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과 체제, 무너진 나의 사랑
북한 체제에 대해 말할 때 지금까지 우리는 그저 인민을 굶기는 사회, 함부로 말할 수도 없는 사회,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는 대로 먹으며 전 주민이 노예처럼 강요된 삶을 사는 불합리한 사회로 대뜸 생각하게 된다. 틀린 말이 아니다.
자유 분망한 민주사회와는 달리 단순할 수밖에 없는 이러한 사회에서 복합적이며 지극히 개인적인 삶의 발현은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조건이 그러해도 무언가 남들보다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으로 인해 누구든지 들으면 얼굴 찡그리는 반사회적이고 비도덕적인 현상이 비일비재로 일어나는 곳도 바로 북한이다.
오늘 내가 쓰고 싶은 가정생활 일상에서 일어나는 부덕한 처사에 관한 이야기도 오로지 북한 같은 폐쇄 사회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라 말하고 싶다.
원래 가정이라 함은 인간 사회에서 가장 중시되는 사회의 기층 조직으로서 그 가정이 건전하고 재원이 뚜렷하여 먹고 입고 쓰고 사는 것은 물론 교육과 삶의 목표가 유기적으로 결합돼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만 직접적으로 연계된 사회라는 거대한 조직체도 빛을 발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어떤 사회에서도 가정이 중요함을 무시할 수 없고 가정의 이익을 떠나서 어떤 사명에 의한 이익을 추구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가정보다 더 중시해야 될 어떤 조직체가 있고 가정까지 희생하여 그 조직체를 발전 풍부해 지도록 모든 봉사가 이루어지게 만든다면 단일적으로는 뭔가 잘될 것 같지만 그 후과는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왜냐면 사람은 누구나 다 그 가정에서 태어났고 그 가정을 토대로 평생의 삶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지킬 줄 모르는 사람이 집단과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분명한 편향이다.
나는 나의 가정적 삶을 통해 체제위주의 북한사회에서 어떻게 가정이 무너졌는가를 나의 체험을 증거로 밝히려 한다.
1998년 나는 23살의 나이로 남편과 결혼했다. 남편은 국가 정무원의 한 연구 기관에서 연구사로 일하는 사람이었다. 키도 훤칠했고 골격이 뚜렷해 여자라면 누구나 탐을 낼 만큼 잘 생긴 남자였다.
결혼 초기 우리부부는 남달리 사랑이 깊었고 상호간 깊은 이해 속에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평양 광복거리의 과학자 아파트에서 32평의 멋진 나의 집에서 오랜만에 단출한 연회가 열렸다. 남편이 일하는 연구 기관의 수장이며 남편의 직접적인 상관인 나이 지숙한 간부를 모시고 진행된 연회였는데 손님은 따로 없었다.
외국산 위스키를 구입해 권커니 작커니 몇 순배 돌았다. 남편과 그 간부는 평소 서로 절친한 사이 같았다.
그 간부는 나까지 술상에 끌어 들여 싫다는 내게 그냥 술을 권했다. 남편 앞이어서 그이의 눈치만 살피는데 그도 윗분이 주시는데 어서 마시라고 했다. 북한에서 여성이 술을 마시는 것은 드문 일이어서 나는 많이 주저했지만 하도 권하기에 안 마실 수도 없었다.
난생 처음 마시는 술이라 첫 모금에 벌써 온 몸에 주기가 올랐다. 그 사람이 권했고 남편도 권했다.
그렇게 몇 잔 억지로 받아 마시자 조금 후 내 눈이 풀리기 시작했다. 방안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좀 눕고 싶었지만 장소가 허락하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의지로 참고 견뎠다.
그 간부가 또 한 잔 권했다. 그것을 마셨는지 안 마셨는지 별로 기억도 안 난다. 나는 결국 얼마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진 것 같았다.
내가 눈을 뜬 것은 깊은 한밤중이었다. 몸에 맞혀오는 이상한 예감에 정신이 맑아졌다. 눈을 뜬 순간 나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완전 발가숭이였다. 나뿐이 아니다. 내 몸을 꽉 부둥켜안고 한 마리의 곰처럼 씩씩거리는 남자는 뜻밖에도 내 남편이 아닌 그 간부라는 사내였다.
