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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방송매체 ‘열린북한방송’ “하태경” 대표
동아일보 2011-02-07 03:00:00 원문보기 Korea, Republic o 관리자 874 2011-02-07 12:58:43

서울 마포구 서교동 주택가 한 빌딩에 세 들어 있는 대북방송매체 열린북한방송 스튜디오. 한 평 남짓한 스튜디오에서 요즘 매일(오전 6∼7시, 오후 10∼11시) 북한으로 전송되는 뉴스 중 최대 이슈는 이집트 시위 소식이다. 5일 만난 하태경 대표(43)는 “반응은 아직 알 수 없지만 북한 내부 변화를 이끄는 데 보탬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북한도 튀니지, 이집트처럼 피플 파워에 의한 변화가 가능할까’라고 묻자 “당장은 아니더라도 5년 안에는 가능성이 있다”는 답이 왔다. 

      

 “북한 내부의 변화를 이끌어 내려면 다양한 정보를 보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하는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 2005년 대한민국에서 개국한 첫 민간 대북방송을 이끌고 있는 그는 “당장 이집트 같은 변화는 기대할 수 없을지라도 대북방송을 통해 꾸준하게 바깥 세계의 정보를 보내면 북한에도 반드시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이라고 말했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주민들 마음속에 자유, 시장, 개방의 유전자가 확산되고 있다. 수령님, 장군님이라 부르던 김정일을 ‘그놈’, ‘그 새끼’, ‘배불뚝이’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김정은도 마찬가지다. 주민들, 엘리트들로부터 존경심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국민 입장에선 왕정이든 세습이든 중요하지 않다. 먹고사는 게 나아져야 하는데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으니 정권에 대한 불만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 소식통에 의하면 1월 1일부터 20일간 국경 지역 전역이 정전이었다. 신년에는 노동신문 사설 학습을 위해 1월 1일만큼은 전기를 주었는데 올해에는 그마저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인터넷, 트위터가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의 30년 독재를 뒤흔들고 있듯 북한 역시 외부 세계에 대한 정보가 들어가면 서서히 무너질 것으로 믿고 있었다.

“휴대전화를 통해 중국, 한국과 통화하는 사람들이 국경 지역에 수만 명은 될 것이라 추정된다. 옛날엔 연평도 사건 같은 게 터졌을 때 ‘남조선이 먼저 공격한 것’이라고 하면 모두 믿었다. 요즘엔 일주일 지나면 10%, 한 달 지나면 30%가 안 믿는다고 봐야 한다. 정보 통제는 폭력과 함께 독재 정권을 유지시키는 두 축이다. 북한에도 외부 소식이 빠른 속도로 유입되고 있어 정보 통제가 많이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외국 언론에서도 국내 대북방송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23일자에서 이들의 활약상을 소개했고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1월 24일자 1면 기사로 열린북한방송 등 대북매체의 활동이 북한 당국에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기사와 함께 하 대표 인터뷰를 실었다.

―북한 취재는 어떻게 하나.
“상근기자 6명이 휴대전화 통화나 출장 인터뷰를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방송하나.

“요즘 대북방송은 단지 체제 우월을 선전하던 과거와는 많이 다르다. 우리는 이름 그대로 ‘열린 방송’을 지향한다. 단순한 찬양이나 비방이 아니라 폭력이나 테러를 선동하거나 음란물, 인종차별적 내용만 아니면 누구나 참여하는 것을 권장한다. ‘라디오 남북친구’라는 프로그램은 남한의 시민, 대학생들이 직접 아이템을 선정하고 원고를 작성해 녹음까지 한다. 지금까지 총 100여 명이 참여했다. 또 ‘남북주부토크’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남한 주부와 북한 주부의 생활상을 비교한다든지 해서 서로의 이해를 높이려고 한다.”

―방송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반응은 어떤가.

“북한의 특성상 시민들을 대상으로 직접 조사할 수 없기 때문에 탈북자들과 현지 통신원을 통해 간접적으로 하고 있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음질이 더 좋아졌으면 한다는 반응이 압도적이다.”

―방송 효과는 어떤가.

“조사 기준이나 대상은 다르지만 점점 청취자가 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2005년 한국언론재단이 탈북자 3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북한에 있을 때 외부 언론을 접했다는 응답이 24%였고 이 중 4%가 단파 라디오로 한국 방송을 들었다고 했다. 또 2009년 미국의 미디어조사기관 ‘인터미디어’가 탈북자 25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에 해당하는 50명이 들었다고 한다. 이들은 대북방송의 신뢰도를 60∼70%라고 했다.”

하 대표는 북한에 단파 라디오를 갖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대략 20만∼40만 명이라고 했다. 대부분 중국에서 사온 것이라고 한다.

―지난달 31일 자유북한방송에 따르면 한국 TV 방송 시청을 막기 위해 국가안전보위부가 장교 사택까지 검열했다던데 북한 주민들이 라디오는 어떻게 청취하나.

