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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은 北에 두고 왔나 봅네다”… 탈북 ‘식객’들이 추억하는 북한의 그때 그맛
국민일보 2010-04-08 17:52:00 원문보기 Korea, Republic o 관리자 1463 2010-04-12 11:55:44
어머니는 아침녘 찬물에 담가놓은 옥수수 면발을 저녁 어스름에 삶았다. 면이 익는 동안 양파 배추 된장을 식용유에 볶다가 물을 넉넉히 넣어 국물을 끓여냈다. 국물에 삶은 국수를 말고 양념간장을 얹었다. 후루룩. 옥수수 온면 한 그릇은 몇 젓가락 만에 바닥나곤 했다.

어수선한 꿈에 선잠이 깬 어느 날 밤, 허수경(가명·36)씨는 문득 고향 함경북도 청진에서 먹던 옥수수 국수가 생각났다. 2004년 북한을 탈출한 뒤 중국을 거쳐 남한에 온 지 1년. 먹을 건 지천이었다. 잘 먹으면 행복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 밤 허씨는 어머니의 옥수수 국수가 간절해졌다.

지난달 미국 국무부의 ‘용기 있는 국제 여성상’을 수상한 탈북자 1호 박사이자 북한요리 전문가인 이애란(46) 경인여대 식품영양조리학과 교수. 그녀가 ‘남북 밥상통일’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지난해 8월 설립한 서울 낙원동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에서는 지난 2일 요리 강좌가 열렸다. 함경도 명태식해와 양강도 감자만두 조리법을 알려주는 요리 특강이었다.

북한 요리를 알린다는 취지로 마련한 자리인데 남한 주부 대신 북한 요리를 잘 아는 탈북여성들이 몰려왔다. 수강생 8명 중 5명이 탈북자. 소속 연구원 12명 중 4명도 북한에서 왔다. 조리실은 이내 명절날 큰집 분위기가 됐다. 수강생들이 능숙하게 칼질을 시작했다. 30분 만에 명태 무 고춧가루를 버무린 매콤한 명태식해와 표고버섯으로 속을 채운 감자만두가 완성됐다.

한 입씩 베어 물고 저마다 품평을 했다.

“만두가 덜 쫀뜩하네.”

“싱싱하지 않은 감자는 전분이 부족해서 그래요.”

“명태식해는 함경도 바닷가에서 막 잡은 명태로 만들어야 제 맛인데.”

“그래도 오랜만에 맛보네요. 어릴 적에 엄마가 많이 해줬는데.”

한상 가득 차려진 음식과 함께, 탈북 식객들의 북한 음식 이야기가 시작됐다.

허기, 그리고 밀가루범벅

1987년 8월 17일, 신의주경공업대학 3학년생 애란씨는 양강도 혜산행 기차에 올라탔다. 여름방학을 맞아 집에 가는 길이었다. 태풍 예보에도 출발한 기차는 바람이 거세지자 아예 멈춰 섰다. 기차는 신의주역으로 되돌아왔다. 이미 대학은 문을 닫아 기숙사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기차 운행은 언제 재개될지…. 돈 한 푼 없었던 이씨는 역 근처에서 이틀간 물만 마시며 노숙했다. 얼마 후 간신히 운행이 재개된 기차에 도시락을 든 청년 두 명이 올라탔다. 소금에 절여 쪄낸 송어찜에 찹쌀 주먹밥. 실신 직전의 이씨는 송어찜 몇 점에 기운을 차렸다.

“달아도 그렇게 단 게 없더라고. 잘못하면 혀까지 먹을 뻔 했다니까.”

그 맛은 4개월 된 아들을 업고 부모와 함께 97년 탈북한 뒤에도 잊혀지지 않았다. 서울에서 송어찜에 도전했다. 역시 그 맛은 아니었다.

30여년 전 어머니가 끓여준 밀가루범벅은 명치끝이 저릿하던 혹한의 기억과 뒤섞여 있다.

