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공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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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경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것같아 읽어보시라고 올립니다, 머리에 쥐가 나도 책임 못집니다. 저는 실력이 안되서 다른분의 글을 올립니다. 기축통화란 어떻게 생겨났는가?--1 (서프라이즈 / 이리 / 2009-7-7 11:46) 음, 기축통화에 대한 질문들이 많아서 써보기로 한다. 기축통화란 한자로는 基(터 기) 軸(굴대 축) 자로 즉 기본 축이 되는 통화란 뜻으로 한마디로 어떤 기준이 되는 통화란 뜻이다. 사실 시장에서 거래해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가격을 어찌 책정하느냐와 결제수단의 신용도를 어떻게 확보하느냐의 문제이다. 이문제가 선행 되지 않으면 통화는 유통되지 않는다. 게다가 통화 자체의 신용도와 가격도 문제가 된다. 전세계 화폐의 가치가 동일 할 수는 없다. 각 나라 화폐의 신용도와 가격은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기축통화란 바로 (각국의) 화폐간의 신용도와 가격을 결정하는 통화란 뜻이다. 일달러에 몇원, 몇엔,몇유로, 몇파운드,몇루블... 이런식으로 기축통화는 각 통화의 통화 신용도와 가격을 결정한다. 흔히 엔도 유로도 파운드도 기축통화니 어쩌니 하는데 진정한 의미에서 기축통화는 하나 밖에 없다. 달러 하나다. 이유는 엔도 유로도 파운드도 달러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복잡한 역사적 과정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조금 뒤에 설명하겠다. 화폐의 성립과정은 너무 길어서 줄이겠다. 이런건 스스로 공부하시라! 최초의 기축통화는 영국의 파운드화 였다. 대영제국은 세계의 3분의 2 정도를 차지하고 그 국토에 파운드화 결제를 실현했다. 처음 이 파운드 화 결제를 할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종이 지폐를 못믿겠다는 것이었다. 특히 인도와 같은 곳은 전통적으로 온갖 보석이 풍부해서 종이 지폐에 대한 불신이 심했다. 영국은 이 파운드화를 기축통화로 만들기 위해 고심을 했다. 결국 이에 태환지폐란 개념이 등장했다. 이른바 금본위제인데 태환지폐란 종이지폐의 가격을 금을 기준으로 정한다는 것이다. 금얼마당 파운드화 얼마 이런식으로 정하고 파운드화를 가져오면 금을 얼마 바꾸어 준다고 했다. 특히 이를 주관한 것이 로스차일드 가문의 영향력 하에 있었던 영란은행이다. 흔히 영란은행이 영국정부가 운영하는 은행인 줄 아는데 영란은행은 미국의 연방은행과 더불어 화폐유통권을 가진 사영은행이다. 허참 중앙은행이 사영은행이라? 이거 뭔가 문제가 있지 않나? 문제는 바로 이를 바탕으로 영국 금융권이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즉 본래 금 일온스당 10파운드 라고 정했다 했을 때 금융권에서 일온스당 100파운드를 발행해 버리고 가격을 속이는 짓을 한 것이다. 즉 100파운드를 발행하려면 금 10온스가 있어야 하는데 1온스를 가지고 100파운드를 발행해 버리는 사기질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해서 9온스의 금이 부족한 상태로 남게 되어 이게 나중에 큰 위기가 오면 파운드화의 신용을 뒤흔들어 파운드화가 휴지조각이 되는 사태를 초래 하게 되는 것이다. 국립은행도 가끔 그런 사기를 칠 수 있는데 사립은행이면 어떻겠나? 고양이에게 생선을 맞기지! 로스차일드의 돈에는 바로 이 화폐발행권의 마법이 숨어있다! 이것이 공황의 개념이다. 이런 공황의 개념을 처음 설명한 것이 바로 마르크스이다. 마르크스가 사회과학의 아버지 소리를 듣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교육 뿐아니라 자본주의교육을 받더라도 사회과학을 공부하다 보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뭐 불손한 사상이라고? 허참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라! 그러나 파운드화 위기는 미국이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일차대전 이후까지 오지 않았다. 