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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삼월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국가존립위기를 구국의 기회로 만들기 위해 유관순
Korea Republic of 구국기도 0 417 2009-03-01 17:58:43
1. [선한 지혜는 은혜를 베푸나 궤사한 자의 길은 험하니라] 3.1절 아침이다. 우리 民族(민족)의 독립운동을 하게 하신 하나님은 은총을 우선 감사드리고 그로부터 대한민국의 獨立(독립)을 추구하고 기도하였던 수많은 선열들의 희생에 또한 감사드린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어 自由(자유)祖國(조국)의 독립의 밑거름이 되었던 세월을 거쳐 오는 대한민국의 출생과 아픔과 그 성장통의 세월을 우리는 겪고 있다. 6.25의 값비싼 희생의 피로 인해 확보된 自由(자유)를 우리는 누리고 있다. 하나님을 마음 놓고 섬길 수 있는 이 소중한 자유를 위해 그토록 모진 고통을 堪耐(감내)해야 했던 선열들의 아픔을 우리는 다시 한 번 더 되새겨 본다. 지금의 한반도는 자유냐 奴隸(노예)냐 하는 이 두 岐路(기로)에 서서 그것들이 한민족의 支配權(지배권)을 가지려고 서로가 싸우고 있다. 이런 시기에 맞는 3.1절이다. 참으로 생각이 깊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조국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던진 先烈(선열)들은 우리에게 외친다. 보라, 미국의 청년들이 異域萬里(이역만리)에 와서 목숨을 던진 것은 무슨 緣故(연고)냐?

2. 그것은 인류의 누릴 자유확보를 위해서 목숨을 던진 것이 아니더냐? 인간을 노예로 삼는 邪惡(사악)한 搾取(착취)자들과 목숨을 던져 싸운 것이 아니냐? 자기 국가를 위해 他國(타국)과 他(타)민족을 奴隸(노예)로 삼는 그 착취의 손에서 해방하게 하려는 자유의 擴散(확산)! 그것이 자유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기꺼이 던지겠다고 하는 미국의 젊은이들 속에서 불타오른 것이다. 누가 그 젊은이들의 가슴에 그런 정신을 불어넣어 주었는가? 우리도 가까이는 연평해전의 25명 勇士(용사)들의 가슴에 그런 정신이 가득하였다는 것을 발견하고 얼마나 感動(감동)을 먹었던지! 대한민국의 維持(유지)는 그런 자유를 알고 그 자유의 가치를 위해 목숨을 草芥(초개)와 같이 던진 연평해전 용사들의 거룩한 희생정신! 그동안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운 수많은 先烈(선열)들의 가슴에 서리는 자유를 향한 아픔에 자기 한人生(인생)을 果敢(과감)하게 던져 예수님처럼 한 알의 밀알처럼 받아 달라고 하나님께 외치며 쏟아내는 鮮血(선혈)에 의해 피어나는 꽃에서 나오는 열매 自由(자유)!

3. 그 열매를 나는 無償(무상)으로 따먹고 살아온 세월을 보내고 또 보내었다. 참으로 송구한 세월을 만들어온 것이다. 이 아침에 먼저 나의 懺悔(참회)가 선행되어야 할 것인데. 나라가 이렇게 간첩들이 得失(득실)대도록 만든 죄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고, 以北(이북)에 불쌍한 인민들의 그 처참한 노예생활에 대한 아픔을 해소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죄를 참회하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자유를 세상에 널리 공급하지 못한 죄를 참회하는 것이다. 나의 지나간 시간들은 선열들의 피로 얻어진 과일을 무상으로 따먹고, 그냥 인생을 下直(하직)하고 갈 수는 없는 것이니, 나는 그동안 무상으로 사용한 자유에 빚진 자이고, 모든 분들의 사랑의 犧牲(희생)에 빚진 자이기에 나의 빚을 計算(계산)해야 한다는 것을 强調(강조)하며, 나를 이 3.1절 아침에 일깨운다. 거울을 보듯이 나를 보려고 눈을 들어 우리 主(주)의 十字架(십자가)의 苦難(고난)에 腹水(복수)가 차오르는 아픔을 겪는 그 6時間(시간)의 의미를 보는 것이다. 그 때 내 눈에 그분의 진땀이 흐르는 얼굴이 보이고 그분 얼굴에서 나의 사악함의 얼굴을 보고 있는데.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어리석게 살았는가?

