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해방하려면 지하교회의 活性化(활성화)에 전력투구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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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곰을 만날지언정 미련한 일을 행하는 미련한 자를 만나지 말 것이니라.] [Let a bear robbed of her whelps meet a man, rather than a fool in his folly.] [~of her whelps meet~]『pagash (paw-gash')』로 읽는다. 그 안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들어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聯合(연합)의 秘密(비밀)의 지혜와 그 연합이 없는 자를 미련한 자라고 한다. 그런 자들이 행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모두 다 미련한 것이다. 『pagash (paw-gash')』란 그런 것을 보고 그를 避(피)해 가다가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곰을 만나는 것이 더 낫다고 하는 to meet를 담고 있다. 미련한 세상, 곧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으로 가능하다는 의미 곧 그리스도의 비밀을 모르는 세상에서 避(피)해 새끼 빼앗긴 암곰과 연결하다, 잇게 되어도 그것이 차라리 낫다고 하는 join을 담고 있다. join은 그 자체 속에는 결합하다 combine, 접속시키다 connect, 잇다 link, 일체가 되다 unite combine, 관련시키다 associate를 담고 있다. 그 다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기름부음을 받는 것을 몰라 자행자지하는 것은 곧 하나님이 보시기에 미련하게 행하는 것이다. 2. 그런 자들과 만나는 것보다는 암곰을 偶然(우연)히 만나는 것이 낫다. 기름부음을 모르는 자와 만나는 것보다는 새끼 빼앗긴 암곰을 遭遇(조우)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 마주치는 것이 되레 낫다. encounter를 담고 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지혜를 받지 못한 자들이 행하는 미련한 짓에 함께 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곰과 함께, 같이, 同行(동행)하는 것이 낫다. together를 담고 있다. 그 다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름부음 없이 행하는 미련한 자들과 만남보다는 새끼 빼앗긴 암곰과 大會(대회)를 여는 것이 오히려 낫다 meet each other을 담고 있다. 이런 것은 공정한 基準(기준)을 토대로 해서 보다 낫다고 比較(비교)할 수가 있다. 여기서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기준에 따름이다. 하나님의 基準(기준)에는 미래를 보는 눈이 거기에 함께 하신다. 무릇 하나님의 눈빛을 基準(기준)으로 삼는 자는 축복받은 자이다. 물론 미련한 자라는 것의 기준도 하나님 눈의 기준에서 나온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지혜롭고 똑똑해도 미래에 다가오는 災殃(재앙)을 피해갈 수 없게 한다. 때문에 인간의 처방은 결국 인간을 망하게 하는 처방이 된다. 3. 이는 하나님의 지혜로 행하지 않는 자들의 결과는 災殃(재앙)인데, 그 재앙은 새끼 빼앗긴 암곰을 만나 피해를 보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深刻(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지혜가 없는 인간의 처방 또는 진단은 결국 커다란 재앙을 孕胎(잉태)하고 出産(출산)하게 되어 오히려 새끼 빼앗긴 암곰을 만나는 것이 더 낫다고 하신다. 사실 인간은 언제나 善惡果(선악과)적인 기조위에 사는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역사적인 自取(자취)가 큰 증거이고, 아울러 그 역사적인 根據(근거)가 敎訓(교훈)을 주는 것이다. 그런 교훈을 보면서도 각자는 여전히 하나님의 미리 아는 지혜를 거부하고 있다. 하나님이 만든 미래의 길은 오로지 因果(인과)의 원리에 있다. 모든 것은 심고 거둠에 必然的(필연적)인 결과를 보게 된다. 함에도 인간은 그런 필연적인 결과를 拒否(거부)하고 있다. 오히려 實驗(실험)을 한다는 말이다. 역사실험에서 인간은 畢竟(필경)은 죽게 되는데 그것을 계속하고 있다. [창세기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地獄(지옥)은 영원히 주 하나님의 명령의 價値(가치)를 알게 되는 곳이다. 4. 그 代價(대가)를 받으면서도 그것을 얻을 수 없는 곳이고, 결국 滅亡(멸망)의 의미는 영원한 罰(벌)을 받으면서 더욱 새롭게 알아가는 것이나 그것을 얻을 수 없다. 그것이 곧 悲慘(비참)한 滅亡(멸망)의 의미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누리고 있는 이 자유의 의미는 꼭 김정일 살인착취자들에게 그 자유를 빼앗기고 그들의 노예로 轉落(전락)되어야만, 그 가치를 알고 그 가치를 얻고자 한다면 이미 늦은 경우에 해당된다. 자유를 위해 투쟁하고 싸울 줄 모르는 자들은 결국 그것에 노예가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북한주민에게 자유의 가치와 그것을 위해 싸워야 하는 것을 가르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지하교회의 활성화 방안이다. 그런 것을 하나님의 지혜를 통해 찾아내어 활성화해야 한다. 모든 것이 폐쇄된 공간이다. 