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원의 군사세계 북한방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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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탈북자는 아닙니다. 천천히 예전 글을 살펴 보다가,,, 전에 봉선화 수련 동백의 필명으로 글을 올리신 분의 글이 좋아서 다시 올립니다. 탈북자의 글은 순수성 진실성이 있어서 좋은데요. 지금 다시 보아도 좋은 글을 재탕으로 올립니다. 아래에서 검색해서 찾아보셰요. ^^* (저는 이런 이야기들이,, 잔잔하게 좋더군요.) 꾸뻑~~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연애담(1) 봉선화 . 북한군인들의 빡센 연애담 밤을 새워 장편소설을 쓴대도 못다쓸것이다. 그냥 간단간단하게 생략해서 써야 할것같다. 내 친구의 이야기다. 어느날 내 친구 시장에 나갔다 왔단다. 울동네에서 시장에 나가자면 40리길을 걸어야 한다. 장을 보고 오는길에 삼태기를 사들고 집으로 향했는데.....군인들 3명이 길을 묻더란다....여기 해안경비대에 갈려면 어떻게 가야 하는가고..... 그 친구 해안경비대가 자리잡은 쪽에서 산다고 말했단다. 그렇게 되어 같은 일행이 되어 먼길을 힘들지 않게 웃고 떠들며 걸어왔단다.그런데 그속에서 유독 한 중사가 집이 어디쯤이냐고 묻더란다.... 그냥 어디쯤이라고 대수롭지않게 알려주었는데,,,,,,그날 저녁 집으로 그 군인이 찾아왔다.....다짜고짜 부모님한데 따님이 마음에 있어 왔다고 대담하게 말을 하고 집안에 올방자를 틀고 앉았다. 원래 이런 무지막지한 군인들이 한둘이 아니라 부모님 너무 어이가 없어 그냥 밥이나 한끼먹고 가라고 밥상을 차려주었다. 밥한그릇을 다 먹고도 갈생각을 않고 꼭 부모님 동의를 얻고서야 돌아가겠다고 생떼를 쓰기 시작한다.... 후에 다시 오라고 오늘은 그냥 가보라고 타이르셨단다. 그 후 일주일이 지나서 그 녀석이 또 왔다. 그때는 제법 배낭에다 한배낭 짊어지고 왔다.알고보니 해안경비대 여단 피복창고장이라고 한다.....북에서도 같은 군인이래도 양식이나 피복을 쥐고있는 군인들을 사귀면 땡잡았다고 한다.....그 군인들 창고를 보면서 처녀한데 빠지면 쌀이나 피복을 정신없이 들고찾아온다.... 그 배낭안에는 군대신발이 가득하더란다....북한에서 군대신발은 제일 질좋고 값도 비싸다. 평민들이 그 군대신발을 신고 나가면 엄청 부러워한다. 배낭안의 실체를 확인한 부모들 눈이 반짝인다......하지만 생활이 아무리 쪼들릴지라도 신발 한배낭에 딸을 맡기랴....... 점더 지내보자고 마음다진다....그때부터 이 군인 무조건 일주일에 한번씩 찾아오군했었다. 그것도 처녀의 집하고 120리 정도 떨어지 도시에 있는 부대에서 그곳까지 오자면 정말 힘들었을텐데........내 친구 나한데 묻는다....이런 남자가 있는데 어떻게 해야 되겠는지 모르겠다고..... 한번은 그 군인 명태를 한배낭 지고 왔단다....그때부터 그 집은 갑자기 부족한게 없는 집이 되었다......그렇게 가지고 와서는 부모님한데 한다는 말이 딸을 끝까지 책임지겠으니 오늘밤부터 같이 자게 해달라고 졸랐단다..... 아무리 매일 한배낭씩 지고오는게 좋다지만 이건 좀 심각한 일이다,싶은 친구부모님....결단을 내리신다.....“그래...너는 우리딸이 무었이 마음에 들었느냐.....” 군인 입을 뗀다.“길을 물었을때 수집어서 얼굴도 들지 못하고 말을 할때, 그것을 보고 정말로 순진하고 때묻지 않은 처녀로구나...생각하고 마음에 두게 되었다고...” 내 친구 키는 좀 작지만 또 예쁘게 생겼다.....울 동네 춘향이라고도 불리웠었다. 친구 부모님 말씀하신다....“그러면 자네 부모님 한번 만나게 해주게나....부모님의 허락도 없이 어떻게 선뜻 자네한데 딸을 맡기겠나....” 힘들게 고민을 하던 그 군인 마침내 입을 연다....그렇게 하겠노라고...... 그렇게 다짐을 하고 그날부터 같이 재웠다고 한다. 한번 같이 재웠더니 그 담에는 그 군인의 배낭이 더 커지고 일주일에서 3일로 줄여지고....