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밀고하는 30대여성 주의보? |
---|
* 다음은 월간중앙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여간첩 원정화 사건으로 한바탕 뒤집어졌던 우리 사회, 그러나 누구보다 침통한 것은 바로 탈북자들이다. 위장 탈북한 간첩으로 인해 한국에서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질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최근 있었던 원씨의 첫 공판에서 검사는 다음과 같은 증거자료를 제출했다. ‘북한 보위부가 여성들을 대거 중국에 침투시켜 탈북자 검거에 나섰다는 자료’… 이것은 과연 어디까지 사실일까? “중국에서는 요즘 ‘탈북한 젊은 여자를 조심하라’는 말을 많이들 합니다.” -탈북자 브로커 윤모 씨- 취재 과정에서 탈북자들의 입을 통해 여러 번 들은 말이다. 형제를 만나기 위해, 혹은 자신의 사업을 위해 수없이 중국을 드나드는 탈북자들에게 요즘 가장 무서운 것이 있다면 바로 동포들이라고 했다. 중국 내 탈북자들의 잠정적 숫자가 1만 명에 달하는 오늘, 중국 내에 흩어져 있는 탈북자들은 자연히 서로에게 의지하게 마련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인 것일까?“북한에서 중국으로 넘어와 같은 동포끼리 사귀면서 외로움을 달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해요. 서로 믿지 못하거든요.” -탈북여성 김씨- 탈북자로 가장해 간첩활동을 한 혐의로 체포된 원정화 사건이 우리 사회를 뒤흔들자 앙금처럼 가라앉았던 탈북자사회의 상흔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원씨는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북송하는 업무도 수행했는데, 최근 중국을 다녀온 탈북자들의 말에 따르면 이와 비슷한 일을 하는 탈북여성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마리는 한 탈북자단체 사무실에서 시작됐다. 김용화 탈북난민인권협회장은 “중국에서 탈북을 돕는 사람과 탈북자들이 공안과 북한 보위부에 잡혀간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탈북한 젊은 여성들이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위 ‘끄나풀’이나 ‘프락치’로 행동한다는 정보였다. 피해를 본 탈북자 브로커 Y씨를 만나봤다. 그는 2005년부터 몽골 루트를 통해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보내고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것은 2006년 2월의 일이었다. 중국교포로부터 “한 탈북여성이 한국으로 보내달라고 한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같은 달 20일 Y씨는 중국 옌지(延吉)로 향했다. 공안 사택에 살고 있던 미심쩍은 여성 이곳에서 만난 사람은 30대 중반의 탈북여성 김모 씨였다. Y씨는 그녀가 공안의 사택에 살고 있다는 것부터 이상했다고 말했다. “탈북한 여자가 그곳에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잖아요? 안전을 위해서였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제가 그 집에서 나오면서부터 꼬리를 밟힌 모양이에요.” 이때 한국행을 기다리던 탈북자는 모두 9명이었다. 옌지(延吉)에서 모여 몽골을 통해 한국으로 건너갈 예정이었다. 약속된 시간에 옌지 진달래광장에서 버스를 타고 출발만 기다리던 상황이었다. 갑자기 무장한 공안이 버스를 포위했다. Y씨는 버스에 타기 직전이어서 잡혀가지는 않았다. “공안에 잡혀가는 일은 워낙 자주 벌어지고, 다들 각오하고 다니니 아주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했어요. 한국행 계획에 대해 너무 잘 알더라는 것입니다. 어떤 여자는 아는 사람에게서 구한 진짜 중국인 신분증이 있었는데도 그냥 데려가더군요. 중국에 취직한 사람이라고 우겼지만 듣지도 않았어요. 오히려 ‘그것을 구해준 사람까지 불게 만들겠다’고 윽박질렀죠.” 더 이상한 것은 마치 Y씨의 속마음을 읽고 있는 것처럼 공안이 그의 계획을 다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날 함께 한국으로 출발할 예정이던 한 여성이 몸이 안 좋아 그냥 숙소에 남아있기로 했는데, 공안은 그 여자마저 찾아가 잡았다. 잡힌 이들은 지린(吉林)성 변방대 산하로 이송됐다. 이곳 관계자들은 “신고에 의해 상부 지시로 잡은 것”이라며 “돈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전에 없이 딱딱한 태도를 취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상황이었지요. 