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 과대망상증-누가 북한 내 한류(韓流)를 햇볕정책 덕분이라 우기는가? |
---|
그동안 이러저러한 이유로 데일리엔케이에 칼럼을 쓰지 못했는데, 오늘부터 시리즈를 하나 써볼까 합니다. 주제는 “북한에 대한 오해와 진실”입니다. 제가 북한 내부 소식을 다루다보니 그 전보다 더 한국사회에 북한에 대한 잘못된 지식이 만연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제 경험을 독자분들과 공유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로 5월 18일 연합뉴스에 올라온 최승철 처형 관련 기사에 대해 한마디 하고자 합니다. 사실 최승철 통전부 부부장이 실제로 처형을 당했는지는 교차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문제 삼고 있는 부분은 최승철 처형에 대한 팩트가 아니라 처형된 이유에 대한 연합신문의 분석입니다. 연합신문은 한 대북 전문가를 익명으로 인용했습니다. "대북 포용정책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어서 퍼주기 같은 부정적 면과 북한 주민의 대남 의존도 심화 등과 같은 의식 변화라는 긍정적 결과를 동반하게 마련"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석은 햇볕정책에 대한 심각한 왜곡입니다. 북한에 한류(韓流)가 광범위하게 퍼져있다는 것은 왠만한 분들이면 다 아실 겁니다. 쌀, 밥통, 믹서기, 쵸코파이, 사탕, 알밤 등 한국 물품들이 북한 전역에 퍼져 있습니다. 또 CD, DVD, 테이프, MP3, MP4, 라디오 등을 통해 한국의 영화, 드라마, 노래가 북한 전역에 확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내 한류의 확산이 햇볕정책의 영향이라고 보는 것은 사실 왜곡입니다. 엄밀히 말해 햇볕정책의 영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영향을 비율로 따지자면 1~2%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해 이런 한류의 확산은 햇볕정책 “덕분”이 아니라 햇볕정책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확산되었습니다. 북한에서 한국 것의 인기가 높아진 일등공신은 탈북자와 북한의 장사꾼들입니다. 북한에 들어가는 노래 테이프, CD 등은 한국이 아니라 중국을 통해 들어갑니다. 주로 북한 상인들이나 탈북자들이 중국에 왔다가 사가지고 가거나 아니면 한국의 선교사들이나 인권 운동가들을 통해 받아서 갑니다. 특히 2000년 이후 탈북자 인권 보호 캠페인이 강력히 전개되면서 북한 정부의 탈북자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아졌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과 중국을 오가는 탈북자들과 장사꾼들이 좀 더 대담하게 테이프와 CD를 북한 내로 반입한 것입니다. 이 당시 햇볕정책을 추진한 한국 정부는 '조용한 외교'라는 미명 하에 중국의 탈북자 강제 송환에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으며 공관으로 찾아오는 탈북자도 귀찮다며 쫓아내기까지 했습니다. 개성 공단이나 남북한 교류를 통해서도 일정 정도 남한 문화가 북한에 들어가기는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합법적인 만남에서는 노래 테이프나 영화 CD를 건네줄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이 북한 내에 한류가 유행하게 된 주원인이 아님은 명백하다 하겠습니다. 물론 북한에 퍼져 있는 한국산 쌀 포대는 햇볕정책의 영향입니다. 이것마저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리고 개성 공단을 통해서 확산되는 초코파이, 알밤, 사탕 등도 햇볕 정책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물품들이 북한 주민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영화, 드라마, 노래 등이 퍼트리는 영향에 비해서는 정말 ‘새발의 피’입니다. 그리고 북-중 국경을 통해 들어가는 한국 제품에 비하면 개성 공단을 통해서 들어가는 한국 제품들의 숫자는 무시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또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라디오입니다. 대북 라디오도 한류의 확산에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DJ, 노무현 정부는 대북 라디오 방송을 철저히 억제했습니다. 햇볕 정책이 판치던 두 정부 기간 동안 한 때 북한 주민들에게 사랑을 받던 KBS의 대북 방송이 대 조선족 방송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이 이 방송을 외면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죽했으면 민간단체에서 대북 라디오 방송을 하겠다고 일어섰겠습니까? 물론 DJ와 노무현 정부는 민간 대북 방송을 전혀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햇볕 정책은 북한의 한류 확산에 극히 일부 기여한 측면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는 한류 확산에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만약 당시 햇볕 정책이 아니라 좀 더 올바른 대북 정책이 시행되었더라면 지금의 북한 주민들의 대남 의존도는 훨씬 높아졌을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에서 한류가 어떤 방식으로 확산되었는지 잘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북 정책도 한류를 오히려 억제해 온 햇볕 정책으로 되돌아갈 것이 아니라 한류를 더욱 더 확산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 하태경/열린북한방송 대표 제가 평소 궁금했던 내용인데 마침 좋은 발제글이 있어 실어봤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신고 0명
게시물신고
|
사람이 알면서도 갑갑해지면 말도 잘 안나오네요. 북한에 남한문화가 들어간지가 언제적 이야기 인데 그것마저 햇볕정책과 연결시킨다니 답답합니다.
