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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미사일발사는 김대중의 입을 막고 김정일을 적대하여 북한 해방을 이루는 국민 대통합의 기회이다.
Korea Republic of 구국기도 1 315 2009-03-27 21:35:17
1.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 본문에서 말하는 feareth는 하나님을 敬畏(경외)하는 것에서 나오는 두려움을 담고 있고 또는 주의한다(cautious)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fear는 곧 恐怖心(공포심)은 위험을 느낄 때 생기는 정동적 반응(情動的反應)이라고 사전적으로 정의한다. 신체적으로는 교감신경(交感神經)이 흥분하여 식은땀이 흐르거나 떨린다. 말초(末梢)혈관이 수축하기 때문에 안면이 창백해지고 호흡이 거칠어지며, 심장의 고동이 이상하게 빨라지거나 느려지며, 또는 부신(副腎)에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혈액이 굳어지기 쉽게 되고 당분이 나온다고 한다. 이런 것은 일반적은 공포 심리의 육체의 반응을 말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두려움이라는 것이 있는데, 사랑으로 인해 발생하는 두려움을 의미하는 것이 있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다 내어 쫓는다고 하였다. [요일서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하나님 앞에 설 때 형벌이 따르는 두려움은,

2. 하나님의 속성에 반대되는 本質(본질)들이 느끼는 두려움을 의미한다. 사람이 이런 類의 두려움에 빠지면 하나님 앞에 설수도 없고, 하나님의 도움을 입을 수도 없고, 하나님의 평안과 기쁨에 참여할 수가 없다. 그 두려움에는 오로지 갈 바를 모르는 패닉만 주어질 뿐이다. [요한 1서 2:9-11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國民(국민)이 이런 類의 두려움에 빠지면 결국 패망하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두려움에 붙잡히면 온전한 사랑을 이루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되며, 하나님 앞에 서며, 모든 기도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뤄지며, 하나님의 평안과 기쁨과 은총에 참여하고,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으로 모든 패닉을 이기고 빛 가운데로 가게 된다. 本文(본문)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경외하는 두려움에 붙잡힌 관계가 되라고 권고한다.

3. 刑罰(형벌)이 따르는 두려움은 속성의 두려움이라고 하는데 그런 두려움 곧 속성의 두려움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의 屬性(속성)과 반대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震怒(진노)를 사게 된다.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게 된다. 때문에 형벌이 따르게 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두려움은 사랑의 두려움인데, 사랑에서 나오는 두려움이다. 이는 하나님의 본질인 하나님의 사랑의 분량을 그리스도의 충만한 분량까지 자라가게 하는 기름부음을 받아들이게 하고, 그것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고, 믿음이 자라게 하고, 구원에 이르도록 성장을 촉발하는 촉구하며 성장케 하는 두려움이다. 살펴본 대로 성경에 나오는 두려움의 내용이 그렇게 다양하다. 사랑의 두려움이란 김정일이 주는 공갈협박에서 발생하는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게 될까,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게 될까, 자유를 잃어버리게 될까 하는 경성 근신을 가져오는 경고를 갖게 하는 두려움이 있다. 그것이 곧 여호와를 경외하는 神(신)으로부터 오는 새 마음을 말한다. cautious라고 하는 조심성을 근신 경성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면,

4. 조심 조심의 의미를 거기에 加味(가미)한다면 더욱 선명하게 그 의미를 알게 된다. 국민이 근신과 경성과 또는 법치구현에서 멀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은 참으로 축복된 일이다. 그런 두려움은 결국 국민이 하나가 되어 법치구현으로 가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두려움은 곧 사랑의 두려움이라고 하는 것이고, 그 두려움에 빠지면 이웃을 사랑하는데 合心(합심)하는 국민이 되게 한다. 특히 북한주민의 심각한 인권유린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衝天(충천)하게 되고, 결국 북한 해방으로 행동하게 한다. 그런 복된 두려움은 곧 국민을 어떠한 공갈협박에도 굴하지 않는 국민으로 인도한다. 또는 국민에게 패닉에 耐性(내성)을 키워줌으로 어떤 패닉에도 능히 이겨낸다. 그런 패닉을 오히려 국민통합을 이루는 계기를 삼는다. 등등의 결가를 가져오도록 정치해야 한다. 때문에 지도자는 국민을 사탄과 사망이 주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 오늘날과 같이 툭하면 대남협박을 일삼는 김정일집단의 공갈협박을 원천적으로 封鎖(봉쇄)해야 한다. 때문에 지도자의 품은 다음 말씀과 같아야 한다.