확실한 증거를 가진 사람의 고발 때문에 일어난 일 같았습니다. 그런데 거기 있던 사람들이 모두 못 풀려나고 있었는데 딱 한 사람만 예외였어요. 그게 김모 씨입니다.”결국 이때 잡힌 탈북자는 전원 북송됐다. 김모 씨는 주변에 “나는 돈을 주고 풀려났다”고 말하고 다녔지만 Y씨는 이것을 믿지 않았다. “전원이 예외 없이 북송되는 심각한 상황에서는 돈으로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여자만 돈을 주고 풀려났다니 말인 안 돼요.”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김씨의 동향을 파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씨가 한국으로 들어와 경기도 모처에서 지내고 있음을 알게 됐다. Y씨는 당시 북송됐다 겨우 다시 빠져 나온 4명의 탈북자로부터 진정서까지 받은 상태였다. 김씨는 다른 이름으로 살고 있었고, Y씨는 그녀의 집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알아냈다. 결국 몇몇 다른 탈북자와 함께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갔더니 놀라서 사시나무 떨 듯 벌벌 떨고 있더라고요. 자기는 정말 돈을 주고 풀려난 것이라고 끝까지 우기더군요.”막상 화가 나서 그녀의 집을 찾아간 Y씨도 그다지 뒷맛이 개운치는 않았다. 그러나 김씨가 어떤 형태로든 탈북자들이 북송되는 데 일조했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북송괴담’의 주인공은 주로 30대 중반 여성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자들이 형제 만나러 중국에 갔다 잡혀 북한으로 끌려가는 경우가 많아요. 지난해 10월 북한 무산군보위부에 잡혀 있다 나온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유치장에 한국에 살던 북한사람이 7명이나 있었다더군요. 여자들까지 짐승 때리듯 때렸다는데….” 물론 이들 여성이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요원이거나 북한 정부에 직접 속해 있다는 증거는 없다. 보위부는 주민 사찰기관으로 정치범수용소를 관리하고 중국 내 탈북자들을 감시·이송하는 기관이다. 최근 체포된 간첩 원씨도 보위부 소속 직파간첩이라는 혐의를 받고 있다. 재판에서 검찰은 북한 보위부가 여성들을 대거 중국에 침투시켜 탈북자 검거에 나섰다는 증거자료를 제출했다. 중국에서 탈북여성들이 암약하며 탈북자들을 공안과 보위부에 넘긴다는 괴담은 탈북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알려진 이야기였다. 그만큼 실제로 이런 경우를 당한 사람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서울 성동구에서 가게를 하는 탈북자 N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2005년 4월쯤으로 기억합니다. 사업문제 때문에 중국에 나가 있었는데 지인이 어떤 30대 여자가 한국으로 들어오는 것을 좀 도와주라고 하더군요. 원래 몽골을 통해 한국으로 오려고 했는데 한꺼번에 잡혀 북송됐다 다시 빠져나왔다고 하더군요. 이름은 H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었다. 보통 북송되면 일러야 6개월 후에나 강제노역 등을 마치고 겨우 빠져나올 수 있다. 그런데 H씨는 한 달 만에 북한에서 빠져나왔다는 것이었다. 마치 그것을 예상하기라도 한 양 그녀는 북한으로 가면서도 “한 달 앞둔 명절은 중국에서 보낼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당시 공안의 추적을 피해 백두산으로 도망쳐 있던 탈북자 가족이 있었습니다. 제 처남이 이들을 숨겨주고 있었거든요. 나중에 이 가족과 다른 탈북자 13명이 장천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옌볜(延邊) 역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버스에 타자마자 공안이 포위해 한꺼번에 잡혀 버린 거예요.” 탈북자 정보를 아는 사람이야 뻔했다. 자신과 탈북자를 보내려던 자신의 처남, 그리고 자신이 한국행을 손써주던 H씨, 이 셋뿐이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N씨는 그녀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문제는 N씨가 한국으로 가기 위해 옌볜공항으로 갈 때였다.“H가 굳이 따라나와 공항을 무사히 떠나는 것을 보겠다고 고집을 피우더라고요. 위험하니 안 나와도 된다는 데도 꾸역꾸역 따라 나오는 것이 이상했지만 더이상 말릴 수 없었죠.” 