그제야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밀어버리려 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마치 연인이라도 되는 듯 마음대로 내 몸을 주무르며 욕정을 풀고 난 그 간부가 히죽 웃으며 내 볼을 슬쩍 건드리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눈을 감았다.
그가 만족한 듯 웃으며 나간 후에도 나는 까딱 움직이지 않고 그냥 자리에 누워 있었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깊은 회한의 눈물이었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세상을 살고 싶은 생각이 모두 없어진다. 그것은 가장 사랑했던 사람에게서 가장 치욕적인 대접을 받았을 때의 충격 그대로였다.
당시에 나는 나의 판단력으로 남편이라는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해야만 했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그것은 예리한 비수로 내 몸을 사정없이 찌르는 행위였다.
그 간부가 돌아 간 후 나는 남편을 찾았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 집에 없었다.
다음날 아침이 돼서야 나타났다. 히죽히죽 웃으며 들어 선 그는 이내 출근해야 한다면서 밥을 달라고 했다. 그때까지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었다. 사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부엌에 들어가 살피고 나온 남편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기웃거리며 나에게로 왔다. 가까이 다가오는 그가 그처럼 추악해 보이기는 결혼 후 처음이었다. 무슨 오물이 다가오는 듯 몸서리가 처졌다. 그가 말했다.
“지금이 몇 신데, 밥도 안 하고? 당신 무슨 일 있었어?” “??” “부장 동진 언제 가셨어?” “모르겠어요, 난 술에 떡이 되어 지금껏 자고 있었어요.” “아무 일 없었어?” “무슨 일?” “아니, 근데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셔? 그게 40도짜리 술인데 그렇게 물 마시 듯 참.” “당신이 마시랬잖아요?” “마시란다고 마셔? 그것 참.” “근데 당신은 왜 밤중에 집을 나갔어요?” “어, 부서에 급한 일이 제기돼서, 좌우간 수고했어.”
무얼 염두에 두고 수고했다는 것인지 나로서는 아리송했다. 뭐가 뭔지 도무지 판단을 못하겠다.
그 날 어떻게 하루해가 가고 어떻게 날이 밝았는지 나는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마치 허공에 붕 뜬 것처럼 허탈에 빠져 이틀을 보냈다.
멋진 집과 폭신한 이부자리들, 없는 것 없이 차려놓은 값진 가전제품들로 가득한 이 집이 그처럼 낯설어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저녁이면 가슴을 졸이며 기다리던 남편도 퇴근 무렵이면 오싹 소름이 끼칠 정도로 두려웠다. 제발 들어오지 않았으면 싶었다. 사랑도 의리도 정도 모두 구중천에 날아간 것만 같은 썰렁한 집안에서 나는 오도 가도 못하게 갇힌 새처럼 오돌 오돌 떨며 깊은 고뇌 속을 헤매고 있었다.
정말 남편은 이 일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 알면서도 모르는 척?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남편의 의도적인 계획이 없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더 이상 심적 고통에서 헤매고만 있을 수 없음을 깨닫고 밖에 나섰다. 남편이 일하는 부서에는 나의 대학동창이 있었다.
그를 불러 어느 식당에서 조용히 마주 앉았다. 그날 밤의 날짜를 대면서 직장에 무슨 급한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친구는 머리를 기웃거리며 한참을 생각하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했다. 연구 기관에서 급히 밤중에 달려 나와 할 일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물어 본 내가 어리석었다.
독한 술을 마셔버린 사람이 밤중에 직장에 나가 무슨 일을 했다는 것의 진위를 알아본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나는 또다시 부르르 온몸을 떨었다. 역기가 치솟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발걸음은 천근만근으로 무거웠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 온 그날 밤, 홀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뒤척거리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었다. 나는 남편이 온 줄로만 알았다. 문을 열자 뜻 밖에도 그 간부가 웃으며 들어섰다.
한 발 두 발 뒤로 물러서는 나를 향해 그 사람도 한 발 두발 웃으며 다가왔다.
“왜 이러세요?” “당신이야말로 왜 이러는 거요? 내가 뭐 어쨌게” “예에??”
