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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주민 "연기력은 이범수, 패션은 현빈이 최고"
데일리NK 2011-06-20 17:26:41 원문보기 관리자 1589 2011-06-20 23:28:33

북한도 한류(韓流) 열풍이다.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를 넘어 유럽 지역까지 확산되고 있는 한류가 '은둔의 땅' 북한마저도 점령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한류는 일부 농촌 지역과 고령 세대를 제외하면 사실상 북한 전 지역에 그 영향이 미치고 있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한국 드라마 '웃어라 동해야(KBS)', '마이더스(SBS)'가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을 정도로 한류의 '시간 차'마저 좁혀지고 있다. 특히 북한의 젊은 청년들은 몸에 딱 달라붙는 '뺑때바지'에 '하이힐'을 신으며 '밥은 굶어도 한국 노래나 영화는 보는' 한류의 최대 소비층으로 떠올랐다. 

또한 평양 대학생들은 공개된 장소에서 가사 없이 반주만 녹음된 한국 가요에 맞추어 단체로 춤을 춘다고 한다. 프랑스 파리에서 젊은이들이 모여 한국 가요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데일리NK는 북중국경지역에서 북한 주민들을 만나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북한 한류의 현재를 짚어봤다.



▲최근 종영된 KBS1 일일드라마 '웃어라 동해야'와 배우 이범수·하지원(좌로부터 시계방향).

▶드라마부터 패션까지…상상초월 '한류' 열풍=한국 드라마의 경우 2000년대 초에는 중국 조선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끈 흥행작 정도가 평양이나 대도시에 인기를 끄는 정도였다. 그랬던 주민들이 지금은 '한국산'이라면 입이 바싹 탄다.  

평성에서 장사를 하는 40대 여성 김은혜 씨는 10년 째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다. 김 씨는 "젊은 사람들, 특히 의식이 깨어 있는 사람들은 국가에서 통제를 해도 한국 드라마는 몰래 본다"고 말했다. 이어 "2005년에 시부모가 계시는 시댁에 갔을 때 비디오 테이프로 '천국의 계단(2003)', '남자의 향기(2003)'를 처음봤다"며 그 동안 본 한국 드라마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요즘 (한국에서) 인기있는 현빈보다는 권상우가 매혹적으로 느껴진다. (권상우가 나오는 드라마는)10번 정도 봤다"면서 "(한국 배우는) 현빈, 권상우, 이범수, 고현정, 하지원, 최여진, 임현식, 이순재 등을 아는데, 임현식은 자기가 맡은 역할의 성격을 잘 살려서 연기를 잘한다"라고 말했다. 김 씨는 한국 연예인 중 최고 연기력을 갖춘 배우로 남자는 이범수, 여자는 하지원을 꼽았다. 그는 이범수가 출연한 드라마를 예로 들며 맛깔난 연기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근에는 일반 주민들이 최신 드라마들를 실시간 접할 정도로 북한 내 영상물 유통 속도도 빨라졌다. 함북 출신 30대 여성 이혜숙 씨는 "요즘은 '웃어라 동해야'라는 드라마를 재밌게 봤고 '마이더스'도 봤다"고 말했다. '웃어라 동해야'는 이 씨를 만날 당시 한국서 방영 중인 드라마였다.

상대적으로 정보를 얻기 어려운 농촌에서도 한국 영상물이 공공연히 퍼져있을 만큼 한류는 북한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평남 덕천 협동농장의 한 농장원은 "아는 사람이 외국에 갔다가 가져와 한국 드라마를 본 적이 한 번 있다. 농촌은 테이프 구해서 보기가 힘들다. 그래도 아는 사람들끼리는 녹화 테잎, CD 등으로 한국 영상물이나 번역한 외국 영상물을 본다"고 말했다.

한국 드라마 뿐 아니라 대중가요도 빠르게 퍼지고 있다. 남포제철소 물자공급원 출신 김선화 씨는 "평양 대학생들이 가사 없이 멜로디만 있는 빠른 템포의 한국 노래를 틀어 놓고 역전에서 춤을 추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혜숙 씨도 "젊은 사람들이 춤을 추고 싶으니까 가사 없는 반주에 (춤을)춘다"고 덧붙였다. 붉은청년근위대(학생 군사조직)가 이들을 단속하려고 해도 반주만 남은 상황이니 중단시킬 명분이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한국 연예인들의 옷차림, 헤어스타일 등을 따라하려는 젊은 세대 때문에 '뺑때바지', '찡바지', '삼피스' 등의 신조어도 생겼다. 뺑때바지와 찡바지는 몸에 딱 달라붙는 바지인 '스키니 진'을, 삼피스는 '원피스'를 대신해 생겨난 말이다. 김은혜 씨는 "모피코트, 찡바지가 유행이고 특히 평양은 추세가 빨라서 삼피스도 유행한다"면 "배우들처럼 머리를 길게 풀어헤치고 짧은 치마를 입기도 하고, (남자는) 현빈처럼 머리를 세우거나 염색도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산 제품은 장사꾼들 사이에서 '없어서 못 파는' 인기상품으로 떠올랐다. 북한이나 중국 제품 보다 품질 면에서 뛰어나 2~3배 높은 값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족 출신 대북 무역업자 박영민 씨는 "무역사업소 지배인들이나 행세 꽤나 하는 간부들은 뭘 써도 좋은 것만 쓴다"면서 "(간부들)집에 가면 한국 제품 수두룩하지. 없어서 못 팔지 비싸서 못 파나"라고 말했다.

