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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어린이들이 왜 평양말까지 배워야 하죠
주성하기자 2011-01-14 07:08:21 원문보기 관리자 1365 2011-01-15 21:17:23

북한 지방의 가정집들은 대체로 형광등보다는 100와트짜리 둥근 전등알을 켜고 산다. 물론 자주 정전이 되긴 하지만, 그래도 전구가 없이 살긴 힘들다.


전기가 와도 전압이 불안정해 수수떡같이 벌겋기만 한 전등이지만, 내가 자랄 때는 그것을 전구, 또는 전등알로 불렀다.


남한에 온 뒤 나에게 진지하게 “북한에선 정말 전등을 불알이라고 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북에서 전등을 불알이라고 한다는 말은 남한에 와서 처음 들었다. 훗날 어느 자료를 보니 북한에서 1960년대에 외래어를 북한말로 대대적으로 바꿀 때 불알로 하려고 했다가 어감이 좋지 않아 그만둔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 일이 정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다수 북한 주민들은 그런 일이 있어도 있은 줄 모르고 산다. 자유 언론이라는 것이 거의 없으니 말이다.


한국에 통용되는 북한말 남한말 비교를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한번 그 비교표를 보다가 너무 엉터리가 많아 실소했다. 아마 한 80%는 엉터리다.


가령 경상도에서 대문을 사투리로 삽작이라고 한다고 해서, 경상도 출신으로 북에 간 사람이 ‘남조선에선 대문을 삽작이라고 합니다’고 말했고, 이를 북한 당국이 사전으로 출판해 ‘(북한말)대문=(남조선말)삽작’ 이런 식으로 만든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식으로 정리한다면 남북말이 같은 것은 당연히 사전에 실리지 않을 것이다. 다른 말이라고 골라서 실린 것은 결국 사투리가 마치 표준어인 것처럼 둔갑돼 실리는 것이다. 이런 것을 돈을 들여서 왜 만들었나 싶다.


몇 년 전부터 남북 언어학자들이 겨레말 큰 사전을 만들기로 하고 상당히 작업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정부 예산만 10여억 원이 들었다고 한다.

이 사진 한장이 사업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고 본다. 뒤에 있는 플래카드에 버젓이 '주체'라는 연호가 적혀 있다. 저런 연호는 통일이 되면 다 없애버려야 할 것이지만, 현재의 북한 체제에선 꿈도 못꿀 일이다. 주체97년에 남북공동언어사전을 만들기위해 한국 학자들이 개성에서 올라갔다. 출처: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위원회 홈페이지.

나는 언어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남북 언어를 합해서 정리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구체적으론 모르겠다.


하지만 단순한 생각으론 저것은 쓸모없이 헛돈 쓰는 일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남한 사람들이 북한말을 알아서 무엇을 할 것이며 북한 사람들이 남한말을 알아서 무엇을 할 것인가.


북한의 미래에 대해 여러 가지 가설을 세워 봐도 마찬가지 답이 나올 것 같다.


우선 김정일에게서 김정은으로 정권이 이어져서 북한 독제체제가 계속 이어진다고 하자.


그러면 어차피 남한 출판물이 북한에서 배포되는 일은 전혀 없을 것이니 북한 주민들이 남한말을 알 필요는 없다고 본다.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지만 김정일이 망하고 독재정권이 아닌 새로운 민주 정권이 북한에 탄생한다고 하자. 그래서 남북한이 연방제를 한다고 하자.


이럴 경우 남북한 언어가 다 같이 존중을 받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렇더라도 벌써 남한 출판물이 북한 주민들에게 읽힐 정도가 되는 시절이 오면 우리가 분단돼 있을 이유조차도 없을 것이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언젠가 우리는 통일이 된다는 것이다. 듣기론 남북한말 공동사전도 그때를 겨냥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더구나 만들 필요가 없다고 본다. 남북의 언어가 분단 60여년을 내려오며 많이 차이 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통일 국가에는 단 하나의 언어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리고 단 하나의 언어가 존재한다면 서울말이 표준어가 돼야 하는 것이다.


2400만 명이 쓰는 언어보단 5000만 명이 쓰는 언어가 표준어가 돼야 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상식이다. 전국을 상대로 하는 방송의 표준 억양도 마찬가지다.


북한사람들이 초기에 남한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들이 통일을 맞아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통일로 어차피 감수해야 할 불편의 하나라는 뜻이다.


한국에 온 탈북자 2만 명 중에 무슨 사전을 펼쳐보면서 한국어를 깨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남한말 북한말 비교사전이 없어서 애로가 있다는 사람도 내가 알기엔 없다.


통일 뒤 북한주민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북한 주민들은 한국의 신문을 보면서, 방송을 보면서 한국어를 접할 것이고, 그렇게 익혀야 한다.


이해 못할 단어가 있으면 이미 출판돼 나와 있는 한국어사전을 보면 된다. 겨레말 사전이라는 것을 만들어 굳이 한국말을 북한말로 풀어주지 않아도, 단어에 대한 한국어 해설만 봐도 뜻은 이해할 수 있다.


