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와 겨울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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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크기는 준비에 비례한다 남한사회에 적응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사회구성원인 남한사람들과의 조화로운 어울림과 정서적인 공유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차이점을 파악한데 근거한 “창조적 파괴”를 통하여 남한사람들의 보편적인 가치관과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요구하는 기본정신에 부합되는 새로운 사람으로 체질 바꾸기를 시도해 나갈 때 탈북자의 사회적응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我敵관계로 구분되어 있는 북한식 이분법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다원주의적 가치관을 수립하는 것,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는 집단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自”의 권리와 이익이 소중한 만큼 “他”의 권리와 이익도 소중하다는 개인주의 가치관으로의 전환 등 의식전환 과정은 남한사회 적응을 위한 필수과정이다. 수동적인 계획경제와 능동적인 시장경제, 통제와 감시를 수반한 조직생활과 자유로운 시민활동, 절약을 강요하는 북한과 소비를 부추기는 남한, 느린 변화와 급속한 변화, 열린사회와 닫힌 사회, 배타와 수용 등 남북한의 차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남북한의 차이점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근거한 ‘창조적 파괴’는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는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북한에 대한 남한 사람들의 인식은 매우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제한적이고 배타적인 인식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장벽 역시 북한이탈주민 스스로가 넘어서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인간사회에서 갈등은 당연한 것이고 갈등요소를 해소하는 데서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창조적 파괴 그날은 2003년 11월 26일이었다. 사람들은 외투를 입기 시작하였고, 군고구마를 파는 인심 좋은 아저씨의 모습도 보이고, 입김이 나오기 시작하는 계절이었다. 길가의 사람들을 보면 추위 때문인지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하나원을 수료한 후 서울의 한 아파트에 짐을 풀고 난 후,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어둑어둑해진 아파트 주위를 배회하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거리엔 땅거미가 짙게 드리워 불빛만이 반짝이고 있었다. 겨울나무를 볼 때마다 우리를 닮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봄, 여름, 가을 내내 자양분으로 키워온 꽃잎과 열매를 깡그리 버리는 나무의 용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버릴 것은 버리는 나무를 보며 우리 탈북자도 그 겨울나무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정들고 익숙한 것에 대한 모든 미련을 떨치고 여기 대한민국으로 올 수 있는 용기, 과거를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채워나가는 용기에 대해...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큰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 때로는 과거에 집착한 나머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분들을 본다. 사랑하는 가족을 잊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하는 가족이기에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묻어두자는 얘기다. 내가 이 땅에 튼튼히 뿌리 내려 스스로를 돌볼 수 있을 때 사랑하는 가족도 보살필 수 있다. 항복은 행복이다 타인의 장점에 항복하는 것 그 자체가 행복이다. 타인에 대한 수용과 인정이 없으면 자신 역시 존중받을 수 없다. 탈북자가 가지고 있는 단점에 대한 솔직한 인정, 남한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에 대한 솔직한 인정은 자신감에서 나오는 진정한 용기이다. 그렇다고 해서 탈북자에게는 장점이 전혀 없고, 남한사람들이 단점이 없는 완벽한 존재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남과 비교하지 않음은 진정한 행복이다. 자신과 타인의 삶의 방향은 다르며 서로 영향을 주지 않는 독립적인 것이다. 서로 다른 맛을 지닌 사과와 배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행동이듯이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는 행위도 마찬가지이다. 비교를 하게 되면 비교 당하는 쪽보다 비교하는 쪽이 비참해지기 마련이다. 집착은 불행의 근원이다. 집착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운 삶만이 행복해 질 수 있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란드 럿셀은 “인간은 누구나 다소의 수입과 건강만 있으면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웃어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대와 함께 웃을 것이다. 그러나 울면 그대만이 울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사는 사람을 좋아한다. 자신의 환경이 불행해서가 아니라 그 환경을 자신만이 불행하게 받아들여서 불행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현재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의 수는 1만명도 되지 않는다. 북한의 인구에 비하면 2000분의 1이다. 이것만 봐도 탈북자는 선택받은 사람들이고, 운 좋은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진정한 자유는 자립이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며 경제적 자립 없이는 자유를 향유할 수 없다. 스스로의 통제와 조절 없는 무절제한 충동은 파멸의 근원이다. 정착의 주체는 자기자신이다. 초기정착 단계에서는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정착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어디까지나 내 삶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고 나의 운명은 내가 책임질 수밖에 없다. 부차적인 것에 기본적인 것을 놓치지 말고, 경한 것에 중한 것을 놓치지 말며, 작은 것에 큰 것을 놓치지 말고, 제정신에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자활의지가 있어야 살아남는다. 스스로 살아남으려는 의지는 탈북자와 같이 뿌리를 옮긴 사람들에게 절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오라고 부른 것이 아니다. 등 떠밀려 온 것도 아니고 살아보고자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 탈북자는 무엇보다 특권의식을 버려야 한다. 탈북자이기에 특혜를 받아야 한다는 “특권의식”, 잘못을 해도 탈북자이기 때문에 용서가 되리라는 “특권의식”은 스스로에 대한 열등감의 표현이며, 국가 의존적인 삶을 벗어나지 못한 삶의 행태이다. 자기책임적인 삶을 살 때 인간은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06년 5월 이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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