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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천씨가 왜 이리도 많은가 기독교 선교회에도 천씨 역시 천씨
역시 천씨 16 691 2004-12-08 08:29:22
"탈북자 공관진입엔 시나리오 있었다"

[한겨레 2004-12-07 22:12]



[한겨레]
[기획탈북] 인권의 어두운 그늘 1. 나는 탈북자 가이드였다
2. 통장깡 부추기는 브로커들
3. 내몰리는 10대 탈북자들
4. 탈북자들의 ‘아메리칸 드림’ 미국의 북한 인권법과 상승 작용을 일으키며 진행되고 있는 기획탈북 및 동반탈북으로 머지않아 국내입국 탈북자가 1만명선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브로커가 개입해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기획탈북이 이어지면서 사회·정치적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다. 기획탈북으로 나타나는 탈북자 문제의 ‘오늘’을 네 차례에 나눠 짚어본다. 체험수기를 통해 기획탈북의 문제점을 고발한 오영필(34)씨는 비디오 저널리스트(브제이)로 2001·2003년 중국과 내몽골에서 탈북자를 돕다가 19개월 동안 중국 감옥에 수감됐던 사람이다.
지난해 2월 말 강 사장한테 전화가 왔다. 강 사장은 “며칠 뒤 한 일본 방송국 기자로부터 연락이 갈 것”이라고 했다. 나와 강 사장은 2001년 12월 중국과 몽골의 국경을 넘는 탈북자를 돕다 붙잡혀 감옥 생활을 같이한 뒤 가까운 사이가 됐고 나는 더욱 탈북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강 사장의 본명은 천아무개씨로 기획탈북에 적극 관여하고 있는 한 선교단체 대표다. 기획탈북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신변보호 차원에서 서로 사장, 부장이란 호칭을 쓴다. 2003년 2월28일 강 사장이 소개한 일본의 (TBS) 기자를 서울 신촌역 근처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그의 이름은 구보 유이치였다. 그는 최근 일본사회가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계기로 탈북자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도쿄방송은 앞으로 몇 년 동안 북한 인권 문제를 집중적으로 취재하겠다고 설명했다. 구보는 나에게 탈북자들이 중국 주재 외국 영사관에 진입하는 과정을 취재해 달라고 요청했다.

선교단체 소개로 도쿄방송과 취재 계약 다음날 다시 만난 구보는 중국 광저우는 다른 도시와 달리 외국 영사관들이 독립된 건물이 아닌 일반 큰 건물 안에 있어 경계가 허술하고 진입이 쉽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영사관의 구조는 어떤지, 진입을 어떻게 할 것인지, 탈북자들의 뒤를 어떻게 따라갈 지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했다. 나는 그의 설명을 듣다가 그가 요청한 일이 탈북자들이 외국 공관에 뛰어든 ‘발생 상황’을 취재하는 게 아니라 ‘상황 자체’를 만들고 그 과정을 찍는 것임을 깨달았다. 게다가 그는 될 수 있으면 탈북자들의 모습을 가까운 곳에서 생생하게 찍기를 원했다. 예를 들어 탈북자 공관 진입 등 화면의 활용 가치가 높을수록 추가 비용 (500만~150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구보는 비록 계약서에는 상세한 내용을 담지 않아도 문제가 생길 경우 실질적으로 꼭 돕겠다며 안심시켰다. 대신 나에게 중국 공안에 붙잡히게 되면 중국 안에 있는 도쿄방송 기자들의 안전을 위해 탈북자 공관진입 취재를 위한 계약을 모두 부인할 것을 요구했다.

떠나기 3일전 구보와 함께 선교회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강 사장은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고, 어떻게 할 것인지 기획탈북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주었다. 구보는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강 사장과 내가 대화하는 모습을 찍기 시작했고 강 사장은 그를 의식한 듯 대화 도중 자리에서 일어나 중국지도를 가리키며 내게 탈북자 ‘가이드’를 맡으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당황스러웠다. 도쿄방송을 대신해 취재만 하는 줄 알았는데, 탈북 가이드를 갑자기 시키다니.

장소·방법 제시하며 ‘가이드역’떠맡겨 하지만 차마 그 일을 못하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강 사장과는 감옥 생활 등 어려움을 함께 나눈 사이인데다 이미 도쿄방송과 계약이 다 끝나고 출국 수속을 마친 상태였기 때문이다. 강 사장은 현지에서 나를 도와 줄 조선족 ‘심 부장’에게 중국 돈 5천위안을 보내라고 한 다음, 탈북자들이 진입할 영사관을 둘러보고 그 정보를 전해주기로 한 ‘제크’라는 외국인의 연락처를 알려 주었다.

3월8일 중국을 향해 떠나기 전, 눈을 감고 무릎을 꿇었다. 내몽고 국경지대에서 아쉬운 작별인사를 했던 탈북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의 한국행 실패가 마치 내 잘못인 것처럼, 그들이 송환된 이후 삶의 고단함이 느껴져 난 어느새 흐느껴 울고 있었다.

광저우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심 부장과 함께 제크를 만나 탈북자들이 진입을 시도할 덴마크,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일본 영사관의 구조와 상황을 살폈다. 도쿄방송은 이왕이면 일본 사람들이 깊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일본 대사관을 선택해 진입할 것을 요구했으나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미국 영사관이 나을 듯 했다. 중국에 온지 5일째인 3월13일 오전. 광저우역에서 탈북자 5명을 만나기로 했다. 오전 9시께, 광저우역에서 1㎞ 떨어진 한 가게 앞에서 다섯 명의 탈북자 들을 만났다. 카메라를 꺼내서 이들의 모습을 화면에 담고 떠나려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공안들이 각각 양 옆의 손목을 꺾고 수갑을 채웠다. 진작부터 공안이 우리를 미행했던 것이다.



중국 공안은 기획 탈북의 배후가 누구인지 강도 높은 수사를 했다. 나는 도쿄방송과의 약속 때문에 그들과 관계된 것을 끝까지 이야기하지 않았다.

기획탈북 ‘정치적 의도’뒤늦게 깨달아 나는 올해 7월9일 무죄판결을 받고 16개월만에 중국 감옥에서 나왔다. 나의 석방을 위해 애썼던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감옥에 있는 동안 밖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자세히 들었다. 도쿄방송은 계약내용과 달리 나의 석방을 위해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면서 기획탈북 취재를 준비한 도쿄방송이나, ‘절박한 생존의 위험’에 처한 탈북자 수백명을 데려온 것을 공공연히 자랑하며 탈북자의 대부로 불리는 강 사장, 어느 쪽으로부터도 나는 ‘인권과 생존’을 보호받지 못했다. 이들의 이중성에 깊은 배신감을 느꼈다.

하지만 정신적 공황에 빠진 진짜 이유는 내가 참여한 이번 일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탈북자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게 하는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는 ‘기획탈북’이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기획탈북이 중국과 북한을 자극하여 중국 안에 살고 있는 탈북자들의 대대적인 단속을 유도해, 중국에 잔류하고자 하거나, 경제상황이 좋아지면 가족이 있는 북한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탈북자들의 인권상황을 더욱 어렵게 하는 행위란 것을 뒤늦게 알았다.

한동안 시간이 흘렀음에도, 광저우역에서 함께 붙잡힌 이름 모를 탈북 청년의 불안하게 떨리는 검은 눈동자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들에 대한 죄의식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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