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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 19년… 南도 北도 대답없는 세월
동지회 508 2006-01-16 10:38:14
동진호 피랍선원 12명 가족들의 처절한 삶
"자식 데리고 아등바등" "그때부터 심장병 앓아"
비전향장기수 보내면서 정부는 왜 할말 못하나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젠 알고 싶지도 않고, 알려고 하지도 않아요. 19년 동안 아무리 떠들고 다녀봐야 누가 귀 기울여주나. 계란으로 바위치기예요….”

1987년 1월 15일, 서해 백령도 서북쪽 28마일 공해상에서 납치된 동진호. 동진호 피랍 19주년을 맞는 15일 동진호 선원 박광현(납북 당시 38세)씨의 아내 정경자(54)씨는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당시 조기잡이를 하다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치된 12명은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 세월 동안 꿈에도 그리던 남쪽 가족을 만난 납북 선원은 4명뿐. 2000년 2차 남북이산가족상봉에서 강희근(납북 당시 36세)씨를 시작으로 2003년 김상섭(납북 당시 36세), 2004년 양용식(납북 당시 28세), 지난해 정일남(납북 당시 31세)씨가 가족을 만났다.

만나지는 못했지만, 김영현(납북 당시 23세), 최종석(납북 당시 만 42세·최우영 납북자가족협의회 회장 부친), 임국재(납북 당시 33세)씨 등 3명의 생사는 확인됐다.

하지만 나머지 5명은 생사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선장 김순근(납북 당시 45세), 박광현(납북 당시 38세), 추영수(납북 당시 56세), 진영호(납북 당시 30세), 노성호(납북 당시 26세)씨 등의 가족은 남편과 부친이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모른다. 이들은 하루 아침에 가장을 잃은 채 19년을 힘들게 살아왔다.

“남편 잃고 어린 젖먹이 데리고 먹고 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것도 서러웠지만 주위에서 ‘생과부’라느니 ‘간첩 마누라’라고 손가락질 하는 게 더 참기 어려웠어요.”

박광현씨의 아내 정경자씨는 새삼 설움에 북받쳐 말했다. 보일러공이었던 남편은 벌이가 시원치 않아 배를 탔지만 15일 만에 세 살배기 젖먹이 아들과 젊은 아내를 남겨둔 채 북으로 피랍됐다.

김순근씨의 아내 이수엽(58)씨는 “심장이 얼마나 벌렁거리던지…. 그때 너무 놀라 심장병을 얻어 아직까지 병원에 다녀요. 한 달에 두 번 병원을 가는데, 약이 없으면 살 수가 없어”라고 하소연했다.

이씨는 “젊어서 어찌나 고생을 했던지 이젠 다리가 아파서 걷지도 못해. 그래도 생활비라도 벌려고 아직까지 청소일을 다닌다오. 나라에서 약값이라도 좀 보태주면 좋으련만…”이라며 힘든 숨을 내쉬었다.

정부는 비전향장기수를 송환하면서도 납북자 가족들의 생사확인이나 송환 요구에 대해서는 남북관계를 거론하며 묵묵부답이었다.

납북자 가족들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도 해양수산부장관 시절 납북자가족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납북자 문제 해결에 적극 노력할 것을 약속했지만 아직까지 납북자 문제에 있어 뚜렷한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납북자 가족들은 지난 2003년 12월엔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4박5일간 점거농성을 벌여 2004년 4월에는 납북자가족 인권침해에 관한 실태파악과 특별법 제정 권고안을 끌어냈지만, 2년이 다 되도록 정부의 주무부처조차 정해지지 않고 있다.

납북 당시 56세로 최고령이었던 추영수씨는 살아있다면 이제 75세. 추씨의 아들 석봉(36)씨는 “한가지 소원이 있다면 가슴이 숯검댕이가 된 늙으신 어머니께 아버지 생사만이라도 확인해 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들의 이런 소박한 소원마저 들어줄 수 없는 걸까./nk.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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