조부모가 월남한 뒤 애란씨 가족은 74년 12월 평양에서 양강도 삼수군 한 산골마을로 쫓겨났다. 일종의 귀양살이였다. 식량으로 챙긴 밀가루는 이삿짐 속에서 휘발유와 섞여 버렸다. 휘발유 밀가루 죽으로 낯선 북방의 겨울을 버티던 10세 소녀는 기어이 이질에 걸렸다. 통나무집은 방이랑 부엌 구분이 없는 가로 세로 각 3m의 단칸집. 허리까지 눈이 쌓인 어느 새벽 앓아누운 소녀의 눈에 부엌에서 일하는 어머니가 보였다.

“포대에서 휘발유가 묻지 않은 밀가루 한줌을 찾아내신 모양이에요. 그 새벽에 콩물을 끓이고 밀가루 수제비를 띄워 범벅을 만들고 계셨어요. 범벅을 먹이면서 엄마는 그게 딸을 보는 마지막 밤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죠. 맛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눈물을 흘렸던 기억만 나요. 어쨌든 오랜만에 휘발유 냄새가 나지 않는 음식을 먹은 거니까. 그걸 먹고 살아났으니까. 음식이란 것, 못 잊을 맛이란 것. 내겐 그 밀가루범벅 같은 거예요.”

북한 요리 전문가 이애란 교수에게도 송어찜과 밀가루범벅은 결코 되살릴 수 없는 맛이었다.

“남한 순대는 순대도 아니래요”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탈북한 김태희(가명·39)씨는 동지팥죽 얘기를 했다. 새알심은 찰수수를 빻아 만들었다. 수수가루를 물과 함께 대접에 담은 뒤 무명천을 덮고 그 위에 숯을 얹어놓았다. 천을 통해 숯이 물을 빨아들이면 어머니가 수수가루를 치대 반죽을 만들었다. 세 딸은 둥글게 앉아 새알심을 빚었다.

“동지팥죽을 한 솥 끓여놓으면 세 자매가 오며 가며 한 그릇씩 먹고 또 먹고 했어요. 찰수수 새알심은 말캉한 게 식어도 굳지 않고 쫄깃하거든요.”

그 시절 어머니는 두부, 순대를 손수 만들었다. 순대에는 꼭 줄단콩이 들어갔다. 순대를 썰면 반 토막 난 콩이 한두 개씩 보였다. 가을이 되면 어머니와 세 딸이 압록강에서 김장배추를 씻었다.

김씨가 둘째 동생과 탈북하면서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둘은 남한에, 어머니와 막내 동생은 고향 신의주에, 탈북하다 잡힌 아버지는 함경남도 요덕수용소에 갇혀 있다.

“남한에 와서 김치찌개랑 순대 같은 음식을 보면 가족 생각이 나요. 언제 다시 모여 밥 한 끼나 먹을 수 있을지….”

함경북도 회령 출신 탈북자 김성환(가명·42)씨는 한겨울 김치움에서 꺼낸 시원한 김장김치를 떠올렸다. 겨울 수은주가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회령에서는 가로 2∼3m, 세로 1m 면적에 사람 키 높이의 사각 구덩이를 파 김칫독을 보관하는 저장고로 썼다. 11월마다 1t씩 김장해서 1년 중 절반을 김장김치로 버텼다.

별식은 순대였다. 명태는 배를 따 내장을 빼내고 쌀과 채소로, 가지는 파낸 속을 양념해 쌀과 섞어 속을 채웠다. 명태순대 가지순대다. 남한에서 아바이순대로 불리는 돼지순대는 쌀, 야채, 내장에 피를 섞어 만들었다. 성환씨는 “남한의 당면 순대는 순대라고 부를 수도 없다”고 했다.

바닷가 청진이 고향이라는 이현미(가명·42)씨는 겨울 김장독에서 꺼낸 명태깍두기(명태와 무를 절반씩 버무린 김치)와 집에서 담근 명란젓 창란젓을 북한 맛으로 꼽았다.

북한에서 군것질거리는 흔치 않았다. 살짝 말린 옥수수 국수를 기름에 튀기거나 옥수수 뻥튀기 가루를 물에 이긴 속도전 가루떡 같은 게 특별한 날 먹는 간식이다. 남한에 넘치는 게 과자인데 “속도전 가루떡이 너무 먹고 싶다”는 이가 여럿이었다.

