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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에서의 죽음의 나날들(2)
Korea, Republic o 천국의모모 5 420 2008-07-09 16:24:39
그다음날부터 영희는 그냥 설사를 하였다. 그러면서도 일은 일대로 그냥 했어요 . 이교양소안에서는 설사만 하면 죽거든요.하루에도 400명의 교양생들중 10명씩 죽어나갔어요. 때문에 설사를 할가봐 모두 근심이였다.매일 죽은 시체들이 나갈때마다 난 영희의 두손을 꼭 잡아줬다.어느덧 벼이삭도 여물어 가을 할때가 되었다.우리는 벼를 낫으로 베고 또 그걸 묶어서 크게 5단씩 지고 날랐다.이걸 빨리 날라야 했다.일인당 과제가 있는데..이과제를 다 못하면 때를 굶어야 한다.신발을 신으면 진흙이 많은 증산이라 빨리 나르지 못해서 신 벗고 날라야 했다.영희는 설사를 넘 해서 맥이 다빠져 주저 앉았다.나는 영희의 등에서 벼단 5개중 두개를 내려서 더지고 뛰였다.난 영희의 손을 꼭쥐고 놓질 않고 있는 힘껏 다녔다. 영희는 처음보다는 가벼워졌는지 곧잘 다녔다.


벼단 7단씩이나 등에 진 나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허리를 펴질 못했다.그래도 참았다. 영희가 잘 걸을수만 있다면 ,영희까 힘들지만 않는다면 난 힘들어도 괜찮았었다. 벼단도 다 나르고 인젠 탈곡할때가 되었다.때는 11월말 12월초가 돼서 많이 추웠다. 옷은 없고 50센치메터넓이 ,길이는 1,5메터되는 비밀방막으로 몸을 둘둘감고 그 위에 동복을 입었다.탈곡은 정전이 자주되여 밤1시,2시,3시까지 몸건장한 사람들로 뽑아서 갔다. 나도 거기에 속해서 밤에 탈곡헀다. 잠이 제일 올 시간이 돼서어떤 교양생들은 벼단을 쥐고 자면서 탈곡하다가 기계가 벼단을 잡아당겨 두 손목이 잘리운적도 있었다. 낮엔 낮대로 전기가 없어 발로 탈곡하는 족발 탈곡기로 탈곡을 하였다.탈곡하면서 우리는 엇바꾸어 벼를 먹었다.처음에는 이 날벼가 먹기좀 힘들었다. 한번먹고 하루지나 두 번,세번 ....이렇게 날벼먹는 버릇을 궂혔고 익혔다. 족발탈곡기는 한조가 7명이였다.4명이 발로 기계를 돌구고 한명은 벼단을 주고 한명은 벼짚을 묶고 두명은 벼를 삽으로 쳐야한다. 다른 한명은 벼짚을 풀어준다. 우리는 한명씩 벼무지 옆에서 벼를 한창먹다가 한 5분 지나가면 또 바꿔서 다른 사람이 벼를 먹게 하였다. 이렇게 서로 엇바꾸어 가면서 날벼로 주린 배를 채웠다. 증산에 있었던 교양생들은 벼를 정말 한사람이 한마대씩은 먹은 것 같으다. 그때 그벼가 왜 그렇게 맛있던지.....옥수수 껍질로 밥지어서 까만 동그란 쇠덩이로 찍어 주는 밥이 배가 차질않아 벼로 배를 채우던 일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때 그벼를 먹은 어혈로 위가 지금 가끔 아푸고 나의 몸은 지금 정상이 못된다.) 그벼가 없었다면 배가 고파서 일을 못했을지도 모른다. 근데 이벼도 “선생님“한테 들키면 큰일난다 들키지 말고 먹었어야 한다. 그래서 한사람이 벼먹을 때 다른 사람들은 탈곡하면서 ”선생“이 오나 망을 잘 봐야 한다. 그러던 어느날 이젠 벼탈곡도 다 할무렵이였다. 울이조는 7명인데 6명다 먹고 내차례였다.나는 앉아서 두손으로 벼를 쥐고 동맹이를 고르며 비벼서 먹었다. 한번먹고 두 번째 입에다가 넣는 순간 ”언니, 언니“ 하는 영희의 다급한 소리가 들렸다. 영희의 소리에 뒤를 돌아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선생“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입안에는 벼가 한웅큼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입안의 벼를 받아서 던지고 ”선생“앞으로 다가갔다.”선생“은 웃으면서 ”너 이자 뭐했니?“하면서 물어보았다. 나는 ”선생님 정말 잘못 했습니다.“하면서 ”선생님”앞에서 무릎을 끓고 빌었다. 탁!~ 순간 내눈에 번개불이 번쩍이였다. 선생이 구두발과 나무각자로 내 머리를 내리친것이였다. 차거운것이 내얼굴에서 흘러내렸다. 머리가 터진것이였다. 사정없이 와닿는 구두와 나무각자 , 사정없이 흘러내리는 붉은피, 나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


