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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엔 있는데 남한엔 없는 것은
Korea, Republic o 퍼온글 2 880 2011-09-30 08:02:30
(아래 글은 동아일보 2011년 9월30일자 탈북시인 장진성씨의 칼럼입니다.)
 
나는 북한에서 일반 주민들에겐 어마어마한 불법인 한국의 TV나 도서, 신문을 실시간으로 봤다. 통일전선부 직원이라는 직업적 특권 때문이었다. 통전부는 ‘평양 속의 서울이 되라’는 김정일의 현지화 지침을 조직 구호로 삼는 부서다. 그런 경력 때문에 나는 남한에 온 후 어느 국책연구소에서 6년 남짓 대북 연구를 했다. 북한에선 대남 업무를, 남한에선 대북 업무를 본 셈이다. 단순히 분단 두 체제를 살았다기보다 남들보다 좀 더 깊이 남북 분단구조를 들여다본 것이다. 그래서 누구보다 할 말도 많지만 그렇다고 굳이 이 글에서까지 북한에 대한 설명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들은 역시 그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남한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국력 차가 어마어마한데도 남한이 그 국력을 퍼주고도 끌려 다니는 정치의 후진성이 문제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도 결코 무시할 수는 없다. 가령 북한은 3대까지 세습하는 장기 독재정권이지만 남한은 단기간의 성과에 목마른 5년짜리 정부다. 이뿐 아니라 북한의 획일적 구조와 달리 남한은 야당, 시민단체, 언론의 공세에 늘 시달리는 복합구조다. 북한의 대남 전략에 충실히 협조하는 친북좌익 세력들이 맹활약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남한 정부는 상대인 북한도 골치지만 자국 내 국민 설득과 공감대 형성이란 이중 부담감에서 좀처럼 해방될 수가 없다. 더구나 국가 대 국가라는 외교관계가 아니라 한민족이란 족쇄에 묶여 실용적 선택보다 부풀려진 온갖 명분에 쫓길 때가 더 많을 수도 있다.

단지 그뿐이라면 경험과 방법을 통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겠지만 한국의 심각한 문제점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진실과 원칙의 실종이다. 진실보다 정치가 우선이고, 원칙보다 처세가 우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다르다. 그들의 원칙만은 언제나 일관했다. 받을 건 다 받아내고도 백주에 대놓고 대포까지 쏠 만큼 자기들의 체제 이익에 충실했다.

그런데 우리의 대북정책은 과연 어떠했는가. 먼저 햇볕을 쬐어 북한의 외투를 벗기겠다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북한의 두꺼운 폐쇄성은 김정일의 필요에 따른 것이지 결코 주민들 스스로가 무더위의 고통을 인내하며 외투를 고집한 것이 아니다. 그렇듯 햇볕의 목표를 잘못 정한 탓에 지금도 퍼주기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민주당이 주장하는 평화번영정책 또한 진실과 원칙을 초월했다. 얼마 전 손학규 대표의 “원칙 있는 햇볕정책” 발언 자체를 심각하게 문제 삼는 민주당을 보며 실망감이 커졌다. 분단 현실과 상관없이 대북정책을 아예 당의 이념처럼 말뚝 박겠다는 것은 곧 분단 조국을 계승하겠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양보와 선의가 최선이라면 과연 어디까지가 우리 국민의 최후란 말인가. 그래서 북한인권법도 김정일의 눈치를 봐야 하고, 유엔 무대에 가서까지 자기 민족의 비극에 눈감고 기권한 대한민국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을 향한 일방적 질주만 알았던 우리의 대북정책에 비로소 속도 조절이란 이성을 찾게 해주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우리는 여유롭지만 김정일은 과거가 길었던 것만큼 오늘이 초조하다. 중국에 황금평을 열어주든 러시아에 가스관을 허락하든 개방의 문을 조금이라도 열지 않으면 자기가 먼저 질식해 사멸할 처지다. 이렇듯 남한이 이성을 갖는다는 것은 곧 북한에 이성을 가르치는 과정이 된다. 이는 물질의 상호주의만이 아니라 이성의 상호주의로도 이어질 수 있다. 현 정부의 비핵화 원칙은 그 첫 실험이고 증거인 셈이었다. 하지만 나는 햇볕정책을 비판할 줄 알았던 이 정부에도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북한 인권과 납치 문제, 탈북자 정책에서 진실했는가, 과연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피격 때도 원칙을 지켰는가라고 말이다.

장진성 탈북시인
(진실과 원칙의 실종 때문이다. 정말 맞는 말인 것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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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탄너구리 이민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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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득권무뇌 ip1 2011-09-30 11:45:56
    정말 공감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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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흐흠 ip2 2011-09-30 14:22:12
    동아일보 읽었는데 여기서 다시 보네요, 정말 잘 된 글이라 생각합니다
    진실과 원칙이 없다고 정확히 짚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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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rk5286 ip3 2011-10-03 22:39:07
    1,2가 있유. 정부는 1관성있는 원칙하에 북한을 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 진성님 같은 북한의 중심에서 있었던 분들의 의견을 십분 참고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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