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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사망회고
동지회 6 11429 2006-07-07 11:38:22
우상화 정치로 무서운 재난을 겪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삶
[김일성 사망회고] '울음 쇼'와 북한 인민들의 잔인한 7월


지금 북한에서는 지난 5일 김정일이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미사일 발사를 강행한 상태에서 7월 8일 김일성의 사망 10년을 보내게 된다.
미사일 발사와 김일성 사망일, 김정일 정권이 북한주민들을 대상으로 어떤 정치활동을 벌릴지, 그 활동상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분명히 생전에 김일성의 소원은 조국통일이었고, 그 조국통일은 미제에 의하여 이뤄질 수 없었다고 역설할 것이다. 또 김일성의 유훈대로 김정일을 보위하는 총, 폭탄 자살정신으로 살며 일할 것을 강요할 것이다.

그 선전 선동이 어찌 됐든 북한주민들은 이날 참기 어려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치러야 할 것이다. 필자는 오늘 북한주민들이 격을 고통을 생각하며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사망 후 애도기간을 회고하지 않을 수 없다.

‘애도기간’은 7월 8일 낮 12시 김일성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1달 동안 북한 전역에 선포됐다.

울지 않으면 ‘적대군중’으로 분류한다고 협박

애도기간에 모든 공장, 기업소 당조직들에서는 생산을 중지하고 애도 행사에 동원됐다.

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행사는 화환이나 꽃바구니를 만들어 김일성의 동상, 사적지, 영생탑(永生塔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구호가 씌어진 탑) 등 김정일 가족과 근친들에게 헌화(獻化)하는 일이었다.

북한 주민들 치고 이 행사에 불참하면 배겨날 수 없다. 아니 살아남을 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북한 주민들도 감정을 가진 사람이다. 어찌되었든 자신들이 신처럼 믿고 따르던 김일성이 사망했는데 울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고 헌화를 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당중앙위원회에서는 주민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내기 보다는 통제하기에 급급했다. 그것이 오히려 주민들의 반발심을 불러일으켰다. 집안 청소를 하려고 빗자루를 쥐려고 하는데 누가 청소를 하라고 지시를 하자 오히려 빗자루를 팽개쳐 버리는 심리적 작용이라고나 할까.

당시의 요구는 인간의 자연적인 감정의 산물인 ‘눈물’을 억지로 짜내라는 것이었다. 꽃을 들고 완전히 울어버리라는 것이다. 헌화에 불참한 자, 동상 앞에서 웃는 자는 6.25전쟁 당시 한국군을 도운 치안대 가담자들과 같은 ‘적대군중’으로 분류한다고 위협하면서 말이다. 북한 주민들은 적대군중 부류에 속한 사람들이 대대손손 고립과 멸시 속에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잘 알고 있다.

세포비서(노동당 말단 조직단위 책임자)들에게는 소속 당원들 또는 근로단체(청년동맹, 직맹, 농근맹, 여맹) 성원들에 이르기까지 사상동향, 활동정형 등 일거 일동에 대한 평정서(생활 평가서)를 작성하여 상급 당에 올려보내라는 지시가 하달됐다.

당 간부들은 한 송이의 꽃을 가져다 바치는 것도 ‘충성심의 표현’이라며 주민들을 들볶았다. 보통의 수준을 넘어 완전히 광분하는 수준이었다.

꽃을 찾아 산과 들을 헤매다

북한의 7월은 꽃피는 계절이 아니다. 게다가 꽃밭은 이미 강냉이 밭, 콩밭으로 변해버렸다. 그러나 김일성 동상에 꽃을 바치는 일은 그 어떤 이유와 조건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라는 말이 빈말은 아닌 듯 싶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 위에서도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온 산 판을 뒤져서라도 꽃을 꺾어오란다.

어린 학생, 노인, 청년, 남녀노소의 주민들이 보이지 않는 꽃을 찾아 산과 들을 헤맸다. 발이 부르트고 팔꿉치가 벗겨지도록, 입을 악물고 산을 기어올라도 꽃은 좀처럼 눈에 띄질 않았다.

며칠동안 헤매서 겨우 꺾어 온 꽃이란 회귀한 꽃도 아닌 나팔꽃 또는 볼품 없는 이름 모를 야생 꽃 한 두 송였다. 나팔꽃이나 일부 야생화로 꽃바구니를 만드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나마 이것도 다행이다. 빈손으로 산에서 내려와 얼굴을 들지 못하는 이도 있으니 말이다. 꽃을 꺾어왔어도, 빈손으로 돌아왔어도 장군님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하다는 핀잔은 매한가지다.

