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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심리상담사로 새 삶 찾은 탈북 3인 ‘아픔과 꿈’
동아일보 2010-01-26 03:00:00 원문보기 Korea, Republic o 관리자 1212 2010-02-01 18:00:35
《통일부가 25일 탈북자들의 심리상담과 취업지원을 돕는 전문상담사 30명을 전국 관련 기관에 처음으로 배치했다. 이들 중에는 탈북자 출신 전문상담사 7명이 포함됐다. ‘탈북자의 성공적 정착을 돕는 정부 공인 탈북자’가 탄생한 셈이다. 인터뷰를 허락한 3명을 만나봤다.》

■ 간호사 근무 김정혜 씨
“탈북자들 타임머신 타고 50년 건너온 듯 쇼크”
사실 저도 아직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중이에요. 하지만 밥만 풍족하게 먹으려고 사선(死線)을 넘은 게 아닙니다. 사선을 넘는 과정에서 겪은 극한의 공포로 고통 받는 다른 탈북자들을 돕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2002년 탈북해 간호사로 일하는 김정혜 씨(38)는 서울 양천구 신월동 한빛종합복지관에서 ‘탈북자 간호’에 나섰다.

그는 탈북 과정에서 강제 북송됐던 끔찍한 기억이 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로 인한 스트레스가 한국에 와서도 계속돼 건강을 해쳤다. “감기, 두통, 소화불량이 계속돼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어요. (대학에서 공부할 때) 어린 친구들에게 사정을 얘기하지 못해 열등감만 생기던 때도 있었습니다.”

북한을 탈출한 뒤 남한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김정혜 씨,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김춘옥 씨와 아동복지학과 졸업반인 김은진 씨(위에서부터)는 그동안 자신들이 남한에서 이룬 ‘꿈’을 통해 다른 탈북자들도 성공적으로 남한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입을 모았다.

김 씨에 따르면 탈북자들은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며 받는 정신적 두려움으로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PTSD)을 앓거나 신체 면역력이 급격히 저하되기도 한다. 문제는 탈북자들이 이런 속내를 선뜻 남한 사람들에게 털어놓지 못해 새로운 고통을 겪는다는 점이다. 김 씨는 “탈북자들은 남한 사회에 빨리 적응하고 싶은 마음에 속병을 드러내지 못하면서 위축되고, 남한 사람들은 탈북자들의 소극적인 태도를 탓하며 점점 멀어져 간다”고 말했다.

최근 한 탈북자 친구의 고민이 김 씨를 상담사의 길로 이끈 결정적 계기가 됐다. 친구는 남한 사람에게 고민을 털어놨지만 그 사람은 고민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친구는 마치 자신이 정신병에 걸린 것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김 씨는 상담사의 길이 ‘선택’이 아니라 성공적으로 정착한 탈북자의 ‘의무’로 생각한다. 그는 “탈북자들은 타임머신을 타고 40, 50년 뒤의 미래로,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집단주의에서 개인주의 문화로 이동했다”며 “이런 급격한 변화에서 겪는 속병이 곪아터지지 않게 치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 사회복지학 전공 김춘옥 씨
“길고 긴 정착과정 1년이라도 줄이게 도울 것”

“남한에 와서 빨리 정착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탈북자들을 멀리하고 남한 사람들과만 어울렸습니다. 어느 순간 후회가 되더군요. 함께 정착하려고 노력했으면 같은 처지의 탈북자들을 도울 수 있지 않았을까….”

김춘옥 씨(42)는 25일 경기 수원시 대한적십자사에서 북한이탈주민 전문상담사로 새 삶을 시작했다. 함경남도 함흥 출신으로 2004년 탈북한 김 씨는 6년간 식당 일, 회사 경리 등 직업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악착같은 노력 끝에 지금은 서울사이버대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있다.

그런 김 씨지만 한국에 와서 결혼한 뒤에도 주위 사람들에게 아직 자신이 탈북자라는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용기를 내 다른 탈북자의 정착을 돕기로 결정했다. 적응을 위해 발버둥치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름 대신 ‘탈북자’라는 일반명사로 불려야 하는 운명의 탈북자들을 도와주기로 했다.

김 씨는 탈북자들의 가장 큰 콤플렉스로 북한 말투를 꼽았다. 그도 과거 입사시험에 합격하고도 말투 때문에 거절당한 경험이 있다. 김 씨는 “말투를 고치기 위해 스피치학원까지 다녔지만 말투에 좌절하기보다 행동방식을 적극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탈북자들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조금 먼저 나와 청소하거나 업무를 미리 준비하는 등 다른 사람을 대접하는 것에 익숙지 않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김 씨는 직장생활을 하며 의식적으로 동료에게 커피를 타주거나 동료 책상을 닦아줬다.

김 씨는 지난해 12월 상담사 교육과정에서 탈북청소년을 위한 한겨레중고등학교(경기 안성시)를 찾았을 때 “혼자 한국에 온 중학생들이 외로움 때문에 심리적 상처가 말할 수 없이 크다는 걸 알고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지금은 1년 계약직이지만 평생 이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수년이 걸릴지 모르는 정착 과정을 조금이나마 단축하는 데 도움을 준 탈북자로 다른 탈북자들의 기억에 남고 싶습니다.”

■ 아동복지학 전공 김은진 씨
“목숨 걸고 남한에 온 초심 다시 일깨워야죠”

“상담사 교육과정에서 우리가 발로 뛰어야 탈북자들을 제대로 도울 수 있을 거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하지만 생각해보니 우리의 역할이 심리상담뿐 아니라 취업지원, 의료, 교육, 복지까지 탈북자들의 삶을 통째로 책임지는 것이더군요.”

중앙대 아동복지학과 졸업반인 김은진 씨(29)는 “잘할 수 있을지 두렵지만 탈북자들에게 목숨을 걸었던 초심을 떠올리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 양천구 서부적십자혈액원 봉사관에 배치됐다.

탈북자들은 무엇보다 취업 과정에서 가장 큰 좌절을 겪는다고 그는 말했다. 북한에서 가졌던 직업과 재능을 남한에서 살리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아무리 인텔리로 살았어도 남한에서는 남들이 꺼리는 ‘3D업종’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나이가 많으면 새로 공부를 시작하기도 어려워요. 여기서 생기는 심리적 좌절감이 정착을 포기하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 됩니다.”

하지만 김 씨의 경우는 달랐다. 그는 북한에서 농사를 지었지만 남한에서는 대학에 진학해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꿈을 이뤄가고 있다. 그는 “마음을 비우고 한 살짜리 아기의 심정으로 다시 시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자존심과 불만으로 마음속이 가득 차면 생활의 변화가 힘들다는 설명이다.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에 오자마자 무상지원에 익숙해지면서 땀 흘려 일하지 않고 게을러지는 게 가장 큰 마음의 문제입니다. 북한을 탈출할 때 우리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새삼 일깨워주려 합니다.”

그는 “탈북자들이 겪는 당장의 어려움을 상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들에게 사회 구성원으로서 오래도록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전해주겠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김성규 인턴기자 서울대 정치학과 4학년
최연진 인턴기자 고려대 생명과학부 4학년
김유나 인턴기자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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