아무 것도 정보교환을 할 수 없는 동시에 擧事(거사)를 일으키기에 너무나 微弱(미약)한 것이 북한주민의 처한 한경이다. 때문에 더욱 사생결단이 필요하다. 선한 싸움을 싸우려는 확고한 의지가 필요하다. [디모데후서 4: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디모데전서 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5. [디모데전서 1:18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자유를 위해 善(선)한 싸움을 할 줄 모르는 인간들은 그것에 奴隸(노예)가 되고, 노예의 시간이 길어지면 결국 노예속성으로 굳어져서 永久的(영구적)인 노예가 된다. 이씨 500년 동안 조선인들은 그들의 노예로 길들여졌고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습성을 가진 것인데, [출애굽기 13: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노예의 習性(습성)을 가진 자들은 自由(자유)를 위해 스스로 싸울 줄 모른다. 때문에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 그들에게 오사 자유를 위해 싸우도록 養育(양육)하신 것이 출애굽기 내용이다. 그런 교육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시고 그 교과서는 성경이다. 그런 자유의 鬪士(투사)가 戰士(전사)가 되기까지 이스라엘은 언제나 노예근성을 보여주고 있다. 조금만 어려워도 노예시절을 회상한다. 돌아가자고 한다. 6. 자유인으로 살아가려면 얼굴에 피땀을 흘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생소하고 낯설기 때문이다. 노예근성을 가진 자들은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은 싫고 두려워한다. 시시 때때로 자유를 쟁취하는 국민이 되라고 인도하시는 양육하시는 하나님을 원망한다. 북한주민의 영구노예가 된다면 그것은 참으로 그들이 자기들의 자유를 위해 생명을 바치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14:10-12 바로가 가까와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 뒤에 미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노예근성에 붙어사는 그들의 눈에 모든 것이 낯설고 서툴다. 때문에 자유인으로 길러지는 하나님의 정하신 프로그램의 교육장의 생활 곧 광야의 길을 싫어한다. 7. 이 과정이 곧 자유의 鬪士(투사)가 되는 길로 인도를 받는 교육장인데, 그것을 거부하고 그것에서 주는 양식을 거부하려고 한다. 아직은 자유를 爭取(쟁취)하도록 하나님의 손에 훈련된 여호수아(예수 그리스도의) 군대가 아니 되었기 때문이다. 자유의 가치와 쟁취의 교육과정에 있는 모세의 군대는 아직 자유를 쟁취하기에 未熟(미숙)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많은 원망을 한다. [출애굽기 16:1-3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山(산) 사이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제 이월 십오일이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하나님이 주는 이런 일련의 교육과정이 없다면 각성이 없다면 왕의 노예로 살다가 가는 것이 인간인 것처럼 그것이 인생인 것처럼 여기는 것이다. 특히 자유를 찾아내는 궁극적인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이시다. 인간이 누려야할 참 자유는 그 누구도 그 자유를 찾아줄 수 없는 것이다. 8. 오로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셔야 하는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자유를 인간이 줄 수 있었다면, 미국이 벌써 북한을 해방했을 것이다. 그런 관점은 하나님의 시각이다. 하나님이 미국을 사용하실 때 비로소 일본에서 대한민국을 해방하고 6.25에서 대한민국의 半(반)을 구출한 것이다. 하나님의 관점을 가진 자들만이 하나님을 의지하기 위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은총을 구한다. 그것에 하나님의 자유 쟁취의 길이 있고 그것을 얻는 특징이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유의 가치를 하나님이 깨닫게 한 자들 곧 미국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자유를 찾아 주었고 지키게 하셨다. 하나님의 기름부음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자유 爭取(쟁취)에 필요한 모든 능력을 갖춘 자유의 擴散(확산)군으로 무장시킨다. 그들로 하여금 기필코 자유의 적들과 싸워서 이기게 하신다. 하나님은 그런 방법으로 드디어 자유를 찾아주신다. 그런 것이 대한민국의 자유이다. 그것이 곧 대한민국의 자유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자유를 위해 싸우는 자들이 되기를 요구한다. 먼저 자유의 가치를 성령의 능력으로 깨우치시고 그 가치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도 영광이라는 각성을 갖추게 하신다. 9. 이런 각성을 가진 자들은 노예로 고통 받는 자들을 해방하기 위해 자기의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처럼 바치기를 기뻐한다. 드디어 노예근성을 벗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시는 힘으로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이루게 하는 힘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요한복음8:31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참으로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때문에 聖經(성경)을 北(북)으로 보내야 한다. 