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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 무염봉
운영자 5347 2004-11-14 02:57:30
저자이름 :최낙서 (생평)

대표작품

단풍계절
거인이 된 아이
원정사의 세 불상
투구봉
갑옷바위
인란굴전설
무염봉


작품소개 : 무염봉


먼 옛날 구월산 기슭에 샘골이라는 자그마한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사람들은 농사를 지어야 한해량식의 절반도 되나마나하여 눈고개를 넘어다니며 물고기장사나 소금장사로 겨우 연명하였다.
샘골에서 소금밭까지 가려면 높고 가파로운 눈고개가 있어 그곳을 넘어다니자니 매우 힘들었다.
게다가 바다 가까운 이 마을에 악착한 왜구들이 언제 침입하여 농산물과 재물을 로략질하고 부녀자들을 강탈할지 몰라 한시도 마음편한 날이 없었다.
이 마을에 장쇠라고 부르는 늙은 총각이 살았다.
근면하고 성실한 장쇠는 자기 집 농사를 하면서도 마을앞에 나서는 어렵고 힘든 일을 제혼자 맡아하였고 이웃들과는 다정하기 그지없어 아무 일이나 자기 집일처럼 몸을 아끼지 않았다.
장쇠는 염병으로 모친을 일찍 여의고 년로하고 병약한 홀아버지 한분만을 모시고 사는탓에 남달리 가난하였다. 그래서 혼기가 넘었지만 딸 주겠다는 집이 없어서 아직 혼약한 처녀도 없이 어느덧 서른살이 되였다.
어느해 가을이였다.
장쇠는 농사를 다 지어놓았으나 그해따라 례년에 보기드문 흉년이 들어 몇달량식도 되나마 나하였다. 하는수없이 소금장사라도 해야 다소나마 보태서 병약한 부친에게 수수강태죽이라도 떨구지 않고 대접할것이였다.
장쇠는 어느날 수수쌀 서되를 퍼가지고 눈고개를 넘어 소금밭마을에 가서 소금 한자루를 사지고 돌아오고있었다. 눈고개는 소금밭에서 시오리는 잘되는데 그 눈고개를 넘어 한 칠리 더 가야 률천의 샘골이 나진다.
소금 한자루면 수수쌀 한말은 넉넉히 바꿀수 있으니 대단한 벌이다. 장쇠는 힘겹게 눈고개를 향해 걸으며 신세타령을 하였다.

오는 봄 오는 가을 모두 함께 맞건만
집집의 살림살인 왜 그리 다르나

땅아 말해주렵 속시원히 말해주렴
내가 흘린 피땀값은 어디에 묻었느냐

아서라 말어라 물어선 무엇하리
잘살고 못사는건 자기 팔자탓이로다

장쇠가 기분이 둥 떠서 눈고개를 한 절반 올랐을 때다. 앞에 웬 처녀가 큼직한 자루를 이고 힘겹게 오르고있었다. 무엇을 담았는지 무거워서 한걸음 옮기기를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몰랐다.
(연약한 처녀의 몸으로 저렇게 무거운 짐을 이고 고개를 오르다니...)
장쇠는 그 처녀에게 진심으로 동정이 갔다.
부지런히 소금자루를 산마루에 올려다놓은 장쇠는 처녀를 향하여 마주 내려왔다. 얼굴에서 땀방울이 비오듯 쏟아지는 처녀는 장쇠가 자기앞에 이르자 부끄러워서 그만 어쩔바를 몰라 했다.

무뚝뚝하게 한마디 건넨 장쇠는 처녀의 머리우에서 포대를 무작정 빼앗아 자기 어깨우에 올려놓고 성큼성큼 고개마루로 치달은다.
처녀는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오독하니 서서 옷고름만 만지며 장쇠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소금자루였는데 얼마나 무거운지 장쇠가 지고가는 소금과 대비가 안되였다.
장쇠는 고개마루에 소금자루를 내려놓고 털썩 주저앉아 흐르는 땀을 훔치고있었다. 뒤따라 온 처녀는 미안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여 장쇠를 마주보지 못한채 알릴듯말듯 속삭이였다.