북한에서 통용되는 단어를 존중해주고 그것을 우리나라의 표준어로 포함시켜 인정해주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북한 사람들도 남한말을 익혀야 하지만 이번엔 남쪽 사람들이 북한말을 배워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남쪽에서 단어 하나면 설명되는 것을 북한단어 남한단어 두개를 익혀야 하는 것이다. 굳이 그런 수고를 할 이유가 왜 있을까. 남쪽 어린이들이 앞으로 학교에서 ‘괜찮습니다’와 ‘일없습니다’를 같이 배워야 하는가.


두 언어를 짬뽕 만들면 교육, 언론, 일상생활 할 것 없이 커다란 혼란이 조성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남북한 사전을 만드는 것은 순전히 북한 사람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다.


겨레말사전을 만드는 측이 공지한 사전 제작의 목적. 출처: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위원회 홈페이지.

이런 실례를 들어보자. 연변말도 남한말과 완전히 다른데, 누가 ‘연변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한국 연변 공동사전 편찬하겠다’ 이러면 사람들이 ‘왜 그래야 하는데’하고 반문할 것이다.


또 가령 제주도와 본토말이 완전히 다르다고 해서 ‘전 국민이 쓸 수 있는 제주도와 표준어의 공동사전을 만들겠다’고 해도 ‘왜 그래야 하는데’라는 질문이 나올 것이다.


제주도에 가서 표준어로 말해도 뜻이 다 통하는데, 전 국민이 제주도 사투리 뜻을 알 필요는 없는 일이다.


이웃 중국도 마찬가지다. 실례로 광둥어를 들어보면 이는 수억 명이 쓰는 언어이지만 표준어와 완전히 다르다. 그렇다고 중국 정부에서 광둥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광둥어-표준어 공동사전을 만들었을까. 모르긴 해도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가뜩이나 말을 통일하는 것이 급선무인데, 표준어 외의 광둥어 단어를 사전에 새로 포함시키면 중국의 언어통일에 역행할 뿐 아니라, 그럴 필요도 없고, 정작 그렇게 된다면 중국 전역에서 난리가 날 것이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북한에 지금 있는 언론이라고 해봤자 노동신문, 조선중앙방송과 같은 북한 노동당의 어용 기관들이 있을 뿐이다.


통일이 되면 당연히 이런 언론은 사라지고 새로운 언론환경이 형성될 것이고, 새 매체들이 창간될 것이다.


이 매체들은 굳이 북한말을 쓸 필요가 없이 한국말을 쓰면 된다. 북한 주민들은 처음엔 조금 어렵겠지만, 한국에 와 있는 탈북자들이 그러하듯이 곧 신문을 읽고 방송을 듣는데 어려움이 없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남북한 언어통일을 가장 빨리 앞당기는 길이다.


지금 작업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남쪽 언어학자나 북쪽 언어학자나 분단 상황에서 마주 앉아봐야 자기 표준어가 제일이라면서 절대 양보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저 위에 사업 추진 목적을 보면 차이나는 단어는 남북이 성실히 합의하여 단일화하겠다고 나와 있다. 아마 현실에선 남한 단어와 북한 단어를 반반 정도씩 인정해 단일화해야 할 것이 뻔한데, 이것이 사실이 된다면 한국 학교에서 새롭게 단일화됐다는 무수한 북한 단어를 배워야 할 것이다.

그러면 당장 부모들과의 소통부터 문제가 될 것이다. 실례로 엄마가 "쥬스 먹어라"고 했는데 아이가 "그런말 몰라요. 혹시 단물을 말하는거예요?"하고 반박할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나도 단물이 듣기 좋긴 하지만 그렇게 고쳐야 할 단어가 무수히 많다면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나부터도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왜 그래야 합니까? 무엇을 위해서요?"

언어의 통일을 최대한 이뤄내야 할 대신에 이런 식의 절충은 언어의 대혼란을 조성하게 할 것이 아닐가. 언어의 통일을 위해서는 합의보다는 국가가 목표를 갖고 추진하는 어느 정도의 강제성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남북한 언어이질감을 없애려는 취지에서 시작했지만 결국엔 세대와 지방간의 각종 언어이질감을 만들게 하는 목적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지 의문이다.


수십억 원을 들여(이중 북한에도 상당액이 올라갔다) 남북한 언어사전을 만드는 일이 진정 남북한 주민들을 위한 일인지, 아니면 언어학자들에게만 중요한 일인지 공론화돼서 한번쯤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죽어서도 남길 업적을 위해 만든다는 흑심이 있다면 그건 더욱 곤난하다.


북에서 교육받고 이를 기초로 남쪽에서 일하는 내 소견에는 남쪽 사람들에겐 한국어 사전만 있으면 됐지 겨레말 사전 같은 것은 필요 없으며, 그것은 통일 이후 북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이런 반박도 있을 수 있다. 겨레말 사전은 표준어 사전이 아니고 수많은 사전 중의 하나다고. 그렇다면 그 수많은 사전 중의 하나를 그렇게 비싸게 만들 필요는 있을까. 당장 쓸모도 없는 것을.

그리고 이 사전이 통일을 위해 꼭 만들어야 할 중요한 것이라면 통일이 된 뒤 시작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때는 북한 학자 만나겠다고 지금처럼 어렵게 평양을 어쩌다 찾아가지 않고, 아예 평양에 눌러 앉아 만들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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