이렇게 철면피한 자도 있는가? 여자 혼자 있는 집에 아닌 밤중 제잡담 들어서고도 왜 이러는 가고?
“그렇게 새침 떨지 말고 이리 와 앉으라구,”
그 사람이 스스럼없이 객실의 소파에 않았다. 그리고는 마치 제 집인 듯 윗저고리를 벗어 옷걸이에 걸고, 하는 행동이 심상치 않았다. 내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뭐 처음도 아닌데 곁에 와 앉지?”
그가 웃는 그 모습이 내게는 참으로 역하게 보였다. 그가 다시 말했다.
“당신 남편 말이야 오늘 과장으로 승급했어, 그를 승급시킨 건 뭐 능력이라기보다는 바로 당신이 미모 때문이겠지, 난 말이야, 앞으로 당신 남편에게 내 자리까지 물려 줄 생각이야, 당신의 행동 여하에 따라서, 이건 물론 긴밀히 거래된 약속이기도 하고, 나 정말 당신이 좋거든”
아주 거리낌 없이 뱉어내는 그의 말에 나는 경악했다.
“네에?? 저의 남편과 약속을 했다고요?” “그래, 아, 그러지 않고서야 내가 감히 당신과 몸을 섞을라고? 원 이렇게 눈치가 없다구야,”
모든 것이 명백해졌다. 나는 정색했다.
“한 가지 물읍시다. 저의 남편은 출세를 위해서 결국 아내를 팔았다는 소린데 그 말을 책임질 수 있어요?”
그러자 그 사람이 대답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뭘 그리 심중해서 그러나, 판게아니라 우린 서로 협력을 한 거지, 쉽게 생각하면 아무 일도 없는 것을 괜히 복잡하게 일을 만들어 앞일을 망칠 필요가 어데 있냐는 거지”
계속하여 그 사람은 많은 말을 했다. 홧홧 달아오르는 모멸을 참으며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다시금 몸담은 이 사회의 모순을 생각했다. 그는 모든 것을 희생해야만 감당할 수 있는 지위에 대하여 역설했다.
그가 어떤 설교를 내게 했는지를 내가 다음 날 남편과 나눈 이야기까지 결부하여 여기에 적으려고 한다.
대체 무슨 거래를 했느냐는 나의 물음에 그는 아무 꺼림도 없이 대답했다.
“그렇게 되면 밀리니까,” “뭐라고요?” “여기 평양에서 산다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생각해 봐, 몸과 마음 다 바쳐 어버이 장군님을 길이 받들어 모신다는 것이 무슨 뜻이겠어. 내가 이렇게 말하면 여기에 왜 장군님 소리가 나오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사회의 원리가 그런 것 아니겠어, 우리에게 가장 귀중한 것은 바로 가정이 아닌 국가야, 국가적 차원에서의 지위를 빼놓고 개인의 안식처인 가정은 2차적 차원이라는 소리지. 만약 가정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수장의 요구를 묵살해 버린다면 권력 제일주의인 우리 체제에서 그는 앙심을 품고 나를 평양에서 추방해 버릴 수도 있다는 거야. 그런다고 어디 가서 하소할 데도 없지 않은가? 이 나라의 체제는 법도 양심도 모두 2차고 감히 건드릴 수 없는 1차가 바로 권력이야.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그 자리에 오르는 것이 진정한 사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고, 개인적 면에서 당하는 모멸과 감정의 파괴를 지혜롭게 그리고 능수능란하게 이겨 나가며 이용하는 자만이 당당한 권력의 주인이 된다는 거야. 이걸 이해 못하면 당신은 나를 떠나도 돼, 나는 애잔한 가정적 양심과 예로부터 묶어져 내려오는 어떤 윤리에 자신을 귀속시키며 따분한 도덕을 부르짖는 사람으로부터 단호히 탈퇴한 적이 벌써 오래됐어, 나와 평생을 같이 하려면 당신도 그 따분한 봉건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해, 생각을 바꾸면 바라던 바를 얻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파멸이야, 난 지금의 위치에서 곤두박질 쳐 지방까지 쫓겨 내려가 어느 농촌 구석에서 땅이나 파먹으며 당신과의 사랑만을 부르짖으며 살기는 싫어.”