햇볕정책 기간에는 북한이 남한문화를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문화차단을 정책으로 내세웠어요. 그래서 정부는 그것을 수용하며 남북교류를 성사시켜 나갔습니다.
탈동회사이트에 들어와 탈북인들의 생각과 반대되는 내용이 들어오면 이해시킬려고 계속 노력하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현실이 없기 때문에 민족이나 평화 통일등 감정적인 부분이 작용하는것으로 보입니다. 북쪽의 지도자라는 사람은 민족이니 평화니 이런것이 없습니다. 이것을 이용하여 남한을 무너뜨리자는 겁니다.
이점에 촛점을 마추어 대처해 나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길 입니다.
그리고 글들중에 남한사람의 반이 햇볕을 지지한다고 하면서 글이 올라온 것을 보았는데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국민의 80% 가까이가 이명박 후보를 찍었습니다. 지금현재 햇볕정책 지지자는 우리가 알고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철없는 젊은사람.
촛불집회 보십시요// 경찰이 결국 폭력을 휘두르며 강제진압 하니까 없어졌지요.. 그런 폭력압에 무릅꿇고 해산하는 사람들이 무슨 이 대한민국 앞에 서 통일을 운운하는 것이., 지지를 받을수 있겠습니까?
북한방식으로 공개처형이 몇번이루어지면 씨를 말릴수도 있을겁니다. 이런 북의 현실도 모르고 북한을 운운한다는 것이..
그럼 몇%요?
지난 여론조사 자료를 올렸습니다. 정확성을 기하고자 올립니다
16대 대선 투표율 : 70.8% 노무현득표 12,014,277 (48.9%)
17대 대선 투표율 : 63.1% 이명박득표 11,492,389 (48.7%)
2002년 총유권자수 34,991,529명 중 노무현 득표 12,014,277 (48.9%)
총유권자대비 34.3%
2007년 총우권자수 37,653,518명 중 이명박 득표 11,492,389 (48.7%)
총유권자대비 30.5%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명박 후보는 이회창 후보 가 나타나 지지율이 떨어졌지요
노무현 후보는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의 결과 득표입니다.
이회창 후보가 나오지 않았더라면 득표율은 60%를 넘을듯..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가정'을 말씀하시고 계시군요.^^
햇볕주의자들은 통일보단 분단된 남한의 안정만 추구할 뿐입니다. 즉 대량탈북 사태를 막고 개정일 체제를 보장해 줌으로써 남북관계가 경색되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을요.
햇볕의 사기에 일부 사람들이 속았지만 이젠 실패한 분단고착화 정책으로 결판났잖아요. 슨상교도들은 아직도 미련이 남아 죽은 교주의 유훈통치를 지속하려 하지만 이미 끝났다고 봅니다. 어찌나 닮았는지.. 하는 짓이...
아래마을 영화 보실래요 한다 그들은 상대가 보위부인가 정말사려는사람인가를 검토해보는것이다 한다면 북한 보위부 요원들이 이들의 수법을 모를가요 알아도 정통하고잇다 그럼에도 완전소멸하지않고잇는것은 그들자체가 한영화가 많이퍼져 현정권이 빨리 붕괴되길 바라기때문이다 해볕정책은 그들로부터도 환영을 받지 못하엿다
햇볕정책은 망하게하는게아니라 같이 잘살자일겁니다..
