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김일성 애도눈물의 차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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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방송위원회가 중대 방송으로 1994년 7월 8일, 오후 12시 김일성 서거소식을 알릴 때 북한 주민들은 일제히 통곡을 했다. 그 전체의 눈물 속엔 진심도 있었지만 함께 울지 않으면 분명히 죄가 되는 슬픔의 사정도 있었다. 그 날부터 각 기관들과 단체들이 집체적으로 김일성 동상을 참배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한 사람이 전민을 울리는, 죽어서도 독재로 슬픔을 강요하는 집체주위 광란을 보았다. 남을 의식한 눈물, 그것은 마치 남이 대신 흘려주는 눈물 같아서 내 손수건에 담기에도 거북스러웠다. 그리고 이런 일체감의 눈물은 세상에 다시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남한에 와서 똑같은 눈물의 바다를 보았다.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슬퍼하는 시민들의 눈물을 보며 그 눈물 앞에 누워있는 인간 김수환과 김일성을 비교해 보았다. 우선 같은 모습이 있었다. 북한의 김일성이나 김수환 추기경을 보내는 마지막 사진이 웃는 얼굴이라는 것이다. 북한에선 김일성의 미소를 태양의 미소라고 한다. 신격화의 논리로 독재자의 영생을 의미하는 것이다. 김일성의 그 웃음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누린 자의 만족이며 그래서 죽어서도 군림한 착각에 보는 가슴들을 서늘하게 만든다. 생존의 폭압만으로도 부족하여 전민의 슬픔을 동원하는 독재자의 과시용 죽음이었다. 그러나 김수환 추기경의 미소, 그 뒤로 돌아가 보니 그 분은 고향집부터 눈물이었다. 작고 보잘 것 없는 초가집, 남긴 재산이란 “사랑합시다!” 그 한마디, 어린 장애인의 그림 밑에서 살아오신 삶...남들이 흘려야 될 눈물은 자신이 다 흘리시고 자기가 웃어야 될 것들을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신 어르신의 미소였다. 때문에 그분의 미소는 사람들에게 주면 위안이고 산과들에 남기면 봄이고 역사에 뿌리면 영생처럼 보였다. 그 미소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눈물에도 남북의 차이가 있었다. 김일성 시신 앞에서의 통곡은 북한 주민들의 침묵이고 역사의 고발이었다. 그러나 눈물은 닦아주는 손이 있을 때 더 흘리고 싶은 법, 김수환 추기경의 미덕들은 그대로 살아있어 모두의 마음 구석구석 어루만져주고 있기에 그처럼 흘리고 또 흘리며 기도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는 곧 김일성과 김수환 추기경의 생존의 차이이며 사랑과 증오의 차이이고 그래서 인간과 그 평가의 격차였다. 2009년 2월 20일 장진성 / 자유북한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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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남자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09-09-11 10:17:18
그땐 저도 눈물을 흘렸지만 아마 지금은 그 눈물이 안나올겁니다!
그 차이가 무엇일까요?
그때와 지금 현실 과는 너무 다르게 변한 내 자신이 모습부터 일까요?
이글을 보고 생각이 많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