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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지원전투' 체험기 - 한성주
동지회 11 10270 2006-08-07 15:32:31
북 정권 안 바뀌면 식량해결 못해

한창 영농기를 끝내 들판이 푸릅니다.

농사짓는 사람에게는 영농기가 제일 중요한 시기라고 하죠. 이때가 되면 북한에 있을 때 농촌지원전투에 참가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북한은 영농기가 되면 김일성의 교시에 따라 전국민이 농촌지원전투에 나가야 합니다. 고등중학교 3학년(남한의 중학교1학년)이 되면 의무적으로 농촌으로 내려가야 하고, 저 역시 고등중학교 3학년 때부터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제 나이는 13살이었습니다.

농촌지원전투는 한마디로 너무도 힘들고 어려웠던 날들의 반복, 그 자체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 곁을 떠나 외지에서, 그것도 농사일을 하며 한 달을 보낸다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학생들이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울곤 했습니다.

농촌으로 간 학생들에 대한 대우가 좋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식량사정이 좋지 않다보니 강냉이 밥도 배불리 먹지 못하고 일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집에서 간단한 간식들을 준비해옵니다. 그러나 그 간식도 얼마 못가서 바닥이 나고 맙니다.

고생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새벽부터 일어나 일을 하더라도 자기에게 주어진 분량을 다 끝마치지 못하면 밤늦게까지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장시간 일하다 보니 허리도 아프고 손은 어린아이 같지 않게 너무도 험해졌습니다.

북한의 농촌은 기계장비가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인력으로 해야 합니다. 그나마 밭에서 일하는 것은 모내기에 비하면 조금 괜찮은 편입니다. 아무리 늦봄이라도 해도 아침 기온은 쌀쌀 합니다. 새벽 4~5시쯤 작업장에 나가 찬물에 들어가 모내기를 하려면 너무 추워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일하는 고통보다 속마음 털어놓지 못한 고통이 더 커

비가 오는 날이면 더욱 그랬습니다. 비가 와도 모내기철에는 쉬지 못합니다. 비에 젖은 몸을 오들오들 떨며 추위와 싸워야하는 농촌지원전투는 어린나이의 우리들에게는 너무도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농촌지원전투는 김일성의 교시이기 때문에 누구하나 불평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린나이라고 왜 감정이 없겠습니까? 그리고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이 고생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하지만 김일성의 교시이기 때문에 거역하거나 불평하면 그 즉시 '민족의 반역자'가 됩고 맙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하는 고통보다 말 못하고 그냥 당하기만 해야 했던 고통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농촌지원전투는 병이 심한 학생을 제외하고 누구나 무조건 참가해야 합니다. 농촌지원전투에 나가지 않는 학생들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사상투쟁의 무대에서 주목의 대상이 되며, 농촌지원전투중 집으로 도망을 가면 부모님까지 비판의 대상이 됩니다.

이렇게 어린 학생들까지 농사일에 동원하고 있지만 북한의 식량사정은 나아질 줄 모릅니다. 이 모든 게 북한의 경제를 움켜쥐고 있는 김정일 독재정권 때문입니다. 북한에는 제2경제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군사경제를 말하는데 이것이 어디서든 우선입니다. 외국에서 원조가 들어와도 군경제가 제1순위로 배급을 받고, 농촌에서 식량이 생산돼도 군경제에서 먼저 가져갑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군대가 먼저 가져가고,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 없으니 노동의욕도 떨어지고, 식량난이 해결될 수 없는 것이죠.

하루 빨리 독재정권이 물러나 북한의 학생들이 농촌지원전투 같은 힘든 노동에 참가하지 않고 맘껏 공부하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2006년 6월 16일(한성주27, 평양금성정치대학입학, 2004년 입국)

The Daily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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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담녹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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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쌍칼 2006-08-09 01:44:38
    뽀글이는 자기목숨 아까우면 백성들 목숨도 아까운줄 알아야 할텐데 하루빨리 북한 동포들이 뽀글이를 몰아내고 자유롭게 살수있는 날이 오기를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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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리 2006-08-16 01:32:01
    허허 그렇게 놓고 보니깐 정말 한심한 세상이엿네요 ㅎㅎㅎ 어린 학생이 그렇게 일을 하다니 ㅠㅠㅠ 그 정권이 언제야 깨여질가?

