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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국방부, 북한-알카에다 연계설 추적 중
Korea, Republic o 관리자 732 2008-02-26 00:34:35
신동아 2008-02-25 10:32

미국방부 정보본부(DIA)에서 북한 관련 정보분석 임무에 종사하는 한국계 직원 P씨가 서울을 찾은 것은 지난해 9월 말 무렵이었다. 이전에도 한국을 자주 방문해온 그였지만, 이때의 서울행은 의미가 달랐다. 그간 한국 국방부와 국가정보원에 여러 차례 요청해온 탈북 관료를 직접 면담하기로 했기 때문. P씨는 그후 11월과 12월에도 다시 한국을 찾아 모두 세 차례에 걸쳐 문제의 탈북 관료를 접촉했다.

이 탈북 관료는 2003년 중국을 거쳐 서울에 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의 대외·대남 공작을 담당하는 ‘3호청사’ 부서 출신인 이 관료는 통상의 탈북자들과는 달리 지금도 국정원 대북파트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의 ‘정보가치’를 확인한 국정원이 4년 넘게 지난 현재까지도 그를 관리하고 있다는 것. 국군정보사령부 등 다른 정보당국 관계자들도 이 탈북 관료와 꾸준히 접촉하고 있음을 확인해줬다.

DIA 측과 이 탈북 관료는 서울 시내 호텔 등에서 장시간의 인터뷰를 가졌다. 첫 만남에는 국정원 직원이 동석했지만 이후 두 차례의 만남에서는 빠졌다. 대신 두 번째 만남에서는 공식적으로는 서울 주한미군사령부에 배속된 DIA 서울지국 정보 분석관들이 일부 참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오극렬 집에 걸린 사진 봤다”

DIA가 이 탈북 관료에게 관심을 가진 이유는 그가 중국에 있을 때부터 “북한과 알카에다 사이의 연계에 관한 정보가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3호청사에 근무하는 동안 대남·해외공작 조직을 두루 살펴볼 기회가 있었으며 평양 고위층과도 개인적인 관계가 깊다고 주장하는 이 탈북 관료는 조선노동당 작전부가 지난 30여 년 동안 아프가니스탄 등지의 테러조직들과 깊은 공조관계를 맺어왔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지도자 물라 무하마드 오마르다. 출생부터 나이에 이르기까지 정확한 신상이 공개된 바 없는 이 인물에 대해, 문제의 탈북 관료는 그가 1980년대 중반 평양 순안비행장 인근에 있는 강건종합군관학교에서 수학하며 게릴라 전술 등을 익혔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한국인 인질사태의 주역이었던 탈레반을 현재도 이끌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1994년 칸다하르에서 학생무장세력을 규합한 것이 지금까지 공개된 첫 번째 이력이다.

이 탈북 관료가 국정원 안전가옥에서 한 진술에 따르면, 평양은 1970년대부터 중동 등 제3세계 저항세력과 인적·물적인 교류를 맺어왔다. 이때 형성된 인맥을 바탕으로 알카에다와 탈레반 지도자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북한에 유학했다는 것.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차지한 1990년대 후반에는 서로 군사대표단을 교환하고 북한에서 AK-47 자동소총을 러시아제로 위조 제작해 이들 국가에 대량 공급할 정도로 가까웠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1970년대 들어 소련과 중국이 미국과의 데탕트에 나서자 김일성 주석 등 북한의 지도부는 이를 비난하며 ‘제3세계·비동맹국가와의 반제반미(反帝反美) 연대’를 내걸고 외교역량을 집중한 바 있다. 북한이 중동 국가들과 본격적으로 외교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의 일로,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1973년에 정식 수교했다.

문제의 탈북 관료는 이러한 중동 테러단체와의 연계를 담당하는 부서로 조선노동당 작전부를 지목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인민군의 막후실세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핵심측근인 오극렬 작전부장의 집에서 중동 무장세력의 지도자들과 찍은 기념사진이나 이들이 오극렬에게 선물한 저격용 라이플 등을 직접 본 적이 있다는 것. 이들 중동 무장세력 인사들은 주로 작전부 산하 연락소에서 게릴라전 훈련을 받았고 이를 통해 작전부 관계자들과 지위 고하를 막론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했다는 설명이다.

거꾸로 북한 또한 1990년대 이후 이들의 전술을 일부 수용해 작전부의 체계와 임무를 바꾸는 등 교류 관계를 활용하고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7000명 수준이던 작전부 인원을 3만명 규모로 늘리는가 하면, 남파간첩 수송이나 대남공작 등을 주로 맡던 임무 수행방식을 변경해 테러와 점거를 위주로 하게 됐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2003년 그가 서울에 온 직후부터 집중조사해 이러한 진술을 받았지만, 정확한 교차확인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더욱이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을 거치는 동안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게 불문율이다 보니 공개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는 것. 다만 북한과 중동 무장세력의 연계에 대한 의혹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고, AK-47 소총의 대량 위조 공급 등 일부 사실은 이미 확인된 정보와도 일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정부는 전세계에서 유통되는 AK-47 중 위조품이 90%를 차지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중동 국가와 북한이 군사적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북한이 파키스탄과 이라크, 이란 등에 미사일을 수출해 외화를 충당해왔다는 것 역시 한미 정부당국의 공식설명을 통해 확인된 바 있다. 특히 파키스탄은 그 대가로 북한에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 샘플을 제공했다고 고백한 적도 있다. 이들 국가와 북한이 최소한 1990년대까지 군사대표단을 교류하며 ‘반미 연대’의 기치 아래 가까운 관계를 맺어왔다는 것 역시 충분히 입증된 사실이다.