이유는 바로 세계의 저개발 상태에 있었다. 영국이 지배할 때 세계에는 변변한 공업국이 없었다. 영국 프랑스가 18세기 까지 사실상 공업을 독점하고 있었고 19세기에 들어서야 간신히 독일이 신흥공업국 반열에 올랐으며 20세기에 들어서야 미국이 공업을 대대적으로 시작했다. 참고로 미국을 공업국으로 시작한 것이 바로 아브라함 링컨이다. 흔히 노예 해방을 무슨 인권 차원의 선언으로 보는데 그게 아니라 바로 북부의 부족한 공업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남부 농장지대의 흑인 노동자들을 '해방'시켜 북부의 공장으로 데려왔을 뿐이다. 실제로 링컨 이전 부터 북부가 공업을 시작하자 노예를 해방하자고 북부에 기반을 둔 공화당이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스토우 부인이란 뇬의 엉클톰의 집이란 소설은 오히려 악의적인 흑색선전이었다. 사실 우리나라 농촌도 그랬지만 처음 지주와 소작인의 관계는 무척 대립적이었다가 세월이 가면 갈 수록 그들 간에 유대감이 생겨나서 마치 한 가족 처럼 변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경주 최씨 부자 댁 같이 인품 좋은 지주를 만난 흑인노예들은 (그렇다고 학대받는 흑인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마치 가족 처럼 지내곤 했다. 실제로 남북 전쟁 당시 주인을 따라서 남군에 참전한 흑인들도 많았으며 해방된 이후에도 주인집을 지키고 사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소설의 흑인 노예들도 끝까지 주인집과 운명을 같이 하지 않았나! 심지어 전쟁도 같이 치르고 가난한 때도 같이하면서...! 미국 음악의 국부 대접을 받는 포스터 같은 경우 흑인 음악에 심취해서 집안의 흑인 노예들과 자주 어울렸으며 자신을 이뻐해 주던 죠라는 흑인 노예를 위해 노래를 만들기 까지 했다. 오히려 흑인 노동자들은 (북부 공업지대에서 일하던 당시) 한동안 남부의 농장에서 일하는 것 보다 더 못한 대우를 받아야 했다. 밥도 제대로 못먹고 잠도 못자는 적어도 농장에서 일할 때는 밥이라도 잘 주고 잠은 해만 지면 잤으니까! 어쨋건 그런 저개발 상태가 영국의 금융공황을 막아주었다. 무슨 상품을 만들건 팔려나갔기 때문이다. 지금 보면 허접한 면화 제품을 만들어도 자전거를 만들어도 기차를 만들어도 워낙 저개발 상태에 있는 국가들은 모두 최상품이었다. 경쟁이 없었다. 게다가 자재구매비용이 아주 적었다. 사실상 강탈하다 시피 하고 있었으니까! 이렇게 되자 태환지폐였던 파운드화는 금이 아니라 스스로의 신용도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금으로 바꾸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파운드화 자체를 모으기 위해 파운드화를 소비하는 행태가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되자 영국 중앙은행은 신이났다. 그냥 마구 마구 찍어냈다. 그런데 20세기 부터 상황이 요상하게 돌아갔다 신흥공업국이 나타난 것이다. 그냥 꼭집어서 바로 독일이다. 독일은 비스마르크의 산업진흥책에 힘입어 영국보다도 더 좋은 기술을 확보하고 좋은 상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실 영국은 18세기 산업혁명이후 부터 아니 사실은 16세기 후반 영국의 식민지 시대 이후 부터 별다른 기술투자를 하지 않고도 상품이 팔려나가(그렇다기 보다는 강제적으로 소비를 시키는) 기 때문에 기술에 별다른 투자를 하지 않았다. 프랑스도 마찬가지였고 이에 독일에게 기술 역전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는 걱정하지 않았다. 시장을 막아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독일이 원료를 구입할 때 관세를 파악 붙여서 비싸게 팔고 독일이 자신들의 시장에 들어오려 할때 다시 관세를 파악 붙여서 비싸게 사고 ...! 이러니 (독일은) 무슨 장사가 되겠는가? 게다가 영국상인 프랑스 상인들이 독일 상인들에게 보이지 않는 비관세 장벽을 왕창 설치한다. 정보를 차단한다 든지 상점 설치를 위한 땅구입을 방해 한다든지...! 결국 독일은 참다 못해 일차대전을 일으킨다. 바로 이때 세계 경제의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다. 바로 미국의 등장과 달러화의 등장이다. 2편에서 다시 쓰겠다. 