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 싼똥 |
---|
全국민이 읽어야 할 盧武鉉 발언록 노무현이 5년간 싸갈긴 똥덩어리들 盧武鉉 前대통령(이하 盧武鉉)은 집권 5년 일관되고 집요하게 공권력을 총동원, 대한민국을 파괴하고 애국세력을 탄압하며, 북한정권을 지원하고 친북좌익을 양성하는 데 전력해왔다. 그는 反국가단체인 북한정권이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NLPDR)」 노선 아래 「국가보안법폐지-주한미군철수-연방제통일」이라는 내란 선동을 지속해왔음을 잘 알 수 있는 직책(職責)에 있으면서도, 국보법폐지를 기도하고 연방제에 찬성하는 한편 韓美연합군을 해체하고 반군(反軍)선동에 나섬으로써 적국(敵國)과 합세(合勢)하여 대한민국에 항적(抗敵)했다. 1. 아군(我軍)을 약하게 만들다(反軍선동과 敵前무장해제) ▲ 盧武鉉은 2004년 3월 「참여정부의 안보정책 구상」에 이어 2005년 2월 「국방백서(國防白書)」에서 주적(主敵) 개념을 삭제, 군대의 존립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병사들의 사기를 혼란에 빠뜨렸다. ▲ 盧武鉉은 2004년 6월15일 휴전선 인근의 對北「자유의 소리」방송을 중단했다. 『남한이 신종전투기를 구입해도 눈 깜짝 안하는 배짱가 金正日도「자유의 소리」방송은 핵폭탄 이상의 가공할 위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탈북자들의 이 같은 평가처럼, 對北「자유의 소리」방송은 金正日의 골칫거리이자 국군의 가장 유효한 심리전 수단이었다. ▲ 盧武鉉은 2004년 7월14일 남침한 북한 함정에 경고 사격한 국군의 지휘부를 「국기(國紀)문란」 등을 이유로 괴롭히더니, 결국 같은 달 말 조영길 국방장관과 박승춘 정보본부장을 퇴임시켰다. ▲ 盧武鉉은 2005년 8월15일 「북한상선(商船)의 제주해협 통과」를 허용했다. 북한은 상선(上船)과 군함(軍艦)의 구분이 없다. 8.15조치는 북한이 「NLL무력화」와 함께 줄기차제 주장해 온 對南적화전략 중 하나로서, 현재 북한선박은 우리 연안(沿岸)을 자유롭게 오가고 있는 상황이다. ▲ 盧武鉉은 2006년 12월21일 「민주평통」 연설을 통해 △ 軍원로들을 『거들먹거린다』고 비방하고, △군대(軍隊)를 『썩는 곳』으로 폄하한 뒤, △『지속적 감군(減軍)』 등 국군의 감축과 복무기한 단축을 주장하면서 △『미군 감축해도 된다』며 주한미군 감축을 정당화하면서 △정작 국방개혁에 대해서는 『특별히 돈 들것 없다』며 국군과 미군의 인력감축을 보완할 무기개발 의사도 없음을 드러냈다. ▲ 盧武鉉은 2007년 10월4일 金正日과 NLL을 가로지르는 해역(海域)에 소위 「공동어로 구역」과 「평화 수역」을 설치키로 합의, 수도권 방어의 최일선을 무너뜨리려 했다. 그는 같은 달 11일 NLL을 무너뜨리려는 북한을 옹호하기 위해 NLL을 『남북 간에 합의한 선이 아닌 일방적으로 그은 선』이라며 『영토선이 아니』라고 했다. 2. 敵軍을 이롭게 만들다(북한정권 군사지원과 핵무장 옹호, 은폐, 비호) 盧武鉉은 아군(我軍)을 약하게 만드는 한편 적군(敵軍. 북한군과 북한정권)은 이롭게 만드는 데 주력해왔다. ▲ 2008년 2월 국방부는 「대한민국」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쌀 마대가 강원도 인제 인근 북한군 부대 내에서 하역(荷役)되거나 야적(野積)돼 있는 장면을 10여 차례 걸쳐 확인했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남한은 1995년부터 2007년까지 쌀 2백66만t과 옥수수 20만t, 약 1조원이 넘는 식량을 지원했었다. 盧武鉉은 소위 對北인도적 지원이 군사적(軍事的)으로 전용돼 온 사실을 묵살한 채 북한정권에 군량미를 지원해왔다. 북한정권은 盧武鉉의 군량미 지원을 통해 절감(節減)한 달러로 2000년에서 2006년간 군사비 지출을 3배 이상 늘렸고(출처. military balance), 2006년에서 2008년간 특수부대 병력을 12만 명에서 18만 명으로 증강했으며(출처: 국방백서), 결정적으로 2006년 10월8일 핵(核)무장에 성공했다. ▲ 2006년 10월8일 북한의 핵실험은 盧武鉉의 방관과 은폐, 옹호 속에서 가능했다. 