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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힘으로 헌법과 성경의 正路(정로)를 구부러지게 하지마라.
Korea, Republic o 구국기도 0 274 2008-11-24 11:46:05
1.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 正路(정로)의 의미 곧 인생의 정로를 바로 알고 간다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 헌법 속에 지시하는 正路(정로)는 이웃사랑에 있다. 성경에서 제시된 기독교의 정로도 이웃사랑인데, 하나님의 아가페로 말미암아 행동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道), 곧 이웃사랑에 있다. 의미를 考察(고찰)하다보면 우리 헌법이 聖經(성경)의 사상과 一致(일치)되는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는 성경을 깊이 아는 사람들이라면 共感(공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 아마도 우리 헌법은 성경적인 이웃사랑을 헌법의 기초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이웃사랑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길만 따르면 대한민국 헌법遵守(준수)는 물론 守護(수호)에 만족함 그 이상을 줄 수 있다는 것을 確言(확언)할 수가 있게 한다. 김정일 수령의 명령이 곧 법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저들 나름대로 헌법을 가지고 있고, 거기에 反종교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 저들의 헌법을 따르면 예수에게 敵(적)이 된다.

2. 김정일과 합한다는 것이 統一(통일)이라면 헌법을 완전히 유린하는 것이다. 그런 유린은 곧 헌법이 지시하는 이웃사랑을 유린하는 것이 된다. 결국 예수를 유린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한다. 그 예수를 蹂躪(유린)하자고 하는 것이 저들이 주장하는 民族(민족)평화통일이다. 자유평화통일은 우리 헌법의 명령이다. 이는 곧 헌법의 명령 곧 자유평화통일은 이웃사랑을 보장하는 自由(자유)를 북으로 보내 확산하는 것으로 통일하자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통일을 이루자는 말이기도 하다. 기독교를 아주 철저하게 탄압하는 반종교의 자유를 가진 김정일과 合(합)하자고 외치는 이 정신 나간 牧師(목사)들이 있다. 그들은 이 시대에 거짓선지자들로 기록될 것은 분명하다. 그들은 헌법의 의미로 보면 반역자요 성경의 의미로 보면 예수의 敵(적)이고 이웃사랑의 敵(적)이 된다는 말이다. 때문에 저들과 합한다는 것을 지지하는 것은 곧 헌법에 대한 반역을 국민과 신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이고,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반역을 요구하는 것이며, 예수의 이웃을 사랑하는 명령을 거역하라고,

3. 또는 거역해도 좋다고 말하는 것이 된다. 결국 예수를 섬기는 자유를 죽이고 김정일을 살리는 것이고, 그것이 곧 저들의 主張(주장)이다. 이는 이리가 양의 탈을 쓰고 있다는 것에 해당된다. 때문에 기독교를 속이려고 교회 안으로 파고들어온 자들이 있고, 그들의 공작에 의해 유명목사들이 附逆者(부역자)로 轉落(전락)되는 것이다. 그들이 한국기독교를 속이고 있고, 하나님이 주신 正路(정로)를 구부러지게 한다. 김정일은 그 주구들을 시켜 대한민국을 흡수하기 위해서 민족주의로 遁甲(둔갑) 또는 包裝(포장)하여 남한에 상당한 세력 곧 친북세력을 만들어 놓았다. 그들이 모두 함께 꾀하여 대한민국의 헌법을 유린하고 대한민국의 國權(국권)을 抹殺(말살)하고 國號(국호)를 지우고 國旗(국기)를 破棄(파기)하며 자기들 식으로 합치게 하려고 한다.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 저들의 속임수를 반드시 근절되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서 이제 분명하게 하나님의 제시한 길을 지켜야 한다. 주의 定(정)하신 정로를 구부러지게 하는 모든 세력을 향해 단죄선고를 해야 한다.