정말 같은 나라에 살면서도 이리 생각이 틀릴 수가 있을까? 개정일을 믿다간 발등만 찍힌다~ 개정일을 다른 악당처럼 생각했다간 곧 죽음만이 있을뿐...
라디오와 비디오. 등을로 한국사회를 인식.
아무리 한국에서 해빛으로 북한주민들을 돕는다고 하지만 오산.
아무런 의의도 없다. 한국상품이 경제도움으로 북으로 들어간다고해도 상표를 떼어버리거나 다른이름으로 바꾸어 한국산인지 모르게 함.
그리고 한국에서 아무리많은 경제적 지원을 한다고 해도 주민들은 모름.
대통령도 민주당에서 당선되면 안됨. 북한을 무한히 압박할수있는 강한분이 되여야 함.
김대중씨 이 전에는 남한영화를 수출할 수 없었단 말이에요??
김대중씨가 문화시장 개방한 건 알겠는데 그건 남한문화시장 개방한거지 수출시장까지 만든 거에요??
웃기는구만?? 하여간 별라별 인간들이 다 떠들어대네~
뭔 문화? 시위 위장 문화? 궤변도 가지가지요.
다만 저는 지금 아시아를 중심으로 전세계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한류'라는 것의 태동과 성공적인 성장과정에 있어 가장 큰 공이 있다면 '국민의 정부'와 '민주화된 대한민국'을 꼽고 싶습니다.
먼저 윗 댓글을 달아주신 '억지수준'님께서도 말씀하신 내용이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유달리 대중문화산업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그에 따른 국가적 지원도 많았슴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 분의 별칭이 '문화대통령'이었던 것이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문화산업을 단순히 연예가쉽거리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산업이자 성장동력으로 주목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꾸준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죠. 그래서 지금도 예술계 종사자들의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는 높은 편입니다.
지금 이곳을 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 반감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모두 그 분을 지지하고 존경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 역시 그 분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다수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그 분이 쌍욕을 들을만큼 형편없는 대통령이었냐 고 한다면 저는 결코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기억을 되짚어 볼까요?
그가 대통령에 취임하던 그 순간 우리 대한민국은 국가부도사태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나라가 거덜난거지요. 그의 재임기간은 오로지 국가부도사태의 해결에 올인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선택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의무였죠.
그래서 어찌되었습니까?
우리는 성공적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받을만큼 그 어려움을 잘 극복해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도 현재도 우리의 먹거리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IT산업이라는 미래성장동력을 창출해냈죠. 문화산업 또한 그의 재임기간동안 훌륭한 부가가치산업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그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충분히 호의적인 평가를 받을만 합니다.
또한 '민주화된 대한민국'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류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문화는 '자유'를 먹고 자랍니다. 자유가 억압받는 상황에서 문화는 결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지금 40대 이상되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예전엔 참 안되는 것들이 많았어요. 읽지 말아야 할 것, 보지 말아야 할 것, 듣지 말아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 등등...
물론 우리는 당시 지금보다 훨씬 살벌한 분위기의 남북대치관계에 있었으니 찬성하든 안하든 간에 이념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의 소지라도 있습니다만, 당시 금지되던 것들을 살펴보면 '정말 이런 것까지 금지해야할 이유가 뭘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당시 음악 좋아하던 분들은 소위 '빽판'이라 불리우는 해적판 사러 모처에 시간 품팔며 다녀온 기억이 한두번씩은 있었을 줄 압니다.
금기사항이 많다는 것은 문화산업의 창조물을 만들어내는 사람들 입장에서 매우 곤혹스러운 일입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검열하게 되고 그에 따라 소재, 표현 등의 제약을 초래하게 되며, 이것은 결과물의 내용을 빈약하게 하고 획일적으로 만듭니다.
그런데 민주화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금기사항'들이 풀렸죠. 그 효과는 매우 컷습니다. 여러 실험적인 소재와 표현등이 자유롭게 사용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제작자가 자신의 상상력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길이 열렸죠.
거기다가 국가에서 전략적으로 지원까지 해주니 그동안 숨죽여왔던 역량이 폭발하듯 드러나기 시작한 겁니다. 이것이 한류의 태동이죠.
따라서 북한의 한류가 햇볕정책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 한류의 성장에 한몫을 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이 있다는 것 정도는 인정하는 것이 객관적인 평가일 겁니다.