원문 보기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uid=114498 ------------ 기축통화는 어떻게 생겨나는가?-2 (서프라이즈 / 이리 / 2009-7-7 12:21) 일차대전 때 처음으로 이른바 현대전의 전후방없는 고통을 경험한 최초의 전쟁이었다. 대량살상 무기가 등장하여 전쟁의 개념이 완벽히 변화된 전쟁이었다. 기관총(이미 등장했지만 이 전쟁으로 그 효용성이 가장 확실하게 증명되었다) 화학무기,탱크,방독면, 현대적 의미의 포격전, 공중전 등등 사실상 현대전이 이때 부터 시작되었다. 문젠 이때 프랑스도 영국도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는 사실이다. 독일이 얼마나 무서웠는지는 더이상 말하지 않겠다. 조금만 전쟁에 관심있으면 다 알테니 이러니 전쟁은 그전의 전쟁 규모를 와장창 넘어서 대량소비 체제가 되어 버렸다. 지금까지 대영제국이 일년 전쟁할 비용이 하루만에 날라가곤 했다. 프랑스는 공업지대가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이러자 영국과 프랑스는 다른 공업국가의 손을 빌릴 수 밖에 없었다 일본과 미국이었다. 두나라에 엄청난 호황이 왔다. 엄청난 파운드화가 두나라에 넘쳐났다. 그런 파운드화가 넘쳐나자 달러와 엔화의 신용도가 급격히 올라갔다. 두나라의 군수공업도 엄청나게 발전했다. 문제는 전쟁이 끝나면서 부터였다. 두나라는 전쟁이 더 지속되겠거니 생각했다. 그리고 두나라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전쟁이 끝나도 어찌해야 하는지 몰랐다. 경험이 없어서 몰랐다 아니 마르크스 이론은 공황이 올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두나라는 마르크스 이론에 대한 적대시로 그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를 안했다. 사실 서유럽국가 전체가 그랬다. 돈은 주식시장으로 몰리고 주식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주식을 안하는 사람은 부동산에 돈을 투자하고 주식과 부동산이 둘다 고공행진을 했다. 기업들은 감산이란 개념따위를 몰랐다. 왜 그래야 하는 지 이유를 몰랐다. 만들면 팔리니까! 사실 일차대전 이전 까지 만들면 팔렸다. 독일은 해외 상품기지가 없었지만 일차대전 전까지 전쟁준비를 하느라 엄청난 소비를 해왔으므로 만들기만 하면 팔리는 줄 알았다. 이에 대해 예상한 나라 따위는 없었다. 소련도 일차세계대전 말미에 생겨났으며 누구도 마르크스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문제는 다들 알다시피 전쟁 후에 경제공황이 온것이다. 이유는 아주 복합적인데 있다. 먼저 가장 큰 이유는 전쟁중에 확보한 (대량의) 파운드화에 있다. 파운드화는 본래 태환지폐라서 결국 금을 파운드화 만큼으로 바꿀 수 있어야 그 신용도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저개발국가들의 엄청난 소비수요로 인해 파운드화가 자체의 신용도를 확보한 채 100년 가까이 지나버린 것이다. 그러니 파운드화가 얼마나 발행이 되었느냐 말이다. 문제는 그 만큼의 금이 있기나 하냐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잘알다시피 위기시와 위기후에는 소비가 급격히 감소한다. 이번 경제위기에도 엄청나게 감소한 소비인데 전쟁을 겪고나서는 어떻겠나? 다 부서졌는데 무슨 소비를 하나? 게다가 인구도 왕창 줄지 않았나? 영국인만 죽었나? 인도인, 아프리카인,아시아인... 그러니 무슨 소비여력이 있겠는가? 금은 못바꿔 소비할 여력은 없어! 이러니 파운드화의 신용도는 추락했고 이에 엄청난 파운드화를 확보해서 신용도가 올라갔던 달러화도 엔화도 엄청나게 추락했고 이에 증권들은 휴지조각이 되고 기업들은 무너지고 .... 게다가 영국과 프랑스가 발행한 채권들도 휴지 조각이 되고 독일의 전쟁 배상금도 휴지조각이 되어서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겪게 된다. 그래서 독일은 우습게도 한가지 행동으로 프랑스의 엿을 매겼는데 당시 인플레이션이란 개념 자체가 없어서 프랑스는 독일과 배상협상을 할 때 그냥 액수만 정했을 뿐 인플레이션 대비 얼마 이런 개념을 두지 않았다. 이를 이용해서 독일은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자국 화폐를 마구 찍어내서 프랑스에 전쟁배상금을 지불했고 프랑스는 열받아서 루르공업지대를 점령하는 사태를 일으킨다. 