탈레반이 1990년대 후반 아프가니스탄의 실권을 장악한 상태였다는 점이나, 오사마 빈 라덴 등 알카에다의 핵심 관계자들이 중동 국가 지도층과 한때 밀접한 사이였음을 감안하면 이들 저항세력·테러조직이 북한과 연계를 맺을 수 있는 정황도 충분히 존재한다. 굳이 탈북 관료의 진술이 아니어도, 이를 의심하는 목소리는 미국 내 강경파 북한 전문가들로부터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다. 대북 정보당국의 한 전직 고위 관계자는 “우리도 그러한 정황에 대해 다양한 추적작업을 벌인 일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문제의 탈북 관료가 실제로 그러한 사실을 목격한 것인지, 아니면 이러한 정황을 토대로 진술을 꿰어 맞춘 것인지에 대해서는, ‘인간정보(HUMINT)’의 특성상 검증이 필요하다.

알카에다 2인자가 북한에?

이 때문에 국정원은 사실관계를 교차확인하고 미국이 수행하는 대(對)테러전쟁에 공조하는 차원에서 관련 진술을 미국 정보당국에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2005년 무렵, 오래 전부터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온 DIA가 해당 탈북 관료와의 직접 면담을 주선해달라고 국정원에 요청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노동당 작전부의 움직임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DIA는 2003년말 오극렬 작전부장의 장남을 잠수함에 태워 미국으로 망명시켰다고 일본 NHK가 보도한 바 있다. 국정원은 DIA의 이러한 요청을 수년간 미루다가 2007년 하반기에 들어서야 면담을 주선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정권교체 가능성이 매우 커지자 면담을 허락한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지난해 9월부터 이뤄진 면담에서 DIA 측도 몇 가지 자료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알카에다의 2인자로 유명한 아이만 알 자와히리가 북한에 다녀간 정황이 있다는 첩보가 대표적이다. 서울을 방문한 DIA 직원이 앞서의 탈북 관료에게 자와히리의 사진을 보여주며 북한에서 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는 것. 이집트 출신인 자와히리는 1981년 이집트 사다트 대통령 암살 관련자로 지목돼 수감생활을 한 이후 종적을 감췄다가 1990년대부터 중동지역에서 벌어진 각종 테러사건의 배후로 떠올랐다. DIA는 자와히리 이외에도 몇몇 알카에다와 탈레반 지도자들이 북한에 입국한 적이 있다는 심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리아-북한 핵 협력설’에 이어

북한이 알카에다나 탈레반과 수십년간 깊은 공조관계를 맺어왔다는 첩보는 2008년 현재의 국제정치 정세에 매우 큰 파장을 일으킬 만한 내용이다. 부시 행정부가 ‘악의 축’으로 지목한 바 있는 국가가 테러 세력과 직접적인 연계를 맺어왔다면 이는 2001년 이래 수많은 논란을 불러온 대테러전쟁의 정당성을 크게 높여주기 때문. 또한 지난해 초부터 극적으로 변모한 미국의 대북정책이 다시 강경으로 돌아서는 방아쇠 구실을 할 수도 있다. “알카에다와 평양은 한편”이라는 선언만으로도 그 여파가 어디까지 파급될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특히 6자회담을 통해 비핵화 2단계 조치의 반대급부로 설정된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 백악관의 요청에 따라 미 의회가 인준하는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는 당초 지난해 연말까지로 예정돼 있었지만, 북한의 핵 신고를 두고 교착상태가 이어지면서 사실상 프로세스가 중단됐다. 이렇듯 미묘한 상황에서 북한과 중동 테러단체가 연계를 맺은 적이 있다는 첩보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명확하다.

물론 DIA가 이러한 첩보를 적극적으로 수집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미국의 대북정책이 조만간 변화할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주목할 가치가 있는 진술을 한 탈북 인사를 접촉해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따지는 준비작업으로 보는 것이 적절할 듯하다. 그러나 이렇게 수집된 정보가 필요한 경우 얼마든지 활용될 수 있으리라는 사실 역시 의심의 여지가 없다.

최근의 북미 관계가 비핵화 2단계 조치의 이행을 둘러싸고 힘겨루기를 하는 형국이 된 데는, ‘불량국가’로 지목된 바 있는 또 다른 국가인 시리아와 북한의 핵 협력설이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미 행정부 내 강경파 등이 “이 문제를 명확히 규명하지 않고 테러지원국 해제 등 북한에 선물을 줄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 여기에 북한과 알카에다, 북한과 탈레반의 연계설이 더해진다면 강경파의 입지에 더욱 큰 힘이 실리리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시리아와 북한의 핵 협력설은 지난해 9월 중순 ‘워싱턴포스트’를 통해 처음 흘러나와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 등 당국자들의 비공식 확인을 거치는 방식으로 진화해 현재에 이르렀다. 이를 두고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의 언론 플레이’라는 비판도 쏟아진 바 있다. 북한과 미국의 줄다리기가 계속된다면, 미국 언론이 익명의 미 정부 당국자들을 인용해 ‘북한-알카에다 연계 의혹’을 보도하는 상황이 조만간 벌어질 가능성도 충분해 보인다. DIA의 움직임과 문제의 탈북 관료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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