4. 자유를 浪費(낭비)하고 放縱(방종)하는 것으로 살아온 날 동안 敵(적)들은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할 인간의 자유를 한민족에게서 영구히 去勢(거세)하려고 준동하였으니, 이를 膺懲(응징)하지 못한 나의 罪(죄)가 얼마나 큰지를 셈해보자는 것이 이 아침의 나의 눈빛이고. 그 눈빛에는 예수님의 눈에 어리고 그 뺨에 가득한 갈망으로 이어지게 하는 시선으로 사로잡아 간다. 나는 비로소 예수님께 懺悔(참회)하는 마음으로 그 앞에 俯伏(부복)을 넘어서는 仆伏(부복)을 한다. 나는 도대체 이런 일에 왜 그렇게 無心(무심)하고 無感覺(무감각)했던가? 근세 미국식의 자유 확산으로 살아난 대한민국의 출생을 아는 우리가 아닌가? 그 자유를 위해 많은 미국청년들이 異域萬里(이역만리)에 와서 죽은 것이다. 그것의 숭고한 이유는 미국을 덮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상이다. 노예에 처한 인간의 자유를 찾아주는 것에는 막대한 희생이 필요한데, 그런 피 흘리는 犧牲(희생)의 隊列(대열)에 너도 나도 뛰어들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十字架(십자가)의 思想(사상)이다. 그런 사상이 미국의 젊은이들의 정신에서 살아 움직였다는 것이다. 그런 사상은 자기국가를 초월하여 노예상태에 빠진 자들의 아픔을 해방케 하는 자유의 권능으로 작동한다.

5. 착취자들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모든 이들의 실질적인 해방의 힘이 되고자 하는 그들이었고, 그것이 그 청년들의 존재이유를 삼았던 것이다. 노예의 아픔이 그들의 아픔이었고, 노예의 갈망이고 그들의 소망이었다. 그 십자가의 사상을 통해 각성한 젊은이들은 그 사상의 불을 따라 전선으로 나간다. 영웅으로 살다가 가는 것은 노예상태에서 허덕이는 인간을 해방하는 것이고, 그것이 인간의 성공이라고 하는 목표를 하나님의 진리의 빛 안에서 예수님처럼 찾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길로 애인과 삶과 개인의 목표와 부모와 정든 山川(산천)을 버리고 解放(해방) 戰線(전선) 戰線(전선)으로 간다. 그들이 가히 상상할 수 없는 6.25 전선으로 가서 그렇게 희생의 피를 흘리면서 얻어준 자유가 대한민국이 현재 누리는 자유이다. 그들은 그 길을 가면서 벅찬 感懷(감회)와 기쁨에 젖어 아브라함 링컨의 위대함을 기리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위대한 승리를 드높이면서, 그들은, 그들은! 피를 쏟아내는 소리로 자유를 부르면서 한 알의 자유의 씨로 심겨진 것이다. 한반도에 뿌려진 대한민국의 국군용사들의 피의 씨에서 돋아나는 자유와 더불어 이렇게 우리는 그 자유를 무상으로 누리고 산 세월이 벌써 아뜩하다.