반면 간부들이 내놓은 꽃은 희고 붉은 아름다운 꽃들이다. 자신들만이 김정일 장군님에 대한 확고한 충성심을 가진 듯하다. 이들은 어디서 이런 꽃을 가져왔던 것일까?

인간 처세술에 능한 당간부들과 안전원, 보위원들은 사서 고생은 하지 않는다. 그들은 산과 들을 오르내리는 것이 아니라 사적지 주변이나 가정집들을 빙빙 돌며 꽃을 마련했다.

사적지 주변에는 관리원들이 가꾸는 백도라지(양귀비)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아름다운 꽃이 있고 가끔 일부 가정집 뜰에는 애지중지 키우는 다알리아 꽃과 같은 관상용 꽃들이 있었던 것이다. 꽃을 가꾸는 주민들도 권력자의 말 한마디에 두 말 할 것 없이 내놓는다.

이것도 권력형 사회의 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하여튼 눈물로 꺾어온 꽃들로 화려한 꽃바구니를 만든다. 이 꽃바구니를 들고 전체 종업원들이 김일성 동상과 김일성, 김정일혁명력사 연구실, 김일성의 영생탑 등에 찾아가 꽃바구니를 증정하고 애도를 표한다.

지친 몸에 슬픈 음악…… 자연히 눈물이 나온다.

눈물로 만든 꽃바구니를 들고 김일성 동상 앞에 섰을 때 제정신을 가진 사람,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김일성의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도 있지만 꽃을 구하느라 겪었던 고생을 생각하면 눈물이 자연스럽게 흐른다.

육체적 고통 때문에도 눈물이 나온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긴 해도 김일성 동상 앞 광장은 보통 일 천 평 이상이다. 그늘도 없다. 기관, 기업소 종업원들이 단위별로 대열을 지어 자신들의 헌화 순서가 돌아올 때가지 기다린다. 그래서 김일성 동상 앞까지 도달하기까지는 무려 2시간 이상이 걸린다.

그동안 까딱도 못하고 차렷 자세로 서서 말이다. 쨍쨍 내려 쪼이는 햇볕과 무더위는 땀을 흘리다 못해 탈진을 일으킬 정도로 고달프다.

게다가 ‘애도곡(哀悼曲)’의 장엄한 음색은 슬프디 슬픈 주민들의 감정을 뒤흔들어 놓는다. 탈진까지 일으킬 듯한 육체적인 고통과 우울증을 불러일으키는 듯한 슬픈 감정은 강한 의지가 없다면 견디기 어렵다.

연약한 일부 여성들이 현기증으로 쓰러지고 감정에 약한 사람들이 하나 둘 눈물을 홀리기 시작하면 전체 참가자들이 울어버리는 생물학적 조건반사가 일어난다. 그래도 도저히 눈물이 나오지 않으면 통곡소리를 내면서 엎드릴 때 잽사게 침을 눈언저리에 발라 눈물을 흘린 척이라도 해야한다.

당 간부들에게 찍히면 두고두고 비판의 대상이 되고 아차 하다가는 괘씸죄로 대대손손 불이익을 받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촬영기자들은 이때를 놓칠세라 카메라를 철컥거린다. 이 장면은 수령님을 잃은 슬픔에 북한의 전체 인민들이 우는 쇼의 한 장면으로 기록된다. 행사 후면 질병환자들이 속출한다. 가장 많은 질병은 일사병 환자들과 여성들의 심장질환이다.

이것이 김일성 사후 7월을 살아가는 북한 인민들의 생활 모습이다.

가정맹어호 (苛政猛於虎) -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사납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우상화 정치로 무서운 재난을 겪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삶이 떠오른다.

2006년 7월 7일 이주일 (탈북인권 운동가 2000년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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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스더리 2007-09-27 21:29:09
    산에는 꽃이라고는 찾아볼수 없었고 줄당콩꽃을 전부 꺽다보니 그해에 콩밥한그릇 못 먹었죠. 조그만 줄당콩꽃이 너무 가여워요.
    애도 행사도중 쓰러져서 저도 병원에 실려갔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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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 2007-11-02 14:49:40
    정말 실감나는 이야기를 오래간만에 읽었습니다.

    그당시 저는 중국에나갔다가 왔는데 각나라 대사관들에서 꽃을 사서 비행기로 수송하여 평양에서 행사에 사용하였는바 동남아를 비롯하여 중국 북경시 꽃장사들이 무지하게 돈을 벌었지요.