탑승 수속을 밟기 위해 공항에 서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 “잠시 같이 가야겠다”고 말을 건넸다. 순간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느낌이었다고. 그제야 탑승수속장까지 따라온 H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녀는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N씨가 끌려간 곳은 투먼(圖們)시 근처의 변방부대였다. 여기서 북한사람을 남한으로 보내려고 했는지에 대해 5시간의 긴 심문을 받고 풀려났다. 물론 거액의 돈을 찔러준 후였다. 그 후 H를 만나려고 집으로 찾아갔지만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후 우연히 H가 한국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도 역시 다른 이름을 쓰고 있었다. 거주지는 대구였다. 겨우 알아낸 연락처로 전화를 하자 그녀는 놀라면서도 짐짓 태연한 척 전화를 받았다. “어떻게 내 연락처를 알고 전화했어요? 아니, 내가 무슨 간첩이라도 되는 줄 걱정하셨어요?”변방부대에 밀고한 사실을 캐물었지만 아니라고 잡아뗄 뿐이었다. 자신은 옌볜공항 근처에 살던 중국남자와 결혼해 이곳으로 왔다고 주장했다. 기가 막혀 조사해봤는데 그곳에는 그런 남자는 없다는 대답만 지역 지인으로부터 돌아왔다. 다시 H에게 연락을 취하려고 했지만 연락처가 모두 바뀐 후였다. 의심 가는 그녀, 버젓이 한국에 들어와… N씨는 원래 이 여성과 함께 다니던 여자들이 있었다고 했다. H가 북송되기 전 셋이 함께 다녔는데 H만 북송되고 나머지는 행방을 감췄다는 것. 그런데 이 두 여성에게 N씨의 지인이 피해를 본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의 지인인 A씨에게 두 명의 여성이 “한국행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급히 중국으로 간 A씨는 공항에서 바로 체포됐다. H씨와 함께 다니던 두 명의 여성, 이들 모두 정황상 너무 수상했다. 심지어 이 두 여성도 지금 한국에 들어와 있다고 N씨는 전했다. N씨는 이들이 어떤 끄나풀이라고 확신했다.“변방부대와 짜고 그렇게 활동하는 것이 틀림 없습니다. 프락치 역할을 한 것으로 확신해요. 어쨌든 저는 이제 탈북자들과 관련된 일은 일절 안 하려고 합니다.”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잡는 여성에 관해 대부분의 북한사람들은 익히 들어왔다는 반응이었다. 이들은 분노와 서글픔을 동시에 나타냈다. 같은 동포를 끌어다 판다는 사실에 큰 분노를 느끼는 한편 ‘그들이 오죽했으면’ 하는 슬픔을 느꼈다. 탈북한 지 10년이 다 돼간다는 허모 씨는 “중국 수비대에 잡혔다가 다른 탈북자를 잡아들이는 임무를 받고 풀어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들 여성이 애초에 조직에 속해 탈북자 색출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약점을 잡히게 되어 반강제적으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탈북한 본인이 잡혔다 ‘다른 탈북자를 잡아오면 너를 풀어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나오는 일이 일반적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이들이 주로 30대 여성이라는 점도 납득이 간다. 비교적 마음이 약한 젊은 여성을 협박하고 타일러 중국 접경지대로 보낸다. 이들이 한국으로 가기를 원하는 여성으로 위장하면 얼마든지 탈북 브로커와 접촉할 수 있다. 때와 장소를 잘 맞춰 공안이 나타나기만 하면 한국으로 가거나 중국지역으로 숨어들려는 이들 일행을 한번에 일망타진할 수 있다. “그런 여자들은 추적장치를 가지고 다닌다고 하던데요? 이동해도 그 여자의 위치만 추적하면 다른 사람들까지 잡을 수 있도록 하려고요.”
신고 0명
게시물신고
|
한국에서 생활하고있는 북한의 꼬나불이나 공안의 개노릇을 한 인간들. 의심되는 인간들을 제때에 처리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괜한 인간들때문에 힘들게 생활하고 있는 탈북자 모든분들에게 해를 끼치지말고 제발 원정화같은 제2세가 다시 나타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가뜬이나 원정화 사건이후 한국인들의 시선이 좋지 않는데 정말 괴로워요
얼마나 힘들게 생활하였는데 좀 나아질듯 싶으니깐 별난 인간쓰레기들때문에 잘적응하는 분들이 스트레스를 받는거 아닌가요
이제는 모든분들이 각성하였으면 합니다.
앞으로 제자신들을 위해서라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