盧武鉉은 취임 이래 모든 형태의 對北제재를 필사적으로 저지해왔다. 심지어 「1987년 이후 북한은 테러를 저지르거나 지원한 일이 없다」며 거짓말하고, 「북핵은 공격용(攻擊用)이 아닌 방어용(防禦用)」,「金正日 위원장의 한반도 비핵화 노력에 대한 의지를 확인했다」,「핵과 미사일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억제수단」며 정당화했다. 반면 동맹인 미국에 대해선 『대량살상 무기 같은 민감한 문제에 끊임없이 의혹을 부풀려 불신을 조장한다』거나 『미국의 북한에 대한 제재가 지속될 경우 韓美 간 마찰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공갈에 나섰다. 盧武鉉의 관련 발언들이다. 『미국의 對北무력제재 시 전면전의 우려가 있다(2002년 12월30일 등 무력(武力)제제 반대 발언)』 『미국의 맞춤형 봉쇄정책이 북한을 제어하거나 굴복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회의적으로 생각한다(2002년 12월31일 등 비무력(非武力)제재 반대 발언)』 『1987년 이후 북한은 테러를 자행하거나 그 밖의 테러를 지원한 일이 없다(2004년 11월12일 미국 LA)』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억제수단(抑制手段)이라는 주장이 일리 있다(上同)』 『일부에선 제재(制裁)까지 포함해 북한에 대해 압력(壓力)을 행사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對北압박을 강화한다고 해서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럴수록 상황(狀況)이 더 악화(惡化)될 것(2005년 2월10일 북한의 핵무기 보유선언이후인 같은 해 4월13일 독일 방문 중 「디 벨트」紙와의 인터뷰)』 『(미국은) 평화를 주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대량살상 무기 같은 민감한 문제에 끊임없이 의혹을 부풀려 불신을 조장하고, 그 결과 국가 간 대결을 부추기는 일은 없는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2005년 5월30일 세계신문협회 총회연설)』 『金正日 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가 故 金日成 주석의 유훈이라고 강조한 데 대해 유의한다(2005년 6월23일)』 『金正日 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 노력에 대한 의지와 북핵문제의 평화적 노력에 대한 원칙을 갖고 있음을 확인했다(2005년 11월16일)』 『북한체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압박을 가하고 또 때로는 붕괴를 바라는 듯한 미국 내 일부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미국 정부가 그와 같은 방법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마찰과 이견이 생길 것(2006년 1월25일 내외신기자회견)』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것은 선제공격용(攻擊用)이 아니라 방어용(防禦用)이다(2006년 5월29일 향군지도부초청환담 中)』 『미사일 발사는 미국에 양보를 요구하는 정치적 압박행위(북한의 미사일도발 직후인 2006년 7월11일 청와대 만찬회동)』 『포용정책은 궁극적으로 포기할 일이 아니다...지나친 안보민감증도 위험한 것(북한의 핵실험 직후인 2006년 10월9일 기자회견)』 ▲ 盧武鉉에게 金正日은 민족반역자가 아닌 친구였다. 