그것도 한번은 기차를 놓쳐 120리길을 그 큰 배낭을 지고 새벽 3시까지 걸어서 처녀집에 도착했단다.... 50리길은 기차를 타고 70리길은 걸어야 처녀집에 올수가 있는데 기차를 놓쳤으니 꼬박 걸어서 와서는 한시간 처녀곁에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서 그날 아침 엄무를 봐야 한다고 떠나는 그 열정....... 아마도 여기 총각들 120리길을 30키로정도 되는 짐을 지고 한밤중에 걸어서 가라면 갈사람이 있을까..... 드디어 부모님이 처녀집에 왔다...그런데 이일을 어이하랴....그 부모님인즉 평양 중앙당에 큰 간부를 하는 집안이다.....초라한 농촌의 자그마한 처녀가 마음에 들리 없었다. 두시간정도 부모님하고 대화하고 금방 갔다고 한다....내 친구 부모님한데 했다는 말이 우리 아들이 군사복무를 마지막까지 충실히 할수 있게 발목을 잡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단다. 그 후 총각이 왔다. 친구부모님이 그 총각한데 “자네 부모님이 반대를 했고 자네가 군사복무를 잘할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했으니 우리 인연은 여기서 끝을 맺어야 할거 같네....”하고 말을 하니 순간..........얼굴이 검게 질리더니 절대로 그렇게 할수 없다고....부모님을 버리면 버렸지 처녀만은 못버리겠다고 열변을 토한다..... 그 후에도 그 군인은 변함없이 찾아왔지만 처녀의 부모님은 이제는 절대로 같이 못자게 한다......몇번이나 찾아와서 자기의 진심을 보여주었는데도 반응이 없자 이 총각 한번은 부엌에 나가 식칼을 들고 이 집에서 죽겠다고 난동을 쳐서 겨우 말렸다고 한다.... 그 이후 처녀 부모님은 더는 견딜수가 없어 총각이 있는 여단에다가 그 군인 멀리있는 다른부대로 옮겨달라고 부탁했다..... 그 군인은 벌칙을 받고 다른부대로 옮겨졌고 내 친구는 그런 부모님을 원망하며 눈물도 많이 흘렸다..... 임신까지 되어 꼭 그군인하고 살겠다고 발버둥쳤건만 양부모님의 반대로 이들은 끝내 헤어지고 내 친구도 목매달겠다고 산으로 올라가는걸 겨우 친구들이 끄집어내렸다.... 그로부터 몇 년후 이제는 결혼하고 애기엄마가 되었지만 한번은 내가 평양쪽으로 갈일이 있다고 하니 그 총각네 집에 한번 찾아가 보라고 부탁한다.....평양시 대동강구역 어디어디라고.......일이 바빠서 들리지 못했다고 하니 몹시 아쉬어하던 그 친구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쓸려니까 길어지고 단 몇분안에 그 긴사연들을 다 못쓰겠네요........일은 바쁘고...... 다음에 또 올리겠습니다...아직 연애담들이 많고 많은데.....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연애담(2) 글을 올려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고민 하다가 반대하는분들이 극소수이라는점을 감안하며 다시 잽싸게 타자를 두드린다.... 내가 두만강을 건널때 북한에서 딱 두가지 가져온게 있다... 아직도 소중히 보관하고있는 그것은 연두색테가 둘러진 동그란 거울과 우리 부모님의 사진....세월이 흘러흘러 한남자의 진심을 너무나도 뼈저리게 느꼈기에 죽을고비를 넘기면서도 품고온 작은거울...... 지금부터 그 거울의 사연을 들려주고싶다... 언젠가 “기차여행”이라는 글에서 백두산에 가면서 겪은 에피소드를 적은 일이 있다... 그 글에서 가면서 겪었던 일만 적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겪은 일들은 적지 않았었다.... 나의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올때도 정말 힘들게 왔다...일주일만에 기차를 기다려 겨우 매달려 오긴 오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내발이 땅에 닿지 않고 붕 떠있는 상태에서 얼결에 타고온다.... 길주역.....또 많은 사람들이 꾸역꾸역 밀려들어온다....이제는 사람이 층층히 쌓여 천정에 까지 닿았는데도 어떻게 비비고 들어온다...... 