여기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나는 아무 대꾸도 못하고 밤중이지만 밖을 나왔다. 그리고는 정처 없이 걸었다. 야심한 밤이어서 거리는 무덤 속처럼 조용했지만 내 심장은 당장 밖으로 뛰쳐나올 것처럼 요동쳤다.
아파트 건물이 통째로 나를 덮친다. 내가 걸어가는 옥류교가 갑자기 와르르 무너지며 대동강의 찬 물속에 사정없이 나를 집어넣는다. 그 때 28년이란 세월을 살면서 세상을 그렇게 저주해 본 적은 없었다.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 평생을 함께 하며 한생을 보람 있게 살리라 남몰래 미소 지으며 행복에 젖었던 나는 영영 내 곁에서 사라졌다.
뭐? 봉건적인 따분한 세계에서 벗어나라고? 그렇게 벗어나는 길이 권력에 아부하고 권력에 입 맞추며 사는 길임을 역설하던 그 더러운 자의 더러운 궤변이 결국 수십 년 잠자던 나를 내게 돌아오게끔 깨웠던 것이다.
개인의 선택을 그처럼 증오했던 그 사회에서 내가 나를 찾았다는 것은 사실상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었다. 그 사회는 진정 일신의 모든 것을 깡그리 권력에 바칠 줄 아는 자만이 사람으로서의 대접을 받으며 살 수 있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게 된 이상, 그리고 그것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일 능력이 없었던 나이기에 더 이상 삶을 이어갈 공간이 그곳에는 없었다.
그 후 그와 결별하고 남몰래 눈물지으며 결국 나는 두만강을 넘었다.
나에게서 28년은 없다.
나는 지금 한강의 맑은 물에 어지러워진 내 영혼의 묵은 때를 말끔히 씻는다.
사람으로 세상에 태어나서 영혼을 팔아 ‘구세주’를 섬기며 구차한 삶을 영위해 가도록 만든 저 북쪽에서의 나의 28년은 그렇게 한강의 맑은 물에 깨끗이 씻겨 나갔다.
2015년 1월 이옥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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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wlaud 무궁화꽃이 00나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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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많이 하셨습니다 앞으로 화이팅하시고 행복하게사세요
좋은분만나시어 행복한 가정꾸리고 사실수 있으실거란 생각이듭니다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5-02-10 11:00:12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5-02-11 10:04:32
인간존엄을 지킬 수 없었던 북한사회의 내면을 너무 생동하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5-02-11 10:05:24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5-02-11 10:04:51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5-02-11 10:04:57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5-02-11 10:05:00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5-03-07 09:10:48
참 답답합니다. 이런 가슴아픈 현실적 고발에 막말 인신공격적인 댓글을 서슴지 않고 써대는 이런 막된 인간들 기가 막히군요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5-02-11 10:05:11
탈북관련하여 좀 더 깊게 공부하고 싶어 수기를 읽다가 이렇게 글을 쓰게되었습니다.
한강물로 다 씻어 버리셨다니 어느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으신거 같아 다행입니다. 힘내세요.
어떤이가 간부부장을 집에 초대하여 술을 먹었는데 그인간이 술에 떡이되여
어쩔수없이 잠자리를 펴주엇다고한다.
재밤중에 자고있는데 아내가 품을 파고들고 어렴풋이 정신을 차려보니
그 간부부장이라는새키가 도둑 고양이처럼 부부 침실로 기여들어온것.......
그 이후로는 그 누구도 집에 초대를 안한다고한다.
북한이 개같은 세상으로 이질화 되는것도 문제이겠지만.........
그보다는 이분의 전 남편이란 인간이 덜 떨어지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병신넘의 자슥이 저같은넘을 믿고 인생을 결심하고 순결을 내여준
사랑을.. 자신만의 영역을.. 스스로 내여주다니?
영혼을 잃은 불상한인간이여~~~~~
못나도 넘 못나고 , 안쓰럽기 그지없는넘의 자슥이다.
