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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김 씨의 ‘자산관리사’ 성공기
대한민국 정책포털 2009-07-08 17:00:00 원문보기 관리자 658 2009-07-11 02:26:36
아침부터 더위가 기승이던 7일 서울 양천구 양천구청역 1번 출구 앞. 단정한 양복 차림의 신사가 환한 미소를 띤 채 나타났다. 그는 지난 2007년 2월 서울 땅을 밟은 탈북자 김모 씨(37·서울 양천구)다. 현재 ㄷ생명에서 금융자산관리사(FP, Financial Planner)로 일한다.

다수 탈북자들이 제대로 된 일자리 없이 식당, 건설현장 등을 전전하고 있는 실정에서 김 씨의 이력은 비범하다. 입국한 그 해 ‘oooo과 성공공략법’이란 자기개발서를 출판했고 서울생활 불과 2년여 만에 고객 80명을 관리하는 생명보험사 FP가 됐다. 어떻게 된 일일까. 본인 말대로 ‘체제와 생활방식이 완전히 다른 나라에서 무엇부터 시작할지 당황스럽고 어떻게 살지 막막했을’ 텐데 말이다.

“책은 ‘먹고 살려고’ 썼어요. 우리 선조들 보면 혈혈단신 일본 유학길에 올라 신문에 칼럼쓰고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지 않았습니까. 그 생각이 난 거죠. 원고 들고 무작정 출판사 찾아다녔는데 ‘인지도 없는 필자’라면서 번번이 거절당했어요. 그러다 고향친구에게 500만원 빌려 자비 출판했습니다. 낮엔 공사장서 막노동하고 저녁엔 공부해서 쓴 책이에요.”

겉모습은 온순해 보였지만 말할 때 눈빛은 진지했고 단어 하나하나 허투루 선택하는 법도 없었다. 조리 있는 말솜씨는 타고난 것 같다. 과연 인민학교 시절부터 대학까지 최상위를 놓친 적이 없는 수재다웠다.

“책이 돈벌이가 안 돼서 다시 대책을 고민하다 아는 분이 ‘돈 벌게 해주겠다’기에 따라간 곳이 인터넷 다단계 회사였습니다. 열심히 교육받고 250만원 떼이고 나서야 ‘사기’라는 걸 알았죠.(웃음)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 경험과 최선을 다해 받은 교육 덕에 한국사회의 진짜 모습을 빨리 알게 된 것 같아요. 너무나 다양한 배경과 계층의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한국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공부할 수 있었거든요.”

국내에 들어온 탈북자들은 통일부 산하 탈북자 정착교육시설 하나원에서 3개월간 사회적응 훈련을 받은 뒤 임대아파트(주거지원금 1300만원 상당)와 정착지원금 600만원을 받는다. 300만원은 하나원 출소 때 농협 통장으로, 나머지 300만원은 100만원씩 3개월로 분납해 지급된다. 통장에 들어있던 돈을 다 날린 셈이니 국내 손꼽히는 보험사에 자리 잡기까지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셈이다.

“사기사건 이후에 송파에 있는 식품가공회사에 다녔어요. 월 120만원 정도 받았고 한동안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내가 먹고 살려고 탈북한 건 아니었다’는 사실이 생각났어요. 이왕 할 거 성공하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영업직에 뛰어들기로 했고요.”

이후 김 씨는 재무, 회계, 경제, 경영, 투자이론 등 관련서를 손에 잡히는대로 탐독했다. 강남에 있는 컴퓨터 학원을 다니면서 정보처리기술 관련 국제공인 자격증도 땄다. 처음엔 복잡한 금융용어 익히기에도 벅찼다. 그래도 1999년부터 8년간의 중국 망명생활 시절 틈틈이 한국방송으로 봐둔 코스피니 주식이니 하는 개념들이 도움이 됐다.

“주식 잘 못하면 패가망신한다는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다짐한 게 있어요. ‘스스로 완벽하다고 인정할 때까지 공부가 돼 있지 않으면 절대 시작도 하지 말자’였죠. 주식을 이해하려면 다양한 경제이론에 관한 공부가 돼 있어야 하잖아요. 방 한가득 책을 쌓아놓고 읽었어요. 회사 상사께서 집에 와서 놀라실 정도로…. 요샌 그 분이 저한테 주식 상담합니다, 하하.”

