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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포로 '유해 탈북'
동지회 777 2005-11-07 10:26:07
국군 포로 '유해 탈북'


"아버님, 살아 소원이시던 고향땅에 이제야 모셔왔습니다"
軍 정보기관 출신… 北서 가혹한 고문·감시
임종때도 "남쪽 가고싶다"… 50년 소원풀어

“아버님, 드디어 꿈에 그리시던 고향 남녘 땅에 왔어요. 지금은 이렇게 초라한 곳에 모시지만 곧 국립현충원에 모실게요.” 4일 오후 납북된 국군포로 유해 1구(具)가 중국을 거쳐 조국의 품에 안겼다.

중국 옌지(延吉)발 중국남방항공 6073편으로 인천국제공항에 입국했다. 국군포로 허용호(가명·1995년 사망)씨.

그를 위한 아무런 환영행사도 없었다. 딸 금자(가명·43)씨의 여행용 가방에 담겨서 왔다가, 서울 양천구 한 야산에 아무도 모르게 가매장됐다.

금자씨는 공항에서 바로 가묘(假墓) 터로 이동했다. 높이 50㎝가 채 되지 않는 아버지의 가묘에 흰 쌀밥과 국, 술과 고기, 나물 등 미리 준비한 제물을 차려놓고 절했다.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도 고향에 가고 싶어하시더니 아버지 혼이 돌보셨나봐요. 다른 사람들 가방은 중국과 한국 공항에서 검색하던데 유독 제 가방만은 검색하지 않았어요.”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기 전까지 너무 초조했다는 금자씨는 아버지의 유해가 담긴 가방을 품에서 한순간도 떼어놓지 않았다.

경남 김해가 고향인 아버지는 17세가 되던 1948년 밥이라도 배불리 먹겠다며 군에 입대했다. 그가 일한 곳은 군의 정보와 방첩을 맡아보는 특무대.

6·25 전쟁 중 그는 북한군에 붙잡혀 북한 포로수용소에 억류됐다. 특무대 출신인 그는 정보를 캐내려는 북한 당국에 의해 가혹한 고문과 감시를 받았다고 한다.

1957년 다른 포로들과 함께 함북 온성군 탄광으로 보내진 그는 60세가 되던 1991년까지 탄광에서 채탄공으로 일했다고 한다. 오랜 노역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평소 술도 잘 마시지 않았지만 1995년 간암으로 사망했다.

금자씨는 “아버지는 국군포로에 대한 감시가 심한데 혹시 술 취해 엉뚱한 소리라도 해서 자식들이 피해를 볼까봐 술은 거의 입에 대지 않으셨어요”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평생 고향을 그리워했다. 흰 쌀밥을 보면 “우리 고향 김해는 쌀알도 크고, 밥에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고 했고, 오이만 봐도 “우리 고향 오이는 참 달았는데…”라고 말했다.

임종할 때도 금자씨의 손을 꼭 잡고 “고향에 한 번만이라도 가보면 소원이 없겠다. 이젠 살아서 가지 못할 것 같구나. 죽어서라도 꼭 가고 싶다. 너희만 믿는다”고 했다고 한다.

유언에 따라 그의 유해는 북한의 친척들이 지난 10월 중국에 있는 친척에게 넘겨 주었다. 사망한 지 10년이 지난 뒤에야 머나먼 고향 길로 나선 것이다.

금자씨의 남편 김모(45)씨는 “아버님은 평생 마음속 응어리를 안고 살다 가셨어요. 고향 얘기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셨죠.

그저 밤나무를 보면 ‘우리 고향집에 큰 밤나무가 있어 마을 사람들이 우리 집을 밤나무집이라고 불렀다’고 하셨죠”라고 말했다.

금자씨는 2001년 탈북해 중국에 있는 친지들의 도움으로 지난 2002년 중국 옌지를 통해 입국했다. 남편 김씨는 이보다 앞서 2000년 중국을 거쳐 입국했다.

허씨가 아들처럼 사랑했던 사위 김씨는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장인의 고향인 경남 김해를 찾았다.

김씨는 “아버님은 혈혈단신이었기 때문에 늘 정(情)에 목말라 하셨어요. 제가 아내와 결혼할 때 아버님께 인사를 드리려고 아무리 찾아봐도 안 계신 거예요.

한참을 찾다 보니 아버님이 말없이 저 남녘 하늘을 바라보고 굵은 눈물만 흘리고 계셨어요. 북한 출신인 장모님 쪽 친척들은 많이 오셨지만 장인 쪽 하객은 아무도 없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허씨가 국군포로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허씨의 대퇴부 유골 10㎝와 딸 금자씨, 금자씨 아들의 혈액, 그리고 친척의 혈액을 함께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국방부는 DNA 확인검사를 한 뒤 국군포로로 확인되면 현충원에 안치하는 조치를 취할 것으로 전해졌다./ nk.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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