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가 대북삐라 풍선을 날리는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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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현실 모르는 '탁상삐라' 실망, '공감삐라' 만들겠다 결심" 이민복 대북풍선단장 내가 북한으로 삐라를 날리기 시작한 것은 2003년 10월이지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은 북한에 있을 때부터다. 고향이 DMZ 가까운 곳에 있어 어릴 적 남조선 삐라가 나비처럼 떨어지는 것을 자주 보곤 했지만 기억나는 내용은 별로 없다. 성인이 되어서도 삐라를 보긴 했으나 솔직히 북한 정서에는 맞지 않아 공감하지 못했다.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삐라를 보면서 왜 이렇게밖에 못 만드나 궁금해 할 정도였다. 오죽하면 탈북을 결심했을 때 "남조선에 가면 북한 사람들이 공감하는 삐라를 만들겠다"고 생각했을까? 삐라에 대한 궁금증은 탈북 후 남한에 와서 풀렸다. 담당부서에 정보심리학 수재들만 있을 뿐 북한에서 살아본 탈북자가 한 명도 없었던 게 원인이었다. 4개국 국경을 넘나들고, 3개국 감옥을 거치며 탈북 6년째 되던 1995년에서야 서울에 도착한 나는 "딱 6개월만 삐라작업을 시켜달라"고 관련부서에 간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더구나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대북 삐라와 방송을 중단하라는 김정일의 요구를 우리 정부가 받아들이면서 대북 삐라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거대한 감방에서 눈, 귀, 입 막히고 사지와 정신까지 묶인 불쌍한 이들에게 비치던 한 가닥 빛과 소리마저 막혀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가만 있을 수 없었다. 2003년 10월부터 당시 기독탈북인연합 회원들과 고무풍선에 삐라 한 장씩 달아 보냈다. 그러나 3년 동안의 수고에도 북한으로부터 별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대형풍선을 이용한 방법이었는데 불과 몇 개월 만인 2005년 8월 북한으로부터 공식적인 항의가 전달되었다. 우리도 예상치 못한 빠른 반응이었다. 그래도 삐라 작업을 중단하지 않자 급기야 지난 10월 2일의 남북 군사실무회담에서 "삐라 살포가 계속될 경우 개성공단에 좋지 않은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북한이 엄포를 놓았다. 그만큼 북한 정권이 삐라를 무서워하고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우리는 삐라를 계속 살포할 것이다. 마치 평범한 미사일에 핵을 매달 때 양상이 달라지듯, 삐라가 북한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라 믿는다. [조선일보 독자기고문] [이민복·대북풍선단장·前 북한과학원연구원: 삐라 보내는 탈북자가 전쟁을 방지한다 암흑천지 북한에 對北삐라 뿌리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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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세요 홧팅 사랑해요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