김은혜 씨도 "중앙당, 보위부, 군부 등 권력으로 비자금 가진 사람이나 장사로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은 화장품이든 뭐든 전부 한국 제품을 쓴다"고 말했다. 이혜숙 씨도 "북한에선 정말 잘 사는 사람만 북한제 핸드폰을 사용하지만, 한국 삼성 애니콜 (좋은 건) 다 안다. 또 한국이나 일본제 화장품이나 약이 중국을 통해서 들어오는데 모두 비싸다"고 말했다.



▲남한 CD 알(DVD 플레이어) 밀수 및 유통 경로. / 김봉섭 기자

南영상매체, 어떻게 유통되나? =북한 내 한류는 중국의 한류에서 비롯됐다. 중국 옌지(延吉), 단둥(丹東), 선양(瀋陽) 등 조선족 거주 지역의 PC방들은 자체적으로 갖춘 위성방송 시청 시설을 통해 실시간으로 한국 방송을 녹화해 손님들이 컴퓨터에서 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깔아놓는다. 조선족 젊은이들의 상당수는 한국 방송을 보기 위해 PC방을 찾는다. 이렇게 불법 녹화된 한국 방송들은 불법 CD, DVD로 제작된 뒤에 '돈벌이 되는' 한국 방송을 사가려는 북한 밀수업자들에게 판매된다. 

김선화씨는 "중국과 북한을 왕래하는 한 동생으로부터 한국 방송을 처음 접했고, 그 뒤로 중국에서 북한에 (직접)DVD와 VCD플레이어를 들여보낸 적이 있다"는 경험을 털어놓았다.

김 씨는 "주로는 외국에 다니는 간부들이 많이 (남한 영상물을)가지고 들어오고, 무역, 영업을 하는 집안의 자제들이 돌리면서 퍼진다"고 덧붙였다. 이혜숙 씨는 "밀수 장사꾼들이 일반 가정에 DVD플레이어를 파는데, 부르는게 값일 정도로 비싸다"면서도 "발전된 것에 대한 호기심도 있고, 조금 못 먹어도 한국DVD를 보는 추세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여유가 생기면 플레이어를 산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 DVD를 빌려보는 가격은 보통 2000원 정도이고, 사는 가격은 그 두배다. 북한에서 쌀 1kg가 약 2000원(20일 기준)인 점을 감안하면 '밥은 굶더라도 한국 드라마는 봐야겠다'는 주민들의 말이 과장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북한 내 한류가 확산됨에 따라 영상물 시청을 위한 미디어 기기 이용실태도 변해왔다. 2000년대 초에는 TV 안테나를 이용해 조선족 방송을 시청하거나 중국산 DVD을 이용하는 것이 한국 영상물을 접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러나 2005년 북한에서 선전수단으로서 DVD플레이어가 합법화되었고, 일반 가정에 보급된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 불법 DVD가 사용되면서 한국 영상물을 퍼뜨리는 계기가 됐다.  

또한 최근에는 보위원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휴대가 간편한 메모리칩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양상이다. 김은혜 씨는 "예전에는 아들이 CD알(DVD)로 가져왔는데 지금은 메모리로 구해온다"면서 "아무리 (단속원이) 탐지기를 가동해도 CD알 녹화기에 메모리만 갖춰놓으면 되니까 걸리지 않는다. 그래도 걸리면 사는 곳에서 추방되기 때문에 친구네 집에서 노트북으로 최신 것까지 챙겨본다"고 말했다.   

무역업자 박영민 씨는 "북한 젊은 애들이 밥은 굶어도 (한국)노래나 영화는 보려고 하니까 (북한 상인들이)MP3같은 전자기기를 많이 찾고, 중국어 학습용으로 한국산 전자자전 '누리안'도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위성TV나 대북단파라디오를 통해 실시간으로 한국의 정보를 접하기도 한다. 김선화씨는 "북한에서 자유아시아 방송(대북단파라디오)을 들어봤다"고 말했다. 김은혜 씨는 "위성 안테나를 통해 (PMP크기의) 한국제 소형 라디오로 36개 통로(채널)가 다 나온다"고 말했다.