6. 그들의 그 확고한 신념의 힘은 자유를 위해 피를 쏟아야 한다는 확신이다. 자유는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피를 흘려야 얻어진다는 비밀을 안자들이다. 그분들의 거룩한 희생으로 인해 韓半島(한반도)에 가득한 착취자들의 손에서 대한민국을 벗어나게 하고 비로소 하나님을 마음 놓고 섬길 수 있는 自由(자유)를 확보하는 세월의 아침을 여는 것이었다. 대한독립만세! 거룩한 희생을 한 先烈(선열)들 만세! 오늘 아침에 이른 글을 쓰다 보니, 더욱 3.1절 유관순누나의 아픔이 그렇게 진하게 가득하게 내 가슴으로 밀려온다. 그녀의 절규는 잠자는 자유를 깨웠고, 그 자유가 허겁지겁 달려오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이유가 되었다. 그녀의 외침, 자유를 향한 외침은 참으로 깊이 잠든 세월을 깨우는 힘이었다. 그녀의 소리침의 의미는 자유이다. 모든 착취자들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나는 자유이다. 자유를 되찾기 위해서라면 가녀린 그녀라도 그렇게 용감하게 하신 분은 그녀 속에 있는 하나님의 자유이다. 몸을 죽음 속에 던져버린 것이다. 다음은 유관순 누나에 대한 야후검색의 내용이다. [1902∼1920. 독립운동가. 본관은 고흥(高興). 충청남도 천안출신. 아버지는 중권(重權), 어머니는 이씨(李氏)이며, 5남매 중 둘째 딸이다.]

7. [1916년 기독교감리교 공주교구의 미국인 여자선교사의 도움으로 이화학당(梨花學堂)의 교비생으로 입학하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 학교 고등과 1년생으로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예수님의 주시는 자유의 힘을 가진 그녀의 외침은 거기서 멈추진 않는다. [그 뒤 일제가 이화학당을 휴교시키자 고향으로 돌아와 교회와 청신학교(靑新學校)를 찾아다니며 서울에서의 독립 시위운동 상황을 설명하고, 이곳에서도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권유하였다. 조인원(趙仁元)·김구응(金球應) 등의 마을지도자를 규합하여 연기·청주·진천 등지의 교회와 유림계를 규합, 이해 음력 3월 1일 아오내장날을 기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추진하였다. 이날 수천명의 군중을 모아 독립만세를 선창하며 격렬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 속에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치게 하는 불을 가진 것을 보게 한다. 누가 그 불을 끌 수가 있을 것인가? [이 시위 전개에서 잔인한 일본헌병의 총칼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피살당하고 자신은 아오내 만세시위 주동자로 잡혀 일제의 무자비한 고문을 받았으나 끝내 굴하지 않았다.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언도받았으나]

8. [이에 불복, 항소하여 경성복심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때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일제의 한국침략을 규탄, 항의하고, 일제법률에 의하여 일제법관에게 재판받음이 부당함을 역설하다가 법정모욕죄까지 가산되어 징역 7년형을 언도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중에도 틈만 있으면 독립만세를 고창하였고, 그때마다 형무관에게 끌려가 모진 악형을 받았다. 불굴의 투혼으로 계속 옥중항쟁을 전개하다가 1920년 17세의 나이로 끝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殉國(순국)하신 유관순 누나께 천국에서 삼가 영생하시기를 빕니다. [유관순이 참살된 지 이틀 뒤에 이 소식을 들은 이화학당 교장 푸라이와 월터선생은 형무소 당국에 유관순의 시체 인도를 요구하였으나 일제는 이를 거부하였다. 유관순의 학살을 국제여론에 호소하겠다고 위협하고 강력하게 항의하자 일제는 할 수 없이 시체를 인도하였다. 시체를 인수한 이들이 석유상자 속에 든 유관순의 시체를 열어보니 토막으로 참살된 비참한 모습이었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토막으로 慘殺(참살)되신 유관순 누나! 당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자유를 위해 던져버리는 것은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이다. 가녀린 작은 목숨의 힘이 그렇게 위대한 자유의 권능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이 없으셨다면 이 세상은 벌써 暗黑(암흑)천지가 되었을 것이다.

