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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고층아파트 주민도 굶어죽는다
조선일보 2010-03-15 00:00:00 원문보기 Korea, Republic o 관리자 1115 2010-03-22 21:04:20
평양 방문 재중동포 “화폐개혁 후 유례없는 식량난…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보다 심각” 지난해 11월 말 북한 당국이 전격적으로 단행한 화폐개혁의 여파로 시장이 와해되면서 최근 북한 곳곳에서 쌀이 없어 굶어 죽는 아사자(餓死者)가 대거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 재중동포는 “평양의 고층아파트에서조차 굶어죽거나 얼어죽은 노약자들이 매일 수십 명씩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평양은 북한에서 경제 사정이 가장 좋은 곳으로 그동안 함경도 등 외지에서 아사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관측은 있었지만 수도인 평양의 고층아파트에서 아사자가 발생했다는 주장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 대북 소식통은 최근의 식량난에 대해 “1990년대 중반 수백만 명이 굶어죽었던 이른바 ‘고난의 행군’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른 소식통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식량난에 유례없이 추운 겨울 혹한이 겹치면서 에너지난까지 발생, 북한 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치닫고 있다”고 전했다.

화폐개혁 이후 평양시에 석탄·석유 등 에너지를 공급하던 대형 장사꾼들이 당국에 의해 단속되거나 단속을 피해 수면 아래로 잠적하면서 평양 시내의 에너지 공급에 차질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평양 지역은 외부에서 에너지를 공급받아 사용하는 곳”이라며 “따라서 유통망이 붕괴되면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으며 이번 피해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번 식량난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은 곡창지대인 황해도 지역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식량 구입을 위해 중국을 방문했던 북한의 무역회사 기관원들이 ‘지금 (북한에서) 가장 어려운 지역은 황해도’라고 입을 모았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남한에서 식량 지원이 중단되면서부터 황해도 지역의 식량난이 시작됐다”고 했다. “남한에서 보내준 식량은 대부분 군부(軍部)에 집중적으로 공급됐는데, 남한에서 쌀 공급이 끊기자 황해도에서 군량미를 충당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군량미가 부족해지자 인민군은 지난해 군단별로 황해도 지역에 내려가 군관(장교)들이 입회한 가운데 협동농장을 에워싸고 군대가 필요로 하는 식량을 압수하기도 했다고 한다. 사실상 군대가 식량을 강탈했다는 것이다. 식량 절대량이 부족해지면서 가격이 폭등하자 북한 전역의 쌀 장사꾼들이 황해도로 달려가 식량을 걷어모은 것도 식량난을 더욱 가중시킨 한 원인으로 꼽힌다. 소식통은 “황해도 사리원 지역에서 굶어죽는 아이들이 늘어나자 사람들이 도(道) 인민위원회에 몰려가 ‘대책이 있느냐’고 항의했으며 항의하던 중 동원된 보안원들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집단농장 황폐… 뙈기밭으로 연명

북한의 식량대란은 작년에 벌어졌던 150일 전투와 연이은 100일 전투, 그리고 화폐개혁이라는 대형 악재들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심화됐다. 북한 사회에 식량을 공급하는 식량원은 집단농장에 포함된 정규 토지, 개인이 개간한 소 토지(뙈기밭), 그리고 국가 외화벌이 기관에 소속돼 쌀을 대규모로 들여오고 있는 쌀수입 장사꾼의 3가지로 대별된다.

북한 사회가 필요로 하는 하루 쌀 소비량은 약 1만t. 따라서 연 365만t의 쌀을 생산할 수 있다면 굶어죽지는 않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고위 탈북자들 가운데엔 “군대에서도 영양실조로 굶어죽은 상태로 방치된 경우가 있다”는 점을 들어 “북한의 연 식량 생산량이 200만t 미만으로 떨어졌다”고 보고 있다.

농업에 종사했던 한 탈북자는 “협동농장에서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없어진 지 오래”라며 “개인적으로 개간한 뙈기밭에 ‘올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에서 배급제가 사라졌지만 인민은 뙈기밭에서 농사를 지어 어떻게든 먹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한 고위 탈북자는 “뙈기밭에서 나오는 식량이 연간 150만t가량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군부 출신의 한 탈북자는 “2008년 6월 인민경비대 7총국 산하 외화벌이 기관 책임자가 처형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 책임자는 100만달러의 자금을 갖고 함북도의 식량 수입을 주도했는데 식량이 태부족한 상황인데도 돈벌이를 위해 쌀을 풀지 않자 식량 가격이 급등, 주민들이 무더기로 몰려가 항의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김정일에게까지 보고돼, 책임자가 처형됐다”고 이 탈북자는 말했다.

수입업자 단속하면서 상황 악화

올해 식량대란은 북한이 작년 초부터 벌인 150일 전투에서 이미 예고됐다.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하에 사회주의 계획 경제를 다시 세운다는 명분으로 전국의 뙈기밭을 폐쇄, 집단농장을 살릴 목적으로 작년 4월 강제적인 농촌 동원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전국의 인민보안원(경찰)들이 뙈기밭에 몰려 있던 잉여노동력은 물론, 노약자들까지 강제로 징집해 집단농장으로 내몰았으며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심하게 반발했다.

최근 입국한 한 탈북자는 “일반 주민까지 강제적으로 동원됐지만 집단농장에 앉아 노는 사람이 태반이었다”고 했다. 그는 “강제로 농장에 동원된 사람들이 집단농장의 농사를 집단 태만 형식으로 거부하면서 뙈기밭 농사와 집단농장 농사가 모두 한꺼번에 망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여기에 남쪽에서 매년 들어오던 비료 지원까지 중단되면서 쌀 생산량이 역대 최저 상태로 떨어지게 된 것이다.

▲ 대용식품으로 나온 이탄(泥炭)국수. 이탄은 일종의 먹을 수 있는 흙이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작년 11월 화폐개혁까지 겹치게 되자 식량대란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화폐개혁 이후 시장에서 식량거래가 중단된 것이 식량 위기의 첫 신호였고, 전국의 주요 쌀 수입업자들을 매점매석을 일삼는 범죄자로 몰아 처형하거나 감옥에 가두면서 대중(對中) 식량 수입이 전면중단된 것이 파국을 몰고오게 된 것이다.

지난 2월 초 김영일 내각총리가 평양시 인민반장들 앞에서 화폐개혁의 잘못된 점을 공식으로 사과하면서 식량수입을 다시 독려하고 있지만 쌀 수입업자들이 모두 교체되면서 수입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북한과 사업을 하고 있는 한 중국 사업가는 “중국 파트너들과 신뢰를 쌓고 무역을 해오던 북한 측 파트너 상당수가 식량을 매점매석했다는 이유로 체포되면서 거래에 차질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북한의 식량난에 대해 “김정일 정권이 멀쩡한 시장을 파괴하면서 만들어낸 전형적인 인재(人災)”라며 “외부의 대규모 지원 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강철환 조선일보 동북아시아연구소 연구위원 nkc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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