처녀도 자기는 소금밭마을에 사는데 이름은 아란이라고 소개하였다.
장쇠는 아란에게 잠간 쉬여가자고 했다. 처녀도 싫지 않은듯 저쪽 잔디우에 조용히 앉았다.
잠시 말이 없던 처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처녀는 좀 쑥스러웠던지 장쇠의 물음에 대답을 못하고 잠시 머뭇거리더니만 인정깊은 젊은 이에게 끌려 자기의 속내를 죄다 털어놓았다.
아버지는 소금밭에서 일하다가 자기 나이 열살나던해 가을에 마을에 침입한 왜구들에게 살해당하고 그후 어머니가 아버지대신 소금밭에서 일하시다 골병이 들어 누웠다는것, 그래서 살아갈길이 막막해서 소금을 이고다니며 팔기 시작했지만 연약한 녀자의 몸이고 보니 매일 이 고개를 죽기보다 더 힘들게 넘었는데 오늘은 장쇠가 도와주었으니 정말 고맙기 그지없다며 이 은혜를 무엇으로 갚겠는가고 눈물까지 흘리였다.
처녀의 운명이 자기 못지 않게 기구함을 알게 된 장쇠는 모든 힘을 다해 도와주고싶은 마음이 불같이 솟구쳤다.

장쇠도 처녀앞에 자기 집 불행을 스스럼없이 털어놓았다.

처녀는 두눈에서 이슬을 방울방울 떨구며 장쇠를 바라보았다. 장쇠도 아란의 뜨거운 눈물이 자기의 가슴에 스며드는듯 못견디게 저려왔다.


처녀의 얼굴에 기쁨이 피여났다.
이렇게 되여 장쇠와 아란은 남다른 인연이 맺어졌다.
장쇠는 아란이 이고가는 소금을 자기가 팔아주겠다며 래일부터는 이 고개밑에서 기다릴터이니 혹시 아란이 먼저 오더라도 꼭 기다렸다가 고개를 함께 오르자고 하였다.

그들은 령을 내려 장쇠네 마을에 가서 소금을 모두 팔았다. 아란은 찰수수 한말을 받아안고 너무 기뻐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장쇠는 아란에게 자기 집에 들려서 잠간 쉬여가라고 하였다.
아란도 그럴 마음은 있었으나 처음 만난 사람네 집이라 들려가기가 쑥스러웠다.


장쇠는 자기 짐을 집에 부려놓고와서 아란의 수수자루를 훌쩍 메더니 성큼성큼 앞서 걸었다.
아란은 장쇠의 뒤를 따라가며 마음속으로 이렇게 읊었다.

악한 마음 판을 치는 세상인가 하였더니
내 신세 알아주는 좋은 사람 있구나

불우한 사람들은 생각도 한가지
주고받는 마음속에 뜨거운 정 오가네

그들은 어느덧 령마루에 올랐다. 푸르른 소나무그늘에 수수자루를 내려놓고 장쇠는 잔디를 깔고앉았다.

아란은 장쇠의 옆으로 다가가서 나란히 앉았다.

아란은 고운 얼굴에 노을을 함뿍 피워가지고 고개를 다소곳이 숙인다.

이러는 장쇠의 가슴은 남모르게 두근거렸다. 그들은 시간이 갈수록 정이 깊어갔다.