    기도 하고 싶네요 빨리 개방 국가가 대라고... 백성들이 원한다고 ㅎㅎ
    성국님도 많이 고생햇나 보넹
    아유 ~ 생각만해도 몸서리 나네요
    슬픈 이 현실 앞에서 누가 북한이 좋다고 할가?
    ㅠㅠ정권을 넘겨야지 안대겟다 성국님 님이 북한에가서 ㅋㅋ 대통령 하시죠 .그럼 우리가 ㅋㅋ 열렬히 환영해줄게요 캬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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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아 2006-08-20 16:24:47
    맞아요 ! 북한생활중 돌이켜 보면 중학교시절 농촌지원때가 젤로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전 그래도 첫해만 고생하고 두번째해부터는 음악소조에 뽑혀 농촌지원기간마다 랄라조에 망라되어 덜 고생하였지요

    그런데 제가 다 졸업하여 병원에 근무할때일인데요. 청진시에서 저의고장에 학생들이 농촌동원나왓는데 그때의 어려움을 참지 못해 집으로 도망치는 열차에 몸을 싣다가 (그것도 너무도 도망가는학생많아 열차시간마다 선생들이 역전에 니키고잇엇음)그 단속을 피하여 뒤쪽으로 열차떠날때 잡아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무자비하게 잘려져 종당에는 수술도 마쳣지만 출혈이 심한것으로 인하여사망하엿습니다.

    사체인수해가시는 홀어머니의 외아들의 참상은 정말 비참하엿어요.
    그 속에서는 모두가 어린 학생들을 너무도 노예로 부려먹는 정부와 사회의 참상에 대한 저주가 배여잇었으나 누구도 일언반구할 수 없엇습니다.

    이제는 맘 놓고 소리피며 웨피고 싶습니다.
    빨리 김정일이 자살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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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기사랑 2006-09-07 22:54:58
    우연히 이 사이트에 접속하고, 앞서 여러분의 글을 읽고, 아픈 마음 금할길이 없군요. 모두들 힘내시기 바랍니다.
    한 20년쯤 전인거 같내요 제가 초등학교 다닐적이니까...
    그 당시 남한의 경제부문은 한창 개발의 피치를 올릴때니까 어느정도 먹고살만해질 무렵이겠죠... 하지만 그당시만해도 한국 대부분의 초등학생들은 북한사람들이 사람이 아닌줄로 알았을 겁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죠...
    왜냐면 해마다 6.25기념 포스터 입상작들은 거의 사람이 아닌 뿔달린 악마형상인 그 무엇인가가 우리네들을 핍박하는 모양.... 그런식이였죠.
    한마디로 왜곡된 교육을 받아왔죠. 흔히 하는말로 당시 어른들은 '빨갱이'
    컴플랙스에 젖어있었고, 어린 아이들로 이내 그런줄로만 알았죠.
    그후로 20년이 지났습니다. 많은 변화가 있었죠. 정치, 사회적으로...
    그렇다고해도 여러분께 생소한 사회분위기나 다른사람들의 선입견에 대해
    당당히 부딪쳐 이겨내셨으면 합니다. 여러분을 진정으로 반기는 정의로운 분들도 이사회에 상당히 많으시거든요.^^
    그래도 역시 '사기꾼'들은 조심해야겠죠??? 어딜가나 그런 사람들 없는데는 없더라구요. 그럼 다들 힘내시구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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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도향 2006-11-26 17:41:28
    김정일!!!!
    사악한 자를 도와주는 자들도 같은 사악한 자들입니다.
    하루 빨리 김정일이가 무너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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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께해요 ip1 2018-05-24 16:03:35
    정말 고생이 많았네요.
    한국에 오신 이상 힘들었던 옛일은 잊어버리시고 좋은 날만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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