盧武鉉은 2005년 10월12일 『앞으로 북한과의 경제(經濟) 분야 교류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며 군사(軍事) 분야 교류도 활발히 추진해 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위 군사교류 발언은 2005년 9월19일 「6자회담 공동성명(이하 9·19선언)」이 북한의 핵무기 폐기의무 불이행으로 무산된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 盧武鉉은 2005년 11월19일 『북한과 적대(敵對)관계가 발생할 것인가를 전제하고 말하는 것은 대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북한과 친구가 되기 위해 성의를 다해 대화를 하고 있다』며 金正日과의 우의를 강조했다. ▲ 盧武鉉은 2006년 12월21일 「민주평통」 연설을 통해 金正日에 대한 『관용』『상대방의 의견이 옳을 수도 있다』고 주장하면서, 북한정권이 『전쟁하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3. 결정적 安保 파괴(反美와 거짓선동을 통한 韓美연합사 해체) 盧武鉉은 金正日이 核실험을 한 시기에 맞춰 소위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이유로 60년간 대한민국 안전과 성장의 근간이었던 韓美연합군 해산을 결정했다. 盧武鉉은 韓美연합군을 해체하는 全과정에서 「反美」를 선동하고 소위 「自主」를 내세워 국민을 속여 왔다. 盧武鉉은 ▲ 韓美 양국이 共有하고 있는 戰時작전통제권을 마치 미군이 독점하고 있는 것처럼 과장, 『작전통제권 환수(還收)』라는 말을 계속하면서 ▲ NATO집단방위체제 등도 韓美연합사와 같은 작통권 체제로 운용되고 있음에도 『한국만이 전시작통권을 갖지 않은 유일한 나라』라고 주장했다. ▲ 韓美연합사 아래서 공동(共同)결정권을 갖는 한국 대통령이 『어느 시설에 폭격할 것인지도 마음대로 결정 못 한다(2006년 12월21일 민주평통 연설)』는 말이나 ▲ 韓美연합사 해체로 최소 621조원의 추가비용이 예측되는 상황에서 『작통권 환수로 들어가는 예산은 미미할 것(2006년 8월9일 연합뉴스 인터뷰)』이라는 말도 계속되는 거짓말 중 하나였다. 4. 좌익세력에 대한 지원 盧武鉉은 자신의 지지 세력인 좌익세력을 全방위로 지원해왔다. ▲ 盧武鉉은 이적단체(利敵團體) 한총련에 대해 『언제까지 이적단체로 규정해 수배할 것인지 답답하다(2003. 3. 17 법무부 업무보고)』거나 『단순히 어떤 사상에 경도돼 우리 사회에 철없는 공격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편지 속에서 확인했다… 느낌이 좋았다(2004. 5. 1 100분토론)』고 옹호했다. 利敵團體란 「국가 변란(變亂)을 목적으로 한 反국가단체인 북한 정권에 동조하는 조직」이다. 판례에 따르면, 盧武鉉은 金正日 정권의 대한민국 변란(變亂) 기도를 간접적으로 지원한 셈이다. 한총련은 利敵團體 중에서도 노골적인 金正日 추종집단이다. 예컨대 대법원은 2004년 8월30일 한총련에 대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며,..북한공산집단의 선전선동내용을 그대로 추종하고...대한민국의 존립안정을 위협(2004도3212)』한다고 판시했다. 같은 판례는 「한총련 소속 학생들이 북한의 金正日찬양구호인 「수령결사옹위」에서 인용한 「결사옹위」라는 문구를 가로 114cm, 세로 89cm의 흰 천에 혈서(血書)를 써 한총련 의장에게 선물한 뒤, 한총련 의장이 이를 소지하고 다녔다」고 밝혔다. ▲ 盧武鉉은 한총련을 금전적(金錢的)으로도 지원해왔다. 통일부는 2001년 이래 6·15선언 실천을 목적으로 한 소위 「남북공동행사」에 약 54억9700만원의 국고(國庫)가 지원했는데, 「한총련」 등 사법부가 이적단체(利敵團體)로 판시한 단체의 2005~2006년간 금강산회합에 총 3억4천4백만 원을 지원했고, 이적단체 구성원들이 공식적으로 참가했던 남북공동행사에도 총 12억5600만원을 지원됐다. ▲ 盧武鉉은 2006년~2009년간 행정자치부를 통해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에게 1억 원을 지원키로 하고 이 중 6천만 원을 실제 지급했다. 