내 옆에 한 군인이 쭈그리고 앉아있다가 길주역에 도착하니 머리를 창밖으로 내밀고 “중대장동지....여깁니다...여기”하고 고래고래 소리지른다. 그러자 훤칠한 키에 갸름한 얼굴의 름름한 별 세알단 군관이 뛰어온다....창문으로 후다닥 올라타더니 한바퀴 휙 둘러본다. 그 하전사는 혜산에서부터 자리잡고 앉아서 오던 군인이다....군관이 오니 “중대장동지, 여기 앉으십시오.”한다.. 군관 “응”하더니 털썩 주저앉는다... 속으로는 정말 부러웠다.....일주일넘게 기다려서 탓는데도 닭새끼처럼 한다리들고 겨우 서있는데 군복을 입은 군인이니 저렇게 쉽게 자리에 앉는구나....하고..... 한 한시간정도 기차가 달렸을까.....갑자기 그 군관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처녀동무...여기에 좀 앉으세요.”한다......뭔일이래?? 날보고 앉으라니..... 주변에 애기엄마건 할아버지건 모두 눈이 휘둥그래서 쳐다본다.....이런 판국에 아무리 도덕있는 군인이라해도 좀체로 자리를 내준다는건 꿈에도 생각할 수가 없는 일인것이다. 그것도 늙은이도 아니고 처녀한데....... 어쨌든 고맙다.....벌써 몇일을 서서온 나한데는 체면이고 뭐고 가물에 내린 단비처럼 고맙고 기쁜일이다.... “고맙습니다..”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앉자마자 눈을감고 졸기시작했다... 얼마나 졸았을까.....“식사합시다.”하면서 그 군관이 깨운다.“엉...벌써 밥먹을시간됐나...”하고 자리를 내주려니 그대로 앉아있으란다....그리고 자기 배낭에서 도시락을 꺼내는데 정말 정성스럽게도 싸왔다......그 군관인즉 집이 청진인데 표창휴가가는 전사를 양강도에 데려다주고는 자신은 잠시 집으로 갔다가 길주에서 만났다고 소개했다. 나도 밥을 꺼내들었지만 내 밥은 다 얼어서 푸실푸실하다.....창피해서 도로 걷어넣고 그 군관의 밥과 반찬으로 맛나게 한끼를 해결했다.... 이렇게 서로 이야기도 주고받으면서 몇일을 같이 기차에서 보냈다.....나를 앉혀놓고 그 군관은 끝까지 서서 온셈이다....평양방어사령부소속 땅크부대의 군관인 그는 간리역에서 내릴 차비를 한다....날 보고 집주소를 좀 알려달라고 했다...고마운 마음에 언제든지 우리 집쪽으로 오면 신세갚음한다고 집주소를 적어주었다...... 이렇게 헤어져서 반년정도 흘렀다....이제는 내 기억속에서도 그 군관이 잊혀져갔다..... 그러던 따스한 해빛에 온갖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던 어느 봄날.....일요일이어서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어머니 일손을 도우면서 일을 하고있었다..... 갑자기 대문이 “찌그덩~”하고 열리더니 잘 생긴 군관이 환히 웃으면서 들어온다...... “어머..어머....어떻게....진짜 오셨네....”하고 깜짝 놀랐다.... 바로 기차에서 만났던 그 군관이다......“그럼 안찾아올줄 알았나요?”하고 빙그레 웃는다..... 우리 어머니 의아한 표정으로 누군가고 묻는다....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우리딸을 도와줘서 정말 고맙다고 그 군관의 손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간다..... 그때는 울아버지도 계셨을때다.......한적한 시골마을에 늘씬하고 잘생긴 군관총각이 찾아오니 울 아빠 엄마 신나셨다..... 정성스레 차린 점심밥상을 물리고 경치좋은 바다가구경을 시켜주고싶어 같이 나왔다....시골에는 사람구경하기가 엄청 힘들어서 낮선 사람이 한명 나타나면 온 마을사람들이 가던길을 멈추고 안보일때까지 서서 바라본다. 갑자기 군관총각하고 나란히 걸어나가니 너도나도 다 서서 동물원의 휘귀한 짐승구경하듯 주루런히 서서들 보고있다...... 마침 만조시간이어서 푸른 물결이 출렁이고 기암절벽을 이룬 바다기슭은 꽃속에 묻혀 절경을 이루었다..... 정말 멋진 바다다......영화의 한 장면처럼 물결따라 뛰여들어갔다 나갔다 하면서 백사장을 거니는데 갑자기 비방울이 한두방을씩 떨어졌다.... 얼른 바위밑으로 뛰어들어가 잠시 비를 그었다.....