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질 수밖에 없는 황장엽,김덕흥 차이(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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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김덕흥 자서전 <나는 자유주의자이다.> 독후감의 하나이다. 황과 김은 가족 친지를 희생하며 탈북망명한 생사의 동지이지만 남한에 와서 믿기 힘들 정도로 갈라진다. 황장엽의 서거 때도 김덕흥은 화환만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 갈라 질레야 질 수 없는 이들인데 무엇이 이들을 갈라놓았을 가?! 김정일의 비유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햇볕>정부기관의 집요한 공작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표면 뒤에는 각자 사상과 주장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읽혀졌다. 그 대표적인 것이 사상과 통일론의 차이이다. - 김덕흥은 주체사상의 연장인 황장엽의 <인간중심철학>을 반대했다. 지난 주체사상의 해악 성을 회개하고 철저히 부정해야 자신들의 거국적인 망명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김덕흥의 주장에 긍정한다. 반대로 통일론에서는 황장엽에 긍정한다. - 사실 주체사상은 허구이며 조작이다. 황장엽 자신의 회고록에서 증명해주고 있다. 김일성대학 총장시절인 1967년 - 역사발전의 법칙에 관한 논문을 발표 사건으로 철칙위기에 몰린다. 대학 하수구에 손을 넣어 청소하며 고민하였던 그에게 찾아온 김일성의 제일 충복 김일 부수상은 <사상적 과오는 사상으로 극복>하라고 충고를 준다. 그 뜻은 수령이 무엇을 요구하는지에 맞는 이론을 만들라는 것이다. 정치 감각이 무딘 학자풍에게 결정적인 살길을 틔워준 것이다. 당시 김일성의 초미의 고민은 <부모>격인 소련과 중국 간 분쟁의 뜸 바구니에서 살아남는 것이었다. 소련 쪽에 기우리자니 중국을 무시할 수 없고 중국 쪽에 기우리자니 소련을 무시할 수 없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형편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극좌적인 <문화대혁명>의 중국은 양 의자에 엉덩이를 걸쳐 앉은 꼴이 김일성이라고 공격하고 있었다. 실제로 서로의 국경인 두만강, 압록강 가에서는 <강뚝쌓기>싸움이 벌어졌고 추후 중국과 소련은 <진보도 전투>라는 군사행위에까지 이르게 된다. - 이 난관을 타개하기 위한 사상으로 황장엽을 시켜 만든 것이 주체사상이다. (중퇴생인 김일성 수준으로 만들 수는 없다.) - 1972년 공산대학 수석졸업생이었던 필자 부친의 교재 <주체철학>을 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는 맑스-레닌주의를 발전시킨 것이라고 했지만 몇 년이 지나서는 <완성된 공산주의이론>창시라고 공표한다. 맑스-레닌을 능가하는 <천재적 이론가> 김일성이 창시한 주체철학의 기초는 -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 공기는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것을 천재적 발견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왜냐면 모든 철학이 사람을 논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는 가?! - 1972년 일본기자에게 처음 말한 김일성의 주체사상은 <인민대중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 그러나 결과는 수령론을 대입하여 수령이 유일한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 로 나타난다. 180도 뒤집은 사기사상인 것이다. - 그럼에도 황장엽은 탈북 망명하여 남한에 와서까지 주체사상을 끝까지 놓지 못하였을 가?! 한마디로 인생말년에 뭔가 남겨야 한다는 욕심의 발현이라고 본다. 주체사상으로 자기가 이용당하였지만 그 사기사상이 워낙 유명해져 그 자신도 승차하여 버린 것이다. 그리고 변명은 자신이 만든 것을 김일성이 악용하여 그렇지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인간중심철학>이라는 것이다. 이런 변명이 잘못되었다고 김덕흥과 황장엽의 비서였던 김길선 전 국방과학원 기자가 지적하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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