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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주민들 "카다피는 수령님께 배웠다"
데일리NK 2011-02-23 17:10:39 원문보기 관리자 769 2011-02-24 02:56:07

튀니지와 이집트를 거친 '민주화 열풍'이 리비아의 철권 통치자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권좌까지 흔들게 되면서 향후 북한 당국의 대응에 관심이 모아진다.

북한 당국의 입장에서 볼 때 카다피 원수의 향후 거취는 벤 알리 튀니지 대통령이나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퇴진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의 폭발력을 갖고 있다.

역대 중국의 지도자들을 제외하고 북한 주민들에게 가장 친숙한 외국정상을 꼽는다면 단연 카다피 원수다.

카다피는 1982년 10월 평양을 방문, 김일성과 친선협조동맹조약을 맺은 이후 북한과 군사협력의정서(1984), 투자장려 보호 및 과학기술협력협정(2002), 인력수출 양해각서(2006) 등을 체결하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카다피의 방북 과정에 얽힌 일화들은 지금도 북한 주민들에게 생생하게 구전되고 있다. 방북 당시 군복을 입었던 카다피는 북한군의 '대좌'에 해당하는 계급장을 달고 허리에는 권총을 차고 있었다. 특히 김일성과 만나기 위해 주석궁(현 금수산기념궁전)에 도착했을 때 그가 흰색 장갑을 낀 아름다운 여성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는 점이 무척 이채로운 장면으로 기억됐다.

당시 북한 관영 언론들은 "대 리비아의 젊은 지도자(카다피)는 중동국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미국과 맞서 당당히 큰소리치는 국가 원수이며, 리비아는 중동지역의 또 다른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고 치켜세웠다.

특히 간부들 사이에서는 "갈 길을 몰라 갈팡질팡하던 카다피 원수는 위대한 수령님(김일성)으로부터 '주체사상'을 배워 리비아를 건설하기 위하여 평양에 왔다"고 선전됐다.

때문에 북한 노인층에서는 지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리비아는 여전히 공화국(북한)의 지도를 받고 있으며, 심지어 평양식으로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공화국의 기술자들을 계속 초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카다피가 방북 이후에도 여러가지 소문들이 이어졌는데 대표적인 이야기가 카다피의 '자존심'이다. 

줄거리는 대강 이렇다. 카다피는 평양을 방문 후 리비아에 돌아가서 정치국위원회를 소집해 평양방문 보고회를 열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김일성의 사상이론을 해설했다. 그리고 정치국위원들에게 "김일성 주석의 정치노선을 지지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멋모르고 손을 든 정치국 위원들은 훗날 카다피의 친위대에 모두 체포돼 숙청됐다.

이에 대해 북한 간부들은 "카다피 원수는 수령님의 사상이론에 대해서도 독자적인 입장을 취할 만큼 자존심이 강한 남자"라고 평가했다. 카다피가 실제 이런 일을 벌였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북한 간부들의 사고 수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카다피가 얼마나 자존심이 센 사람인가를 논하면 아직까지 '수령님의 사상이론조차 따르지 않았다'는 것을 꼽고 있다.

90대 초부터 리비아의 건설 붐이 일어나면서 북한도 외화벌이용 인력 수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90년대 중반 북한당국은 평양주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킨다는 명목으로 출신성분을 따져가며 리비아 파견 노동자들을 선발했다. 2~3년간 일을 마치고 귀국한 노동자들에게는 "리비아에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일체 발설하면 안된다"는 각서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비아 파견 노동자들을 통해 리비아의 발전상이 북한 주민들에게 생생히 전해지게 됐다. "리비아는 정말 멋있었다. 리비아 인민들은 잘 산다. 원유가 많기 때문에 주민들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힘든 건설은 모두 외국 사람을 고용해서 진행한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사실 북한 주민들은 중국이나 한국이 자신들보다 잘산다는 점을 깨닫기 전부터 '리비아는 부자나라'라는 인식이 잡혀 있었다. 지금도 '남조선'을 대신하는 은어로 '리비아'가 사용된다. 가족이 탈북해 한국에 간 사람에게 "그집 아들이 리비아에 갔다는데, 돈이라도 좀 보내오나?"라고 말하는 식이다. 

리비아에 파견 갔다온 노동자들은 북한에서의 벌이보다 몇 백배를 벌 수 있었다. 때문에 파견 노동자 명단에 오르기 위해 해당 간부들에게 경쟁적으로 뇌물을 바쳐야 했다. 파견 노동자로 선정되면 "죽은 조상이 살아 돌아 온것 보다 더 좋아한다"는 시기어린 축하의 말을 들을 정도였다.

국제사회에서 카다피와 김정일은 여러모로 비슷한 인물로 취급된다. '반미'를 국정목표로 내세우며 수십년째 철권을 휘둘러 왔다. 또 각자 아들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죽어서까지 왕의 자리를 유지하려 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의 눈에는 이런 점이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들이 생각하는 기준은 전혀 딴판이다. 카다피의 리비아는 외국 사람들을 데려다 험한 일을 시킬 정도로 부자 국가지만, 김정일의 북한은 온 백성이 굶는 나라로 가난한 국가다.

그런 카다피가 권좌에서 쫒겨날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김정일-정은 부자는 물론이고 군 수뇌부, 당 선전간부, 북한 주민들까지 모두 지금 리비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무척이나 당혹스러울 것이다. 리비아 민주화 열기에 대한 소식은 튀니지, 이집트, 이란의 소식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깊은 의문을  남길 수밖에 없다.

북한 당국의 사용가능한 카드는 '원초적 정보 차단' 뿐인데, 이마저도 만만치 않다.

리비아 민주화 열풍 소식은 한마디로 '2차 정보'다. 애시당초 주민들이 리비아가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카다피가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모르고 있었다면 상황은 다르다. 그러나 북한 전역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1차 정보 덕택에 이러한 2차 정보는 북한과 리비아를 비교해보려는 주민들의 사고를 기하급수적으로 증폭시키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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