그들은 래일 이맘때 고개밑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헤여졌다.
령을 내린 아란은 장쇠의 억실억실한 그 얼굴을 잊을수 없었고 집에 돌아온 장쇠도 꽃처럼 아름다운 아란의 그 얼굴을 가슴에서 지울수가 없어 온밤 뜬눈으로 지새우고말았다.
다음날부터 그들은 눈고개밑에서 만나 높은 령을 함께 오르군 하였는데 그때마다 장쇠는 아란의 소금짐과 낟알짐을 메다주군하였다.
흐르는 나날과 함께 그들의 사랑은 두터워만졌다. 이젠 장쇠도 아란의 집에 찾아가 앓아누운 어머니에게 약초도 캐다 대접하고 아란 역시 장쇠네 빨래와 바느질까지 도와주게 되였다.
두 집이 하나같이 가난하였지만 장쇠와 아란이 만난다음부터는 외로움도 서글픔도 가뭇없이 사라졌다. 장쇠와 아란이 서로 도우며 눈고개를 넘어다니면서부터는 두 집 살림형편도 눈에 보이게 늘어났다. 만가지시름을 바람이 모두 실어간듯했다.
어느날 장쇠와 아란은 바다가에서 앉아 망망한 서해바다를 바라보며 아름다운 미래를 속삭이고있었다. 장쇠가 문득 노래처럼 자기 생각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아란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장쇠의 부친과 아란의 모친은 하늘이 정해준 배필이라며 별다른 의향이 없이 올해안으로 혼례를 치르자고 약속하였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마을에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다. 소문인즉 악독한 왜구들이 서해로 쳐들어올 기색이 보인다는것이였다.
소금밭마을 배사람들이 바다에 물고기잡이를 나갔다가 왜놈의 배가 한벌 쭉 깔린것을 보고 불길한 예감을 받았던것이다.
배사람들은 다음날부터 물고기잡이를 나가지 못하고 조개잡이나 하였다.
이 련락을 받은 조정에서는 구월산에 방어군을 파하고 주변젊은이들로 의병을 무을것을 령하였다.
백성들은 앞으로 닥칠 불행을 예감하면서 한순간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지주놈들은 벌써 값진 물건들만 대충 걷어가지고 구월산너머로 피난을 가느라 야단법석이였다.
장쇠도 군사로 뽑히게 되였다.
래일아침이면 마을을 떠나간다. 그러니 이젠 아란을 더는 만나지 못할것이다.
년로하신 부친을 홀로 집에 두고 전장터로 떠나자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운신도 못하는 아란의 어머니는 어떻게 하랴.
장쇠는 소금밭마을에 가서 아란의 어머니를 모셔다가 자기 집에 눕히고 떠나가리가 결심하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동구밖을 나서던 장쇠는 마을의 의병대장을 만났다. 그는 장쇠를 보고 몹시 반가와하며

장쇠는 한결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내친걸음이니 소금밭마을을 향해 발걸음을 다그쳤다.
장쇠가 눈고개마루에 올라섰을 때다. 소금자루를 인 아란이 숨이 턱에 닿아 고개를 마주 넘어오고있지 않는가. 장쇠는 반가웠다.


아란은 반색을 하며 소금자루를 내려놓고 장쇠앞으로 종달음쳐왔다.


그러면서 아란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금 바다에 머물러있던 왜구들이 도처에 렴탐군들을 파했는데 그놈들이 우리 군사들의 내막을 알아본 다음 즉시 쳐들어온다는것이다. 이 소식은 조개를 잡던 배사람들이 바다에서 들어오는 수상한놈을 한놈 붙잡아 족쳐서 얻어낸것이라며 우리는 어쩌면 좋겠는가고 장쇠에게 물었다.
장쇠는 잠시 말이 없다가 아란에게 하였다.
그러나 아란은 생각이 달랐다.

하긴 그렇다. 열이 높은 어머니를 모셔오다가 뜻하지 않은 변을 만날수 있을것이다. 장쇠는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고 무엇인가 곰곰히 생각하던 아란이 드디여 입을 열었다.

장쇠는 묵묵히 앉아 생각에 잠겼다. 아란도 왜놈들의 배가 쭉 깔린 서해바다를 증오에 찬 눈길로 바라보고있었다.
잠시후에 장쇠가 아란의손을 덥석 잡았다.