파란 하늘에서 비둘기들이 날았다. 엄마비둘기 ,아빠비둘기, 동생들 비둘기, 내비둘기 .. 거기에는 영희비둘기도 있었다. 다들 웃으면서 훨훨 날고 있었다. 특히 영희는 너무 좋아서 “언니 나 잡아봐 ”하면서 훨훨 날았다..


........



난 눈을 떳다. 꿈을 꾸었던 것이다. 영희가 울면서 젖은 수건으로 내 얼굴을 닦고 있었다.영희를 부르는데 입이 아파서 부르지 못했다. 영희는 “언니 아무말하지마...흑흑~! ”나는 영희의 말을 듣고야 내가 왜 입이 아픈지를 알았다. 머리에서 피가 난것도 성차지 않아 넋을 잃고 쓰러진 나한테 다가와 입에다 손넣고 입을 찢어놨다는 것이다. 그런다음 또 구두발로 배를 마구 때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조사람들보고 “다시 또 얘처럼 벼를 먹으면 이렇게 비참한 일만 있을 것이다.알았어?”라고 말했단다. 이말을 듣는 순간 난 소름이 끼쳤다. 그까짓 벼를 먹었다고 이렇게 처참하게 참혹하게 때린단말인가...이거 정말 사람사는 사회란 말인가 ... 영희는 날 부두켜안고 왕왕 울었다. “언니 ,미안해 내가 좀더 빨리 알려줘야하는데....언니야~~~!” “영희야 .너탓이 아니다. 아니야 아니라고....알겠니?.. 이 바보야 너탓이 아니란 말이야~~” 영희의 마음이 너무나 안타까워 울었다. 내입은 혀편이 없었다. 영희가 붙힌 풀을 다진 약을 그냥 붙이고 다녔다. 영희도 설사를 하면서도 나에 대한 괸심은 버리지 않았다. 영희의 설산 좀처럼 멈추질 않았다. 탈곡도 다하고 이젠 제법겨울이 왔다. 창밖에선 함박눈이 펑펑쏟아져 내렸고 쓸쓸한 바깥마당에는 하얀눈들이 쌓여있었다. 생일에도 설에도 언제한번 고향에 대한 생각, 어디에 계시는 지도 모르는아버지, 어머니, 아직도 ,지금 이시각에도 찾질 못한 두 동생들 ~한시도 잊어본적이 없는 나였다. 눈물은 하염없이 흘러내렸고 마를줄을 몰랏다.


어머니 ,아버지 어데계십니까.!? 왜 우리가정은 이렇게 뿔뿔이 헤여져야 합니까!......


나는 나고 동생들은 어데 있는지.. 이추운 겨울에도 옷이나 제대로 입고다니는지..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는지 걱정이 됩니다. 어머니 어데계세요?! 아버지 어데계세요?!.................


