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남쪽 - 서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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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명스럽기 짝이 없는 영숙이는 어느 날 “이모, 나 죽을 것 같아. 북한에 두고 온 딸이 너무 보고 싶어, 나랑 점집에 가자”며 길에서 떼를 쓴다. 나는 성당에 다녀서 갈 수 없다 했더니 길에서 엉엉 울기 시작한다. 결국 나는 영숙이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점을 보러 갔다. 점집을 나오면서 “앞으로는 열심히 살면서 당분간 딸을 잊어보라”고 했더니 내게 독하다고 난리다. 아파트에 도착한 미영이의 첫 마디 “와! 여기가 우리 집 맞나요? 천국이네요. 천국” 조금은 비좁은 소형아파트지만 ‘천국’이라며 좋아하는 미영이는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매사에 적극적인 아이다. 탈북자들은 남들에게 의지하거나 공짜를 바라는 경향이 있는데 미영이는 사뭇 다르다. 특히 미영이 집에 가면 분위기가 다르다. 정성들여 꾸민 집안과 꼼꼼한 성격에서 비롯되는 살림살이 하며 남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미영이를 볼 때마다 마음이 흐뭇하다. 나는 탈북자들이 우리 마을에 오면 그들이 입주할 아파트의 간단한 청소부터 시작해 입주한 후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에 대해 내 친자식이다 생각하며 일을 도와준다. 전철, 버스 타는 법, 가까운 시장의 위치와 재활용센터 이용법, 생활쓰레기 분리 수거법 등을 설명해준다. 인생의 선배로서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느새 일주일, 한달의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하루라도 빨리 이 사회에 정착해 함께하는 우리 모두의 이웃주민이 되기를 바란다. 지나친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몇 년 후에는 그들이 독거노인이나 결손가정 아이들에게 봉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내 주변의 탈북자들은 꼭 봉사하겠노라고 약속한다. 그 덕분인지 이제 정희와 미영이는 자원봉사활동이 무엇인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이해하는 듯하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원봉사활동에 열심이다. 특히 정희는 지난 겨울 독거노인을 위한 김장김치 담그기 행사에 나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싫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너무나 열심히 일을 했다. 오히려 정희는 이번 기회가 자기에게 소중한 경험이었다며 함박웃음을 지으며 내게 김치를 권하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얼마전 정희는 “회장님, 저 벌써 16주나 되었어요”한다. 친정어머니가 옆에 안계시니 내가 대신 친정엄마 역할을 해줄까한다. 태교책을 전해주면서 임신 중 주의해야 할 사항 등에 대해 설명해주니 너무나 좋아한다. 부디 아무 탈 없이 정희를 닮은 예쁜 아기 낳기를 기도한다. 작년 설악산 가족 여행 갔을 때 만난 미정이가 생각난다. 떼를 쓰던 선영이 딸 미정이는 지금쯤 얼마나 컸는지 궁금하다. 미정, 정숙, 경미, 혜진, 형우, 연정, 영민, 이 아이들은 모두들 어떻게 지내는지,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서면서도 다들 잘 지내고 있을 거라며 위안을 삼는다. 훗날 어른이 되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살려 훌륭한 일꾼이 되길 바랄 뿐이다. 국경의 남쪽에 사는 우리 적십자 봉사원은 이 땅을 밟는 모든 탈북자들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노력한다. 특히 우리 마을에 적을 둔 봉사원들과 탈북자들이 한가족과 같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거듭 태어나길 바란다. 2006년 10월 서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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