5. [이사야 32:1-2 보라 장차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공평으로 정사할 것이며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 우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자연적 재해와 인간의 성격적인 狂風(광풍), 暴雨(폭우), 曝陽(폭양) 등이 주는 고통에서 국민을 지켜내야 한다. 그것은 곧 모든 적들의 위협에서 패닉에 빠지지 않게 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에 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義(의)로 통치하고 공평으로 善政(선정)해야 한다. 그것은 곧 아가페사랑과 하나님의 지혜로 섬기는 공복의 도리를 다할 때 주어지는 품이 생긴다는 말인데, 그 품이 곧 暴雨(폭우)와 暴風(폭풍)과 曝陽(폭양)들에서 국민의 패닉을 막아내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오늘날의 지도자는 김정일 집단의 남한적화 책동으로 무수하게 만들어내는 모든 패닉에서 국민을 건져내야 한다. 적들이 하는 선전선동의 패닉에 빠져 그것도 집단패닉에 빠져 울부짖게 되는 상황이 나오게 해서는 안 된다. 때문에 지도자는 아가페사랑과 하나님의 지혜로 법치구현을 이룩하고 그것에서 국가의 평안과 사회의 평안을 이루게 해야 한다.

6. 국가와 사회의 평안을 이루기 위해서는 국민적인 合心合力(합심합력)을 가능케 하는 기회를 잡아야 하고, 그 기회는 사랑 곧 북한인권 해결의지로 잡아야 하고, 강력한 국민적 단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는 국민을 속이는 기만의 정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정직함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이사야 32:3-4 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의 귀가 기울어질 것이며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 하나님의 진실의 힘만이 국민의 의심을 제거하고 단합을 유도한다. 때문에 대통령은 반드시 김정일 세력의 거짓과 헌법적인 진실을 구분하는 작업을 하도록 해야 한다. 현 시대에서 異口同聲(이구동성)으로 분명하게 천명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는 현재의 대한민국의 실체적인 진실이다. 하나님의 진실의 힘을 공유하는 자들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데 있다. 그분들이 나라를 새롭게 한다. 敵軍(적군)과 싸우는 국민의 눈을 속이는 짓은 그것은 전쟁에 져주라고 주문하는 것과 같고 적이 들어올 때 성문을 열어주라고 하는 짓과도 같은 것이다.

7. 김정일은 그런 식으로 주민들의 눈과 귀를 틀어막고 거짓을 주어 살인적인 공포로 전쟁에 임하게 한다. 대한민국의 지도자는 결코 하나님의 속성의 두려움 곧 하나님을 敬畏(경외)하는 훈련을 받게 하는 두려움으로 무장이 되는 것을 기뻐하고 그것으로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는 김정일의 살인공포적인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라고 주신 두려움이다. 前者(전자)는 마지못해서 하는 노예군대의 모습이지만 후자는 자유국민이 자유를 지키고자 하나님의 통제를 받아들여 하나님의 사랑의 두려움을 통해 하나님의 힘을 얻는 모든 악을 소탕하는 자유를 위한 군대이다. 어머니를 잃으면 그것은 아기의 두려움이다. 그것처럼 자유인의 군대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보시는 실체적인 진실을 잃어버린 그 자체가 두려움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그리스도의 할례, 곧 하나님의 지혜를 통해 훈련받은 대통령만이 명명백백하게 국민에게 진실만을 알게 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실의 힘을 공급받고, 그로 인해 폭우와 폭양과 폭풍을 곤비한 땅을 이기는 능력을 넉넉히 국민에게 제공한다.

8. 김정일式(식) 곧 살인공포로 뽑아내는 힘과 예수 그리스도 式(식)인 진실에서 뽑아내는 힘은 가히 비교할 수 없는 차이를 가진다. 前者(전자)를 흑암이라고 한다면 後者(후자)는 만유를 밝히는 의로운 태양빛이다. evil은 live를 거꾸로 놓은 것이다. 생명의 반대가 악이다. 악이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생명의 도를 거부하고 인간 식으로 사는 것,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곧 그리스도의 할례의 통제로부터 오는 두려움이 없이 사는 것이 곧 惡(악)이다. 그런 惡(악)에 빠진 자들은 언제든지 결국 어떤 마귀와 사망과 또는 위기적인 두려움에 봉착하면 곧 패닉에 빠져 버린다. 이는 자기 마음대로 두려워하고 자기감정을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말하는 rageth는 원어 상에 放恣(방자)하다고 하는 보테아흐와 自慢(자만)하다고 하는(Zockler)과 操心性(조심성)이 없다고 하는(Hitzig)의 뜻을 담고 있다. A wise man feareth, and departeth from evil: but the fool rageth, and is confident.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의 두려움이 그를 지배하여 악에서 떠나게 된다.

