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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토리가 싫습니다 - 김태산
REPUBLIC OF KOREA 관리자 3 13104 2007-10-11 14:51:17
얼마 전에 남한에 와서 알게 된 형님 벌 되시는 친지 한분이 오랜만에 지방에나 한번 다녀오자고 전화가 왔었다. 마침 주말이라 쾌히 합의가 이루어지고 다음날 중낮이 될 쯤에 즐거운 기분과 함께 강원도 쪽으로 여행을 떠났다.

자동차로 한 시간 반 정도 달렸는데 친지분이 이제 조금 가면 아는 집이 있는데 거기에 들려서 점심식사를 하고 가잔다.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응했고 얼마 후 자동차는 큰 도로에서 벗어나 어느 외진 마을의 평범한 주택 마당가에서 멎어섰다.

"내리게" 라는 친지분의 말과 함께 나는 "여긴 뭐 하는 집입니까?" 라고 물었다.
"응, 이집이 을 아주 잘하는 집이야. 그래서 나는 여기를 지날 때 마다 들려서 점심을 먹고 가군 하네. 자 들어가자구"

“도토리묵” 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신경이 곤두서고 그 어떤 배신감 같은 것이 꿈틀 거렸다. "도토리요? 나는 싫습니다. 그냥 갑시다." 의외의 나의 태도에 놀란 친지 분은 "아니 왜 그러나? 도토리가 건강에도 좋고 ...또 이집 음식은 다른 집과는 달라. 자 빨리 들어가자구."

이 소리와 함께 주인집 마당에서 개가 꼬리를 흔들며 짖어대고 주인아주머니의 반가워하는 인사말 소리가 뒤를 따랐다. 그러하니 내고집이 아무리 센들 어찌하랴 .., 할 수 없이 인사를 대충 나누고 그들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서로 오가는 웃음 섞인 말들과 함께 빠르게도 요리가 들어 왔다. 손님으로 따라 간 나는 주인아주머니의 친절한 대접 앞에서 불편한 심기를 보일수도 없고 하여 할 수 없이 썩 내키지 않는 기분으로 여러 가지 요리들을 먹어 보았다. 그런데 모두 참 맛이 있었다.

나를 데리고 간 친지분 보다 더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아니 처음엔 싫다더니 이게 웬 일인가? " 하는 친지분의 농담도 귓등으로 흘러 보내면서... 또 내 입이 참으로 요사스럽다는 생각도 하면서...

그러나 나는 그날 도토리 음식을 울면서 먹었다.

나는 1950년대 초에 북한의 어느 외진산골에서 평범한 뗏목군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그 당시 아버지가 임산 노동자여서 우리 집은 국가의 배급을 타먹는 집이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혼자 일을 하시니 집에서 아버지만 혼자 700그램 배급을 타시고는, 우리 형제들과 신병으로 일 못하시는 어머니는 모두 하루 300-400그램씩의 배급을 받았다.

그러니 항상 먹을 것이 모자라 우리들은 굶주림에 허덕이었다. 봄철에 몰래 산 밑이나 강뚝을 뚜지고 옥수수나 감자를 조금씩 심어도 어떻게 귀신 같이 아는지 안전원과, 리 와 군의 간부들이 찾아 와서는 < 배급을 자른다.>라고 호통치고,을 없애버린다며 커가는 농작물들을 짓밟아 버리군 했다.

해마다 우리 집은 할 수 없이 봄부터 여름동안은 알곡절반에 풀 절반으로 살았고 가을에는 어머니가 산에 가서 주어오신 도토리로 다음해 봄, 새 풀이 돋아날 때 까지 겨울을 지내군 했다. 가을에 주어온 도토리들을 삶아 말려 두었다가 겨울에는 그것을 물에 며칠 우려낸 다음 강냉이 쌀과 도토리 쌀을 5:5로 섞어서 밥을 해 먹군 했었다.

그러나 그 도토리마저도 많이 열리지 않는데다가, 북한사람들 모두가 주어다 먹는 판이니 그것마저도 흔치가 않았다. 그래서 우리들은 점심은 항상 굶다시피 했었다.

북한의 속담에 “개밥에 도토리 격”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굶주린 개도 제 밥그릇에 섞인 도토리만은 씁쓸해서 먹지 않고 골라낸다는 뜻에서 나온 말인데 어찌 짐승도 아닌 사람이 그것을 맛나게 먹을 수가 있었겠는가?

철없는 그 시절에 나는 도토리 밥이 먹기 싫다고 투정을 부려 매도 많이 맞았고, 어머니를 많이도 울렸다. 유년 시절을 으로 살아온 나는 그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의 후대에게 만은 꼭 쌀밥을 배불리 먹이겠다고 결심을 했었다.