앞으로 부디 좋은분 만나서 행복하소서~~~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5-02-13 15:11:56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5-02-13 15:12:27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5-02-13 15:12:36
두말할 것도 없이 탈북자들을 질투하는 조교쓰레기들과 종북 쓰레기들이다.
아니 그보다도 인간이기를 그만둔 짐승만도 못한,,, 어찌보면 북한 독재자들 보다도 더 더러운 인간말종들이 하는 짓거리이다.
그런 인간들은 숨어서 씹어대면 누구도 모를줄 알고 저러지만 자신의 인생이 썩어져 간다는것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인간 오물들이다.
탈북자들이 저들에게 무슨 잘못을 끼쳤다고 그러는지를 좀 생각해 보시라.
너 나라와 인민을 위해서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배움의 천리길>,과<광본의 천리길>이란 위대한 길을 단신으로 걸으신 분이 이 대한민국에 도대체 어디에 잇냐?
그런 위대한분이 정치를 한다면 이 썩어빠진 대한민국도 세계에 빛뿌리게 됄텐데...
뭐? 종북쓰레기들!
너야말로 인간백정이다!
잘 생각해봐.니가 얼마나 멍텅구리인지!!!!!!
- 미물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5-06-21 09:54:53
한때 김일성이 여비서였던 김성애와 바람이 났었지. 그것을 보고 기겁 한 김정숙이 임신된 아기를 품고 화병에 뒈졌고 그날이 바로 1949년9월22일이야.
김일성은 김정숙이 죽자 1년도 되지 않아 김성애와 결혼을 하고 김평일을 낳았지. 그것도 한창 6.25라는 동족상잔을 벌려 놓고 말이지. 당시 9살이었던 김정일의 눈에 들어왔던 아빠의 모습은 이런 것이었어. 해서 김정일은 엄마의 원혼을 갚고자 노망한 김일성을 제 손으로 죽인거고.
북한의 역사는 김일성부자로 이어오는 태양의 역사가 아니라 자손만대로 저주받을 가장 악랄하고 파렴치한 민족비극의 역사임을 너 같은 간신들은 똑똑히 알아야 한다. 그 종말을 고할 때 너도 같은 뜨물이 되어 살생부의 계산자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5-03-07 09:09:39
나는 지금도 이창에 님들이 고상하게 생각하는 연예인 누구와 누구의 관계를
적을수있다.
모란봉에서 북한 격술배우 누구와 누구가 어누 여배우를 놓고 피터지게
결투를한 사실에서 꽃파는처녀의 홍ㅁㅁ를 예술부 사로청위원장 ㅁㅁㅁ동무가
사무실로 불러들여 개별담화를 진행한 사실들..........
그리고 평양시 뇨자들 돈을 엄청 밝히는것도 알고있다.
썩을대로 썩고 부페한것을 보았다.
영화촬영가 남편은 남편대로 여배우들과의 치정관계.......
부인은 부인대로 귀국자들과의 정사관계.........
더 하고싶지가 않다.
북한도 썩을대로 썩었다 괴롭지만 인정하자!
썩을대로 썩어서 건들면 터져서 고름이 나올것이다................
글구 부페한것은 대한민국이란 반식민지국가야!
성동영상을 마구 게시하고 아무한테나 몸 파는 대한민국이야말로 부페한거야!
똑똑히 알아둬.이세상에서 가장 고상한 나라는 북한이야!
어디가서 그러다 망신하기 일쑤!
외국나가서 가장 고상한 나라는 북한이라고 해봐라 뭐라그러나 ㅋ ㅋ ㅋ
근데 외국은 나가봤니 ? ㅋ
항상 평화가 함께하길.
한국에서 또다른 인생사시길. 화이팅
힘센 놈들이 암컷을 차지하는 Wild Kingdom of Sapari 가 아니고 뭐겠어?
하여간 소설 한편 본듯합네~
자식.너이글 쓰면 얼마받냐? 이 대한민국이 민충이 쑥대받이니 너같은 멍텅구리를 믿지만
나는 못속여.이놈아.
차!너 완전 국정원의 개로구나!
바르게 살아라.이 민충아!
망했구나!망했어! 으~~~~~~~~~아~~~~~~~~~~~~~~
박근헤가 정치를 하면 얼만큼 하냐?
