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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둥이 부러지게 맞고 살다가 애 낳아주고 도망쳐"
Korea, Republic o 관리자 1197 2008-03-08 00:39:17
조선일보 2008-03-07 03:50

[크로스미디어] 탈북 10년 보고서 '천국의 국경을 넘다'

● 씨받이… 세차례 北送… 쌍둥이 엄마의 절규

"남편 찾아 두만강 건너다 두 딸과

93만원에 팔려갔다 젖먹이 놔두고 도망쳐 나와"

취재팀은 2007년 10월 중국 연길 부근 한 마을에서 조경숙(가명)이라는 여성을 만났다. 세차례 강제북송 끝에 그녀는 다시 북한을 탈출해 지금 한족(漢族) 남성과 살고 있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인생을 그녀가 취재팀에게 털어놓았다. 더러 표현이 어색한 부분도 그대로 옮긴다.

내 이름은 조경숙, 함경도 온성에서 태어났습니다. 올해 마흔 됐습니다. 지금은 중국 연길에 살고 있습니다. 조선에 있을 때는 아침에 깨면 아침 밥거리가 없어서 아침 밥거리 죽을 겨우 끓여 먹으면 점심거리가 없고… 그저 이틀에 한 번씩 먹을 때가 있고 3일에 한 번 먹을 때가 있고…. 애들은 구들에 누워서 먹인 게 없어서 일어나 앉을 기운도 없지…. 이러다가 애들 아부지가 1998년도 중국에 처음 왔습니다. 제가 후에 99년도에 딸 둘 데리고 두만강 건넜었습니다.

◆씨받이로 팔린 인생

날 데리고 건너선 남자가 남편에게 데려다 준댔는데, 장춘(長春)에 날 팔아먹었단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딸 둘 데리고 농촌에 중국 돈 7000원(93만5000원)에 팔려갔는데 그곳에 팔려가니까 한족 사람들이, 우린 너를 돈 주고 사온 물건이다, 우리 며느리도 아니고, 이럽디다. 아들이 벙어리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장가갈 수가 없어서 너를 돈 주고 사왔다, 이래서 모든 걸 니 자유대로 할 수 없고 우리 집에서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서고…. 도망칠까 봐 대문 밖엔 나가지 못하게 하더란 말입니다. 자유가 없으니까 이렇게 코 꿴 송아지처럼 다니는 대로 끌려 다니고 때릴 때는 집안으로 들여보내 주는데 왜 때리냐면, 자꾸 도망치다 붙잡혀서 매를 맞았단 말입니다.

때리면 비명소리를 들어야 되는데, 벙어리가 듣지 못하니까 몽둥이로 세 개, 네 개 부러질 때까지…. 많이 맞으면 다리가 다 부어서 바지를 벗을 수가 없었단 말입니다.

그러다가 내가 이 집에서 도망치자면 아이를 하나 낳아야 좀 자유가 생겨서 도망쳐도 도망치겠다 해서 내가 그 집에 들어가서 애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고 1년 9개월 돼서 젖먹는 애기 두고 우리 아이 둘만 데리고 도망쳤는데, 내가 벙어리 집에 들어가 생활한 게 1999년 11월 29일날 시작해서 2000년도 애를 낳고 2001년 6월에 내가 도망쳐 나왔습니다.

◆세번 강제북송과 남편의 죽음

그러고 남편을 찾아서 살다가 다시 잡혀 나갔댔습니다. 조선으로 끌려가 저는 아이 둘 데리고 금방 나오고 남편이 일년 동안 노동 단련 했습니다. 또 중국 왔다가 두 달 만에 또 잡혀 나갔습니다. 또 잡혀나갔다가 다시 또 두 달 후에 들어와서 이렇게 잡혀나간 게 3탕 됐습니다. 세 번째 잡힐 당시 맏딸을 잃어 버렸습니다. 아이들은 따로 수용하고, 제가 3개월 노동 단련하고 남편은 1년 교화로 갔습니다. 딸은 바로 며칠 전에 다시 찾았습니다. 4년 만에. 남편은 교화에서 석방되지 못하고 병 나서 돌아갔습니다. 조선에선 그렇습니다. 교화만 가면 90프로가 다 죽습니다. 그건 죽으라고 교화를 보내는 거길래….

◆4년만에 찾은 큰딸

막내딸은 상해(上海)의 아는 사람 집에서 공부하고 있고, 큰딸은 열흘 전에 찾았습니다. 많이 울었습니다. 부모랑 동생 끌려가고, 열 네 살에 이 험한 중국 땅에 혼자 남아서 4년 동안 살았습니다. 나처럼 어디 팔려갔다면 무슨 고생을 하고 살까…. 그런데 정말 마음 고운 한족 분이 계셔서 기적적으로 아이를 찾았습니다. 통화를 하는데, 열 여덟 된 아이 목소리가 많이 변했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딸아이가 엄마~ 내가 엄마 딸이 맞습니다. 그래도 그래 어머니 생일이 언제야 하니까 아이가 댄단 말입니다. 생일을 물으면 묻는대로 답변을 하는 거를 봐서는 우리 딸이 틀림없단 말입니다. 아이가, 장춘에서 북경에서 흑룡강에서 안 가본 데 없이 고생하고 살다가 마음 고운 할머니 만나서 엄마로 모시고 지냈답니다.