    북경에는 꽃이 너무많이팔려서 원천이없었으며 중국 남방에서 꽃을 북경으로 대량 수송해왔을 정도였습니다. 여기에 소모된 외화는 정말 엄청나게 많았으며 그돈으로 국민들에게 강냉이라도 사다 먹였으면 굶어죽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뿐인가요! 김일성의 시신을 안치하는 주석궁에는 7억 9천만 달러가 들었다지않습니까?

    이러한 일때문에 그 이후 300만명 이상의 북한 주민이 굶어죽는 참상이 일어난것을 생각하면 언젠가는 역사에 기록이 될것입니다.

    이런일이 더는 북한에서 발생하지 않게 하기위하여 북한을 민주화해야하며 남한사람들이 북한의 기만 선전에 속지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우려야 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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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교회 전도사님 대성 2007-12-07 17:30:06
    우상화 정치로 무서운 재난을 겪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삶
    [김일성 사망회고] '울음 쇼'와 북한 인민들의 잔인한 7월

    지금 북한에서는 지난 5일 김정일이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미사일 발사를 강행한 상태에서 7월 8일 김일성의 사망 10년을 보내게 된다.
    미사일 발사와 김일성 사망일, 김정일 정권이 북한주민들을 대상으로 어떤 정치활동을 벌릴지, 그 활동상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분명히 생전에 김일성의 소원은 조국통일이었고, 그 조국통일은 미제에 의하여 이뤄질 수 없었다고 역설할 것이다. 또 김일성의 유훈대로 김정일을 보위하는 총, 폭탄 자살정신으로 살며 일할 것을 강요할 것이다.

    그 선전 선동이 어찌 됐든 북한주민들은 이날 참기 어려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치러야 할 것이다. 필자는 오늘 북한주민들이 격을 고통을 생각하며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사망 후 애도기간을 회고하지 않을 수 없다.

    ‘애도기간’은 7월 8일 낮 12시 김일성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1달 동안 북한 전역에 선포됐다.

    울지 않으면 ‘적대군중’으로 분류한다고 협박

    애도기간에 모든 공장, 기업소 당조직들에서는 생산을 중지하고 애도 행사에 동원됐다.

    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행사는 화환이나 꽃바구니를 만들어 김일성의 동상, 사적지, 영생탑(永生塔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구호가 씌어진 탑) 등 김정일 가족과 근친들에게 헌화(獻化)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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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실이 2007-12-21 22:08:13
    참~~~~~~ 무슨표현이 적당할지? 우리는 대학2학년 때였었거든요..
    모기가 그렇게 많았었는데 반에서 4명씩 대형 초상화앞에 눈도 깜박이지 못한채 2시간씩 서있었죠. 교대제로 . 온 대학이 꼬박 한달을
    모기. 그때 모기가 너무 너무 실었었죠. 간지러워서 긁을려고 좀 움직이면 충성심이 없는 낙오분자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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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중한천국 2008-02-03 21:42:15
    이때는 우는게 제일좋죠 ..
    울지않고 떠들어대면 반역자가 되니깐..ㅋㅋㅋㅋㅋㅋ
    북에서 살아남자면 이날은 울면됩니다...헌데 지금은 좀낫어요 울지 않아도 되요 .... 우는 사람도 없고 인민학교 아이들은 애로그날이 오면좋아하죠 학교에서 휴식햇으니깐 ..ㅎㅎ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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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 2008-04-07 16:04:28
    만수대동상과 개선문사이 길가엔 그래두 무궁화가 계속 피여 있습니다 "저꽃은 왜 저러구 있지? 동상에 안가구" 하자 " 무궁화는 한국 국화이기 때문에 동상에 올라가지 못해 " ㅎㅎ 꽃에두 적대 꽃이 있어요~~ 한국은 북한이 젤루 손꼽히는 적대국이니깐요~ ^^ 한국사람들은 북한에 대해 넘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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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르름 2008-06-19 18:05:22
    무궁화꽃 뿐인가요 코스모스는 미국국화라구 안되구 노란꽃은 황색바람을 상징한다구 안된다면서두 해바라기는 노란꽃인데 태양을 따라 도는 꽃이라구 된다네요 참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미국국화인 코스모스를 철길옆에는 왜 심으라구 지시했나 몰라 미국국화인걸 모를수도 없는데 ㅎㅎㅎ 비극의 나라 북한 저주가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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