정치적 목적도 있었겠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전두환 집권 초 야간통행금지가 금지되고 학생들 교복과 두발자유화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국내 프로야구가 출범하고 공직자윤리법도 시행되고요. 처음엔 미진했던 것이 슨상 때 꽃피운 것에 불과합니다. 애초 이런 것이 없었다면 한류도 없었겠지요. 문화만 사랑한다고 가능하기나 했겠습니까?
또한 지나친 비약이겠지만 소련에선 고르바초프가 나타나 개혁 개방을 통해 한류를 받아들일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가고 있었어요. 전두환 집권기인 1987년 9월 9일 강수연(당시 22세)이 임권택 감독의 영화 〈씨받이〉에서 옥녀로 열연, 세계 4대 영화제(칸, 베니스, 베를린, 모스크바) 중 하나인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던 것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요? 그리고 2년 뒤인 1989년 노태우 때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파계한 비구니의 정신적 고뇌와 방황을 그린 ‘아제 아제 바라아제’(임권택 감독)로 또다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월드스타’로 떠올랐어요. 이미 한류는 시작되고 있었던 거지요. 그것이 개화되기 시작한 것이 슨상 때라면 슨상때려나.... 모든 것을 어느 민주운동했네 하는 사람의 공으로 돌려지는 것은 좀 그렇네요. 보이지 않는 노력들에 의해 서서히 축적돼 갔던 것이고 지금 더욱 꽃이 피고 있는 거지요.
쓰기 귀찮아서 그만 하렵니다. 영삼씨 때는 아예 다루지도 않았어요. 모든 것 하지 마세요 하던 시대에 이미 싹을 피우고 있었던 겁니다. 세계 역시 그렇게 변하고 있었고요. 햇볕정책 역시 그 일환으로 덕을 본 셈이고요. 그리고 우리의 독재가 민주주의자들을 압살할 정도의 독재가 아니었다는 것이 정말 다행입니다. 잡았다간 거의 다 풀어줬으니까요.
선생님의 말씀 대부분에 동의합니다. 특히 모든 것을 '민주운동했네 하는 사람의 공으로 돌리는 것은 좀 그렇다'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가만 보니 제 글에 그런 오해의 소지가 있었네요.
'저 역시 그런 면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다'라는 것이지 모든 것을 그들이 이뤄냈다는 표현은 아닙니다.
그렇게 따지면 박정희 시대의 모든 공은 박정희 대통령과 그 정권이 이룬 것인가요? 아니지요. 수많은 주체들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 경제성장의 공을 말할 때가 그 중심에 서는 인물은 '박정희 전 대통령'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 의미로 문화산업에 대한 가장 큰 공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민주화에 있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말씀하신 부분에는 동의하기 힘듭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의 독재가 민주주의자들을 압살할 정도의 독재가 아니었다는 것이 정말 다행입니다. 잡았다간 거의 다 풀어줬으니까요'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정도는 개인마다 모두 느끼는 바가 다를 수 있죠.
하지만 전두환씨 재임시만 해도 손가락에 꼽히는 재벌그룹이 하루아침에 공중분해되고, 방송국과 신문사가 폐쇄되고 기자들이 쫒겨났습니다.
이런 것을 선생님께서는 '민주주의자들을 압살할 정도의 독재가 아니었다' 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제 감각으로는 좀 달리 느껴지네요.
또한 '잡았다간 거의 다 풀어줬으니까'라는 부분은 마치 독재세력이 민주화에 동의해줬다라는 뉘앙스가 느껴져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민주화는 누가 풀어줘서 성취한 것이 아닌 수많이 이들의 자신을 희생해서 이룩해낸 피의 성과물입니다.
독재세력이 했던 것은 막을 수 없으니 물러섰다라는 정도가 딱 알맞은 표현일 겁니다.
전두환 때 정말 널널했는데.... 대머리 매일 놀리고.... 이주일과 비교하며 두환이 형 가지고 노는게 일이었는데....
김대중이 박정희와 같은 위치에서 문화산업에서 가장 큰 공이 있었다고 보는지 통 이해가 안 감. 그러면 지금 이란에도 퍼지고 있는 한류붐은 이명박의 공으로 돌려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