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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19년을 기다렸지만…"
동지회 787 2005-10-28 13:47:32
"소녀는 19년을 기다렸지만…"


北수용소서 환갑 맞은 부친에게 ‘광고편지’ 쓴 최우영씨

“아빠 배가 동진호야? 지금, 납북됐다는 뉴스가 나왔어….”

1987년 1월 15일 저녁. 가족들과 할아버지 제사를 지내고 있던 17살 소녀는 귀를 의심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려온 남동생의 이야기는 청천벽력 같았다.

아버지가 납치되다니, 그것도 북한 경비정에….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백령도 인근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아버지가 동료 11명과 함께 납북됐다는 TV속보는 현실이었다.

뛰는 가슴을 억누를 수 없던 그와 가족들에게, 정부는 ‘곧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그 말만 믿고 기다렸다. ‘하루가 천일 같은’ 초조한 심정으로.

하지만 곧이어 김만철 씨 가족 탈북사건이 터지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김씨 가족을 돌려보내지 않겠다는 우리 정부의 뜻을 확인한 북측은 아버지에게 ‘북파 간첩’ 누명을 씌우는 것으로 맞대응했다.

아버지의 송환 논의는 양측의 정치적 이해관계 대립 속에서 소리 없이 사라졌다. 언제 돌아올 지 기약 없는 아버지를, 소녀는 기다렸다. ‘하루가 천일 같은’ 초조한 심정으로.

그렇게 흘러간 세월이 이제 19년. 소녀는 어느 덧 30대 중반의 여인이 됐다. 그리고, 아버지는 지난 26일 북한의 차디찬 정치범 수용소에서 환갑을 맞았다.

하지만, 여인이 된 소녀는 여전히 아버지를 40대의 건장한 바다사나이로만 기억한다. 내일이라도 당장 돌아와 “내 딸 많이 컸네”라며 넓은 품 속에 꼬옥 안아주실 그 아버지로.

납북자가족협의회장 최우영(崔祐英·35)씨는 지난 23일 노란손수건 400장을 임진각 입구 소나무에 달았다. 이보다 앞선 19일엔 한 일간지광고를 통해 김정일 北국방위원장에게 보내는 편지도 공개했다. ‘사랑하는 내 아버지를 돌려달라’는 간절한 외침들이었다.

24일 인터뷰를 위해 만난 최씨는 아버지 최종석(崔宗錫·60·납북된 동진호 어로장)씨의 사진들을 보여줬다. 최씨의 머리 속에 기억된, 오래 전 그 모습 그대로였다.

TV화면에 나온 아버지를 찍은 사진이 나오자, 최씨는 잠시 말을 잃었다. “1999년에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아버지 모습을 봤어요. 북한TV에 나와서 스스로를 간첩이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이었어요.”

무고한 아버지가 ‘간첩’으로 몰려 정치범 수용소에까지 수감됐다는 사실을 안 최씨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듬해, 그는 최초의 납북자 가족 모임인 ‘납북자가족협의회’를 결성했다.

같은 해 청와대를 찾아가 납북자 문제 해결을 호소하고 작년 4월엔 방북 예정이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는 등 ‘아버지를 되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지금까지 달려왔다. 다음은 조선일보 동영상 ‘갈아만든 이슈’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아버지 환갑(10월26일)을 맞은 소회.

“아버지가 납치되고 나서 이렇게 오랜 시간 돌아오지 않으실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그런데, 어느 덧 18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아직까지 아버지 생사도 확인 못 하고 있다. 상실감과 죄송스러운 마음이 크다.”

-김 위원장에게 편지를 쓰고, 노란 손수건을 매달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얼마 전 정부가 전향 장기수 송환을 발표했을 때, 아버지가 더 그리웠다. 2000년 당시, 인도주의 정신 하에 국민적 성원 속에서 비전향 장기수들이 북송됐다.

그 땐 갈 사람이 가면 올 사람 온다는 여론이 있었다. 그런데 5년이 지나도록 납북자 문제에 대한 대답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내 아버지가 환갑날을 그나마 잘 지낼까 생각하면서, 차라리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남한 내 신문기사를 다 본다고 하니. 내 아버지는 너무 위독한 상태다. 이 사회를 믿고는 도저히 기다릴 수 없다는 절박감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게 됐다. 김 위원장도 (편지와 손수건을) 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DJ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납북자 문제 접근 방식의 차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납북자’에 대해 직접 언급을 했다. 2000년 9월 3일 방송의 날을 맞아 ‘한국인 납북자 문제 해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납북자 문제를 직접 언급한 적이 없다.”

-외국 정부를 통한 도움 요청에 대해 비판은 없나.

“북한에서도 이인모 씨 딸이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서 ‘아버지를 빨리 보내 달라’는 호소를 한 적이 있다. 저도 그 딸의 심정으로 쓴다면 누구라도 마음을 받아들일 거라 생각했다. 같은 사례가 있는 만큼 비난할 이야기가 아니라고 본다.”

-‘진보’진영의 납북자 문제 접근 방식에 대한 생각은.

“정말 찾아가서 묻고 싶다. 왜 장기수 문제는 ‘인도주의’, ‘사람’의 문제로 보고, 납북자는 같은 국민임에도 외면하는지…. 납북된 사람 중 다수는 노동자다.

그런데 왜 이런 문제를 그들은 이야기하지 않는 걸까. 이런 구분을 넘어야 진정한 진보가 아닐까. 사실, 장기수들이 참 부럽다. 서른 곳이 넘는 시민사회단체들이 대신 호소해주지 않느냐.

하지만, 납북자 문제는 대부분 가족들이 생계를 이어가면서 다루고 있다. ‘진보’ 단체들은 장기수 송환을 촉구하면서 납북자들 생각은 안 나는지, 난다면 어떤 마음인지 무척 궁금하다.”

-일본에서는 어떤가.

“일본 납북자 가족들은 거리를 다닐 때마다 ‘힘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정치인이든, 지식인이든 모든 사람들이 ‘가족이 피해를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존중해 주고, 함께 아파한다. 우리와 다른 모습이다.”

-아버지께서 편찮으시다는 소식이 있는데.

“그래서 하루하루가 정말 천일 같이 느껴진다. 행여나 잘못 되시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한시바삐 납북자 문제를 해결 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정부에 하고 싶은 말

“납북자 문제 해결이 남북한 화해의 지름길이 되는 방향으로 가길 바란다. 그리고 더 이상 우리 가족들에게 평화나 통일을 위해 참아달라는 말을 하지 않길 바란다.

이미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고, 어떻게 보면 장기수보다 그 다음 순서에 저희가 있었다. 북한이 (장기수 송환을 위해) 그렇게 최선을 다 했듯이 우리 정부도 자국민을 구해 오는 데 최선을 다 해주길 바란다.”

최씨의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정부에서도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지난 25일 “남북간에 묵인된 방식으로 확인한 결과 현재까지 납북자 11명과 국군포로 10명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최씨 아버지에 대해서도 생사확인을 요청해 생존여부를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올해 안에 한 명이라도 귀환시키는 사례가 있기를 바란다”며 “정부를 믿는다”고 말했다. / nk.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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