콱 망해라! 대한민국아~~~~~~~
이런짓 시키는 닭대가리 박근혜도 미친년이지!
박근혜! 발가벗고 미국가야 오바마가 기뻐할거야!
가짜 탈북자님들.이젠 그만 맹랑한 사람들 기만하고 썪 꺼져!
- 내것아닌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5-07-12 19:20:31
그런데. . 이 싸이트는 종북 좌파 빨갱이 왜이렇게 많음? 딱봐도 티가난다
심리전 작전을 좀 바꿔야 성공하지 싶은데ㅋ 나같은 토종 남한 젊은세대들 한태 이런 대북선전 씨알도 안먹힐 텐데말이죠. 촌스럽긴 바보들ㅉㅉㅉ
중국짱깨 및 아직도 북한 세뇌 교육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들아. 이런곳에 글 쓰고 헐뜯을 시간에 철학도서 한권이라도 더 읽어라. 대한민국 자국민들이 살기힘들다 어쩐다 해도 너네처럼 인권이 없는 세계에서 자유롭고 표현의 자유도 있다. 제발 정상적으로 좀 생각해라. 그냥 해줄말은 싸이코패스 한마리 이 글에서 물흐리는데 썩은 고깃덩어리보다도 못한 너의 뇌가 참 의심스럽다. 중국아이피 달고 글쓰는 북한간첩새끼야
권력을 위해, 돈을 위해.. 어디나 똑같아유.. ㅎㅎ
보기 딱하네
중국에온 북한싸이버전사인지.조선족인지.중국인인지 모르겠지만
제발 인간이 되어라
남의눈에 피
눈물 흘리게 하면 니눈에는 피눈물 흘릴테다
닉네임은 그럴듯하게 만드셨는데 정신상태는 영 아닙니다
누군가를 욕하고 탓하기전에 당신들 머리상태부터 개조가 필요합니다
사랑이 부족한 당신들이 참 딱해보이네요 머리속이 초등학생만도 못하네요
참 못난 당신들이 불쌍합니다
북한의 모든 남자들이 그렇다고 하는것은 어부성설입니다
거기서도 자신의 명예보다 더 양심을 지키고 안해를 더 귀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인간들은 그 인간이 쓰레기일뿐입니다
아무리 체제가 그렇게 부추긴다고 해도 열번 죽어도 넘어가지 않는 사람들도 다반사라는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사람은 다 각양각색입니다
북한 사람이라고 다 명예를 위해 아내를 팔고 사고 하지는 않습니다
양심을 지켜 세상을 바르게 살아 간 분들은 아무리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그 권력을 남용하지 않았고 아무리 굶어죽어도 부정부패하지 않았으며 아무리 자식이 귀해도 자신들의 자식들에게 금수저를 내려놓고 흙수저를 들게 한 양심적인 분들이 많았습니다
인간 세상이다보니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다 있는 것입니다
과거를 잊고 새출발 한다는 각오로 행복한 날 만드세요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지는 것 입니다.
항상 여러분 곁에는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이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있으시면 항상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세요
국군 기무사 와 국가 정보원 또는 주위의 경찰 분들이 꼭 그 손을
잡아 주실 겁니다. 항상 믿음을 갖고 하루하루 즐기면서 생활 하세요.
어렸을때부터 과학자가 될 꿈을 안고 공부했고 대학을 졸업하여 그처럼 바라던 과학자가 되었지만 권력과 뒷돈의 없으면 과학연구사업을 할수 없고 더우기는 상부에 아첨하는 무식한 과학부문지도일꾼들의 말 한마디에 몇년간 피터지게 연구한 내용이 묵살되는데 반감을 품고 공개석상에서 이성을 잃고 그들을 비난한것이 결국은 체제비난과 정치성으로 판단돼 더는 북한에서 살수 없기에 그처럼 염원하던 과학을 포기하고 가정까지 뛰어나와 일약 탈북의 길에 올랐지만 한가지만은 가슴에 걸린다. 그것은 티없이 맑고 진실했고 결혼하지 않았지만 나에게 순정을 바친 한 처녀의 눈빛이다. 지금도 그것만은 가슴이 아리다. 그렇기에 이옥진의 글이 허무한것이다.
