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봄에 당신과 나를 위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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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3월 19일이다. 푸르른 봄이 오고 있다. 1인시위는 누구나 나가서 해도 되고 장소의 제약 같은 것도 없다. 즉, 법적으로 2인 이상이 모여야지 집회, 결사, 시위에 대한 법률이 연관이 되는 것이다. 하기사 상식적으로도 1인이 혼자서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데 무슨 제약이 있겠는가??. 민주주의의 국가라면,, 즉, 그냥 뛰쳐 나가서 하면 되는 것이다. 글을 열번 올리는 것 보다도 한번 실전 행동하는게 더 낫다. 100일간 할때, 6월이 되자 아스팔트 거리의 열기로 더워서 미칠것 같았고, 또 멍하니 서 있자니, 이건 마치 맨땅에 헤딩하는 것처럼 아무런 의미없는 몸짓처럼 느끼기 시작했다. 좀 더 효과적으로 잘하고, 나도 사는 방법이 없을까,,하다가 생각해낸 방법이 있다. 이후로는 아침 8시 10분쯤에 도착하여 시작했다. 그러면 일찍 출근 하는 대사관 중국 직원은 8:30분 쯤부터 보이기 시작했고 주한 중국 대사님도 출근하면서 꼭, 나를 스쳐 지나가게 되었다. 입구에 내가 서 있으니까. 어차피 너희들 중국 정부를 대상으로 시위 또는 호소 하는 것이니까.. 또한 10시쯤 넘어면 그날의 중요한 사람들이 오거나 대사님도 볼일 보러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오후 시간때 보다는 나아보였다. 그래서 보통 8:10분 부터 시작하여 출근 시간때를 공략했다. 뭔가 낌새(?)가 보이면 더하고 별일이 없어 보이면 좀 줄이고,, 나는 그렇게 했다. 그런데 내 옆에는 파륜공 수련자들, 이들은 몇년째, 날마다 항상 1인 시위를 했다. 지금도 하고 있겠지. 파륜공은 일종의 기공 수련단체인데 중국 공산당 정부가 이들이 너무 커지자, 혹시 체제의 위협이 될까봐여 박해를 한, 단체라고 한다. 심지어 산 사람의 장기를 적출하여, 암암리에 내다가 팔기도 했다고 한다. 중국 정부도 빨리 민주화 인간위주의 정부가 되어야 할 터이다.( 그 장기의 주 고객층이 한국의 환자들이란 말이 있다) 이들은 한 사람이 보통 하루에 한 시간 정도 하였다. 약속된 시간에 릴레이 즉 교대교대로 8:30 부터 하였다 하루에 6~7명이 나누어 하는 셈이다. 그렇게 몇년째 항상 하고 있는 1인 시위도 있다. 1인시위를 하러 나가면, 특히 국가 중요기관에는 한국 경찰 경호 담당 책임자들이 온다. 만에 하나 불상사나 사고가 나면 이들이 문책을 당한 단다. 그래서 이들은 무조건적으로 중국대사관 편만 든다. 내게도 차마 1인시위 하지마시요!!라는 말은 못하였지만, 강제북송 그 문제는 벌써 해결이 되었다는 둥 헛소리까지한 경찰도 있었다., 하지 말것을 은근히 여러번 종용하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그래도 끝까지 내가 100일 1일 시위를 마칠 수가 있었던 것은, 나는 그때, 묘한 사명감 같은 것이 들었다. 즉, 내가 이 1인 시위를 한다고 문제가 해결 될지는 알 수가 없는 것이지만, 이 세상의 잘못된 것에 대하여 분명히 누군가는 항의를 하는 사람이 존재해야 한다고 느꼈다. 또한 가르쳐 주면서 더 배운다는 말처럼 하다보니까.. 진정으로 북한사람의 자유를 위하여, 재중 탈북자의 자유를 위하여라는,, 숙연한 마음이 생겼다. 게다가 모든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지나가면서, 또 인터넷상에서도, 은근히 또는 직접, 수고 많다. 응원한다라는 것을 표현해주어서 내게 큰 힘이 되었었다. 아마도 분명히 나는 최소한 중국 비자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대사관측을 통하여 중국정부에 잘 보고 되어 있을 것이다. 비자가 나올 턱이 없다. 나로서는 내게 테러를 가하지 않은 중국 정부측에 감사(?)해 하는 마음도 있다. 재한국 탈북자들은 언제 다시 중국에 들어가야 할지 모르기에 1인 시위에 나서기가 곤란할 것이다. 또한 공산주의 정부 하에 있던 사람이 정부 기관을 상대로 싸운 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역설적으로 내가 적합한 인물이었나보다. 누군가 남한 태생인 사람이 나 처럼 중국대사관 앞 1인 시위에 나서주면 좋겠다. 끝으로 유튜브에 올라온 제 영상을 붙입니다. ** 북한 동포에게 자유와 해방을... 꾸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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