순간 그 총각 내 손을 가만히 잡아당기더니 꼭 쥐어본다...... 총각이 옆으로 스치고 지나가도 가슴이 방망이질하고 얼굴이 빨개지던 그 시절....직접 손을 잡으니 심장이 밖으로 뛰어나올것처럼 쿵닥거린다..... 가만히 손을 뽑으며 이젠 비가 멎었으니 가자고 재촉하면서 그 위기를 모면했다..... 비를 맞고 함초롬히 젖은 해당화도 수줍은 내얼굴처럼 더욱 빨개진거 같다..... 그날 저녁에는 그 군관총각 우리 부모님한데 다짐을 받는다.....막내딸을 꼭 책임지겠으니 맡겨달라고.....우리 아빠, 엄마 반대할 리가 없다.....잘생겼지....게다가 군관이지...... 그 마음 변치않기만을 바란다고 부모님이 말씀하시자 그 군관총각 뛸듯이 기뻐한다.... 이렇게 또 6개월정도 지나서 그 총각이 왔다..... 자기 부모님의 허락을 받으려 청진까지 갔다왔다고 했다....그런데 솔직히 북쪽에서 사는 부모님들은 앞쪽의 여자들을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북쪽의 여자들은 생활력이 강하고 깨끗하고 여물어졌지만 앞쪽의 여자들은 마음만 황금이지 모든면에서 뒤떨어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별로 찬성을 한것같지는 않아보인다....그래도 자신은 무조건 한다고 한다.... 단둘이서 이말저말 나누다가 그 사람의 입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말이 “결혼하면 티비.녹음기,삼면경대는 해올수있지?”한다..... 북한에서는 여자들이 시집을 가면 잘사는 집에서 이런 가장집물을 무조건 해가지고 간다.... 그 말을 듣고나니 왠지 기분이 찝찝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부대로 돌아간다음 많은 생각을 했다....지금 우리집형편은 내가 벌어서 부모를 부양하고 거기에 곁에 있는 언니네도 먹여살리는 형편이다....그렇다고 내가 돈을 많이 버는것도 아니다....사무실에 아무리 다녀봤자 돈은 1년가야 한번도 안주고 배급이라고 조금 주는데 티비, 녹음기는 커녕 우리가족 먹여살리기도 힘든 수준이다....가장집물을 마련한다는것은 내 목숨을 내놓으라는것보다 더 심각한 일이다.....잘 나오는 티비도 쓰레기통에 버리는 한국땅에서 사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해가 안가겠지만은......그때의 내 심정은 숨이 막힐정도로 답답했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가 그 사람한데 편지를 썼다......나 다른 사람 생겼으니 잊어달라고....뭐 약혼한 사이도 아니고 잠시 만났을뿐인데 서로 잊고 좋은 여자 만나서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고....... 편지를 보낸지 열흘도 안되어 그 총각이 달려왔다....뭣 때문에 그러냐고.....그러나 그 현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왠지 쪽팔리고 그렇다고 부모님 속상하게 이런 사연을 말할수도 없고 그냥 나혼자 속썩이면서 묵새겼다.... 그러나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그날밤 어머니 보고 내일 아침 이 사람 아침밥먹여서 잘 타일러서 보내라고 말해놓고 나는 집을 나와 친구네 집에서 자고 그날 아침 120리 정도 떨어진 이모네 집으로 갔다...... 그 사람이 갈때까지 그곳에 머물려는 심산에서........한 3일정도 있었을까....그때가 소한이다..바람이 쌩쌩 불고 영하 30도 정도 되는것 같은 추위가 시작되었다....그냥 뜨뜻한 아랫목에서 고구마를 삶아서 사촌동생들하고 먹으면서 있었다.....바로 그때,,,,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나서 바라보니 아니 글쎄 그 총각이 서있는것이다.....눈에서는 불이 이는거 같고 뭔 일을 칠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깜짝 놀라서 여긴 어떻게 왔냐고 물었더니 “네가 어디든 숨어봐......