전력 사정이 열악한 북한에서 영상물 시청을 위해서는 건전지도 필수다. 이영실 씨는"(전기가 자주 끊기니까) 가정마다 있는 휴대용 밧데리나 자동차 밧데리 등을 전기 들어오는 시간에 충전해서 티비도 보고 (영상물)녹화하는 데도 쓴다"고 설명했다.

한류 주도층 '젊은 세대'…의식 변화로 이어질까?=북한 내 한류는 특히 젊은 층이 주도하고 있다. 김선화 씨는 "평양시 학생들은 대부분 남한 영상물 봐서 그런지 춤추고 놀고 싶어하고 그런 취향이다"고 말했다. 이혜숙 씨도 "젊은 애들은 뺑때바지를 많이 입고 다닌다. 청바지는 입지 못하게 하지만 머리 모양, 머리 색 등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고 유행에 민감한 추세다"고 설명했다.

이 씨가 딸에게 '풍덩한(의복이 크고 넉넉한)' 옷을 사주면 딸은 "엄마 이거 구식이야"라고 말할 정도로 유행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이 씨는 "요즘 아이들은 옷 줄여주는 가게가 있을 정도로 딱 달라붙는 한국 옷들을 많이 따라하고 하이힐도 신는다. 또 젊은 남자들은 영어 글자가 있는 옷을 많이 입는데, 영어 의미를 모르고 입으면 상관없지만 의미를 알면 단속 대상"이라고 말했다. 다른 북한 주민은 "아이들이 미국식으로 머리도 자르고 말투도 서울 말씨를 따라해 '오빠'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대상자들의 한류 관련 주요 발언> 

남포조선소 간부

"평양 대학생들, 역전에서 가사만 없는 한국 가요 틀어 놓고 춤 춰"

평성 40대 여성

"현빈보다 권상우가 매혹적, 임현식·이범수·하지원 연기 잘해, 위성TV시청"

함북 30대 여성 

"워낙 (남한)DVD보는 추세라 안 뒤처지려고 비싸도 웬만하면 DVD플레이어 구입해, 젊은 세대 뺑때바지, 하이힐 등 유행에 민감, 삼성 애니콜 다 알아"

신의주 40대 밀수업자

"북한 젊은 애들이 밥은 굶어도 노래나 영화는 보려고 하니까 북한 밀수업자들이 MP3같은 전자기기를 많이 찾는다"

평남 덕천 농장원

"농촌은 테이프 보기가 힘들긴 해도 아는 사람들끼리는 다 테입·CD로 한국, 외국 영상물 몰래 본다"

이러한 북한 내 한류 열풍은 그동안 통제된 정보 속에서만 살던 북한 주민들에게 외부 정보를 제공하고 남한사회와의 비교를 가능케 만든다는 점에서 파급효과가 체제 저항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도 주목되고 있다.

'한류, 북한을 흔들다'의 저자 강동완 통일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북한 주민들은 한국 드라마에 드러난 발전상을 보면서 그동안 북한의 선전이 거짓이라는 것을 깨닫는 동시에 '나도 저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환상과 동경을 품게 된다"면서 "이러한 남한에의 동경은 북한체제 저항의 직접적인 요인이 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일정 수준의 체제불만을 가져오면서 추가적인 체제 일탈요인과 결합될 때 혁명에 중요한 동기·토대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의 일방적인 선전·선동에 길들여진 북한 주민들이 드라마, 영화라는 '만들어진', '허구의' 상품으로만 한국을 접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을 균형있게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한계도 지적됐다. 

이혜숙 씨는 "괜찮은 것도 있지만 어두운 길에서 폭력을 휘두르고 사람들 막 죽이는 깡패 영화는 한심"하다고도, "남한 사람들의 연애는 이사람 만났다가 저사람 만났다가 수시로 (연애 상대를) 바꿔 난잡하다"면서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북한의 영화는 다 (영화처럼) 따라하라고 선전·교양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한국의 영화도 그렇게 연애하라고 선전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씨는 "지금까지 한국은 하루하루 살아가기 힘들다고 교육 받아왔지만 영화를 통해 보니 한국도 양심적, 도덕적이고 의리 있는 면이 있으며 생활이 편리하다"고 긍정적으로 답했다.

이와 관련 강동완 연구위원은 "한국드라마를 보고 탈북한 사람들 중 일부는 한국에 오기만 하면 돈을 많이 벌 것 같다는 환상을 갖고 오는 경우도 있었다"라면서도 "하지만 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한류는 (북한 주민들이) 한국 사회의 자유를 보게 되는 계기가 된 점"이라고 강조했다.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데일리NK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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