북한 배추가 단 이유

다시마가루로 맛을 낸 나물, 조갯살을 넣은 미역국, 소금으로 간을 한 뭇국…. 북한의 가정식을 열거하던 허수경씨는 “색깔로 표현하자면 녹색 식탁”이라고 했다. 좋게 말해 녹색이지 푸성귀뿐인 북한 밥상이 맛있다는 생각은 남한에 와서 처음 했다. 남한 채소를 먹어보고 북한 채소가 진미라는 걸 깨달았다.

“남한 배추는 크고 싱싱하잖아요. 근데 먹으면 물비린내가 나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물도 북에서 먹던 맛이 아니에요. 북한 시금치는 제대로 못 자라서 되게 작고 얇아요. 배추는 여기저기 벌레 먹고. 근데 그게 얼마나 달고 고소한지 몰라요.”

그 맛을 못 잊어 중국에 있을 때 함경북도 나진을 오가는 화교 상인을 통해 북한 채소를 구해 먹기도 했다.

“중국 사람들도 식재료는 북한산이 낫다고들 해요. 안 믿기죠?(웃음) 정말이에요.”

가끔 먹는 고기 맛도 남북 차이는 확연했다. 김성환씨 말이다.

“남한에서는 사료 먹여서 돼지를 대량으로 키우잖아요. 사료 먹인 돼지는 살만 많고 물컹한 게 맛이 없어요. 북한 돼지는 집에서 사람 먹는 거 먹여 키우거든요. 두부 만드는 집에서는 비지 같은 거 먹이고 산에서 돼지풀 베다가 끓여 먹이고. 그래서 육질이 남한 돼지고기랑 영 달라요. 먹어봐야 안다니까. 고기가 달아요.”

“남한 옥수수는 아무 맛도 없다”거나 “양계장에서 키운 남한 닭과 달걀은 맛이 없다” “남한의 떡집 떡은 못 먹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다들 떡은 집에서 직접 만들었다고 했다. 송편은 끓는 물로 반죽해 팥이나 콩 앙금을 넣어 쪄냈다. 찰떡은 집 마당에서 하루 종일 쇠절구로 찧어 빚었다. 떡집 기계로 대량 생산한 남한 떡과 북한 떡 맛이 다르다는 건 수긍이 갔다.

탈북자에게 남한 맛을 대표하는 건 단맛이었다. 그리고 단맛은 상술과 동의어였다. 2004년 탈북해 2006년 남한에 온 김준성(가명·40)씨는 이렇게 말했다.

“남한 요릿집은 달달한 게 사탕가루(설탕)를 너무 많이 넣어요. 그게 다 첫맛으로 손님 끌어들이려는 상술이래요. 우리 입맛은 아니지요.”

사카린물에서 다방커피로

98년 2월 녹기 시작한 두만강을 목숨 걸고 건너 2003년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 이진희(가명·33)씨. 모 전문지 부산총국 기자로 남한 생활을 시작할 무렵, 그녀는 사무실에서 마시는 달달한 다방커피에 매료됐다. 너무 맛있어 하루 20잔 넘게 마셨다.

어느 날부터인가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병에 걸렸다고 생각한 이씨는 병원에 달려갔다. 몸은 멀쩡했다. 의사는 우울증이라고 했다. 탈북처녀에게는 항우울증제가 처방됐다. 이번엔 낮부터 졸음이 밀려왔다. 약 기운에 꾸벅대며 커피를 들이켰다.

“그렇게 커피를 많이 마시고도 밤에 잠이 와요?”

어느 날 사무실 동료가 물었다. 막 커피 한 잔을 타 들고 자리로 돌아가던 참이었다.

“예?” 동료 얼굴과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 잔을 번갈아보던 이씨는 당황했다.

“아∼” 다음 순간, 깨달았다. 그녀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게 아니었다. 남한에서 호된 신고식을 치르고 있었다.

“웃기죠?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니까요. 몰랐으니까. 커피 줄이고 (불면증은) 다 나았어요(웃음).”

