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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사람은 자유대한민국을 죽음보다 더 강한 사랑으로 사랑해야 한다.
Korea, Republic o 구국기도 0 949 2008-09-28 15:57:30
1. [그 남편이 투기함으로 분노하여 원수를 갚는 날에 용서하지 아니하고 아무 벌금도 돌아보지 아니하며 많은 선물을 줄지라도 듣지 아니하니라.] 性(성)의 嫉妬(질투)는 인간의 本性(본성) 속에서 인간 사랑의 반대인 살인적인 증오를 만들어낸다. 이런 증오에 얽혀지면 결국 범죄자가 되는 것에 노출된다. 이런 癡情(치정)에 얽힌 妬忌(투기)로 말미암아 살인 폭행 등의 범죄행동들은 이성에 통제되지 않을 경우가 많고 자주 일어나는 범죄 중에 하나이다. 사람마다 이런 치정에 얽힌 투기적인 분노로 인해 시달리는 경험이 있을 것으로 본다. 性(성)의 嫉妬(질투)는 결국 자기 것을 지키려는 것에 있다는 것으로 우선적으로 보여 진다. 또는 그런 식으로 보려는 것이 여러 내용 중에 하나의 들여다 볼 수 있는 문제일 것 같다. 또 다른 내용은 인간 속에 성적 사랑을 지키는 것에 合當(합당)한 反應(반응)성질이 없다면 사랑일 수 없다는 것을 말함이기 때문이다. 성적인 사랑은 반드시 질투가 있고 질투가 없는 성적 사랑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 때 자기의 모습과 形狀(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셨는데,

2. 인간 속에 嫉妬(질투)는 인간 속에 貞操(정조)를 지켜야 하는 성적 사랑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속에 있는 질투를 본 따서 만들어주신 성품이기도하다. 하나님의 성품으로 만들어진 여러 유형의 질투와 성적인 질투가 결국 타락하여 악마의 살인적인 증오로 이어지게 한다. [너는 나를 인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라고 하는 말씀이 있다. 妬忌(투기)는 陰府(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 그 氣勢(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다고 하는 말씀을 보면, 곧 죽음보다 강한 사랑의 질투라고 하는 것인데, 이런 질투가 없는 성적사랑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천국은 이런 하나님의 질투가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한다. 천국을 만들어내는 인간 구원의 능력을 작용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를 지극히 아름다운 하나님의 질투라고 표현함이 옳다.

3. 하나님의 질투가 만들어내는 것이 天國(천국)이라면 우리도 이런 것을 본받아 죽음보다 더 강한 사랑을, 하나님의 善(선)을 이루는 질투로 투기하여 우리 육신의 국가를 수호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地上(지상)에 性的(성적)인 결합을 하는 인간에게는 貞操(정조)라는 기본적인 성격(배우자에게 합당한 도리)이 있고, 정조를 어기는 것에 대한 보응적인 對應(대응)이 바로 질투라고 하는 행동을 나타내는 性質(성질)을 의미한다. 질투의 사회성의 의미는 결국 자기 사랑하는 성적인 대상에게 局限(국한)되고 있고, 그것을 지키고 또 소유하고자 하는 사랑에 대한 對內外的(대내외적)으로 일정한 의사표현의 사인이기도 하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으로 결속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지. 우리는 자주 만나 보지 못한 부부간의 순애보적인 사랑을 영화에서나 만나고 있는 것 같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으로 사는 자들의 사랑의 이면에는 음부같이 강한 妬忌(투기)가 존재한다고 한다. 결코 자기 性的(성적)인 대상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의 의미를 반응하게 하려고 주신 질투라는 성질은 어디까지나 條件反射(조건반사)임은 틀림없는 것 같다.

4. 대내외적을 자기의 아내나 남편의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지켜내기 위한 반응체계로서의 투기는 결국 자기들만의 고유한 性(성)을 누리게 되는 영역을 갖게 된다. 배우자의 질투를 느끼게 되는 것은 사랑으로 해석되고 그것을 통해 심리적인 안정을 갖게 되는 것이 또한 인간의 심층심리의 安定希求(안정희구)일 것이다. 버림을 받을 때는 받을지라도 우선은 자기의 표시를 분명히 하는 것은 질투의 반응이고, 그것이 아니면 움직일 수 없는 서로 간에 연락체계인 것 같다. 질투가 질투를 움직이는 것이다. 질투는 질투와 意思疏通(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고, 그런 질투는 서로가 서로를 잘 인식하여 서로를 위해 질투를 誘發(유발)하는 것을 피하려는 노력으로 인도하는 습성을 내보이고 있다. 또는 질투를 이용하여 상대를 자기의 성적사랑의 대상으로 만들어내는 경우를 보게 된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으로 굳어진 부부간의 질투는 사랑만을 언제든지 발생하게 하는 능력으로 作用(작용)하게 한다. 肯定的(긍정적)인 효과라는 말을 통해서 사랑의 維持(유지) 및 계속성을 만들어내는 기회를 작용하게 한다고 봐야 한다.