9.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없는 자들은 자기를 두렵게 할 자가 없기에 자만하고 방자하고 조심성이 없어 격노하는 것이 습성이고 아울러 모든 일에 자신만만(confident)하다.’ 이 내용이 意譯(의역)을 한 내용인데 결국 인간은 하나님의 통제라고 하는 두려움이 없다면 방자하게 행한다고 하는 뜻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하게 이루도록 행동하는 국민만이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을 강물같이 공급받게 된다. 반대로 이기적으로 사는 자들은 위기時(시)에나 천재지변 時에 극한 패닉에 빠져 타인을 죽여 자기 생명만을 연장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통제를 받지 않는 자들은 그 모든 일에 하나님이 주시는 두려움이 없고, 자기가 만족하는 대로 행동하는데, 자신만만한 것은 그만큼 모든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의 그런 행동을 방자하다고 보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는 하나님의 통제를 져버리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방자란 하나님의 통제를 거부한 자들을 의미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통제를 받게 되는 자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두려움에 따라 늘 훈련을 받게 되어 一絲不亂(일사불란)한 지체가 되어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된다.

10. 하지만 그것을 거부한 자들은 방자하게 자기 식으로 자신만만하게 일을 한다. 참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살만한 행동이라고 한다. 이런 방자한 자들이 가득한 세상은 막상 위기에 봉착하면 큰 패닉에 빠지게 된다. 그것은 결국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의 두려움을 거부한다. 그것이 곧 어리석은 자들이다. [빌립보서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두렵고 떨림의 의미가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구원의 방법 중에 하나라고 하신다. 김정일 집단이 하는 행동들을 이제 살펴보면 그들의 눈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통제를 거부하고 있다는 단적인 표현이고 그것이 곧 하나님 보시기에 방자한 행동이다. 그런 방자한 행동은 하나님의 지배를 언제든지 거부하게 한다. 모름지기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통제를 받아들이는 자들은 악에서 벗어나는 은총 곧 하나님의 사랑을 입는 그런 은총 속에서 산다. 하나님의 통제가 인간을 얼마나 선하고 아름답게 살게 하는가는 예수님을 보면 그 답이 나오게 된다.

11. [히브리서 10:31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이 말씀은 형벌의 두려움을 일깨워 근신케 함이다. 경성을 갖게 하는 말씀인데, 지옥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나라는 범죄율이 상대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나라보다 적다고 한다. 지체적인 경고의 말씀으로 인간으로 하여금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경고의 말씀에는 궁극적인 언어 곧 심판의 말씀을 상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패닉에 빠지지 않게 하고, 오히려 거룩한 아가페사랑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길로 가게 하는 두려움을 우리는 대한민국에 가득하기를 기도해야 한다. 사랑의 두려움 곧 경외함의 根本(근본)은 하나님의 지혜이다. 통제되지 아니하는 김정일 집단이라면 국제사회에서 그들의 만행은 참으로 더욱 심각해져 갈 것이다. 인공위성의 발사체를 만들어 세계를 농락하려고 하는 그 자신만만함은 결국 하나님의 진노만 쌓아갈 것이다. [북한 외무성은 26일 자신들의 ‘인공위성’ 발사 후 이 문제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다뤄지기만 해도 북핵 6자회담을 거부하고 그동안 진행돼온 핵 불능화 조치를 원상복구하고 “필요한 강한 조치들”을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조선 닷컴은 보도했다.

12. [자성남 주영(駐英) 북한 대사는 26일(현지시각) ‘앵글로 코리안 소사이어티’ 주최로 런던 웨스트민스터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행사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 계획과 관련해 “러시아, 중국, 일본 등 주변 큰 나라는 모두 쏘아 올렸는데 우리가 쏘아 올리는 것만 갖고 지역 평화를 해친다고 몰아세우는 건 납득할 수 없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자 대사는 “살기도 어려운데 우주 개발에 돈을 쏟아 붓는 것은 이해가 안 간다.”고 천영우 주영 한국대사가 지적하자, “못 사는 나라가 우주 개발에 돈 쓴다고 하는데 우주 개발은 모든 나라의 합법적인 권리”라며 “만약 위성을 쏘아 올리는 미사일을 문제 삼는다면 식탁에서 쓰는 식칼도 군축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조선닷컴은 보도했다. 이들의 이 放恣(방자)한 言行心思(언행심사)를 살펴보면서 우리는 참으로 어의를 상실한다. 억지를 쓰는 것인가, 아니면 국제사회가 왜 자기들의 핵무장과 운반수단을 막고 나서는 것인가에 대한 것을 알아볼 개념이 없다는 말인가? 이들의 행동은 모두가 다 방자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통제가 없이 행동하는 착취에 주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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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목: 하나님, 김정일의 남하책동의 위기를 오히려 국민 대통합으로 삼아 북한을 해방하게 하는 우리 대통령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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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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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민복 2009-03-27 23:41:29
    좋은 뜻 좋은 글 간단명료하게 하였으면 더 빛나겠는데
    너무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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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ㅎㄹ 2009-03-28 04:52:58
    구국기도님의 글에 역시 알맹이가 있고 진정한 정의가 있습니다 변함없는 구국 기도님의 의로운 글 감동있게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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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ㅎㅎㅎ 2009-03-28 09:48:38
    혹세무민하며 성경의 글귀를 교묘히 이용하는 이런 허접한글따위에 감동을 받다니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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