대공황에 대해서는 더이상 설명안하겠다. 고등학교 교육만 잘 받아도 아는 이야기다. 이것도 모르면 부끄러워해야 한다. 무식은 죄는 아니지만 부끄러운 일이다. 이렇게 되자 각국에서 블록경제를 하게 된다. 다음편에 쓰겠다 원문 보기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uid=114501 ---------- 기축통화는 어떻게 생겨났는가?--3 (서프라이즈 / 이리 / 2009-7-7 13:00) 자, 경제공황이 세계를 휩쓸기 시작했고 세계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공산주의자들은 마르크스의 현묘한 지혜에 놀라서 더욱 의기양양해 졌다. 자, 이에 자본주의자들은 이에 골머리를 앓게 된다. 공황에 대한 해법을 찾아라! 이것이 그들의 중요한 해결책이었다. 해결책은? 마르크스의 괴상한 패러디였다. 사실 마르크스 이론은 아직도 완성체가 아니다. 실제로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탈고하면서 엥겔스에게 "이건 어찌보면 진실이지만 어찌보면 사기야!" "난 알고 있지만 나는 또한 모르기도 해!" 라고 말했다. 이게 무슨 소린고 하니 마르크스는 끊임없이 인간이 과연 욕망없이 경제활동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에 관해 고민했다고 한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경제활동이 욕망에 의해서 활성화 되는데 이것이 너무나 문제가 많아서 이를 부정해야 한다고 보았으나 문제는 이것이 욕망이 없는 상태에서 과연 인간이 열심히 경제활동을 할까 하는 근원적인 고민을 했었다. 이것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다. 소련도 이문제로 고민했었고 많은 공산주의 국가들이 이 문제에 고민했었다. 게다가 마르크스는 기본적으로 국가를 부정했다. 문제는 노동자들에게 동일한 권리를 계속해서 보장해 주려면 강력한 국가 권력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아나키즘 논쟁인데 마르크스는 이 문제를 해결 하지 못한채 어찌보면 기본서인 자본론 만을 탈고한채 한많은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특히 마르크스는 인간의 욕심과 폭력성을 긍정해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책으로 자본론을 탈고한 것인데 문제는 인간의 욕심과 폭력성이 인간의 근원이라면 이것이 자연상태에서 어떤 제한도 없다면 결국 발휘된다는 결론이다. 그러므로 강력한 국가권력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는데 문제는 국가 권력은 결국 소수의 귀족들을 양산하며 프롤레탈리아의 권리를 빼앗아가는 존재이므로 결국에는 사라져야 하는 '도구'로 마르크스는 보았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다고 이 국가가 없으면 또다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이다. 마르크스는 엥겔스와 대담에서도 이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터놓았다고 한다. 마르크스가 더 살았다면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었을까? 뭐 이만 각설하고 하여튼 당시 자본주의 국가들은 어떻게 마르크스를 괴상하게 패러디 했느냐 따져보면 이른바 블록경제와 국가사회주의 라는 희안한 사상을 만들어 낸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신용도가 떨어진 화폐인 파운드화가 미국과 일본에 수출되어서 생긴일이다. 파운드화로 인해 자국 통화의 신용도가 떨어져 버린게 원인이다. 그렇다면? 무역이 문제 일 뿐이지 자국안에서는 화폐의 신용도는 얼마든지 유지가 가능하다는 것이 결론이다. 이것은 현재라면 분명히 문제가 되었지만 당시 일차대전 후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유는 문제가 된 공업국이 대부분 거대한 식민지나 대영토 국가였기 때문이다. 자국에 충분한 소비시장과 충분한 자원확보처가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미국은 이른바 뉴딜이란 정책을 시작한다. 