9. 노예로 살 수밖에 없는 캄캄한 세월의 아픔을 이기고 자유의 빛을 밝히고자 외치던 자들의 소리가 어젯밤 가득한 하늘의 유성처럼 기나긴 犧牲(희생)의 줄서기가 계속되었던 것이다. 밤하늘에 수많은 유성들이 그 긴 꼬리를 그리면서 허공으로 사라져가는 이유를 아는 이들이 있는지? 그것은 그들이 인간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데, 노예로 살게 되는 그 지긋지긋한 한밤을 밝히기 위해 자기 몸을 불태우지 않으면 결코 빛을 낼 수 없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순간에 밤의 허공 속으로 明滅(명멸)의 빛을 그 한 몸에 부어 가득하게 하고, 저 노예로 사는 인간들에게 쏟아져 내리는 것은 인생은 짧은 것이니, 짧은 인생이지만 그 인생은 세상의 암흑 곧 착취의 세상에서 노예로 사는 자들의 자유를 찾아주기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이다. 메시지이다. [갈라디아서 5:1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라고 외치며 대한민국을 세운 國父(국부)의 외침도. 국민을 노예로 만들려고 장기집권을 요구한 것이 아니고 국민에게 보다 더 많은 자유의 공간을 만들어 보고자 하였지만 그 휘하의 여러 것이 김일성과 내통하고 그것들이 결국 이승만의 꿈을 거기서 접게 한다. 장기집권의 의미는 노예냐 자유냐의 의미에 따라 다른데,

10. 이승만 式(식)의 민주주의의 의미는 이승만의 노예를 만든 적이 없는데 이승만 독재라고 한다. 박정희 式(식)의 민주주의는 박정희의 노예로 만든 적이 없는데 박정희 독재라고 증오한다. 전두환 式(식)의 민주주의는 국민을 전두환의 노예로 만든 적이 없는데, 전두환 독재라고 한다. 전 인민을 노예로 삼아 닭장 속에 가두고 전국에 수많은 비밀수용소와 탄압시설을 갖추고 아울러 평화시에 350만 명을 굶겨 죽이고 수령절대주의 밑에 노동당 내규가 있고, 그 밑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헌법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 자들을 친하게 지내고 그들의 힘으로 자기들의 밥그릇을 지키는 자들이 입에서 나오는 말은 언제나 이승만 독재니, 박정희 독재니, 전두환 독재니 한다. 누가 과연 독재냐? 김정일집단을 추앙하고 그들과 동업하고 있는 남한의 기득권세력이 독재가 아니냐? 보일듯 말듯, 政府(정부) 안에 보이지 않는 政府(정부)를 만들고, 그들이 죽어 또 다른 후임을 세워가며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자유를 말살하려고 한 것은 없었던가? 김정일을 위한 한반도 거주민 노예화책동을 쉬지 않고 진행시켜온 너는 도대체 누구인가?

11. 너희의 면면은 수면 아래에 있고, 너희 두 손에서 놀아나는 수많은 꼭두각시들이 이리저리 연출하는 것에 따라 이리저리 행동하고, 하니 어지럽기 그지없으니 모름지기 너희의 눈빛에 한민족의 미래가 달린 듯하고 있으니, 그 교만한 詭詐(궤사)는 지옥으로 가는 길, 멸망의 험한 길을 스스로 끌어안고 있다 하겠다. 누가 진정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가에 달려있다면, 그것은 아무도 아니다. 오로지 그 가슴에 자유를 만들어내시는 예수님 곧 하나님 속에 있는 자유의 본질을 공급하시는 그리스도의 공급체계에 있다. 누구든지 그분의 정신을 공급받으면 받을수록 그는 결국 위대한 자유의 투사가 된다. 인간의 약함은 죽음의 恐怖(공포)이다. [히브리서 2:14-15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자유를 누림에 있다. 기독교가 대한민국 안에서 굳게 서서 이런 自由(자유)를 무한히 공급하는 出口(출구)가 되어야 한다.