5. 내 나라를 지켜 내려는 마음도 이런 질투가 작용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남이 나보다 나으면 질투가 난다고 한다. 시기 또는 시샘이라는 말이 있고 妬忌(투기)라는 말이 있다. 그런 것은 性(성)의 작용 반작용에 국한되지 않는다면 결국은 무한 경쟁에서의 경쟁심의 표현이고 또는 잘못된 경쟁 심리의 표현일 뿐이다. 지금 말하고자 하는 질투는 죽음보다 더 강한 사랑으로 사랑을 하고자 하는 내용을 局限(국한)한다. 죽음보다 강하게 사랑해야 하는 것은 곧 貞操(정조)적인 사랑인데,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것과 부부간에 대한 것과 국가에 대한 것이다. 이런 것에 확실하게 죽음보다 더 강한 사랑을 요구하고 있다. 七去之惡(칠거지악)중에 하나인 妬忌(투기)는 여인의 德性(덕성)의 반대로 보고 蓄妾(축첩)의 사회적인 현실을 무조건 받아들이게 하던 物理力(물리력)의 시대가 이미 훨씬 지나간 것은 분명하다. 이제는 여인들이 마음껏 질투할 수 있고, 그것으로 죽음보다 더 강한 사랑으로 만들어 가려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보게 한다. 타인에게서 내 것을 지키려는 노력의 의미는 그런 데 있다.

6. 그런 질투로 성적대상의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무엇으로 사랑을 對內外(대내외)에 표시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질투가 최후에는 끊어지는 아픔으로 이어지게 하고, 결국은 마음속에 고이 묻어 버리고 질투를 昇華(승화)하는 시간의 세월을 보내려고 한다. 세월의 추억 속에 담아가는 질투는 그리움이라고 하는 첫사랑 같은 미련으로 남아지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이 정조를 가지고 섬겨야 할 대상이 있다면 위로는 하나님과 아래로는 남편과 아내와 국가다. 글로벌시대에도 국가를 정조를 가지고 섬겨야 한다는 의미로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고 본다. 反逆(반역)자라는 것은 그 국가에서 살아 갈 자격을 스스로 버린 자들이다. 이런 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죽음보다 강한 국가사랑으로 懲戒해야 한다. 이런 징계를 위해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질투이다. 인간은 세상의 모든 악마적인 질투에 붙잡히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목적만을 달성하게 하는 하나님의 질투를 공급받아야 가능하다. 악마적인 질투에 붙잡히면 살인자가 되고 파괴자가 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질투가 없다면 어떻게 그들의 행동을 침착하게 단죄할 수 있다는 말인가?

7. 남편의 질투, 아내의 질투, 하나님의 질투, 국가에 대한 질투 등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필요하고 인간의 당연한 도리이다. 하나님의 질투의 사회공헌도는 참으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만들어낸다. 하나님의 질투는 결국 가정을 지킨다는 것을 가져오고 신앙의 순수를 지켜 천국을 이루는 것을 가져온다. 더 나아가서 국가의 헌법적인 정체성을 지킨다는 것에 그 의미가 있다 하겠다. 더욱 이런 하나님의 질투는 죽음보다 더 강한 사랑으로 사랑하게 한다는 것에 그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오늘날 부부간에 죽음보다 강한 사랑을 추구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 죽음보다 강한 사랑으로 인해 평생을 정조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투사 같은 여인들과 남자들이 있다. 타락한 本性(본성) 속에 흐르는 간음의 습성을 가진 부부간에 이런 활발한 질투를 통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사실 이런 노력은 인간 속에 있는 인간의 능력 곧 인간질투의 능력을 따라 하는 行動(행동)이다. 하나님의 질투와는 本質的(본질적)으로 차이가 난다. 이런 인간적인 질투는 대게 惡魔的(악마적)으로 그 행동이 드러나게 한다.