끝까지 따라가서 찾아낼게....”한다......그때 사실 나는 그 총각한데 그렇게 열렬히 사랑한다는 감정이 별로 없었던거 같다....그러길래 나의 의사와 다른 말한마디에 정리할려고 했던거 같다... 무서웠다...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것만 같았다.....그 뒤로 우리 어머니가 들어선다....어머니가 하는 말이 3일을 밥한끼 안먹고 딸이 어디로 갔는지 알려달라고 졸라서 그러다가 총각이 잘못될거같은 생각에 할수없이 데리고 왔다고 했다.... 이모의 집에 와서도 절대로 앉지 않고 무조건 옷을 입고 집으로 가자고 한다........ 할수없이 따라나와서 집으로 오는 길에 참 많은 말을 물어본다......무슨 이유때문인가고....하지만 차마 그 혼수해갈수가 없어서 그런다는 말이 입밖에 나오지 앉았다....그냥 다른 남자가 생겼다고 거짓말을 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밥한끼 안먹는다....굶어죽겠다고 한다....참 야단이다.....옆집에 방구만 크게 뀌어도 다아는 마을이라 동네 사람들도 다들 모여 그 총각을 위로했다.... 이집에만 딸이 있는가고....우리집에도 예쁜 딸이 있다고.....모두들 너스레를 떨면서 마음을 돌려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그때 나는 저 사람이 날 정말 그렇게도 사랑했었나...하는 생각에 의아하기도 했다...... 너무너무 속상한 울 어머니 부엌에서 두부를 하다가 두부가 다 넘어서 바닥을 적시는줄도 모르고 생각에 잠겨있었다..... 하루는 동네사람들이랑 친구들이랑 다 저녁에 모여앉았다... 친구들이 우리 노래랑 하면서 놀자고 분위기를 띄워본다..... 친구들이 먼저 노래를 시작하고 그 총각보고 노래를 하라고 하니.......손풍금을 들고 노래를 하는 데 참 그곳에 모였던 사람들 눈물 안흘린 사람이 없었다.... 너를 처음 만날 때 생각이 많았네 한때 너와 나는 사랑이야기 나눴었지 이제는 그 이야기도 저멀리 사라져가고 나홀로 기타를 타며 너의 모습 그려보네 함께 걷던 사랑의 길이 이별의 길 되었네 순정했던 나의 첫사랑 아픈 상처 남겼네 사랑의 아픔과 슬픔 가셔버리고 영원한 행복의 씨았 이땅에 뿌려가고싶어 그 노래를 얼마나 눈물나게 하던지 나도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출수가 없었다......우리 아버지 참다못해 나를 불러내서 왜 저런 사람을 밀어내느냐고 따지신다...허나 말할 수가 없다.....혼수가 없어서 그런다고 하면 우리 아버지 어머니 마음 찢어지실거니까...... 이렇게 이 군관총각 3일시간받고 왔었는데 내 대답을 받아내고야 말겠다고 보름을 집에 있다가 떠났다.....아마도 부대에 돌아가서 처벌을 받았을것이다... 그후 5년이 지나 내가 한국에 오기 두달전......갑자기 한군인이 찾아왔다.....xx네 집이 맞냐고,,,,,우리 대대장동지가 오후에 오신다고 하면서...... 엉? 누구? 그 사람이다......드디어 왔다.....5년만에 만났다.....그 사람 막 울먹이면서 말한다...여자란 다 저렇구나 하는 실망감에 5년을 여자라하면 뒤돌아보지도 않고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먼저 온 연락병의 말을 듣고 정말 충격을 받았다... 그 5년동안을 내 사진을 자신의 사물함 트렁크를 열면 바로 볼수있게 붙혀놓았었고 항상 그 사진을 보면서 생각에 잠기군했다고 한다..... 그 군관이 말을 잊는다.....죽을때까지 장가를 안가자고 생각했었는데 상관들이 너무 들쑤시는통에 올해 2월에 결혼했다고 한다.....“그래....축하해요..”하고 말해주었다.... 그 다음날 떠나면서 “한번 안아봐도 돼”하고 말한다....“으응...그래,,,,이제는 장가도 갔다니까 잘 살아야해” 하면서 포옹했다.....그 군관 으스러지게 안으면서 귀에대고 묻는다....“왜 그랬어....아직도 비밀이야?”하고.....“아니...지금은 말할 수가 있어.....티비, 녹음기, 삼면경대해갈 능력이 안돼서 그랬어.....”하고 말하는 순간..... 그 군관 허탈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잊지 못한다.... “정말이야?? 