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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전
동지회 1374 2004-11-17 00:44:00
1974년 2월 노동당 제5기 8차 전원회의(2.11∼13)에서 채택된 사회주의 노력경쟁을 위한 공식 구호.

북한은 이 회의에서 『달리는 천리마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 새로운 천리마속도, 새로운 평양 속도로 질풍같이 내달아 6개년계획(1971∼1976년)을 당창건 30주(1975. 10. 10)까지 조기완수할 것』을 촉구하면서 『당조직들은 대중의 지혜와 창조적 열의를 적극 발양시켜 사회주의 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속도전을 힘있게 벌여 대진군 운동의 전진속도를 최대한으로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북한에서는 1950년대에 「평양속도」(1958년 5개년 계획기간 중 평양시 건설과정), 1960년대에 「비날론속도」(1961. 4. 1∼5. 6간 흥남비날론공장 건설과정) 및 「강선속도」(1969년 강선 제강소) 등 「속도」라는 용어가 사용됐었으나 「속도전」이라는 용어로 사회주의 노력경쟁운동을 공식화한 것은 이때부터이다.

북한은 속도전에 대해 『집단의 전성원들이 혁명적 열정을 높이고 일을 짜고 들어 자기의 모든 예비와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동원하며 일단 시작한 일은 전격전·섬멸전으로 전개, 속도를 높이는 가장 우월한 혁명적 전투원칙』(1974. 2. 18 노동신문 사설)이라고 설명한다.

이 운동은 △김일성에 대한 충성심 고취 △주체사상과 배치되는 낡은 사상 배격 △속도와 질의 동시 향상 △전격전·섬멸전 적용 △기술혁신운동과 결부 △예비의 총동원 등을 내용으로 하며 구체적으로는 「충성의 속도」 「70일 전투속도」 「1백일 전투」 「2백일 전투」 「80년대 속도 창조운동」 「90년대 속도창조운동」 등의 형태로 전개되어 왔다.

◀ 충성의 속도 : 「6개년 계획」을 2년 앞당긴다는 목표아래 1974년 1월 20일 김책제철소 건설업소에서 발기하고 이틀뒤인 1월 22일 북창화전을 시작으로 북한전역으로 확대됐다.

◀ 70일 전투속도 : 1974년 10월 『올해 전투를 승리적으로 결속짓는 총 돌격전을 벌이자』는 김일성의 교시에 따라 1974년 목표를 초과수행하고 1975년도 생산준비를 갖추기 위해 70일(1974. 10. 18∼12. 26)간 추진된 시한부 노력경쟁운동이다.

◀ 1백일 전투 : 1978년 1월 안주탄광 결의모임에서 1978년도 경제계획을 10월 10일 당창건 33주까지 완수하기로 했으나 같은 해 5월 29일 재차 개최한 결의모임에서 계획 완수시점을 정권수립 30주(1978. 9. 9)까지로 앞당기기로 하고 「1백일 전투」(1978. 5. 29∼9. 9)라는 구호를 붙였다. 이어 1979년에도 생필품의 질과 양을 개선하기 위해 김정일의 지시로 또다시 1백일 전투(1979. 7. 1∼10. 8)를 전개했다.

◀ 80년대 속도창조운동 : 권력후계자로 공식등장한 김정일의 지도역량을 경제성과로 실증시키기 위해 1982년 7월 9일 김책제철소의 궐기모임을 시작으로 80년대의 주된 「속도전」으로 추진됐다. 이 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북한은 「천리마 대고조의 기세로 80년대 속도를 창조하자」 「모두 다 80년대의 김혁·차광수가 되자」는 구호를 제시했다.

◀ 90년대 속도창조운동 : 80년대 속도창조운동을 90년대까지 연장한 것으로서 1990년 1월 김일성의 신년사를 통해 제시됐다.
그러나 북한은 1993년 5월 「우리식 사회주의 총진군운동」을 제기한 이후 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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