지하교회를 活性化(활성화)해야 한다. 전쟁에서 죽기를 각오한 죽는 것을 좋아하는 군대가 이기는 법이다. 그런 이김을 위해 달려가는 자유 쟁취 및 擴散(확산)軍(군)이 북한 땅의 지하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만들어져서 이제 일어나야 한다. 이제 조국의 자유를 위해 일어나야 할 때가 온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우리가 북한인권의 그 참혹함을 알려야 한다. 북한 인권을 우리가 깊이 있게 다뤄서 자유의 가치를 일깨우는 작업을 해야 한다. 자유를 북으로 보내서 사람들의 가슴에 자유를 동경하는 그리움을 심어 주어야 한다. 그런 그리움을 가지고 자유 확산을 위해, 10.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함께 하시고 기름부어 주시는 모든 능력으로 무장하고 자유는 그렇게 주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으면 아무도 자유를 찾아줄 수가 없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기름부음을 입은 군대가 아니면 자유를 스스로 찾아낼 수 없는데. [여호수아 5:13-15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왔을 때에 눈을 들어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섰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가로되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여호수아 군대는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기름부음을 통해 하나님의 군대가 되도록 하나님의 손에 거듭나고 훈련되어 자유를 위해 당당히 싸운다, 善(선)한 싸움에 能(능)한 군대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기름부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그들은 드디어 마침내 自由(자유)를 爭取(쟁취)하기에 이르게 된다. 11. 하나님은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로 자유를 위해 죽고 사는 것으로 覺醒(각성)된 자들과 함께하신다. 그들을 사용하여 노예로 呻吟(신음)하는 인간들에게 자유를 찾아주려고 그 군대와 함께 敵地(적지)로 進擊(진격) 電擊(전격) 介入(개입)을 하신다. 자유를 위해 싸우는 북한주민이 되게 하는 법은 오로지 그들에게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가능해야 한다. 복음이 전파되어야 하는데, 다행스럽게도 북한에서 지하교회가 하나님의 성령으로 아주 강력하게 傳播(전파)되고 있다고 한다. 이는 결국 돋아나는 기독교의 힘,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에서 나오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권능, 죽음에서 이기시는 하나님의 힘이 그곳을 크게 震動(진동)시켜 가고 있다는 산 증거이기도 하다. 우리는 남북의 자유전사들 곧 예수그리스도로 무장된 자유전사들이 모두 다 일어나서 김정일을 붕괴시키는 날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런 것은 하나님의 응답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런 것은 福(복)된 미래를 여는 선한 싸움의 겟세마네 기도인 것이다. 자유를 위해 우리가 가야 하는 이 召命(소명)은 결코 저버리지 않게 되길 기도하자고 强調(강조)한다. 12. 북한 인권으로 他山之石(타산지석)을 삼고 자유의 가치를 알게 되는 계기를 擴張(확장)해야 한다. 우리는 보다 더 깊이 이 문제를 다루는 정부 내 북한인권廳(청)이 있기를 기대하고 있고 대북 성경삐라도 역시 북한인권재단을 만들어 公的(공적)으로 接受(접수) 공정하게 처리하고 그것으로 보다 더 넓은 북한지역에 자유의 소식이 들어가게 되기를 희망한다. 북한 내의 지하교회의 活性(활성)화와 모든 방법을 통해 성경의 搬入(반입)과 성경교사들의 浸透(침투)가 必要(필요)한 것으로 確信(확신)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自由(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을 통해서 그곳에 자유를 준다면, 우리 대한민국도 전 人類(인류)의 모든 곳에서 독재의 노예로 신음하는 모든 자들의 自由(자유)를 찾아주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곧 대한민국의 복된 미래를 여는 것이다. 만일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거부한다면, 인간의 힘으로 해야 하는데, 그것은 곧 새끼 빼앗긴 암곰을 오히려 만나는 것이 더 낫다고 한다. 오히려 재앙을 받게 된다고 하신다는 말씀이다.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자들이 뭉쳐 이 일에 목숨을 걸 필요를 느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북한해방을 위해 투쟁하시는 자유 투사들에게 권하는 하나님 말씀 [요한복음8장 32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http://onlyjesusnara.com http://korea318.com 부제목: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들어가는 곳에 자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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