최근 利敵團體로 판시된 실천연대는 중국, 독일 등에서 북한공작원을 만나 「김영삼과 황장엽 응징」 등의 지령을 받아 활동하며, 金正日에 대한 충성(忠誠)의 노래와 충성(忠誠)맹세문을 만들고, 광화문 한복판에서 金正日의 선군정치 찬양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 盧武鉉은 2006년 문화관광부를 통해 「민족통일학회」라는 단체에게 9천만 원을 지원했다. 이 단체는 같은 해 8월25일 안국동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정부지원으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사상가로서 철학자로서의 金日成은 「인민이 곧 하늘」임을 추구했던 인물』이라며 金日成 찬양에 나서는 등 노골적인 친북행태를 보여 온 단체였다. ▲ 盧武鉉은 2006년 7월 신문발전위원회로 하여금 북한체제를 편향적으로 美化해 온 「민족21」등 잡지에 신문발전기금을 지원케 했다. 「민족21」은 2005년 12월호 日本조선대 한동성 교수의 입을 빌어 先軍정치는 『우리 민족의 통일을 담보하는 통일애국의 정치』등으로 미화하는 등 북한체제를 미화(美化)해온 매체였다. ▲ 민노총 및 민노당 관계자들이 각각 2006년 5월과 2005년 8월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이 묻힌 혁명열사릉과 애국열사릉을 참배하는데 1억여 원을 지급받는 등 盧武鉉 집권 중 각종 이적행위에 대한 지원이 잇따랐다. 5. 간첩(間諜) 등에 대한 지원 ▲ 盧武鉉은 학자로 위장해 북한정권을 위해 복무해온 송두율에 대해, 검찰의 수사를 방해할 목적으로 『분단이라는 상황의 산물이며 이런 것을 가지고 건수 잡았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2003년 10월3일)』거나 『엄격한 법적 처벌도 중요하지만 우리 한국사회의 폭과 여유와 포용력을 전세계에 보여주는 것 또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2003년 10월13일)』며 압력을 행사했다. ▲ 盧武鉉은 △2005년 8월15일, 개전(改悛)의 정(情)이 전혀 없는 재범간첩 민경우가 刑期의 반밖에 채우지 않았는데도 그를 직접 사면 복권시켜 석방한 뒤 북한방문을 허용했으며 △2005년 8월15일, 조총련 소속 거물간첩 박용으로 하여금 국내입국을 허락해 反국가활동의 자유를 부여했고 △2006년 12월4일, 정부기관인 민주화운동보상위를 통해 간첩을 민주화유공자로 인정케 했다. ▲ 盧武鉉은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국보법의 합헌성(合憲性)을 확인한 직후인 2004년 9월5일 『독재시대의 낡은 유물은 폐기하고 칼집에 넣어서 박물관에 보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2004년 9월 5일 MBC 특별대담,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며 국보법 폐지를 선동했다. 6. 좌익세력 무장폭동 방치 盧武鉉의 금전적(金錢的)·행정적(行政的) 편의 속에서 성장한 좌익세력은 폭도화(暴徒化)되어 갔다. 盧武鉉은 이들 친북좌익의 무장폭동을 군경(軍警)이 법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지 못하도록 방해함으로써, 전국을 소요와 분규 속으로 빠뜨렸다. 사실상 盧武鉉이 양성한 친북좌익의 위세는 李明博 정권 출범 직후 광우병 난동(亂動)으로 확인됐다. 구체적으로 盧武鉉 정권 내내 △「평택범대위」의 2005년 7월10일, 2006년 3월15일·4월7일·5월4일과 5일 무장폭동, △「FTA저지범국본」의 2006년 11월22일 전국 관공서 진입폭동, △「전용철범대위」의 2005년 11월15일 서울 여의도 농민폭동, △「反부시국민행동」의 2005년 11월18일과 19일 부산 APEC반대폭동, △「패트리어트대책委」의 2005년 5월15일 광주 미군철수폭동, △「민중연대」등의 2005년 9월11일 인천 맥아더동상파괴폭동 등 쇠파이프·쇠갈고리·몽둥이·죽창 등이 동원된 친북좌익의 유혈(流血)폭동은 연중행사가 돼버렸다. 