우리 잡히던 날, 산에 숨어 있다가 이틀 동안 걸었답니다. 밤낮 자지 않고 신발을 손에 쥐고 맨발로요. 3월 달입니다. 아직 추위가 있을 때 아닙니까. 발이 얼어서 새까맣게 발이 다 얼고 피가 터지고, 이래서 왕청(汪淸)에 도착해서 식당에 찾아 들어갔답니다. 우리 딸아이가 이렇게 다 몸이 얼어가지고 머리가 다 헤쳐져서 머리를 맬 수 없었답니다. 머리를 다 풀어헤쳐져 가지고 식당에 턱 나타나니까 사람들이 귀신이 나타났다 그러고 와~ 소리 지르고 달아나더라는 겁니다.

그러다가 들어와서 앉으라니까 몸이 얼어서 앉지를 못했답니다. 입도 얼어서 입이 벌려지지 않았답니다. 그러니까 두 사람이 와서 아이를 어깨를 붙잡아 가지고 이 다리를 꺾어가지고 앉혔다는 겁니다. 중국인 부모한테 버림받았다고 속이고 일하면서 살았답니다.

주인집이 몇달 있다가 자기들이 한국 가는데, 우리 딸이라 하고 같이 가자 했답니다. 아이가, 내가 만약에 따라갔다가 엄마 아버지하고 영원히 이별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가더라도 엄마 아버지 행처를 안 다음에 가겠다 그러고 따라 안 갔답니다. 그 덕에 다시 찾았습니다. 우리 딸은 명절 때 엄마 생각나도 안 울었답니다. 부모 덕도 없고 정말 팔자 사나운 엄마 따라 팔려가서 복 없이 다니니까 엄마가 보고 싶어 서러울 때가 많지만 복하게 자란 아이들보다 의지가 강해졌다고 봐야지매….

◆"결국 구걸 온 거지요"

그 사이에 나는 다시 막내딸이랑 중국 나와서 이렇게 한족 남편 만나 삽니다. 해바라기 농사 합니다. 지금 남편이랑 쌍둥이 낳았습니다. 세살입니다. 어떻게 내 인생 말년이 좀 순조롭게 풀리자 그런지 저 사람은 성격은 좀 괴벽한 데는 있어도 장춘 한족 보다는 마음이 고약하나 악하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가정 형편이 우리 조선여자들이 와서 사는 게 다 잘 사는 집에 시집올 수 없단 말입니다. 추석날에도 집에서 해바라기 두들겼습니다.

조선에서 고생하며 살던 때보다는 그래도 많이 행복한 편입니다. 그래도 사람이 먹고 사는 것도 그렇습니다. 자유를 얻어서 정말 세상 천지를 자유롭게 보고 사는 거, 단지 그 자유가 없이 고독한 속에서 학대를 받으매… 그 단지 입에 먹는 거 하나를 위해 오직 먹는 거 때문에 살자면…. 내가 중국 땅에서 돈을 많이 벌어서 오빠들에게 좀 보탬이 되게 도와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북한 사람이 중국에 오면 다 곤란한 사람한테 시집간단 말입니다. 뭐 언제 그럴 여지가 없단 말입니다. 나까지 애를 젖을 먹이며 밖에 나와 이렇게 일하지 않으면 우린 생활을 일어설 수가 없습니다.

조선의 가난한 나라 사람, 먹지 못해서 입지 못해서… 결국은 구걸하러 온 거나 같지 않습니까. 우리도 중국사람한테 멸시를 당하고 산단 말입니다. 그러나 지구상에 중국나라 사람이나 한국 사람이나 일본이나 어느 나라 사람, 인간은 다 같은 인간으로 유독 조선 민족이 고생에 시달리고 배고픈 설움으로 살아야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불안한 삶과 한국행

내가 3차에 걸쳐서 조선에 나가 잡혀서 조선 보위부에서 많이 본 경험에 의하면 지금 중국에 들어와 살고 있는 북조선 사람들이 여자건 남자건 상관없이 한국에 가는 게 목적입니다. 백프로. 한국 가면 자유롭게 산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못 가봤지만. 간 사람들 말에 의하면 맘 놓고 돈벌이 할 수도 있고 한 동포라고 호구(호적)도 올려주고 그렇게 하고 살림집도 해결해 주고. 살기 좋고 능력껏 일해서 돈을 벌 수 있단 말입니다. 자유롭게 살 수 있고. 우선 중국 땅에서 살자면 공포심에 질려서 마음 놓고 살지 못한단 말입니다. 잡힐까 봐.