정부에서 달러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고정시키고 여태까지 자유였던 중앙은행의 달러발행을 감독했으며 달러를 온갖 토목공사나 생산으로 소비 시킨후 그런 달러를 노동자들에게 분배해서 마구 마구 소비 시킨 것이다. 자동차 라디오 양복 녹음기 전화 일차대전 때 대량으로 만들어논 군용물품들은 미군의 재무장으로 쓰이고...! 여기도 대량공사 저기도 대량공사 엄청난 소비...! 영국은 태환을 중단하고 영국정부가 나서서 영국중앙은행의 화폐발행을 통제하여 화폐의 총량을 줄여가고 또한 식민지에 할당까지 때려가면서 강제로 물품을 소비케 했다. 특히 이때 식민지의 철도 항만등 건설이 몇배로 증가했다. 프랑스도 마찬가지 프랑스는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 가면서 전후복구 사업에 엄청난 투자를 했다. 일본은 조선으로 모자라 결국 만주를 침공했다. 독박을 쓴 것은 독일과 이탈리아 였다. 이들은 대공황의 피해를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 독일은 값싼 원료 공급처도 없었던 데다가 역시 식민지와 같은 거대한 소비처도 없었고 가장 선진적인 공업기술을 보유한 나라다 보니 공업생산력이 영국 프랑스 보다 월등했다 문제는 너무 많이 만들었는데 팔데가 없었다는 것이다. 독일의 인플레이션 뭐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음편에 쓰겠다 원문 보기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uid=114508 ------------ 기축통화는 어떻게 성립되었는가? --4 (서프라이즈 / 이리 / 2009-7-7 13:29) 독일과 이탈리아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군국주의 국가사회주의를 채택하게 된다. 이과정 귀찮아서 않쓸란다. 이거 모르는 바보 없겠지? 하여튼 간단히 설명하면 역시 뉴딜의 패러디 인데 국가가 자국화폐의 가치를 고정하고 해외무역을 극도로 자제하며 국내소비에만 치중하는데 문제는 국내 소비시장이 작아서 영미프 처럼 대량 소비가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전쟁물자를 만들면 되는 것이다. 히틀러의 파시즘은 미국의 뉴딜정책과 닮은 꼴이었다. 군수물자를 대량 생산하고 이를 재무장 하면서 독일 경제는 결국 올림픽의 영광을 이루어낸다. 문제는 그 이후이다. 더이상 소비가 없는 것이다. 군수물자도 하루이틀 아니냐? 그렇다 그렇게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뭐 이차대전은 설명안한다. 알잖아 그런건 기본이다. 어쨋건 이번에도 독일은 무서운 힘을 보여주었고 프랑스는 거의 완벽하게 소련은 거의 반이나 영국은 부분부분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 미국은 다시 신나는 달밤이었다. 만들면 팔렸다. 만들기만 하면 .... 미국은 일차대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루블이건 파운드건 안받겠다고 선언 한 것이다. 처칠이 편지를 보내고 스탈린이 편지를 보내고 그래도 요지부동! 그럼? 오직 금괴만 받겠다고 선언했다. 처칠은 우울해졌지만 할 수 없었다. 영란은행의 엄청난 금괴들이 미국으로 건너갔다. 수백년간 모은 엄청난 금괴들이... 심지어 미국은 나치 독일의 금괴도 받아댔다. 또한 이때 한몫잡은 나라가 하나 더 있다. 스위스! 스위스는 이때 무장중립을 선언해서 전쟁피해를 받지 않았다. 특히 나치 독일이 패망하기 직전에 스위스는 예금자가 누구던 금괴를 보관해 주겟다고 했고 불안한 독일인들은 결국 스위스에 금괴를 맞겼고 이에 스위스는 지금까지 그 짓을 반복하고 있다. 더러운 샛길들! 하여튼 당시 전세계 금괴의 70% 이상이 미국으로 흘러갔고 달러의 신용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게다가 미국은 별피해도 없이 승전하고 사실상 세계최고의 군대로 거듭났다. 소련군은 미국보다는 아래였다.아직 핵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미국은 한가지 깨달았다. 사실상 기축통화가 없다는 사실을 파운드화는 이미 일차대전으로 세계무역을 포기 하는 순간 기축통화의 위치를 잃어버린다. 이것은 '신용' 문제이다. 이제 투자자들에게 영국정부는 조금만 상황안좋으면 블록해버리는 나라 라고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러니 더이상 파운드화는 아닌 것이다. 게다가 영국도 프랑스도 전후 식민지를 상실하게 된다. 이젠 파운드화를 대량소비해 줄 곳은 없다. 