이들 流血폭동은 「국보법철폐-미군철수-연방제」라는 북한의 對南노선에 동조해 온 「전국연합」 등 친북좌익 단체들에 의해 주도된 기획(企劃)폭동이었다. 盧武鉉은 연방제 실현을 목표로 한 사실상 동일(同一)한 인물들이 주도하는 기획된 무장(武裝)폭동을 방치, 국가를 혼란 상태로 내몰았다. 평택 무장폭동 때는 군인이 방패만 갖고 나가게 해 폭도에게 군인들이 얻어맞고 도망 다니게 했다. 불법폭력시위를 엄정 진압한 경찰청장은 물러나게 했다. 그가 임명한 국무총리가 불법적인 무장폭동과 경찰의 합법적 진압을 동격(同格)으로 놓고서 양비론(兩非論)을 펴도 이를 방치했다. 7. 공산주의 활동의 민주화 인정과 보상 盧武鉉은 국무총리 산하 민주화운동보상위로 하여금 공산폭력혁명조직 남민전(南民戰)을 비롯해 사법부에서 △반국가단체(反國家團體) △이적단체(利敵團體) △金日成주의조직(소위 主思派조직)으로 판시되고, △공산주의(共産主義)△사회주의(社會主義) 혁명을 기도했다고 확인된 각종 활동에 대해 「民主化운동」으로 명예 회복해왔다. 「民主化운동」으로 명예 회복이 된 후에는 피해(?)정도에 따라 많게는 억 대의 보상이 뒤따랐다. 2009년 2월 현재 민보상위는 民主化운동 관련 상이자(傷痍者)에게 196억 원, 사망자(死亡者)에게 142억여 원을 비롯해 각종 생활비 명목으로 602억 원 등 총 940억 원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8. 수도이전과 수도분할 盧武鉉은 헌법 개정 사안인 수도이전, 즉 천도(遷都)를 신행정수도로 포장하여 국민들을 속이려다가 헌법재판소에 의하여 위헌결정이 나자, 이를 포기하지 않고 수도를 분할(分割)하는 행정복합도시로 변형시켜 추진함으로써 국가 정통성의 상징인 수도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국가운영의 효율성을 약화시켰다. 盧武鉉의 관련발언이다. 『舊세력의 뿌리를 떠나 새 세력이 국가를 지배하기 위한 터를 잡기 위해서는 천도(遷都)가 필요하다...이는 한 시대, 지배세력의 변화를 의미한다(2004년 1월29일)』 『행정수도계획은 참여정부의 핵심문제이기 때문에 정부의 명운, 진퇴를 걸고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2004년 6월15일)』 『지금 행정수도 반대여론이 모아지는 데 앞장서 주도하고 있는 기관은 서울 한복판, 종합청사 딱 앞에 거대빌딩을 가진 신문사 아니냐. 수도권의 집중된 힘이라는 막강한 기득권과 결합돼 있다...수도이전 찬반논란은 대통령 흔들기의 저의가 있다(2004년 7월8일)』 『수도이전반대 주장에는 수도권과 지방을 대립시켜 新지역주의를 조장하는 불순한 의도도 깔려 있는 것 같다(2004년 7월12일)』 9. 역사적 정통성과 이념적 정체성 파괴(破壞) ▲ 盧武鉉은 이승만, 박정희를 욕하면서 反국가단체의 수괴인 金日成 金正日을 한번도 비판하지 않고 굴종적 자세로 일관했다. 그는 2003년 7월9일 북진통일을 막은 모택동(毛澤東)을 존경한다면서, 2005년 9월11일 친북좌익의 맥아더 동상 파괴 기도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경고하지 않았다. ▲ 盧武鉉은 2003년 6월10일 訪日 중 『한국에서도 공산당(共産黨)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공산당을 허용해야한다고 주장했다. ▲ 盧武鉉은 2003년 8월19일 애국단체가 반역깃발인 인공기를 태운 데 대해 북한정권이 사과를 요구하자 『인공기와 金正日 위원장의 초상화를 불태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유감이다』며 재발방지를 통일부에 지시했다. ▲ 盧武鉉은 2005년 8월 친북좌익과 경찰이 서울시내에서 태극기 게양을 방해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비호하여 태극기가 금지된 지역을 만들었다. 