한국 가다 잡힌 사람 몰골 보니까 무덤에서 나온 몰골 그대로란 말입니다. 뼈에 가죽만 씌어놓은 몰골, 보기 무서울 지경으로. 이 목 뒤에 등에 뼈가 다 올라오고 여기 얼굴 뼈가 다 두드러지고. 그래서 나 하나 죽으면 그만이지만 두 아이가 있으니까 죽어서도 안되고 끝까지 살아야 내 자식도 살릴 수 있다, 난 이 각오를 가졌기에 내 신변에 대해 세게 조심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시댁 식구랑 다퉜습니다. 여지껏 고생만 하면서 살았는데 이제부터라도 나도 남들과 같이 행복이라는 게 뭔지 알고 죽어보자고서리, 그 사람들(조선일보 취재팀) 따라서 한국에 따라 가겠다고. 내 이 나이 40살 먹도록 복이라는 게 도대체 뭔지 모르고 남이 다 누리고 사는 행복이라는 게 뭔지 모르고 40살 먹었는데 이제부터라도 복이라는 거 알고 행복이라는 거 알고 죽어보자 해서 따라간다고…그랬단 말입니다. 그랬더니 진짜로 들은 모양입니다. 복하게 사는 여자를 보면 그게 그렇게 부럽습니다.

◆나의 소원은

내 소원, 내 소원은 조국이 빨리 어떻게 통일이 되든가 머 어떻게 대책이 있어서 우리 북한사람들이, 이 중국에서 제일 못사는 나만큼이래도 살았으면, 우리 북한사람들이. 얼마나 배고프고 얼마나 고생합니까. 지금 중국 땅에서 제일 가난하고 제일 정말 곤란하게 사는 내 생활 절반만큼이라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북한 사람들이.

도움 문의:두리하나선교회

문의전화:1577-9121, 인터넷:www.duri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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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념 2008-03-08 13:37:45
    정말 고생 하셨네요...
    이제라도 빨리 한국에 오셔서 당당한 대한민국의 민주시민.주권국가의국민
    으로써 남은여생 을 보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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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달래 2008-03-12 08:52:29
    눈물도 말라버린 우리탈북여성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힘듭니까?..
    개뼈다귀같은 몰골로 애기는 업고 소금배낭 머리이고6~70리 걸어다니던 생각하면 지금도 자다가 소스라쳐 일어나 악몽속에 헤메입니다,
    그나마 데리고온 애들을 조선족들이 물건팔듯 하나씩 3천원씩팔았고 저는 시골의 농가로 5천원에 팔렸어요,
    자다가깨여나면 늘 팔베개로 재워주던 애들이 없어서 목놓아 울지도 못하고 변소에 들어가서 흐느껴웁니다,
    팔려가는애들이 고사리같은 손을 내저으며 같이가자고 발버둥칠때 엄마가된 여자의 설움에 저도 목놓으며 애들을 부르며 소리쳐 불러보았어요.
    그러나 검은차에 실린 애들은 단몇분만에 연기처럼 사라져버립니다,
    신발도 못신고 너덜이낭 옷을 입고 코물흘리면서도 엄마가 옆에있어서 중국까지 들어온것이 마냥 좋아서 줏어먹으면서도 엄마입에 먼저 넣어주고 설움에울면 까마귀처럼 새까맣고 다 터버린 고사리같은손으로 엄마울지마,,하면서 눈물닦아주던 애들이 한날 한시에 없어져 버리니 여지껏 그애들이 너무 보고싶어 울어흘러내린 눈물이 얼마인지..
    말라버린 눈물의 아품을 가지고 한국에 들어온 우리탈북여성분들은 이 한세상의 슬품과 아품을 너무빨리 겪은 불쌍한 여성들입니다,
    북한탈북여성동지들,,아품을 딛고 일어나세요,,
    그슬품을 간직하고 그곳에서 헤여나지못하면 우리엄마들은 더 어려워집니다,
    세월이 우맇 이렇게 만든것이 아니라 개정일이가 우리엄마들에게 이별의 이상가족을 또 만들어 놓았어요,,
    꼭 복수할날이 있겠죠?..
    참고 견디면서 자식들이 보고싶어 눈물만 흘리지말고 툭툭털고 일어서 힘내서 살아갑시다,
    북한탈북여성들은 참으로 누구도 지낼수없는 위대한 힘이 있지않습니까?..
    힘냅시다,,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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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수 2008-03-16 21:10:29
    중국조선족들은 양심이 하나도 업어지. 우리 탈북자들을 상가집개만도 여기지 않지요. 자기들의 씨받이로만 사용할뿐 저들의 말을 듣지않으면
    어떤집들에선 때리고 욕하고 그렇지 않으면 공안에 일려받혀서 잡혀가게
    하지요. 그런 중국조선족들을 보면 한국에있는 불법중국조선족들을 다
    잡아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얼마나 쌓인것이 많으면 이런 마음을 다
    먹겠어요. 자기자식들은 한국에 시집을 보내면 다 도망을 치면서도 우리는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하는것이 정말로 기가 막혀서 말도 안나가고 있었요. 정말 중국조선족들은 양심이 하나도 업어요. 증오스럽지요. 길을 가는 탈북자 100명을 가로 막고 물어보면 한결같이 대답을 할겁니다. 중국조선족들이 한국에 와서 일을 하면 다 잡아갓으면 하는 바램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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