4. 성경에 나온 인간의 正路(정로)는 미가서 6장에 8절에 나온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본질 곧 아가페 사랑으로 (공평케 하는 사랑의 본질)로 인간을 사랑의 길(공평하게)로 행하신다. 그 길로 하나님을 따라 가려는 마음의 自薦(자천) 自願(자원)하는 행로욕구는 하나님 보시기에 謙遜(겸손)한 것이고 아름답고 善(선)한 것이다. 그런 겸손으로 하나님의 뒤를 따라 아가페를 행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사는 것이 곧 正路(정로)이다. 때문에 예수님은 자신이 곧 길이요 생명이요 진리라고 하신 것이다’라고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씀이다. 결국 이웃사랑이다. [요한복음 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5. [로마서 13:9-10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로마서 15:1-2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 관하여 선한 사마리아인이 있다. [누가복음 10:30-37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 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6.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 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하신 말씀에서 우리는 깊은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아가페로만이 完全無缺(완전무결)하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인간의 利他的(이타적) 속성의 능력은 이미 타락하였고, 그나마 남은 이타심은 한계가 있고 진정성의 의미도 시간이 지날수록 稀薄(희박)해진다. 때문에 하나님의 아가페를 가져야 비로소 지속가능하게 된다. 항상 변함없이 진정성을 가지고 공평하게 사랑하고 더불어 사는 균형을 이루게 한다. 이런 공평에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향 조정되는 것이 아니라 상향조정으로 이어지게 하는 발전적인 요구가 있는 공평의 길이다.

7.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을 諸(제) 종교에서 각기 내놓아야 한다. 그들도 그것으로 헌법의 요구를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헌법을 수호할 정도로 강력한 이웃사랑의 능력을 갖추려면, 아니 더 나아가서 자유확산을 위해 투쟁하려면 보다 더 질 좋은 이웃사랑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것이 없다. 인간에게 모든 자유를 찾아주는 것이 곧 공평한 균형을 갖게 되는 것이고, 곧 그것이 이웃사랑이라고 한다면 북한주민의 奴隸(노예)상태를 外面(외면)하는 것은 더 邪惡(사악)한 행동 곧 구부러진 길을 만드는 것이고, 그 구부러진 길을 정로로 삼아가는 하나님과 우리 헌법에 반역적인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북한주민의 노예상태에서부터의 자유를 찾아주려는 운동에너지의 의미는 사랑의 에너지의 質的(질적)인 문제이고 그 문제를 제시하는 것은 각 종교의 내용이어야 한다. 기독교는 이미 열거한대로와 같다. 아가페라는 의미의 말씀을 闡明(천명)하며 친히 本(본)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길 곧 하나님의 인간사랑의 도를 만들어 인간에게 이것이 정로니 이 길로 가라고 하신다.

8. 한국에 있는 기독도가 하나님이 제시한 예수의 길로 그 바른 길을 갔다면 지금쯤에 벌써 북한의 해방은 이뤄졌을 것이다. 이 시대의 구부러진 길을 만드는 자들이 敎界(교계)의 상석에 앉아 김정일 주구노릇을 하며 오히려 큰소리치고 있는 것 같다. 시대 시대마다 迷惑(미혹)은 역사하고 있고, 그런 미혹들이 기독교의 진리인양 큰소리치고 있지만, 사실은 기독교의 正路(정로)를 구부러지게 하고 있다. 거기에 모여드는 자들에게 그들은 이웃사랑을 파괴한 것에 대한 진정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와 더불어 주시는 성령으로 이웃 사랑으로 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속죄의 약속을 팔아 자기들 식으로 속죄인식이라고 하는 免罪符(면죄부)만 주고, 그 면죄부의 대가로 富貴榮華(부귀영화)를 누리고 있고, 교당의 높이만 키우고 으리으리하게 시설하고 인테리어 하고 배를 내밀고 있다면, 하나님의 참된 이웃사랑의 正(정) 道(도)는 한없이 짓밟히게 된다. 진정으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아가페에 참여하는 자들은 진정성이 넘치는 사랑을 하게 된다. 그들이 의를 심어서 의로운 대한민국으로 북한해방을 거둬야 한다. 때문에 시급한 것은 먼저 김정일 주구들로 自任(자임)하며 하나님이 정하신 길을 구부러지게 하는 자들 곧 교계에 높은 자리에 방석을 깔고 앉은 자들을 단죄해야 한다.