그 후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대외 부문에서 일하게 되면서부터 나의 결심은 실현되어 갔었다. 그러나 을 요란히도 떠들어 대는 속에서도 수백 수천만의 북한 인민들은 여전히 도토리도 없어서 지금도 굶어죽어 가고 있다.

나는 가을에 떨어진 도토리가 수북이 쌓여 그대로 썩어져가는 외국의 들판을 거닐 때 마다 항상 배가 고팠던 나의 지난날과,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허덕이는 나의 조국 북한을 생각하군 했다. 그 후 나는 대한민국으로 왔고, 일생에 다시는 입에 대고 싶지도 않았던 도토리음식을 맛나게 먹었다.

나는 음식을 먹으면서 생각했다.

해방 후 같은 시각에 출발선을 떠난 남과 북이 어찌하여 아래쪽은 너무 배가 불러 도토리를 건강식품으로, 별식으로 먹을 정도로 되었으며, 위쪽은 도토리묵은 고사하고 생 도토리마저도 없어서 민족이 굶어 죽어가는 나라로 되었단 말인가? 그리고 결심했다.

내 살아생전에 고향으로 갈수만 있다면, 이제는 나의 자식들뿐만 아니라 북한 동포들 모두가 도토리를 건강식품으로, 별식으로 먹는 나라를 세우는데 나의 혼 심을 다 바칠 것이라고.

또 생각했다.
탈북자들 거의 모두가 도토리도 없어서 혹심한 굶주림에 가족들을 다 잃고 정든 고향을 눈물로 떠나온 인생들일진대 어이하여 한순간의 괴로움과 고통을 뿌리치지 아니하고 가슴 저린 옛일을 쉽게 잊고 하루하루를 허송세월 할 수 있을 테냐고...

나는 그 집을 나오며 말했다. "주인아주머니 저는 오늘 정말 귀중한 걸 먹었습니다."

2007년 10월 11일 김태산

자료제공 : 자유북한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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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쑥떡 2007-10-11 18:36:18
    그때 도토리라도 풍족하게 있엇으면 왜 사람들이 굶어서 돌아들 가셧겟어요? 도토리~~~참 북한의도토리하고 남한의 도토리 의미가 전혀 틀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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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울 2007-11-08 13:15:50
    님의 회고록을 잘 읽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아픈기억의 도토리가 좋은 추억의 도토리로 남았으면 좋겠네요...

    힘내시구요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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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달곰 2007-11-17 17:49:38
    꼭 성공적으로 남한사회에 정착하시고 이 탈북자동지회에서 정계에도 진출하여 여러모로 큰 목소리를 내시기 바랍니다. 화이팅~~
    그런 능력과 소망을 가진 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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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장미 2007-11-19 15:10:39
    김태산님 참으로 가슴아픈 유년시절을 보냈네요. 전 배고품이란 말의 참뜻을 결혼해서야 알았습니다. 1994년 22살의 어린나이에 세상물정 모르고 결혼을 해 시댁으로 들어갔더니 그 궁핍함이란 말로만 듣던 현실이 내 앞에도 다가왓습니다. 60고령의 시어머니는 아침일찍 일어나 봄부터 가을까지 산으로 들로 헤매며 사람이 먹을수 있는 것은 모두 뜯어오고 주워오고, 이 철없는 며느리인 저는 그걸어찌 사람이 먹냐며 아침 설것이 끝나기 바쁘게 갓난 아가를 둘처업고 집으로 내빼선 하루 해가 다 기울어서야 마지못해 돌아오고 사람만 보고 시집오는게 아니였다고 시어머님과 가족들에게 상처만 주고 ....... 지금도 생각해 보면 그때 제가 얼마나 어리석고 미련 했던지,,,,,,,,고생스럽게 식구들 끼니를 챙겨주기 위해 애쓰시던 시어머님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려 옵니다. 좋은 세상에서 맛있게 차려진 진수성찬을 한번만이라도 대접해 드리고 그때의 잘못을 용서 받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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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줄리엣 2007-12-24 05:55:43
    헉..ㅜ_ ㅜ 나는 토토리가 싫다길래.. 싸이월드 도토리인줄....;
    에휴.... 북한 아이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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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바기 2007-12-29 23:25:38
    싸이 도토리~~ㅋㅋㅋㅋ
    저두 그렇게 생각했어요 ㅋㅋㅋ
    음식을 남기지 맙시다 한국인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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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한원주민 2009-10-08 23:11:52
    전 도덕시간에 선생님이 하는 말씀이 북한동포들의 생활 그만큼 힘들다를 비유적으로 표현한줄 알았는데 진짜군요...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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