한시도 잊은적없는 부모님과 동생들이다.우리는 98년도에 다 헤여졌다. 아버진 아버지대로 나셨다가 못들어오시고 어머니도 여동생과 함께 중국에 쌀가지러 가신다고 나섰다가 통소식을 모르고 있었다. 난 남동생과 함께 있다가 량강도에 있는 대홍단에 고사리 뜯으면 하루에 돈을 얼마나 준다는 얼림수에 두만강인줄도 모르고 인심매매군한테 팔리워 중국땅에 들어선것이였다. 동생보고는 일주일이면 온다고 해놓고 일년이 다지나도 가질 못했으니 동생은 날 기다리다가 장마당이나 거리를 다니면서 밥빌어먹는 “꽃제비”가 되었단다. 난꼭 우리가족을 다시 찾아한지붕밑에서 살겠다고 자주 결심했다. 영희도 이러는나한테 힘내라고 나의 손을 잡아주고 나를 꼭 안고 놓질 않았다.


겨울이라고 일감이 없는건 아니였다. 겨울에도 신발없으면 맨발로 있으면 있는대로 입고신고 하면서 옥수수대지러 밭에 나가야했고 눈이 많이 오는 날에는 가마니를 손으로 만들어야 했다. 새끼도 꼬아야 했다. 겨울일이 여름일보단 밖에 나가는 수가 적어서 밥이란곤 형편이 없었다. 무우시라지도 소금도 않넣고 국을 끓였고 밥량은 점점 줄어들었다. 사람죽어나가는 수가 여름보다 점점 많아졌고 추위는 점점 드세졌다. 일주일에 사람죽는수가 한달구지씩 되었는데 그수가 10명 넘었다. 사람이 죽으면 베니실린 병에 이름과 생년월일, 출생날자 ,나이를 적은 종이를 넣고 목에다 걸어준다. 그런다음 비닐로 몸을 둘둘 말아서는 달구지에 올려놓고는 “꽃동산”이라는데 가서 묻어놓고 온다. 그때까지 나는 아직한번도 “꽃동산”이란는데 시체묻으러 못가봤다. 모두들 갔다 왔다. 그날에도 내옆에 누워있던 아줌마 한명이 죽어서 “꽃동산”묻혔다. 살아서 있던 사람들이 한명 두명 죽어서 시체로 나갔다. 영희도 그냥 설사를 해서 점점 여위여만 갔다. 그러더니 이젠 아예 드러누웠다. 바싹 야위여진 영희는 밥먹으러 까지도 가지 못해서 내가 밥을 받아서 먹였다.


영희는 내손 꼭 잡고 “언니 나 죽구 싶지 않아. 나꼭 살아서 엄마 ,아빠가 못간 제주도꼭 가야해”하면서 눈물만 흘렷다. 마음이 아팠다 정말 안타까웠다. 아무런 약처방도 없이 누워만 있는 영희-- 약도 없고 어쩌지도 못하는 내가 정말 미웠다. 내가 할수있은것은 옥수수를 얻어가지고 불에 태워서 가루내여 먹이는것 밖에 없었다. 정말 안타까웠다. 나는 영희의 손꼭 쥐고 꼭 살아야한다고 그냥 힘있는 말만 해주었다.살고싶어하는 영희-부모없이 혼자가 된 영희를 내가 살려야한다고 생각했다. “영희야 꼭 살아서 언니랑 같이 엄마아빠의 고향인제주도에 가자. 응? 그런데 네가 이렇게 아파서 어디 제주도 가겠니? 빨리 언능 나아야해 .알았지?”말은 이렇게 해주지만 밖에 나와서는 울고 또울었다. 영희가 점점 살것 같지 못하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던 것이다.2,3일 지났을까?...그날따라 영희는 나를 찾았다. 나를 자기곁에서 떠나지 못하게했다.너무 야위여서 예쁜 영희의 본 모습은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말도 겨우했고 입도 겨우 열었다. 영희의 숨이 가쁘게 들렸다. “언니 나 ...아무래도.. 안될것같아요...”“무슨 소릴하니?..너 뭐가 안된다는거야?”..


“언니 ,미안해요. 나 먼저 제주도에 가있을게. 언니 ..꼭 와야돼요 ..네?....”


영희는 가쁜숨소리를 내며 가까스로 말하였다. 나는 와락 부둥켜안고 왕왕 울었다. 영희야~


..................

계속하여 (3)부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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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민복 2008-07-09 16:44:38
    말이 나가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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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피투데이 2008-07-09 19:52:18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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