸 가지고 국제사회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대학생들이 적극 참여해 줄 것을 호소했다.

그는 “우리가 통일된 평양에서 2008년 2월19일 오늘 모임을 뜻깊게 회상했으면 한다”는 말로 이날 강연을 끝마쳤다.

김 교수는 지난해 출간한 자서전에서 스스로 ‘21세기 이념의 유목민’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는데, 탈북후 10년간 남한 생활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2003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는 1991년 국립 러시아사범대학 교환교수로 파견돼 있던 남동생을 만나 그의 운명을 바꿔놓은 누나가 살고 있다. /채플힐(미국 노스캐롤라이나)=박희준 기자 july1s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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