아무리 남자가 흑심을 품고 있어도 여자가 그것을 받아들일수 없거나 무관심한 형이라면, 또 여자의 사생활에 치명적인 흠집이 있지 않다면 위와 같은 행위를 실천하기 어렵다.
더우기 남편이 제 아내를 상부에 섬기려면 적어도 세가지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첫째: 아내가 그만한 충격을 견딜수 있는 형이거나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즉 심리적으로 자기조절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후과가 없다.
둘째: 남편이 생활적으로 상부가 제 아내를 탐내는것을 묵인할 정도로 상급과 남편, 아내 3명이 다 뒤생활이 깨끗치 못한 공통점을 가져야 한다. 만일 어느 한 측이라도 응하지 않으면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실 북한이 어떤 체제인가를 논하기 전에 북한도 인간사회인것만큼 성관계에 대해서 이러저러한 말은 많다. 공개출판물에서 떠들지 않을 따름이다. 기껏해서 이혼재판이나 공개심판에서 일부 사실을 공개하거나 사람들사이 야담으로 전해진다.
친구들끼리 모여 술먹다가 서로 아내들을 바꾸어 자거나 친구가 취했을 때 부엌에 나가 그의 아내를 희롱하다가 간통하는 일이 없는것이 아니다. 여자인들 어찌겠는가. 남편은 자는데다가 자기가 바람피우지 않았다고 무죄를 증명할수도 없는 상황이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가장 현명한 처사는 30분동안 눈감고 있으면 되는것이다. 이런 경우 순결한체 한 여자인 경우에는 가정은 물론 사회관계까지 파탄되는 일이 허다하다. 현명한 여자는 그쯤한 일에 자포자기하지 않으며 반대로 표나게 놀지도 않는다. 그저 정상생활의 연속으로, 어느 한 시점으로 여기며 자기가 본의아니게 몸을 준 남자들과의 사회관계를 잘 조절해 나간다.
사회주의체제에 사는 유부녀라고 해도 남편보다 더 멋있고 자기를 위해주는 다른 남자를보았을 때 한걸음 한걸음 자기도 모르게 그 남자에게 다가가는것은 정상이다. 어떤 계기에 이성을 차리면 그것으로 끝나지만 그 남자에 대한 존경심과 그리움이 이성을 초월하거나 여기에 여자의 흑심까지 껴들이면 그때 결과는 너무도 뻔한것이다.
그러기에 최근에 북한에도 이런 말이 유포된다. (이 말의 출처는 한국인것 같다) 여자의 의도에 무관하게 순전히 남자의 강요에 의해 일어난 성관계는 성폭행 정확히는 성기부분에 대한 폭행으로 여기라, 진정한 사랑으로 받아들일수 없다면 폭행으로 간주하라. 뒷골목에서 불량배에게 매맞은것만큼만 여기면 된다. 자폐할 필요는 절대없다.
내가 보건데 분명히 이옥진이라는 여자는 사실과 반대로 글을 쓴것 같다.
우선 이옥진의 글에 아이에 대한 말이 없다. 이것은 가장 한창나이인 남편과 아내사이 적어도 한쪽은 성기능부전이거나 의도적으로 조절한다는것을 의미한다. 성관계에서 임신조절변이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것은 더 논하지 말자. 대체로 남편이 아내를 성적으로 만족시키지 못하면 여자들이 참지못해 바람피우는 경우가 있지만 임신으로 인한 후과가 안좋으므로 서로 조심한다. 여자가 임신불능일때는 흑심을 품은 남자나 여자나 거칠것이 없다. 아무런 흔적도 안남는데 얼마나 좋은가?