난 그때 농담으로 말한건데....그걸 가슴에 새겼어?” “응 그래...엄청 부담이 되었고 우리 부모님한데도 부담이 될거같아서 그랬어....” 그 군관 펄썩 주저않는다...... “안타깝다.....네가 그렇게 소심한 사람이었어? 왜 그때 말못했어.....아....정말......” 막 가슴을 쥐어뜯는다.....별 한심한 조건으로 그렇게 사람의 가슴을 허볐는가고......너는 여자가 아니라 악마같다고.......... 그러고는 내 손에 자그마한 거울을 놓아준다....뒤면을 보니 내 사진이 들어있었다....얼마나 가지고 다녔는지 사진이 다 헐었다..... 그때야 느꼈다......아....이 사람은 정말로 나를 사랑했었구나.....하고.....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참 길게도 썼네....ㅎ 한국에 왔다....두만강을 넘으면서 사랑도 북에 두고왔는지 한국에 와서는 아무런 사랑의 느낌도 없는게 나자체도 이상할정도다..... 살아가는게 힘들어서인지......스치기만 해도 가슴이 널뛰군하던 그때가 다 지나서 그런지....진실한 사람을 아직 보질 못해서인지 전혀 사랑의 감정따윈 생겨나지 않는다는게 병같기도 하고.... 두고온 첫사랑이 이제 이땅에 전쟁이 일어나면 적군의 지휘관이 되어 나한데 총부리를 겨눈다는걸 생각하면 참 슬프기도 하고.... 이것이 둘로 갈라진 내 조국의 비극인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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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글을 잘쓰십니다..
북한의 생활상을 그대로 옮겨놓은듯....
'그런데,솔직히 북쪽의 부모님들은 앞쪽의 여자들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여기서 '앞쪽의 여자'는 어떤여자를 의미하나요?
누구 말씀해 주실 분?...^^
그래서 평양말 하면 "앞에말"한다고 표현하고, 평안도 남자들을 "앞에남자" 평안도 여자들을 "앞에 여자"들이라고 합니다.
근데,함경도 어르신들은 왜 '앞에 여자'를 탐탁지 않게 생각할까요? ^^
함경도는 성격 급하고 억세고,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부드럽고 순합니다.
그래서 함경도에서는 순하고 약하다고 남쪽지역(앞쪽)을 시러하는 경향이 있고 반대로 남쪽에선 북쪽지역(뒤쪽)을 성격 급하고 거칠다고 싫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남한에선 경상도나 전라도 같은 남쪽지역을 그냥 남쪽이라고 부르지만, 북한에선 남쪽지역을 앞쪽, 북쪽지역을 뒤쪽이라고 흔히 브릅니다.
북한의 연애담을 아주 실감나게 잘 읽었습니다.
앞쪽에서 오신분들 노여워마세요. 모욕하려는게 아니고 그냥 글을 읽다가 오랜만에 고향생각이 나서 해본말이에요.
지금 윗동네...함경도든 평안도든 황해도든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냉장고,세탁기,청소기 같은건 생각도 못하고 심지어 전기나 냉,온수도 제대로 공급이 안돼는걸로 알고있는데...그런와중에서도 앞쪽이던 뒷쪽이던 북쪽여성들 가정도 꾸리고 할거 다하잖아요?
앞쪽여자들이 살림 잘 못하고 생활력이 약하다고 싫어하시면...나중에 통일됀 다음에,함경도 어르신들 아들이 남쪽여자랑 살겠다고 데리고 오면 뒤로 넘어가시겠네요? ㅎㅎㅎ
그러면 보자...내가 혹시 딸낳고 통일이 돼도,함경도사위는 좀 힘든건가? ^^
이악하지 못한 여성은 줄에서 밀려 노상 타먹지 못하니 집집마다 건장하고 억센 여자들만 시집오길 바라지요.
배급줄 된장줄에서 밀리지 않는 집들은 그래도 가정 살림을 이어가는데
약한 축들이 제일 먼저 쓰러졌고 그래서 남자네 집에서는 함북여자들이 쎄다고 바라는 것이여요.
우리 같이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팔려서 탈북 할 수 밖엔 없엇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