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에서 알아낸 625 조국해방전쟁 진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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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 삐라내용 중에서 참 한심한 것은 6.25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은 북조선이라는 것이었다. 대학공부도하고 연구원까지 하면서 이런 뚱딴지같은 소리는 처음이었다. 선입견대로 삐라에서 근거로 잡는 전쟁원인도 한심하였다. 첫째근거, 소련 공산당 총서기였던 후르쇼브가 회고록에 밝혔다는 것이다. 북한사람이 알고 있는 후르쇼브가 누구인가?! 수정주의 두목으로서 스탈린을 화장하고 공산진영을 분열시킨 놈이다. 미국에 먼저 찾아가서는 여자하고 놀아났다는 등 아주 추잡한 놈으로서 북한사회에서는 흔히 라고 미워하였다. 그런 놈이 별소리 안하겠나! 둘째근거, 이학구라는 인민군대좌(대령)가 귀순하여 불었다는 것이다. 이학구가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반역한 놈이 별소리 안하겠나! 셋째근거. 어떻게 전쟁 3일 만에 수도 서울이 먹히겠는 가이다. 그거야 떨떨하니까 먹힌 것이지! 이와 반대로 북한에서 교육받은 전쟁근거는 너무나 멋 있었다. 그 첫째로, 전쟁전야 미 국무장관 덜레스가 3.8선을 시찰하는 사진. 불난 곳에 성냥가지고 있지 말라 했는데 전쟁 직전에 시찰했다. 또 미국의 괴뢰인 남조선 놈들이 상전의 지시에 따랐을 것이다. 소련군 철수에 1년 늦어 미군 철수(1949년)는 다 연막작전인 것이다. 그 위력한 근거는 전쟁 전에 미군가족들을 빼돌리는 기록영화가 있다. *아마도 전쟁 직후의 것을 전쟁전이라고 선전하는 것 같음 둘째로, 남조선괴뢰군 신성모 국방장관이란 자는 고 항상 떠들다가 북침한 것이다. 군대의 우두머리가 한 소리이니 더 의심할 나위가 없지 않는가. 셋째로, 이모든 전쟁책동을 꿰뚫어보시던 백전백승의 김일성 장군님의 현명한 대처로 3.8선 1-2 키로까지 쳐들어온 적들을 일거에 반격하여 3일 만에 서울을 해방한 것이다. 이렇게 세뇌되어 남조선삐라 소리는 믿어질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삐라가 준 의미는 있었다. 전쟁도발자를 상론시킨 것이며 또한 의구심도 주었다. 그것은 남침근거 세 번째로 지적된 이었다. 전쟁사를 다 뒤져보아도 전쟁을 일으킨 쪽이 처음부터 수도를 내줄 만큼 밀린 적은 없다는 점이다. 또한 전 전선이 1-2키로 들어왔다가 자로 대듯 일시에 밀려나갔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다. 증오가 북한을 유지하는 정신적기주인데 기본근거는 전쟁에 두고있다. 평화스러운 공화국을 침략하여 너무 많이 죽이고 파괴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먼저 때리고 맞았다면 그렇게 격렬하게 증오할 수 없을 것이다. 과연 누가 먼저 전쟁을 일으켰을 가?! 남과 북의 정치선전이 아니라 진실을 말해줄 사람은 누구일 가?! 그렇다! 전쟁 초기 참가자나 3.8선 주민을 만나보면 될 것이다. 마침 기회가 왔다. 출장 중에 전쟁초기 참가자를 만난 것이다. 바로 김정숙군 농장 경비 아바이었다. 직설적으로 물으면 진실을 말할 수없는 북한환경을 잘 아는 나는 전쟁영웅이라며 전투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였다. 말동무가 없던 차에, 그리고 영웅이라고까지 추어주니 신바람이 났다. 아바이는 본래 팔로군으로서 해남도 전투까지 참가한 백전노장이었다. 6.25전쟁 일어나기 몇 달 전, 조선사람 만 뽑아 기차를 태운다. 기차가 압록강을 넘어 신의주에 들어서서야 조선에 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인민군 복을 내주어 갈아입고 입던 군복은 차창 밖으로 던져주니 옷이 귀하던 시절이라 백성들이 그렇게 좋아하였다고 한다. 도착한 것은 원산, 그런데 기분들이 나빴다. 팔로군과 달리 인민군은 상하견장이 있어 하루아침에 너는 별 달고 나는 뭐야?! 차별이 심하게 느껴져 원산시내에 나가 진탕치 듯 놀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련고문관이 나와 군기를 잡더니 강원도 양양, 속초 부근 3.8선에 배치하는 것이다. 앞에는 남조선군의 최고악질부대 백골부대가 있었다고 한다. 1950년 6월25일, 새벽4시 대포를 들이쏘고 돌격하여 들어가니 백골이 되도록 싸운다는 군대가 팬티바람에 들고 뛰더라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속으로 . 6.25전쟁도발자가 누구인가를 똑바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전쟁하려는 군대가 군복도 입지 않았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왜 북한은 이 엄연한 역사를 필사적으로 속이려 하였을 가?! 또 누구를 대상해서 속이려 하였는가?! 그것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주민을 상대로 속이려한 것이다. 그것은 일단 성공한 것 같다. 비교적 공부한 축에 속한 내가 지금껏 속고 있었다는 것을 보면. 그러나 더 늦기 전에 진실을 알려야 한다. 그래야 미친 듯이 격렬한 증오와 우상 심을 잠재울 수 있다. 이러한 의식작업은 통일 전이나 후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면 어떻게 진실을 알려야 할 가? 사상유래 없는 폐쇄국가 북한을 상대해야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전파매체는 물론 통행의 자유마저 없는 거대한 감옥이다. 그럼에도 좋은 방법이 있다. 수백만 총칼로도 막지 못하는 것이 하늘과 바다이다. 하늘 따라 풍선으로, 바닷물 결 따라 부유물로 소식을 전해야 한다. 값싸고 안전한 풍선과 부유물에 라디오와 삐라를 달면 된다. 그리고 끊임없이 반복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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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모르지만은 전쟁초기 북한의실정은 알고이야기하지요
1948년 9월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립
공화국 최고인민위원회상임워원장 최용건 한국의 대통령과같음
최고인민위원회내각수상 김일성 부수상 김책.홍명희
인민군 보위상 안길 인민군총참모장 강건
김일성은 중국지원군이 나온다음 최고 사령관이 되였어요
또님이 말대로 중국지원군이 왜 김일성 이 말을 들어요 그때당시에는 중국지원군이 최용건이 말을 더 잘들었어요 님이 잘모르시겠지만 최용건이 중국 황포 군관학교 장개석이 교장하고 주은래가 정치주임할때 최용건은 군사교관으로 있었어요 상식적이지만 김일성이 전쟁초기나 후에나 권력이 없었어요 김일성은 1958년 반대파숙청이후부터 서서히 권력을 쥐기시작했어요 전쟁시기에도 군관들을 박헌영이가 마음대로 사단장 연대장 올려놓고 내려놓고 하였어요 모르면 북한이 대학나왔다하지마세요 님이 말처럼 북한이 대학이 남이 집화장실이 아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