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뉴스

탈북자수기

상세
맨몸으로 수류탄 막은 병사가 '혁명의 적'? - 이정연
REPUBLIC OF KOREA 관리자 3 13106 2007-07-04 17:26:48
사전에 철저히 기획된 사건

나에게는 북한에서 군 생활 중 겪은 정말 어처구니 없는 추억이 하나 있다.

1988년 남한에서 한창 올림픽 열기가 고조됐을 때였다. 내가 동부전선에 근무하던 때 인민군 민경초소에서 수류탄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고요한 휴전선의 동이 트는 아침. 전날 잠복근무에서 철수한 잠복조원들이 지붕이 덮여 있는 병영 마당에 정열했다. 소대장이 대열 점검을 마치자 병사들이 무기 및 수류탄 검사를 시작하려고 할 때였다.

근무 내내 내린 이슬비에 젖은 잠복조원들은 절반은 잠에 취해 있었다. 병사들이 탄창을 뽑아 소총의 격발상태를 확인하고 수류탄검사를 할 때였다. 소대장과 잠복조장(분대장급)이 조원들의 무기 상태를 검열하는데, 맨 마지막에 정열한 상등병(상병)이 탄창주머니 옆에 붙어 있는 수류탄 두 발을 꺼내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원체 주머니가 작아 수류탄이 빡빡하게 들어간 데다 이슬비에 젖은 탄창주머니에서 잘 빠져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수류탄은 이미 안전클립이 제거된 상태였다. 그 상등병은 안전핀 고리에 손가락을 걸고 수류탄을 그대로 뽑고 있었다. 수류탄은 빠지지 않고 안전핀만 빠졌다.

이와 동시에 ‘탁’ 하는 예리한 뇌관 점화 소리가 났다. 소대장과 조장을 포함한 주변의 모든 조원(병사)들은 한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 긴급 조치가 필요한 상태였다.

영웅적 희생이 '기획된 사고'로 밝혀져

순간 안전고리를 뽑은 상등병이 탄창주머니를 잽싸게 벗어 땅에 던진 다음 수류탄위에 철갑 모(철모)를 덮고는 그 위에 엎드렸다. 밀폐된 마당에서 안전핀이 뽑아진 수류탄을 달리 처리하기 어려웠던 상황이었다.

‘꽝’ 소리를 내며 수류탄이 터졌다. 상등병은 그 자리에서 내장이 파열돼 목숨을 잃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소대장과 잠복조장, 구대원(고참)들도 어쩔 바를 몰랐던 그 몇 초 사이에 사고를 일으킨 상등병은 준비된 동작으로 탄창주머니를 벗어 던지고 그 위에 철갑 모로 덮고 엎드려 주변의 동료들을 안전하게 지킨 것이다.

부대에서는 병사의 영웅적인 행동에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실수로 안전핀이 빠진 수류탄을 온 몸으로 막아 동료를 구한 행동은 영웅적이라고 칭송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고가 발생하자 군단에서 즉시 사고조사단이 내려왔다.

그런데 얼마 후 사고 조사를 위해 내려온 군단 조사단에서 이상한 소문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사고를 일으켰던 소대가 통째로 민경초소에서 후방으로 쫓겨났다. 또 전우들을 살리려고 수류탄을 철갑 모로 덮고 죽은 상등병이 혁명의 원수라는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죽은 상등병은 장례식도 없이 부대 주변 이름 없는 야산에 묘비 하나 없이 매장됐다.

후에 전해들은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그 사고는 죽은 상등병이 사전에 철저히 기획한 것이었다. 그는 민경초소에서 가끔 발생하는 수류탄사고 시에 동료들을 구하려고 자신의 몸을 던진 영웅들을 부러워했다고 한다.

자신도 수류탄을 온 몸으로 막은 뒤 죽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영웅이 되어서 크게 출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 그는 주변 동료들에게 수류탄 폭발의 위력에 대해 물었고, 방탄헬멧을 덮으면 살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문제의 상등병은 방탄헬멧을 덮고 그 위에 엎드리면 자신은 살 줄 알고 기획된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북한군 내에서 과도한 충성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만들어 낸 너무도 어이 없는 헤프닝이었다.

그 사고를 전해들은 나는 어린 나이에 군 생활이 얼마나 고달팠으면 그랬을까 두고두고 잊을 수 없었다.


2007년 7월 4일 이정연(북한군 정찰부대 출신 98년 입국, '북한군에는 건빵이 없다' 저자)

자료제공 : 데일리NK
좋아하는 회원 : 3
탈사모 환영합니다 고담녹월

좋아요
신고 0  게시물신고
  • 간만에 2007-07-12 11:12:07
    넘 황당스러운 사실...
    과거 어르신들이 많이 했던말...(죽은사람만 불쌍하지...)
    쩝~~북에서 태여났다는게 죄징...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 환영합니다 2008-03-12 18:42:27
    회오리님 안녕 하십니까? 비밀의 必勝/大韓입니다 인사드립니다 여기서 뵙는군요 꾸~벅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 겨울나무 2008-03-12 19:10:30
    흠 저역시 군대있을대 수류탄 투척 훈련받을때 유사시 긴급한 일이 벌어지면 방탄모로 막으면 어케될가 생각은 했었는데...냠..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 삼발이 2009-10-28 01:36:40
    인민군은 신병교육때 수류탄 훈련용으로 터뜨려보지 않나 보군요.
    본다면 방탄모따위로 어찌할수 있는 파괴력이 아니란걸 알텐데..
    50m아래 호수로 던지는데 돌덩이랑 물파편이 위에까지 튑니다..
    좋아요 한 회원 0 좋아요 답변 삭제
댓글입력
로그인   회원가입
이전글
아빠! 좋은 곳에 가셔셔 편히 계십시오 - 물고기자리
다음글
청진 '수재학교' 재학중 비디오 보다 퇴학 당해 - 박영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