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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같아요… 더이상 도망치지 않아도 되니까요"
Korea, Republic o 관리자 608 2008-03-15 17:21:35
조선일보 2008-03-15 03:33

천국의 국경을 넘다

"주민증 받고 서울 구경하는데 계속 눈물

국경 넘을 때 마음으로 계속 살래요

뭐든 열심히 하면 세 식구 먹고 살겠죠"

"'창피'를 잊고 살아요." 북한 어법(語法)으로 "창피한 일을 워낙 많이 해서 그냥 잊어먹는다"라는 뜻이다. 이영화(여·19)씨에게 서울은 낯설다. 영화씨는 지난 6일 동사무소에 가서 임시 신분증을 받고, 대한민국 국민이 됐다. 중국에서 쓰던 이름 '이영화' 대신 북한에서 아버지가 지어준 본명이 찍혀 있다. "손가락 도장을 찍으니까 다 끝났다고 하더라고요."

신분증을 받던 날, 서울 나들이를 했다.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도 봤고 청담동도 봤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 안에서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모든 게 어색했고요. 앞으로 어떻게 살지 생각하니까 눈물이 계속 나왔어요." 사람들이 쳐다봤지만 한 번 터진 울음은 멈추질 않았다. 부끄러웠다. 그래도 서러움을 감출 순 없었다. 영화씨는 그렇게 북한, 중국에 이은 또 다른 장소 한국에 힘겨운 적응을 시작했다.

그녀는 태국에서 지낸 기억부터 꺼냈다. 한국대사관에서 직행한 곳은 태국 이민국 외국인수용소. 탈북 여성을 수용하는 공간 정원은 350명. 그런데 43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지냈다. 남자쪽 사정은 모른다.

믿기 어렵지만, 누워 자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고 했다. "먼저 들어왔다가 서울로 가는 탈북자가 자기 자리를 팔아요. 제일 비싼 곳은 1만5000바트까지 받더라고요." 한국 돈 48만원이다. 공간이 좁다 보니 벌어지는 작은 비극이다. 그러면서 생명을 걸고 함께 탈출했던 사람들 사이도 서먹해졌다. 손을 잡고 산과 강을 건넜던 일행이 두 패로 나뉘었다. 돈 있는 사람과 돈 없는 사람. 창가에 누워 지낸 동료도 있었지만 화장실 옆에서 석 달을 견딘 이도 있었다. "너무 힘들었어요. 가끔 죽어버릴까 생각도 했어요." 얼마나 힘들기에 자살까지 생각했을까. "어찌보면 탈중 과정보다 더 힘들죠. 탈북자끼리 서열도 있고. 작은 공화국이에요."

영화씨는 최근 성룡이 사연을 조선일보에서 읽었다. 한참 울었다. 이민국 생활을 잘 알기 때문이다. "거기서 성룡이를 잠깐 봤어요. 어린애들은 그 안에서 살기 힘들어요. 빨리 빼주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길 거예요."

영화씨는 그래도 한국에 올 엄마와 동생을 생각하면 즐겁다. "제가 행운아라는 걸 알아요. 가족 전체가 서울에 온다는 건 꿈같은 일이죠.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아도 되니까요." 가끔 엄마와 전화통화를 한다. "그냥 열심히 하자고 해요. 식당 일이든 옷 가게 일이든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하면 우리 세 식구는 먹고 살겠죠."

영화씨는 북한에서 살던 기억을 떠올렸다. 집안 살림은 비교적 넉넉했다. 무역상의 뒤를 봐주며 돈을 번 할아버지 덕분이다. 영화씨는 어려서부터 음감이 좋았다. 기타 강사를 찾아가 기타 연주를 배웠다. 노래도 잘한다. 몰래 들여온 일본 음악 CD를 들으면서 음악인의 꿈을 키웠다. 학교에서는 음악을 공부했다. "일본 그룹 '엑스재팬(X-japan)'의 'Endless Rain'은 지금도 실감나게 연주할 수 있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사망하면서 집안이 기울었다. 배고픔이 계속되자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엄마는 중국으로 돈 벌러 떠났고 영화씨는 그 뒤를 따랐다. 엄마와 아빠는 이혼했다. 북한에 남은 가족에 대해선 말하고 싶지 않다.

한참을 떠들던 영화씨는 한국의 대학교는 어떤 곳인지 물었다. 영화씨와 함께 버스를 타고 가까운 연세대학교로 갔다. 교정엔 봄 향기가 넘쳤다. 영화씨가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감춰둔 꿈을 말했다. "마치지 못한 대학 공부를 하고 싶어요. 연극영화과를 가면 노래랑 연기를 배울 수 있지 않나요?"

탈북한 여자가, 자기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했다. "'천국의 국경을 넘다' 다큐멘터리를 봤어요. 근데 박진감이 덜하더라고요. 우리가 국경을 넘을 땐 훨씬 더 조마조마했잖아요. 우리 북한 사람들의 심정을 연기해보고 싶어요." 영화씨는 '쉬리'의 김윤진, '밀양'의 전도연을 이야기했다. "가슴 아프게 연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죠. 그런 스타까진 바라지도 않아요. 직접 무대에 설 수 있길 바라는 거죠. 한국에선 노력하면 뭐든지 할 수 있지 않나요?" 2008년 대한민국 땅에 사는 탈북자들의 삶이 편치만은 않기에, 그 질문에 당장 답을 못했다. 그러나 죽음보다 긴 여행을 마친 소녀가 못 이룰 일이 어디 있을까. "무슨 일이든 못하겠어요? 산 넘고 강 건널 때, 이민국에서 견딜 때 마음을 가지고 살려고요. 도와주신 분들한테 갚아야 할 것도 많으니까요." 윈난산 산중에서 낙오될 뻔한 취재팀의 손을 잡아 이끌던, 그 씩씩한 영화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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