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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바라본 고향 - 박진성
동지회 16 5052 2004-11-19 20:15:09
공항으로 가는 길이다.
들뜬 마음으로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앉아 한 여름의 아름다운 자태를 마음껏 뽐내는 저 멀리 산과 들을 바라보노라니 너무나도 감회가 새롭다. 북한에선 보통사람이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절대 이룰 수 없는 허황된 꿈이었지만 대한민국 국민이 된 그 순간부터 나도 해외여행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되었고 이렇게 방학을 맞아 해외 여행길에 오른 것이다.
참으로 꿈만 같다. 최첨단 시설을 갖춘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비행기표를 끊고 대한항공에 발을 디디니 만감이 교차하고 가슴속에서 무엇인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바로 2년 전에 짧았지만 위험했던 탈북 생활을 청산했을 때,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떤 생활이 기다리고 있을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유를 찾아 밟았던 그 대한항공에, 오늘은 온갖 축복을 받아 안은 긍지 높은 대한민국 국민이 되어 어깨에 힘을 싣고 다시 밟아본다. 창 밖으로 흘러가는 구름을 보다 지난 2년을 되돌아보니 고생, 위험, 좌절, 격동, 기쁨, 행복이라는 단어들이 서로 엉키어 돌면서 눈가에 축축한 것을 묻히기도 하고 또 입가에 엷은 미소도 흐르게 한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내 발자취가 스며있는 탈북 생활의 현장들을 다시 돌아보면서 그때의 위험했던 순간들을 다시 느껴보노라니 더욱더 북받치는 감정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어려운 순간에 나에게 하룻밤의 잠자리를 제공해주셨던 나이 드신 조선족 내외분을 찾아 감사의 인사와 보답으로 얼마간의 사례비도 드렸다. 그분들은 내 등을 두드려 주시면서 더욱 열심히 살아 꼭 낙(樂)을 보라는 격려의 말씀을 해 주셨다.
택시를 타고 내가 살았던 곳, 온갖 설움과 원한이 묻혀있는 북한을 보러갔다. 두만강이 가까워 올수록 흥분되는 마음을 겉잡을 수 없었다. 산림이 꽉 우거진 아름다운 남한의 산과는 다르게 벌거벗고 구차하게 누워있는 산만 봐도 그곳이 북한 지역임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참 맥이 같은 산천도 주인을 잘못 만나 너무나 불쌍하다.
두만강에 도착하여 강 건너를 바라보았다. 바로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곳이 그 옛날 내가 어릴 적에 잠시 살았던 소꿉 시절의 추억이 남아 있는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오고가던 학교 길,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손잡고 뛰어다니던 동네와 그 주변 건물들은 변한 것은 없었고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아주 벌거숭이가 되어버린 학교 뒷산과 엄청 늘어난 북한경비대 초소들과 총을 든 군인들이었다.
아래로 좀 걸어 내려갔다. 거기에는 너무도 많은 한을 안고 돌아가신 어머님과 같았던 할머님의 묘가 있는 곳이다. 멀리 산골짜기를 바라보노라니 나도 모르게 무릎이 꺾이면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살아 계신다면 할머님께서 그렇게 소원하셨던 대학생이 된 이 손자의 장한 모습도 보여드리고 싶고 그때 돌려주신 그 사랑에 이젠 보답하고 싶건만......