“라디오 검열은 과거보다는 심하지 않은 것 같다. 과거에는 라디오를 사면 경찰서에 신고해야 했는데 요즘은 신고하지 않고 몰래 듣는 집도 많다.”

여타 대북방송들은 탈북자들이 운영하고 있지만 하 대표는 ‘남한 토종’이다. 그는 서울대 물리학과 86학번으로 학생운동을 하다 1년 9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어떻게 대북방송을 하게 됐나.

“졸업 후 통일운동을 하는 시민단체에 있었는데 동유럽권이 무너지고 북한의 실상이 알려지면서 한때 내가 동경했던 가치들도 함께 무너졌다. 방황을 거듭하다 유학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때 북한 난민들의 대량 탈북사태가 줄을 잇고 있었다. 그들을 직접 만나 북한을 더 알고 싶었다. 당초 미국으로 유학을 가려고 했는데 중국으로 바꿨다. 북한 국경 근처 지린대 동북아연구소 박사과정에 적을 두고 수업이 없는 주말이면 기차를 타고 탈북자들을 만나러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시장에 반찬을 사러 갔다가 10대 초반 노숙인(일명 꽃제비)들을 만났다. 너무 불쌍해 국밥을 사줬다. 아이들이 고기를 먹어 본 적이 없다며 국물만 뜨는 모습을 보면서 하 대표 입에서 혼잣말처럼 김정일에 대한 욕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아이들이 숟가락을 놓더니 “왜 장군님을 욕하느냐”며 따지는 것 아닌가. ‘닫힌 사회에서 세뇌를 받으면 사람들 정신이 이 정도로 바뀌나, 북한을 바꾸려면 다양한 정보를 접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북방송을 생각해낸 건 그즈음이었다. 귀국 후 ‘먹고살기 위해’ 대기업(SK텔레콤 경제경영연구소)에 입사했지만 그때 만난 아이들 얼굴이 어른거렸다. 결국 4년 만에 뛰쳐나왔다.

“백방으로 다녔지만 한국에선 대북방송 채널을 딸 수 없다는 답만 들었다. 그러다 동유럽 사회주의권이 무너졌을 때 외교관으로 현지에서 일하며 서방방송의 위력을 체험한 미국인을 알게 됐다. 그 사람으로부터 영미권 단파 송출업체로부터 ‘방송 시간(에어 타임)’을 사면 큰돈 들이지 않고도 방송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1년 반 동안 워싱턴에 체류하면서 미 의회와 백악관, 인권단체를 찾아다니며 지원금을 모금했다. 마침내 2005년 12월 5일 ‘자유조선방송’ ‘자유북한방송’ 등 2곳과 함께 개국했다.

―요즘 북한에도 ‘한류’바람이 분다던데….

“한국 젊은이들이 일본 만화를 좋아한다고 해서 친일(親日)은 아니듯 북한에 ‘한류’가 있어도 친한(親韓)은 아니다. 한때 이런 생각도 했었다. 북한이 한국에 주사파 만든 것을 참고해서 북한 내에 친한(국)파를 만들면 어떨까(웃음).”

―결국 밑으로부터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통일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이야기인가.

“그렇다. 북한이 제일 민감해하는 것이 민간단체들이 ‘삐라’를 보내고, 대북방송하는 거다. 외부 사정이 알려지는 것이 정권 유지에 치명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북한에는 인터넷이 있나.

“없다. 컴퓨터는 있지만 인터넷망이 깔려 있지 않다.”

―컴퓨터로 무엇을 하나.

“CD로 드라마를 보거나, 게임, 타자 연습을 하는 등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북한 사회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세계에서 가장 답답한 곳, (정보를) 알면 알수록 주민들이 살기 힘든 곳, 한마디로 스스로 자유 의지를 통제해야만 살 수 있는 곳이다.”

대북방송을 시작할 때도 그랬지만 현재 운영에 절대적인 도움을 주는 곳은 미국 정부와 미국 민간단체들이다.

“매일 두 시간 방송시간을 사는 데 연간 1억 원이 든다. 미국 국무부와 민주주의재단, 프리덤하우스 등 민간단체, 유럽의 ‘국경 없는 기자회’의 지원이 80%이고 10%가 국내 민간 기부다. 우리 정부 지원은 10% 정도다. 대북방송뿐 아니다. 현재 북한의 변화를 위해 일하는 30여 개 국내 민간단체 예산이 1년에 40억 원가량 되는데 이 중 30억 원을 ‘미국 민주주의 촉진 기금’ 같은 민간단체와 미국 정부가 지원한다. 2억 원이 유럽과 일본, 5억 원 정도가 민간 기부금이다.”

그는 정부 지원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기자는 오히려 “한국 대북방송 운영의 절대적 지원은 미국 유럽의 민간단체”라는 말이 더 오래 남았다. 남북관계 특성상 정부 주도보다는 우리 민간의 역할이 더 커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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