8. 이런 질투가 결국은 癡情(치정)에 얽힌 폭행과 살인을 하게도 된다는 것에서 否定的(부정적)인 면을 보이게 된다. 이런 것은 결국은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이성적인 統制(통제)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자신을 죽여가면서, 사랑하는 연인을 죽여가면서 질투를 통해 자신의 것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어디로 가든지 이런 성적인 질투를 誘發(유발)하는 자들은 상당한 어려움을 받게 된다. 특히 유혹이 많은 직업에 종사하는 자들은 그 배우자들을 심각한 질투에 시달리게 한다는 것에 늘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것은 오히려 결혼의 의미를 잃게 만들어 다른 것으로 빠져가려는 노력을 하는데, 일종의 벗어나고픈 유무형의 환경을 만들어 낸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으로 국가를 사랑하는 자들이 된다면 이는 강력한 질투가 그 속에 살아있다는 말일 것이다. 자유대한민국을 유린하는 김정일에 대한 하나님의 성질적인 질투가 불일듯하고 그 손에서 벗어나자고 국민들에게 집요하게 열심 내어 식을 줄 모르는 힘으로 작용하게 하여 국가에 대한 정조를 불어넣는 작업을 할 것이라는 말이다.

9. 어떤 이는 평생 자기의 업과 결혼을 하고 그것을 죽음보다 강한 사랑으로 사랑하다가 간다고 한다. 國家(국가)를 위해 죽음보다 강한 사랑을 하는 자들이 公職(공직)세계에 나가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자들이 국가를 섬기는 政治人(정치인)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대한민국을 무너지게 하려는 김정일 세력의 행동에 질투를 강하게 느끼지 못하는 자들이 정치인이라면 헤픈 자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 시대의 국가를 반역하는 것에 동조하는 것은 娼女(창녀)들의 行爲(행위)가 아니고 무엇인가? 죽음보다 더 강한 사랑으로 사랑해야 지켜지는 것이 국가이다. 이런 국가를 지키는 자들이 이런 질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결국은 꺾이게 된다. 질투도 여러 종류인데, 하나님 여호와의 질투가 있다. 이런 질투는 결코 누구도 그 질투를 무너지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질투로 남편과 아내와 국가를 넉넉히 지켜내는 힘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만이 죽음보다 강한 사랑으로 陰府(음부)의 불같은 투기로 모든 적들을 이기고 순수하게 지켜낼 수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10. 죽음보다 강한 사랑의 의미로 들여다본다면 앞서 가신 先烈(선열)들의 아름다운 犧牲(희생)의 의미가 거기에 있다. 그들은 조국을 위해 질투하였고 죽음보다 강한 사랑을 할 수가 있었다는 말이다. 때문에 대통령은 어느 누구보다 더 대한민국을 위한 사랑이 죽음보다 더 강한 사랑으로 무장되어야 하고,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여야 하며, 그의 질투는 불같이 폭발해야 하고,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아야 한다. 누가 대한민국을 괴롭히거나 무시하거나 짓이기려고 하거나 蹂躪(유린)하고자 하거나 誘惑(유혹)하여 情(정)을 통하거나 反逆(반역)하게 한다면, 반드시 여호와의 불같은 투기로 이를 응징하여 죽음보다 더 강한 사랑으로 국가를 지켜내야 할 것이다. 애국심이라는 것은 나라를 동정하는 것이 아니고 죽음보다 더 강한 사랑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만큼 나라를 위해 강력한 嫉妬(질투)가 그 속에서 작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조의 의미가 가득한 곳에 반드시 질투가 있어야 하고, 그 질투는 반드시 하나님의 것을 갖는 것이 唯一無二(유일무이)한 方案(방안)이기에 성경은 오로지하여 이를 求(구)하라고 하셨다.

11. 妬忌(투기)하시는 하나님은 자신 속에 가득한 질투가 하나님 자신을 스스로 움직이고 하나님의 마음을 재촉하여 인간구원의 완성 곧 천국을 만들어 가시는데 열심 내게 하신다. 그런 질투가 인간에게 임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응하게 한다. 인간의 마음을 움직여 보다 더 깊은 사랑으로, 죽음보다 더 강한 사랑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게 한다. 이런 긍정으로만 작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질투로 인해 부정적인 것이 나타나면 이는 악마적인 것이고 인간의 것임을 우선은 구분하여 볼 필요가 있다. 모름지기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악마가 인간의 질투를 사용할 때 발생하는 증오에 있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질투로 무장된 政府(정부)와 대통령을 모시고 그분들이 대내외적으로 질투를 보여 줌으로 대한민국의 영광을 侵害(침해)하는 국가들이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적들이 한 짓을 알고 있고, 대부분 이를 하나님의 질투로 처리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시인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적들에게 유린당하도록 두 전임들이 마구잡이로 문을 열어주었으니 어쩌면 정을 통한 시절이 아니었겠는가? 이제는 분명하게 하나님의 질투로 질투하여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 죽음보다 더 강한 사랑으로 나라를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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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목: 대한사람은 북한주민을 죽음보다 더 강한 사랑으로 해방, 자유를 찾아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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