9. 모름지기 김정일 주구들은 김정일 似而非(사이비)종교 신자들이고 그들은 반 기독적인 우상숭배자들이고 적그리스도적인 도덕적 잣대를 가지고 정치적인 네거티브를 일삼고 있다. 교계의 상좌에 앉아 김정일을 위해 일하는 그들은 곧 김정일의 주구라고 하기보다는 주구들의 공작에 넘어간 자들 곧 附逆者(부역자)들로 보아야 정답이라고 본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각종 종교 안에 김정일을 위한 부역자들이 특히 상좌에 앉아 오늘도 열심히 헌법의 정로를 구부리고 있다. 오히려 삣기가 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행동을 한다. 국민이 가야할 정로가 여기니 이리로 가라고 오히려 유혹의 손길 곧 삣기짓을 하고 있다. 호객행위를 하는 이들의 행태에 그들의 유명한 이름 석 자를 이용하는 것이 적화공작에 도움이 된다고 여겨 오래전부터 공작을 치밀하게 하여 접수한 탓을 돌리기에는 너무나 지저분한 것, 똥이 있는 곳에 똥파리가 낀다는 의미를 여기다가 대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 저들이 이미 그 강단에서 정로를 구부러지게 하였기 때문이다.

10. 그런 문화와 습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공작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말을 꼭 하고 싶은 것이다. 대한민국의 가야할 정로는 자유대한민국을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지키는 것이고, 그 자유를 수호하고 그 자유를 확산하는 것으로 가는 것이 기본적인 이웃사랑인 것이다. 그런 이웃사랑을 각기 능력으로 實踐(실천)해야 하는데, 그것이 지금 쉽게 변질되는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고, 그것이 전 방위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생의 정로를 그런 식으로 굽어지게 하고 있는데, 남한의 대부분의 富者(부자)들은 그것을 은근히 즐기며 돈을 불리는 서핑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웃사랑을 파괴한 것으로 부요의 기초를 삼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곧 이웃을 망하게 하고 부자가 된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착취경제의 의미는 김정일의 고정패턴이고, 김정일의 영향 하에 있는 주구들이 김정일의 권력을 이용하여 남한의 기업들을 천민자본주의로 가게하고 있다.

11. 거기서 실용주의가 나온 것이라면 김동길 교수의 지적처럼 이제는 이명박 대통령의 正體(정체)를 밝혀야 할 때라고 본다. 도대체 이 나라의 국민이 가야할 정로는 무엇인가라고 그는 분명히 말해야 한다. 왜 우리는 김정일의 공갈협박에 조공을 바치는 신세로 몰락하는 것에 큰 반발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이다. 사실 자유대한민국이라면 어느 누구에게도 공갈협박을 받아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개성공단의 인질을 삼아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공권력으로 압력을 하는 것의 그 底意(저의)는 무엇인가이다. 국민들은 이 사실에 분노하게 만들어야 하는 모든 언론방송들은 두 세력의 싸움으로 몰고 가서 상업적인 興行(흥행)만 노리고 있었다. 거기에 3개월 중단이 선언되자 상업성의 기대이하의 수지타산이 맞지 않자 매우 섭섭한 눈치이다. 좀 더 더 많은 시간에 충돌이 그 상업성에 이익을 창출할지는 모르겠으나, 국민을 계몽해야 할 언론방송이 돈에 미친 짓을 하고 있을 뿐이다. 자유를 위한 투쟁에는 결코 중단이 있어서는 안 된다. 삐라를 보내는 팀이 어떤 결정을 할 수 있지만,

12. 그들은 그들의 방법으로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것일 뿐이다. 표현의 자유 북한주민을 해방하고 그들의 자유를 찾아주는 것에는 결코 避(피)할 수 없는 것이고 중단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 쉬는 3개월의 의미는 별로 의미가 없다. 다만 北風(북풍)이 불어오는 기회이기에 풍선이 날아가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 같다. 함에도 다른 방법 곧 전파를 통해서 진정으로 자유를 보내야 한다. 또는 그곳에 가는 인편을 통해서 많은 삐라를 보내는 방법도 고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김정일 정권에 굴복하는 정부나 주구들을 위한 대한민국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분명하다. 때문에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이웃사랑의 열기는 반드시 뜨거워지도록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해야 한다. 敵(적)들이 구부러지게 한 정로를 이제는 바르게 해야 한다. 그것이 자유대한민국의 존재를 살리는 것이고, 그 존재 이유를 확실하게 감아쥐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국가브랜드가 높아져 세계민의 龜鑑(귀감)이 되게 하며 마침내 세계민의 先導(선도)가 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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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목: 뭣이, 삐라 3개월 중단한다고요? 북한주민의 자유를 위한 표현의 자유를 왜 막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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