고개를 쳐들고 할머님 쪽을 향하여 "열심히 살아 꼭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통일이 되는 그 날 떳떳한 마음으로 남들이 보아란 듯이 할머님을 다시 찾아오겠습니다."며 굳건히 맹세하였다. 슬픔을 누르며 마음속으로 각오를 다지며 눈물을 훔치는 나의 모습을 옆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던 조선족 안내자가 나를 대단한 애국자로 생각했는지 덩달아 북한에 대한 욕을 퍼부었다. 그 사람은 내가 북한 사람이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그 사람 말로는 아직도 배급을 제대로 주지 않아 굶는 사람이 부지기수이며 밤만 되면 에너지 사정으로 북쪽은 캄캄한 암흑의 세상이 되어 버리며 그 암흑 속에서 밤마다 생존을 위한 탈북 행렬은 끊어지지 않고 계속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큰물이 졌을 때에도 강을 넘던 북한사람이 물에 빠져 죽었는데 그 시체를 15일 동안이나 거두지 않고 지금도 방치해두고 있다면서 저런 것을 찍어서 가지고 가면 아마 큰돈을 벌 것이라는 말도 했다. 설마 진짜일까 싶어 그를 따라 내려갔더니 정말 북한쪽에 남자시체 한 구가 강기슭에 걸려 썩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 잊고 있었던 공개처형 장면들이 머리를 스쳤다.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는 대한민국에 살면서 어느새 잊어버렸던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면서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땅이 과연 어떤 땅인가를 새삼스레 깨달았다. 갑자기 온몸에 공포가 밀려왔다. 아직도 저 동토의 땅에 사랑하는 부모형제가 남아있다고 생각하니 억이 막혀 한숨이 나간다. 쌍안경으로 북한쪽을 바라보고 있던 조선족안내자가 "오늘 명절날인지 사람들이 가득 나와서 노래를 켜놓고 춤추며 논다"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북한명절날은 아닌데. 일요일이니 이젠 전보다 배급사정도 좀 나아졌다고 하더니만 사람들이 문화오락생활도 즐기며 살게 하는 가부다고 생각하며 그쪽으로 뒤따라 내려갔다.
가까이 가보니 웬걸, 일요일을 맞아 공장, 기업소 노동자들이 총 동원되어 큰물에 밀려 내려와 강둑에 쌓인 모래더미를 처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 같으면 중장비 몇 대면 뚝딱 해치울 일을 지금 저쪽에서는 낡은 불도저 한 대에다가 검은 연기 뿜어대는 목탄차(불을 때어 나무가스로 움직이는 차)한 대, 그리고 지게와 삽, 곡괭이, 들것을 진 수백 명의 사람들이 옆에서 울려대는 방송 차의 음악에 맞춰 흙더미를 지고 힘들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오늘 새로운 제품을 사도 금방 구식이 되어버리는 남한, 하루가 모르게 무섭게 발전하는 대한민국에 살다가 지금 앞의 광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타임머신을 타고 갑자기 옛날로 돌아가 버린 기분이 든다.
조선족동포와 함께 그의 집으로 돌아와 잠시 땀을 식히는 동안 북한 TV를 켰다. 오랜만에 다시 보게되는 북한의 유일채널 조선중앙 TV. 거기에서는 옛날에도 그랬듯이 요즘은 북한통치자의 러시아 방문을 맞아 "장군님의 고매한 풍모와 인민에 대한 정치", "외국인들로부터 칭송을 받으시는 장군님"에 대한 "위대한 선전"이 땀을 잠깐 식히는 순간에도 아마 수십 번씩은 더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흘러가는 TV 화면에 겹쳐서 방금 보았던 벌거벗은 산과 들과 강가에 누워있던 주인 없는 시체, 그리고 흙더미를 이고 지고 뛰어다니던 사람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인민의 세상이 아니라 장군님의 세상이다. 바로 저속에서 여태껏 나도 살아왔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고 슬그머니 주머니 속의 나의 대한민국 여권에 손이 간다. 그리고 오늘날의 나의 새 모습으로 만들어 주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다.
답답한 마음에 피우지 않던 담배를 한 대 물고 집 마당으로 나오니 그 집 개가 낯선 사람이라고 으르렁대고 있다. 그때 울리는 조선족동포의 말, "그 개도 작년겨울에 집에 있던 고물 흑백 TV하고 바꾼 북한 개라네". ......... 너도 탈북자와 똑 같구나. 그래도 너는 잡혀가지 않으니 탈북자들보다 훨씬 낫구나!
통치자를 잘못 만나니 사람도 산천도 그리고 짐승까지도 고통에 신음하며 나서 자란 정든 고향들을 잃었다. 쓸쓸한 마음에 저 멀리 하늘가를 쳐다보니 옛 문인들의 말이 문뜩 생각난다. "임금이 악정을 하면 돌담을 높게 쌓아도 백성이 도망가지만 임금이 선정을 베풀면 땅에 금을 그어도 넘어가지 않는다." 언제쯤 내 고향을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너무나 무거웠다.

2003년 3월 박진성 탈북자동지회 회보 "탈북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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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희 2005-07-18 16:39:25
    구구절절 맞는 말씀, 가슴을 울리는 애틋한 글에 감동을 받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꼭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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