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진보의 치명적 문제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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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보는 국가명령에 의한 평등적인 공산주의 이념을, 보수는 자유시장경제에 입각한 자본주의 이념을 의미한다. 단지, 양 극단에서 상대방 이념을 어느정도 수용하느냐 문제일 뿐이다. 대한민국에도 극단적인 공산주의자들로부터 극단적 시장경제 옹호론자까지 다 있다. 그게 자유로운 사회이니까. 그럼에도 나 공산주의자요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는 현재 대한민국 국민 절대다수가 보수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386세대 진보세력조차 지난 10년 집권기간동안에도 비교적 보수주의 노선을 걸었던 것을 봤다. 안 그러면 이 사회에서 숙청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필자가 보기에도 너무 보수적이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도 인류가 만든 하나의 사상으로써, 한국에서도 공산당, 사회당이 결성되고 의회진출을 기도할 수가 있는 것이다. 미국, 일본, 프랑스 다 공산당이 있다. 모든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 그게 바로 자유민주주의이다. 촛불시위가 어느덧 지나갔지만, 수구보수의 한 사람으로써 필자는 여운을 갖는다. 거기 모인 사람들의 주류는 이 사회 서민들이었다. 광화문일대가 어떤 곳인가? 정부 종합청사로부터, 현대, 삼성 등 재벌그룹 사옥과 주요 은행, 기타 금융기관 본점, 공공기관의 밀집지역이다. 좋은 대학 나오고 근무조건 좋은 대한민국 엘리트 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그들중 촛불시위에 동조해 합류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이후 상대적으로 힘들어진 서민계층이 모처럼 모여 소리를 낸 것이다. 문제는 주제가 시원찮았다는 것이다. 이 명박 정부의 미국소고기 협상은 다소 미흡한 점은 있었지만, 서울 중심대로를 장기간 점거할만한 주제는 아니었다. 그 주모자들은 분명 처벌받아 마땅하다. 이 서민들을 이끌고 건전하게 서민계층의 요구를 내세우고 대변할 정치, 사회세력이 없었다. 현실정치가는 수동적으로 끌려다니거나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들었다. 대한민국도 사회주의적 정치세력이 자리잡을 수도 있는데, 그들을 이끌 지도세력은 없었다. 사회주의라니까 탈북자들은 놀라겠지만, 이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평등과 사회복지에 보다 치중하는 서유럽형 사회주의이다. 통일전 서독, 프랑스, 스웨덴 등에서 체택되고 있다. 왜 이런 사회주의가 한국에서는 안될까? 수구보수가 국가보안법 등으로 너무 무섭게 핍박해서? 노, 절대 아니다. 그렇다면 서독이나 스웨덴이 한국보수의 적이란 말인가? 그 이유는 현재 한국 진보라는 자들중 상당수가 바로 북한 김일성, 김정일체제의 옹호론자들이라는 데에 있다. 이는 60-80년대냉전시대에 공산주의 국가들의 실상을 바로 알지 못한채, 공산주의 사상과 서적에 빠지고, 우리민족인 김일성 사상에 동조해 버렸기 때문이다. 주한미국대사 말처럼 똑같은 단체가 효순이미순이 사건, 주한미군기지 이전반대, 촛불시위를 주도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한국에서 사회주의적 정치세력이 발전하는 것은 정말 어럽다는 생각이 든다. 북한공산주의의 끔찍한 오류에 몸서리 치는 절대다수 국민에게 아 사회주의는 곧 북한 김일성주의자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아니 공산주의 원조라는 구 소련 중국도 나머지 동구권도 모두 방향전환을 한 이마당에 이 사람들이 왜 이러나? 상식을 벗어난다. 그 이유중에는 해방이후 남로당 토벌과정에서 벌어진 뿌리깊은 원한도 한 몫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유중 하나는 그들이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로 보는데에 있다. 만약 해방이후 미군과 소련이 분할점령하지 말고, 강대국 신탁통치에 들어갔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한반도는 공산주의 나라로 통일되었을 것으로 본다. 오랫동안 이런 생각이 떠돌아왔다. 그러나 이는 틀린 것이다. 해방직후 한국인들은 세계문명의 흐름에 무지했다. 공산주의의 물결이 일시적으로 넘실거렸다. 모든 인민이 평등하게 잘 살 수 있다는 이상적 공산주의 사상은 당시 지성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무지한 대다수 농민들은 사상도 몰랐고, 능동적으로 움직일 줄도 몰랐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모택동, 레닌, 스탈린, 박헌영 등 초기 공산주의 지도자들 대부분은 배운 사람들이다. 그러나 반만년을 이어온 우리민족의 귀족의 근대적 정수인 양반집안은 곧 북한지역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저지르는 상식밖의 만행에 실망하고, 현실공산주의에 등을 돌렸다. 해방직후 유산계급과 지식층을 형성했던 이들이 지속적으로 공산주의에 동조했다면, 김일성, 박헌영의 계산대로 625초기 서울점령이후 남한은 붕괴되었다. 그러나 당시 이미 남한의 지식층은 현실공산주의에 등을 돌린 상태였다. 어떤 인민봉기도 일어나지 않았다. 만약 신탁통치가 행해졌다면, 초기에는 공산주의자들이 우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무지막지한 사회파괴행위에 대해 변혁을 주도할 실질세력이었던 한반도 지식층과 사대부들은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로 돌아섰을것이 분명하다. 1949년 중국대륙이 공산화되어 한반도 공산화는 필연이었다고 보지만, 나는 그 반대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즉, 한반도에서 사상전끝에 시행착오를 극복하고 주도권을 쥔 자유민주주의세력이 압록강 건너 만주로 확산되어 남진하는 모택동 군대를 뒤에서 허물었을 수도 있었다고 본다.(우리군대가 압록강을 넘어간다는 것은 아니다.) 남한사회가 아직 완벽하게 성숙된 사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마 탈북자들은 남한에 와서 우리민족이 이렇게 부드럽고 품위있는 민족이었나 하고 생각할 때가 있을 것으로 본다. 맞다. 우리 배달민족은 분명 이웃 여타 민족과 다르다. 웅장한 고구려, 흉노족 계열이 주도했던 신라의 후예답게 아주 용맹스런 구석이 있지만, 다른 나라에의 침략의 더러운 피를 묻힐 줄 몰랐던 품위있는 민족이다. 그 얼을 이어받은 우리민족이 무지막지하게 피의 숙청을 일삼고 자유를 억압하는 공산주의에 대해 지구상 어느민족보다도 격렬하게 반발했을 것은 틀림없다. 사실 그 현실적 표현이 대한민국의 수립과 현대화였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해방후 미소 양군이 철수하고 한반도가 강대국들의 신탁통치에 들어갔어도(그들이 말하는 소위 해방공간이 형성되었더라도) 한반도가 공산화되었을 거라는 생각은 오류이다. 오히려 반대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피비린내나는 동족끼리의 테러와 전투가 난무했을 것이다. 이승만 박사는 이를 피했을 뿐이다. 모든 공산권 국가가 다 변했는데도, 20년이상 2천만 북한동포들을 묶어놓고, 반노예상태로 만드는 북한공산주의자들과 남한내 극히 일부 동조세력은 민족 앞에 사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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