탈북민 대부분이 투자나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다는 걸 김 씨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안타깝다. 전문직 종사자 탈북자 모임인 ‘NK지식인 연대’에서 금융 관련 강의 요청이 왔을 때 흔쾌히 응한 것도 이 때문이다.

“탄자니아 세렝게티국립공원에 ‘검은꼬리 누’라는 동물이 산대요. 봄에 새로 돋은 풀을 뜯고 살다가 가을께 먹이가 떨어지면 다시 새 풀이 나는 지역으로 이동해야 하지요. 그런데 반드시 건너야 할 강이 있대요. 그 강엔 악어들이 득시글거리고…. 그래도 검은꼬리 누들은 필사적으로 강에 뛰어들어 건넙니다. 굶어죽을 순 없잖아요. 탈북자분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에요. 현실에 부딪혀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거요.”

본인 정체성을 숨기고 사는 탈북자들을 볼 때도 김 씨는 가슴이 아프다. ‘무시당하지 않을까’하는 피해의식 때문에 점점 숨기려다 하다보니 스트레스가 많고, 오해를 사는 경우도 많다. 김 씨는 도심 지하철이나 강남 한 복판에서도 북한말 그대로 통화하고 대화한다. 사람들이 간혹 쳐다보거나 경계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론 그게 본인도 편하고 더 건강하게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북에서 온 사람이니까 저렇게 말하고 생각하는 구나’ 그렇게 이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탈북 입국자수는 3000명을 돌파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내 입국 탈북자 수가 현재 1만6000여 명에 달하니 내년이면 ‘탈북자 2만명 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당국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없을까.

김 씨는 하나원 이후 교육의 중요성이 아쉬운 부분이라고 했다. “하나원에서 받는 영어나 외래어, 한자, 역사, 정치 교육도 물론 필요하다”면서도 “이론 교육보다 직업 현장에서 실습 위주의 교육을 하는 게 남한사회 정착에 더 본질적이고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씨의 꿈은 두 가지다. 먼저 실력을 인정받는 자산운용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롤모델로 ‘워렌 버핏’을 거명했다. 다른 하나는 북에 있는 아내와 4살배기 딸, 부모님과 형제들을 데려오는 것이다.

“서두르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으려고요. 검은꼬리 누들처럼….”

◆개원 10돌 맞는 ‘하나원’= 북한이탈주민들의 사회적응 교육을 맡고 있는 하나원이 문을 연지 8일로 만 10년을 맞았다. 하나원은 통일부 산하 탈북자 정착교육시설로 1999년 개원해 첫해 28명의 수료생을 배출했고 이후 6월 현재까지 1만 4000여 명의 탈북자들이 거쳐 갔다.

경기 안성에 위치한 본원(750명 수용)과 지난 3일 정식 개소한 경기 양주 분원(성인남성 전용, 250명 수용)으로 운영중인 하나원은 국내 입국 탈북자들의 정서 안정, 문화적 이질감 해소, 사회경제적 자립 동기 부여를 목표로 12주 총 420시간 동안 민주주의, 자본주의, 시장경제 등을 교육하고 진로지도 및 기초직업훈련을 실시한다.

통일부는 앞으로 하나원을 단순 교육기관이 아닌 ‘북한이탈주민 관련 민·관·학 통합연계망’으로 키워나간다는 구상이다. 또 탈북자들이 하나원 수료 후 사회로 나간 뒤에도 재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지역적응센터인 ‘하나센터’와도 연결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현재 서울 노원구, 경기 부천시, 대구시에 이어 지난 8일 개소한 경기 포천시까지 총 4개 지역에서 하나센터가 운영중이며 하나원 교육을 마친 탈북자들은 희망에 따라 거주 지역 하나센터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통일부는 하나센터를 오는 2011년까지 전국 16개 시·도에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통일부는 8일 개원 10주년을 맞아 안성 본원에서 정·관·학계 인사들이 참석하는 기념행사를 열고 주요 시설을 처음 공개했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주관하는 이날 행사에는 김형오 국회의장, 박진 외교통상통일위원장 등 국회의원,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 지역인사, 통일부 전직 장차관, 학계·자원봉사단체·탈북자단체 관계자 등 450여 명이 참석한다. 영화배우 정준호 씨는 통일부 홍보대사로 위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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