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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백번방문 미농학교포(조선일보 최보식기자 인터뷰)
Korea, Republic o 민복 0 325 2011-06-27 07:27:28

―근본적인 문제가 종자 보급이나 농업기술 지원인가?"

그렇다."

―북한농업과학원의 전문연구원이었던 이민복씨가 있다. 그도 증산 연구를 했다. 그의 결론은 '종자 잘못이 아니라 체제가 잘못됐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중국식 개인농(個人農)을 전국적으로 행하면 수확이 두 배 올라간다. 북한 주민들이 굶게 된 것은 정치 문제지, 농업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것이 해결될 수 없다는 걸 알자 1995년 그는 탈북했다."

…그가 어떤 압력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근본적인 것에는 토양 문제도 있다. 토양 속에 미생물이 적어 작물이 잘 자라지 못한다. 연료(燃料)가 없어 풀이나 강냉이, 목화대를 모두 땔감으로 쓴다. 토양으로 다시 들어가야 할 유기물질이 모자랄 수밖에 없다. 비료를 쓸 가축의 똥도 부족하다."

―가축 똥까지 왜 부족한가?

"가축에게 먹일 사료가 모자라고 식량도 부족하니, 가축을 잡아먹어 버린다. 우리가 농가에 돼지를 줘 기르게 해서 퇴비를 넣는 걸 막 시작했다. 나는 경기도를 찾아가 '북에 축분(畜糞)을 보내자'고 했다. 북쪽에서는 자존심이 상해 '남쪽의 축분까지 받겠느냐'고 했다. 내가 축분으로 만든 유기질 비료를 들고가 실험을 해보였더니, 토양이 개선됐다. 그렇게 북쪽을 달래 축분 1만t까지 들어갈 수 있는 허가를 받았지만, 남쪽 사정으로 불발이 됐다. 축분비료 값은 싼데 배 운송료가 너무 많이 들었다."

―다시 묻지만, 북한의 식량난은 농업의 문제라기보다 체제의 문제가 아닌가?"

어느 나라에 가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 나는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우리 민족이 한 명이라도 더 살아남기를 바랄 뿐이다. 식량이 부족하다고 하니까, 될 수만 있다면 한 명도 굶지 않게 해주고 싶다."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외국구호단체의 트럭이 오면 주민들은 식량을 받고서 사인한다. 하지만 그 트럭이 떠나면 군대가 와서 몽땅 도로 거둬간다고 했다.

"믿을 수 없다."

―미 의회에서 한 증언이다. 그런 인도적 지원이 독재정권만 연명시킨다. 선의가 악용되는 것이다. 정권의 주민 통제를 약화시키려면 시장(장마당)을 활성화시키는 쪽으로 돕는 게 옳다.

"나는 믿기 어렵다. 농장 주민들은 우리가 지원한 물품을 먹고 입고 있다. 굶는 사람의 입에서 먹을 것을 다시 빼앗아가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난리가 난다. 순박한 북한 주민들도 먹는 것에는 이악스럽다."

―북한의 다른 지역을 자유롭게 가봤는가?"

1997년부터 미국에서 봄보리 종자 120t을 갖고 들어가 북한의 안주·함흥 이남으로 이모작을 지도했다. 그래서 여러 곳을 다녀봤다. 물론 북측에서 안내해준 것만 봤다. 시골도 생각보다 잘 정돈돼 있었다. 원산이나 해주에 가도 고층 건물과 호텔이 있다는 데 놀랐다. 무엇보다 주민들이 행복해 보이는 데 놀랐다."

―행복해 보였다고?"

몹시 불행하리라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 않았다는 뜻이다.

행복지수는 어디에 있는가, 이런 생각도 해봤다."

―선생의 눈에는 독재 치하에 순치된 노예의 행복이 좋게 보였는가?"

미국에 유학가기 전까지 남쪽에서 1년 반 동안 농촌지도원을 했다. 그때 남한의 농촌은 지금 북쪽보다 더 어려웠다. 춘궁기면 사람들이 누렇게 떴다. 이런 기억 때문에 북쪽에 갔을 때 별로 이질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 세월 동안 남쪽은 눈부시게 발전했는데 북쪽은 왜 똑같이 머물러 있는가 하는 생각은 안 해봤나?"

난 혁명가가 아니다. 내가 배워서 알고 있는 것으로 최선을 다해 내 민족을 돕고 싶을 뿐이다."―같은 동포를 굶주리게 하고 탄압하는 독재자에 대한 분노는 없었나?"…."

―선생으로서는 현 정권의 대북정책에 불만이 많을 것이다.

"여유있는 남한이 좀 더 대범했으면 한다. 옛말에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하지 않는가."

―지난 정권 10년 동안 그렇게 했지만 돌아온 것은 핵무기 개발이었다.

"북쪽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겠지만…, 한 민족으로서 동질성 회복을 위해 노력했으면, 서로 협력하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 내가 정치가가 아닌 게 참으로 다행으로 생각한다.

"북한을 왕래하는 사람들은 통상 '북쪽 인사'가 된다.

독재 정권의 입장을 그대로 표방하거나 옹호한다.

이 때문에 나는 당초 인터뷰를 망설였다.

하지만 그녀의 인도주의에는 한 점 의심이 없다.

북한 주민 한 명이라도 덜 굶기겠다는 마음은 고귀한 것이다.

비록 북한 체제를 보는 입장이 달라도, 우리 사회에 그녀 같은 사람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세계를 움직이는 여성 150인'에 선정됐을 때 국적이 '북한'으로 표기됐다.

"나는 미국시민인데 왜 이렇게 됐는지 추천한 쪽에 전화를 했다.

그쪽에서 '뉴스위크가 조크(농담)를 했나 보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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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필주 ip1 2011-06-27 09:23:15
    농학박사 김필주여사는 북한농업 살리기 위해 70살이 넘도록 북한에 들락거리며 고생하시는데, 북한농업전문가 라던 사람은 농학은 연구 안하고, 집단농장 비판이나 하다가 탈북하여, 여기와서 정일이 자식이 제 아비 죽였다는 헛소리나 하고..., 이제 태풍타고 모처럼 남풍이 부는데 풍선은 안 날리고 신문기사나 퍼 나르는가?, 끌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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