자 이제 미국의 세기 왔다. 그리고 달러의 신용도는 이차대전 이후 절정으로 치솟았다. 미국의 금보유율은 전세계금의 70% 미국 세계 최강의 패권국가! 자 이 정도면 기축통화 만들만한 국가 아닌가? 다음편에 쓰겠다. 원문 보기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global&uid=114509 --------------- 기축통화는 어떻게 성립되었는가?-5 (서프라이즈 / 이리 / 2009-7-7 14:05) 1945년 미국의 영광이 세계를 놀라게 한 해이다. 나카사키와 히로시마에 핵폭탄이 떨어지고 미국의 아름다운 소도시 브레튼우드에서는 세계경제의 핵폭탄이 떨어진다. 바로 브레튼우드 체제의 성립이다. 아아 영광의 도시를 기억하라! 경제공부 역사공부 하면 지겹게도 들을 테니! 미국은 달러를 세계 기축통화로 만들겠다는 야심에 차있었다. 여기서 기축통화에 대해 설명하려면 꼭 알아야 하는 개념을 먼저 설명하겠다. 바로 시뇨리지 란 개념이다. 시뇨리지란 무엇이냐? 자, 은행이 1000원을 발행 한다고 치자 그런데 은행이 이 1000원을 발행하면 실제로 1000원만큼의 비용이 드냐? 아니지 잉크값 종이값 인건비 다 쳐도 한 20원 되나? 아마 더 적을걸? 20원으로 치고 980원은 뭘까? 그게 이득이야, 은행의 마진이지! 우와 엄청난 마진이지? 이건 몇퍼센트야? 450퍼센트가 넘네 그려 ㅋㅋ 그런데 10000자리는 얼마겠어? 요즘 나오는 50000원자리는 ? 수표는? 우와 한도 끝도 없지? 원래 시뇨리지는 한 국가의 중앙은행이 국가로 부터 권한을 대행 받아서 발행한 이익을 반띵하는 개념이었다. 문제는 기축통화란게 생기면서 부터 이넘의 시뇨리지가 국제적이 된거야! 전세계에서 시뇨리지를 받는다고 생각해봐! 이거 군침돌지? 사실 내가 영국의 파운드화를 일차대전 중에 기축통화 붕괴로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1914년에 이미 태환포기 선언을 해! 하지만 그 이후에도 썩어도 준치라서 태환포기 선언이후에도 제법 잘나갔어! 그만한 화폐가 없었거든! 내가 전글에서 밝혔듯 소비가 충분히 뒷받침 되어주니 태환포기를 하고도 제법 잘 나간 거야! 그래서 실제로 파운드화 붕괴는 일차대전 후라고 봐야해! 왜 여기서 시뇨리지와 태환포기 선언을 이야기 했는지는 뒤에 이야기 하지 이건 중요한 개념이야! 자, 문제는 이 기축통화의 시뇨리지가 천문학적이라 이거야! 아까 설명했듯이 이 엄청난 시뇨리지로 인해서 사실상 명목상 화폐와 실질화폐가치의 괴리가 생겨버려! 금이 아무리 많아봐 이게 수용이 가능할까? 블록경제라면 어느정도 수용이 가능하지만 세계경제의 시뇨리지를 감당한다고? 이건 경도 모자라는 단위의 엄청난 개념이야! 이걸 무슨 수로 수용할까? 뭐 미국은 수용해 보겠다고 선언하고 유럽애들 불러모아서 "오빠 한번 믿어봐!"를 외쳤어! 영국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미국의 요구를 안들어줄 수 없었어 전후복구를 위해 미국의 달러가 그만큼 필요한 시기였기 때문이야! 프랑스 다 마찬가지 였지! 하여튼 미국은 70%의 금보유고를 외쳐댔고 또한 원자폭탄을 위시로 한 거대한 군사력을 외쳐댔고 전세계 최고의 생산력을 가진 최고 공업국을 외쳐댔고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는 자원을 외쳐댔어! 얼마든지 수용이 가능하다 이거야! 게다가 당시 유럽국가들은 안보위기를 겪고 있었어! 소련이 턱밑까지 와있는 상태였거든! 안보를 위해서라도 미국 말을 들어주어야 했어! 그래야 싸게라도 미국무기 공급받을거 아냐! 이러니 미국의 신용도는 이미 기축통화 급이었어! 브레튼 우즈 체제는 그걸 확인한 것에 불과해! 누가 말했지 "전쟁은 이긴 것을 확인하는 과정일 뿐이라고!" 미국은 승산없는 전쟁은 무조건 않했어! 경제전쟁도 마찬가지고! 얘네 스타일이 사실상 다 이긴 다음에 들어가서 다 때려부시고 깃발꽂거든! 절대 승산없는 싸움은 안해! 미래에도 그럴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는 그래왔어! 자 이제 미국의 영광을 다음편에 서술하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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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너무 기네요.
차라리 각 장별로 나눠서 글을 올렸다면 더욱 좋을 뻔 했습니다.
아무튼 좋은 글 소개해 주신 카신님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