체육행사, 남북행사장에서 예사로 태극기를 내리고 좌익깃발인 한반도기를 올리도록 했다. ▲ 盧武鉉은 反국가단체의 수괴인 金正日이 2000년의 6.15 선언을 전혀 지키지 않았음에도 이의 무효를 선언하지 않고 2007년 10월4일 또 다시 평양에 찾아가 反헌법적-反국가적 사기문서인 6.15 선언의 유효성을 재확인했다. ▲ 盧武鉉은 2007년 10월2일 방북 중 평양에서 『金正日 국방위원장이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하시고, 또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건강해야 한다...신명난 김에 金위원장과 金상임위원장, 두 분의 건강을 위해 건배를 합시다』라며 『위하여』를 선창했다. 그는 같은 날 학살자 金正日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건배사 뿐 아니라 수령독재기관인「평양 만수대 의사당」에서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주권의 전당』이라는 칭송을 방명록에 남겼다. 10. 反국가·利敵교육 및 선동 방치 盧武鉉은 ▲ 전교조 부산지부가 2006년 7월 『金日成 주도 최후진공작전으로 광복을 맞았다』는 등 내용을 담은 북한의 「현대조선역사」를 발췌 기술한 「통일학교자료집」을 활용한 사실 ▲ 전교조 서울지부가 2006년 3월 『先軍정치의 위대한 승리 만세』 등 내용을 담은 북한 선군정치선전포스터를 활용한 사실 ▲ 전교조 교사 A씨가 2005년 5월 중학생 180여 명을 데리고 전북 회문산 「빨치산추모제」에 참여한 사실 ▲ 전교조 소속 B씨가 『남북통일을 앞둔 시대에 살인기술을 배우기 때문에 군대에 가지 말라』는 병역거부교육을 해 온 사실을 비롯해 ▲ 2005년 12월8일 「先軍정치 토론회」 등 온·오프라인에서 범람하는 북한 先軍정치 찬양 사실 ▲ 2005년 9월 서울 시청 광장에서 열린 소위 「민족민주열사·희생자 추모행사」라는 명칭의 「간첩·빨치산 추모제」 사실 등 전교조의 反美親北교육의 실태 및 각종 反국가선동의 사례를 방치, 대한민국을 위태롭게 했다. 11. 反국가·利敵행위 전력자 발탁 盧武鉉은 전향 여부가 불분명한 386주사파 출신 공산주의자(共産主義者)들을 포함, 국보법폐지-미군철수-연방제통일을 주장해 온 전대협과 전국연합 등 친북(親北)·이적(利敵)전력자들을 대거 등용, 정권의 친북(親北)·이적(利敵)행태를 구조적으로 심화시켰다. 대통령은 이들이 국가기밀(國家機密)과 국가예산(國家豫算)을 다루는 한편 국가주요 정책의 입안과 추진에 관여하여 북한정권에 이롭고 대한민국에 위태로운 활동을 하도록 지원했다. 12. 국민을 분열시킨 不法 발언들 盧武鉉과 측근들의 부패혐의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자 「대통령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안했다. 대통령의 재신임을 국민투표에 묻는 것은 위헌(違憲)인데도 이를 강행하면서, 국민들을 분열(分裂)시키는 不法발언을 연발하다 국회의 탄핵의결을 당했다. 헌법재판소는 이 행위를 헌법위반으로 규정하고 경고조치했으나, 그 뒤에도 盧武鉉은 반성 없이 헌법위반 행위를 계속했다. 관련 발언이다. 『시민혁명은 계속되고 있다. 다시 한 번 나서달라(2003년 12월19일. 선거법상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단체인 노사모가 주최한 「리멤버1219」행사에 참석 발언)』 『국민들이 총선에서 우리 열린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 줄 것을 기대한다(2004년 2월24일)』 『잘못이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시끄러우니까 사과하고 넘어가자. 그래서 탄핵을 모면하자 이렇게 하라는 것이면 제가 받아들이기 어렵다(2004년 3월11일 청와대 특별기자회견)』 『되도록이면 허용하고 장려해야 된다고 생각한다.』