분명 이옥진은 남편에 대하여 사회적으로나, 물질생활적으로나, 성생활으로나 의견이 있었을것이다. 이러루한 사실들은 전파력이 빨라 직장사람들은 거의다 안다. 상급도 예외가 아닐것이다. 집에서 벌인 연회때 여자가 잘 생긴 상급을 보자 은근히 마음에 들었고 남편의 상급이 자기를 욕심낸다는것을 간파하고 슬그머니 추파를 던졌을것이다. 예로부터 도둑이 도둑을 잘 잡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서로 마음이 맞으면 직장일은 상급이, 아파트일은 이옥진이 맡는다. 아직 북한에는 모텔이 없으니까. 아마도 북한에 모텔이 허용된다면 아주 흥성일것이다. 상급은 여자의 남편을 부서근무나 출장 등으로 빼돌리면 되고 이옥진은 인민반사람들이 의심하지 않게 남자를 잘 맞아들이고 식사와 잠자리를 준비하면 된다.
그런데 옛말이 그른데 없다고 이런 일은 며칠못가 꼭 꼬리잡힌다. 재미난 간통이 아파트사람들이나 남편에게 들키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북한에서는 이런 간통을 현장증명하는데 취미있는 눈치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금은 보안기관에서도 이런 문제는 될수록 덮어두려고 하며 이것을 들고다니는 사람들을 앞에서는 춰주는것처럼 하면서도 뒤에서는 머저리라고 압력가한다. 소문내야 좋을것은 없기때문이다. 지어는 간통을 방해하는 죄가 가장 큰 죄라는 말이 있다. 실지로 북한에서 벌어지는 가정불화가운데 이러루한 형태가 적지 않다.
최근 북한에서는 항간에서 극장이나 식당에 가도 남의 부부끼리 가야 대접받는다는 맣이 떠돈다. 지어는 40~50대 남자들이 시집가기를 포기한 20대 처녀들을 처녀부모들과의 암약밑에 정부로 데리고 다니는것이 적지 않다.
그러나 탈북해서 보니 어이없을 따름이다. 왜... 사람이 사는 사회는 어디나 공통점이 있기 마련이니까. 정도의 차이가 있는데 북한은 이런 사회적문제에서는 아직 아이수준이다.
나는 지금도 속죄의 심정으로 북한에 남은 한 처녀를 그려본다. 나에게 순정을 바친 죄없는 그가 나때문에 밤마다 눈물흘리지 말고 빨리 새 생활을 시작하기만 간절히 바란다.
제발 다른 남자들의 정부로 되지 말았으면 한다.
자기비판이 진행되고 군중이 비판한다. 비판은 자못 엄숙하다.
비판이 끝난 후 간부가 두 사람에게 묻는다.
<어디서 간통했는가?>
<OOO창고에서 했습니다.>
<그 창고는 아주 좁고 바닥도 안깨끗한 곳인데 어떻게 하는가?>
<서서 했습니다.>
<서서도 하는가?>
<예.>
이때 간부의 옆자리에 앉아았던 직장장이 간부에게 귀띔한다.
<OOO동지, OO은 서서도 할수 있습니다.>
<알고 있어, 나두 다 해봤어, 그저 그래 보는거지.>
그런데 그만에야 간부앞에 놓인 마이크가 왜 그리도 감도좋을가?
(그 다음의 일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 tlfgidals65님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2017-09-04 06:39:10
남을 속이고 쥐세끼마냥감시하고 계급이높은놈에게 아부하고 이게 나라냐 김씨왕조가 사라져야 너희들이 산다 명심들 하거라
이 사이트가 처음 생겼을때 조금은 자주 들어와 가슴속 깊은 곳에 숨겨져있는 고국의 감정을 위로하는 시간으로 되기도 했지만 살아남기위해 열심히 일 하지 않으면 안되기에 아주 가끔 들어와 볼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은 은퇴하여 정부로부터 꼬박 꼬박 연금을 받는 일명 국가공무원 ? 이 되여 시간적 여유가 있기에 들어와 보다 우연히 아런 내용의 글도 읽어보게 되였네요.
저도 평양출신으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상황을 어느정도 이해가 갑니다
힘들었던 과거사를 쓰신 심정도 이해할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도 나이가 들다보니까 이런 생각도 듭니다.
어떤사회든 개개인의 차이가 있어 사람나름으로 천차 만별,
이 글을 쓰신지도 어언 6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지금은 잘 정착하셨고 잘 사시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쉽지 않은것이 인생이지만 그렇다고 너무 힘든것도 아닌것이 인생이 아닌가 하는 것이 제 생각 입니다.
화이팅입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