그날 이씨는 북한에서 먹던 사카린물을 떠올렸다. 여름에는 산열매즙을 먹기도 했지만 겨울에는 마땅한 음료수가 없었다. 달콤한 맛은 더욱 귀했다. 단 것이 당길 때는 물에 사카린을 섞어 마셨다. 남한의 다방커피와 북한의 사카린물. 어쩐지 둘이 닮았다고, 불면증을 극복한 그녀는 생각했다.

남한 생활 7년. 이씨의 입맛은 많이 달라졌다. 초창기 이씨는 피자가 질색이었다. 냄새가 역해 피자가 배달되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요즘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피자다.

얼마 전에는 탈북 후 입조차 대지 못하던 음식과 화해했다. 시래깃국 시래기죽 시래깃국 또 시래기죽으로 이어지던 북한 밥상에 질려 쳐다보기도 싫었던 시래기. 이씨는 최근 다시 시래기를 먹을 수 있게 됐다. 아직 죽이라면 끔찍이 싫지만 언젠가 죽을 먹을 수 있는 날도 올 터였다.

시래기에 마음을 열고, 피자에 빠지듯 그렇게 탈북자들과 남한의 거리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걸까.

이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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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연지사 2010-04-12 14:57:04
    배고플 때 먹으면 뭐든 맛있음. 나도 어린 시절 먹었던 어머님 음식이 그리움. 지금은 먹을 것이 충분하지만 가난할 때 먹었던 그 맛이 전혀 안 남. 배가 고플 때 어쩌다 먹었던 음식은 죽을 때까지 잊질 못함. 영원히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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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소년 2010-04-13 07:13:44
    저도 중국에 체류할 때 배불러 그런지 중국야채나 고기가 몹시 질리더군요.

    생선도 북한에서 먹던 그 맛이 아닌 것 같아 늘 주변사람들에게 북한의 생선은 이 맛이 아닌데, 북한의 두부는 이 맛이 아닌데 등~~

    후일 지인한테 부탁해서 북한산 고사리며 말린오징어 이면수 명태 술 등을 가져온 적이 있었습니다.

    솔직히 맛이 없더라구요. 싱싱하고 만만한 중국산 러시아산 고사리가 더 맛있어요. 이면수나 명태 말린 것도 퀴퀴한 냄새가 나 신선도가 좋은 러시아산이 훨 낫구요.

    청진의 유명한 강덕술은 참 ㅋㅋ 내가 예 전에 이것을 좋아했었나? 그런 생각 들 정도로 떱떱하고 엥?~

    술 가져온 적은 몇 번 잘 되는데 정제 잘했다구 하지만 맛은 중국배갈이 좋은 것 같아요 ㅋㅋ

    내가 입맛이 변했구나 하고 확실하게 느꼈습니다.
    거기서 있을 때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것들이 내 앞에 있다면 사정이 달라졌을 거에요.

    조리법이 달라 그렇지 여기 음식재료가 북한 것보다 훨씬 좋은 것들입니다.
    돼지고기도 풀이나 술찌게미, 엿찌게미를 먹여 키운 거 맛 없어요.

    다들 잘 아실건데

    옥수수사료 먹여 키운게 더 낫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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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월춘 2010-04-15 03:08:01

    - 김월춘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0-04-15 03: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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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식 2010-04-17 06:08:45
    북한소녀님 말씀 맞는말씀입니다
    훨씬 한국의 재료가 훨씬 낮죠
    배고픈당시 뭔 음식인들 맛없겠나욤 전 어머니가 해준 호박에다 정어리찌개가 왜그리도 맛있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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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브라 2010-04-17 19:20:30
    서울에 있는 탈북자 대부분이 중국에서 들여온 북한 마른명태를 사먹는데 그맛이 한국사람들도 인정하지요.
    과일도 북한의 사과 국광이 그리워요. 중국에 들어와서 정거장앞에서 팔고 있는 복숭아가 얼마나 크고 먹음직하던지 우리는 두알사서 넷이서 나누워 먹어보았는데 너무 맛이 없어서...
    그리고 노배무우 맛도 그리울때가 많지요. 깎뚜기말이죠
    김치 맛도 북한김치가 더 맛있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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