(2004년 2월5일, 선관위가 「국참0415」에 대해 선거법준수를 강조하자 강원도언론인과의 간담회에서 나온 발언) 『민주당을 찍으면 한나라당을 돕는 격이다(2003년 12월30일 열린우리당 지지를 호소하며)』 13. 남상국氏를 자살로 몬 패륜적 발언 ▲『노건평 씨는 아무런 힘이 없다. 대통령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가만 좀 내버려두시면 좋겠다. 대우건설 사장처럼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하신 분들이 시골에 있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 그런 일 이제는 없었으면 좋겠다』 『남상국 사장이 청탁했다는 이유로 해서 내가 민정과에 「청와대의 인사사항은 아니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데까지 행사해서 연임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하고 뒤에 확인까지 했다』 (2004년 3월 11일 측근 비리 관련, 청와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남상국 前 대우건설 사장 이름을 직접 거명하며 직격탄을 날렸다. 노 대통령 기자회견 직후 남 前 사장은 곧바로 한강에 투신자살했다.) ▲ 『우리가 쓴 불법자금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대통령직을 걸고 정계를 은퇴할 용의가 있다』 (2003년 12월 14일 4당대표회동. 2004년 3월 8일 검찰수사로 盧武鉉 캠프의 불법대선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7분의 1의 수준에 이르렀으나, 그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요약: 공권력을 총동원하여 대한민국을 파괴하고 애국세력을 탄압하고 북한정권을 지원하고 친북좌익을 양성하며 金正日을 도와왔다. 盧武鉉 대통령은 金正日의 對南적화전략에 적극적으로, 구체적으로, 총체적으로, 철저하게 동조하였다. 적화전략문서인 6.15 반역선언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는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서는 경고조차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미국의 核, 그리고 한국방어에 필수적인 核우산을 문제 삼으려는 북한의 전략에 동조했다. 핵무장한 戰犯집단 북한정권을 적대시하지 않기로 함으로써 韓美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를 위한 논리의 틀을 만들었다. 終戰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때 6.25 남침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는 암시도 들어 있다. NLL과 보안법을 허물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북한인권 탄압, 강제수용소,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를 거론할 수 있는 문을 폐쇄했다. 그러면서 對南공작기지인 조총련을 소위 민족공조 차원에서 지원해주는 길을 열었다. 盧武鉉 대통령은 평양에서 학살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건배사를 했고 수령독재기관인 최고인민회의 의사당이 人民主權의 전당이며, 인민의 행복을 만들어내는 곳이라고 방명록에 썼다. 6.15 반역선언을 더 구체화시킨 10.4 선언을 실천한다면 대한민국은 赤化의 길로 걸어가게 된다.
신고 0명
게시물신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