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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이주민 도우려 독하게 공부했죠”
한겨레 2011-01-31 07:26:04 원문보기 Korea, Republic o 관리자 1084 2011-02-01 02:27:54

북에서 교편 잡다 남한으로
하루 2시간 자며 학위 따내
“북한출신 상담자도 키울것”

 

? 박정순(55·사진 왼쪽 두번째)

 

북한이탈주민으로서 처음 ‘이주민 쉼터’ 꾸린 박정순씨
 
2004년 1월, 중국에 간 막내딸을 북한으로 데려오기 위해 두만강을 넘은 박정순(55·사진 왼쪽 두번째)씨는 딸을 보고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딸이 중국에서 브로커를 통해 남한으로 가기로 결심한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북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던 박씨는 “학생들에게 남한에 대해 안 좋은 점만 가르치다보니 남한 실상을 잘 모르고 있었다”며 “북에 두고온 큰딸이 고초를 겪을 걱정에 일주일을 꼬박 앓다가 결국 막내딸을 따라 남한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박씨는 북한 고위층 자녀 출신으로 교원대학을 졸업하는 등 고등교육을 받고 자랐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청소년 상담가로 일했고 26살 때 결혼한 뒤부터 교편을 잡았다. 이런 경력 덕분에 그는 2004년 9월부터 한국기독교탈북민정착지원협의회에서 탈북 이주민을 상담해주는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박씨는 “남한의 문화를 잘 모르는 이주민들은 사기·가정폭력·성폭력 등에 쉽게 노출된다”며 “나와 같은 처지의 이주민들을 상담하면서 이들을 위한 사회복지 전문가의 길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박씨는 7년 동안 하루 평균 2시간씩 자면서 공부와 봉사활동, 생활비 마련을 위한 과외 활동 등을 병행했다. ‘사회복지법인 생명의전화 심리상담 교육과정’을 이수한 것부터 시작해 그는 국제디지털대 사회복지학과 학부를 졸업하고 서울기독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 전공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서서울생명의전화 김인숙 원장은 “2004년에 박씨가 ‘돈은 없지만 공부하게 해달라’며 찾아왔었다”며 “공부하다 실신해 실려가면서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정말 독하게 공부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생활비가 떨어지면 초등학생 과외 교사로 활동하며 돈을 벌었다.

이런 노력 덕분에 그는 지난 29일 탈북 이주민으로는 처음으로 복지공간인 ‘양천사랑복지센터’를 차렸다. 이 센터는 고통을 상담해주는 상담센터와 갈 곳 없는 이들에게 숙식을 제공해주는 쉼터로 구성돼 있다. 개소식에는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의 김일주 이사장 등과 새터민 40여명이 참석했다. 복지센터 개소를 위해 꾸준히 행정적인 도움을 줘온 양천경찰서 보안과 최경숙 경위는 “박씨는 센터 보증금 마련을 위해 은행 대출을 받는 등 전재산을 쏟아 부었다”며 “앞으로 정부 차원의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곳에 새터민 출신 전문 상담가 양성소를 만든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이날 개소식에 참여한 탈북 이주민들은 많은 기대감을 나타냈다. 2009년 남한에 내려온 뒤 결혼해 7개월된 아들을 키우고 있는 김선주(31·가명)씨는 “2002년 탈북한 뒤 중국인 사이에서 낳은 남매가 아직 중국에 있어 하루하루 걱정 속에서 살고 있다”며 “이런 우리의 사정을 잘 알아주는 북한 출신 상담사가 많이 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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