12. 그 자유를 누리는 자들이 모두가 다 일어나 저 흉악한 세력 곧 인민을 노예로 삼는 세력과 싸우는 것이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노예로 사느니 예수와 함께 자유를 위해 죽어서 천국에서 살고자 한다는 소리침은 빛나는 별빛보다 더 황홀한 하나님의 빛이시다. 그런 빛을 공급받는 곳이 있다면 그런 자들이 무한이 나오는 出口(출구)가 있다면, 그런 자들을 잉태하는 자궁이 있고 태반이 있다면. 아, 이렇게 대한민국에 간첩이 많은데도 아직도 건재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그 자유를 공급받아 굳게 선자들이 대한민국에 많이 있다는 증거라고 본다면. 인간을 노예로 삼으려는 자들이 만든 수많은 궤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한복음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그런 모든 거짓과 기망과 기만의 술책들이 소멸되어졌으니. 보라, 북한주민들이 겪는 저 모든 것이 다 노예가 아니고 무엇인가? 인간이 인간을 저렇게 학대하고 자기들의 이익거리로 삼아 주지육림에 빠지는 것을 보고도 외면하는 자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이고, 자유를 방종으로 삼는 자들이다. 국가에 충성하고 국가에 헌신하는 이유는 자유를 위해서이다. 자유를 주지 않는 국가는 적이고, 자유를 앗아가는 국가는 우리의 조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13. 우리의 조국은 자유를 보장하는 곳이고, 그곳이 곧 한민족의 조국임을 우리는 긍정해야 한다. 공직에 있고 공복에 있는 자들이 자유를 위해 싸우지 않는다면 그는 착취의 주구들일뿐이고 노예일 뿐이다. 그들을 제거하는 것은 곧 법치구현의 捷徑(첩경)이고, 그것을 위해 싸우는 것은 곧 당연한 인간의 도리이다. 함에도 그들의 기득권으로 固着(고착)되어가는 것을 본다. 이는 싸우는 자들이 없다는 것이고, 이제 이것이 곧 저들의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인데, 결국 자유대한민국을 망하게 하고 노예로 전락한 한민족이 되게 하려는 의도일 뿐이다. 그리스도! 이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메시지. 하나님을 누구도 노예로 삼을 자가 없다. 그를 두렵게 하거나 공갈하여 굴복시킬 자가 없는 그 모든 자유를 가지신 분이시다. 그 자유는 무한하고 영원하시다. 그분의 자녀들의 수가 별 보다 많아도 그들에게 그 자유의 에너지를 무한히 공급하시는데 전혀 지장이 없으신 분이시다. 그것이 위대한 그리스도의 비밀이다. [골로새서 4:3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14. 그리스도. 곧 기름부음을 통해 하나님의 자유 곧 만들어지지 않는 자의 자유를 공급받는다면 모든 것에서 자유를 얻게 된다. 대체적으로 죄에서 자유, 죄성에서의 자유, 무지에서의 자유, 무능에서의 자유, 불순종에서의 자유, 악마에서의 자유, 인습에서의 자유, 사회적 차별에서의 자유, 질병에서의 자유, 사망에서의 자유, 정신적인 압박과 공포와 두려움과 불안과 초조에서의 자유, 가난과 배고픔과 헐벗음에서의 자유, 마음껏 이웃을 아가페사랑 할 수 없는 환경에서의 자유, 자기애와 자기 속에 있는 육정의 사랑에서의 자유, 정치의 독재와 압박에서의 자유, 양심의 자유, 선택의 자유, 하나님의 모든 영적인 축복을 누릴 수 없도록 방해하는 것에서부터의 자유, 모든 궤사궤계기망기만에서부터의 자유. 아가페로 사랑하는데 부족함을 주는 모든 것에서부터의 자유를 누리는 자들이 된다면 이는 곧 천국을 이루고 사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씀하신 바울의 외침을 따라 우리의 국부인 이승박대통령께서 외치신 말씀을 되새기는 3.1절의 의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그 자유를 무한히 공급받는 애국자들이 되기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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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목: 芳年(방년) 17세의 꽃다운 나이에 조국의 자유를 위해 토막토막 참살당하신 유관순 누나의 殉國(순국)을 삼가 깊이 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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