아란은 장쇠옆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장쇠는 아란에게 자기의 생각을 들려주었다. 그 생각인즉 가마니에 모래를 넣어서 눈고개를 덮어놓으면 소금가마니를 쌓아놓은것으로 보일것이고 언덕너머에서 농쟁기 부딪치는 소리만 내면 병기소리로 잘못 듣고 기가 질려 뭍에 오르길 저어할거라는것이다.

장쇠와 아란은 통쾌하게 웃었다.

그들은 지체없이 군사들에게 달려가 자기들의 의향을 전했다. 그러자 군사들은 아주 신통한 묘안이라고 무척 기뻐하며 지체없이 가마니를 모아 눈고개를 덮기 시작했다. 온 마을이 떨쳐나 가마니를 다 덮고나니 날이 밝아왔다.

아란은 펄쩍 뛰였다.

장쇠는 아란의 의향을 받아들일수 없었다.

아란은 장쇠가 더 말릴사이 없이 소금포대를 이고 언덕밑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장쇠가 피타게 불렀으나 허사였다. 아란은 벌써 보이지 않았다.
아란이 소금포대를 이고 소금밭마을가까이에 이르렀을 때다. 마치도 게사니떼가 몰려오는듯한 아우성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보니 왜놈들의 무리가 뭍으로 올려오고있었다. 아란은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라 잠시 멈춰서서 생각을 굴리였다. 그러던 아란은 마침내 결심이 된듯 소금자루를 이고 꿋꿋이 앞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이걸 어쩌면 좋으랴. 앞에서 왜놈 몇놈이 창을 들고 아란을 향하여 마주 달려오는것이 아닌가. 선발대인듯했다.
아란은 더 속도를 내여 걸어가다가 그놈들이 다가오자 돌을 차며 앞으로 푹 엎어졌다. 아란은 무릎이 깨져 피가 흐르고 이고가던 소금자루가 터지면서 온 길바닥에 소금이 뿌려졌다.
이것은 아란이 우정 한 행동이였다.
아란은 그 소금을 자루에 모아담느라고 무릎의 피도 닦지 않고 분주탕을 피웠다. 이때였다.
하고 누가 꽥 소리지르는것이였다.
마주오던 왜놈들이였다.


그놈들은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란은 눈고개가 잘 보이는곳까지 놈들을 끌고갔다.
아란은 눈고개를 가리켰다.
엄청난 소금산을 바라본 왜놈들은 저희들끼리 쑤군거렸다.


그놈들은 돌아서서 황급히 바다가로 뺑소니를 치는것이였다.
아란은 후-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그리고는 어머니가 기다리는 집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다행히도 어머니는 무사하였다.


아란은 장쇠와 군사들이 있는 눈고개를 향해 달려갔다. 그곳에서는 원쑤놈들이 환히 내다보일것이였다. 아란이 눈고개밑에 이르자
하고 부르며 장쇠가 달려내려왔다. 장쇠도 아란을 찾아가는중이였다.
장쇠는 아란의 두손을 덥석 잡고 하고 환성을 올리는것이였다.



아란은 왜놈들을 만났던 이야기를 장쇠에게 죄다 들려주었다.

그들은 군사들과 마을사라믈이 모여있는 고개마루로 올랐다. 군사들은 화살 한대 날리지 않고 왜놈들을 물리친 장쇠와 아란의 슬기를 얼마나 칭찬하는지 몰랐다.


모두 찬성하였다. 그리하여 며칠후에 장쇠와 아란의 잔치를 요한하게 차리였고 아란의 어러니까지 모셔다 행복하게 살게 되였다.
후날 사람들은 눈고개를 소금산으로 보았지만 사실은 소금이 전혀 없었다는 뜻에서 무염봉이라 이름하고 장쇠와 아란의 슬기와 애국의 넋을 길이길이 전해갔다.
지금도 은률군 연암리에 가면 구월산의 한줄기인 무염봉이 우뚝 솟아있는것을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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