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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같은 거대 도시, 땅 속에 있다”
Korea, Republic o 관리자 873 2008-12-29 22:28:51
브레이크뉴스 2008 다시보는 [사건의내막] 특종&베스트(1) 2008-12-23

탈북자 군인 2人이 말하는 '북한판 X파일' 전격공개

은 1993년과 2006년에 각각 귀순한 인민군 간부 출신 임영선(45)씨와 박명호(44)씨를 통해 그동안 온갖 추측들만 난무했던 북한의 숨겨진 이야기와 공개되지 않았던 사건들에 대해 들어봤었다.

북한의 군사기밀

함박눈이 내리던 2월26일, 인민군 중위 출신 탈북자 임영선씨와 전 인민군 대위 박명호씨를 만났다. 임영선씨는 1993년 7월 중국을 통해 한국으로 건너왔고 박명호씨는 2006년 가족들을 데리고 휴전선을 넘었다. 그들이 들려준 북한의 군부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임 중위 : ‘9·24사건’이라고 들어봤나? 아마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할 것이다. 1991년 9월24일, 한 반란단체의 김일성·김정일 암살기도로 북한 군 내부는 물론 전역이 발칵 뒤집혔었다. 내가 그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

1989년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자 군 간부 몇 명이 모여 술을 마시며 정권을 비난하곤 했다. 처음부터 큰 뜻을 품고 모였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임이 잦아지며 자연스럽게 비밀 반란단체로 발전했다. 12명 가량이 모이면 늘 나라를 위한 혁명을 부르짖었고, 실행에 옮길 날만 손꼽았다. 그러다 1991년 추석이 가까워 왔을 때, 나와 동료들은 추석 성묫길에 나선 김일성, 김정일 부자를 암살하기로 하고 치밀한 준비에 들어갔다.

9월23일 나를 포함한 7명은 서로 흩어져 연변, 신의주, 개성 등을 돌며 ‘김일성·김정일이 총살됐다’라는 전단지를 뿌렸고, 같은 시각 나머지 동료들이 암살을 준비했다. 시간은 흘러 다음날 새벽,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나는 터질 듯한 심장을 부여잡고 부대로 복귀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모든 계획은 실패했고 그 시각까지 부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잠잠했다. 이 사실은 전국에 뿌려진 전단지를 통해 9월24일 오전 6시 김정일에게 보고됐다. 곧 ‘9·24사건’으로 암살모의범의 수배가 시작된 것이다.

임 중위 “식량과 물자가 지하에 저장돼 있다. 전쟁으로 인한 폭격에도 최소한 1년 동안 생활할 수 있고, 그곳에는 인민군복에 필요한 단추를 만드는 물자부터 용광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완비돼 있다”

당시 북한의 9·24사건은 마치 거대한 암살조직이 김일성, 김정일을 총살하려 했던 것으로 북한을 긴장시켰다. 하지만 이는 임영선씨를 포함한 12명의 작은 조직이었고 시도조차 제대로 되지 못한 채 수포로 돌아간 계획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후 김정일의 끈질긴 추적은 계속됐고 사건발생 2년이 지난 1993년 포위망이 점점 좁아지기 시작했다. 위기를 느낀 임 중위는 결국 탈북을 결심하고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로 오게 된 것이다.

박 대위 : 북한 역시 많은 추측들이 있다. 민감한 사안이지만, 남한처럼 암살설이 돌기도 했고 심장마비였다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북한의 추측은 남한과 달리 여러 가지 정황들이 있다. 먼저 암살설의 경우, 김일성이 사망하기 몇 달 전 평생 김일성의 건강을 지켜오던 주치의가 갑자기 김정일에 의해 바뀐 일이 있었다. 그리고 김일성 사망 후 얼마 있지 않아 군 간부들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강연회가 열렸다.

내용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첫째, 김일성은 생전에 새로운 주치의를 아주 좋아했고, 그의 실력에 만족했다는 것. 둘째, 김형직(김일성 父)이 생존당시 김일성에게 뱀을 조심하라고 했는데 얼마 전 산에 갔다가 뱀을 피하지 못하고 치어 죽인 사실이 있으니 죽음을 예견한 불길한 징조였다는 것이었다. 간부들은 강연을 듣고는 있었지만 도대체 왜 저런 소리를 하는지 다들 의아해했고, 나중에 퍼진 소문이 김일성의 암살을 정당화하려는 계략이 아니었겠는가 하는 추측들이었다. 그리고 심장이상설의 경우, 내가 공군으로 근무했기에 자세히 알고 있다.

김일성이 사망하기 나흘 전인 7월4일, 심폐소생술 장비를 실은 헬기 두 대가 급하게 날아올랐다. 하지만 기상악화로 한 대는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고, 한 대는 급선회해 돌아왔다. 이것을 두고 김일성이 사망하기 며칠 전부터 심장에 이상이 왔던 게 아니었나 소문이 돌았고 심장마비라는 설이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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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사 2009-01-03 11:02:51
    임양반 꼴갑떨지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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