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 빛나는 金日成장군” 兪청장 98년 불렀다는 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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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미래한국신문 http://www.futurekorea.co.kr 에있는 것임. 김성욱 기자가 쓴 것임. 독자님 안녕하세요 “그 이름 빛나는 金日成장군” 兪청장 98년 불렀다는 노래 鄭淵珠사장 취임 후 KBS, 해마다 8`15직전 北노래 방송사고 金正日 “노래로 主體의 한 길 끝까지 가자” 兪弘濬 문화재청장이 지난 14일 ‘이름 없는 영웅들’이라는 간첩찬양가를 부른데 대한 비난여론이 확산되는 가운데, 兪청장이 98년 방북 시에도 ‘金日成장군의 노래’ ‘赤旗歌’ 등을 불렀다는 사실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16일 兪청장이 98년 11월 영남대교수 재직 중 금강산 관광을 가서 북측안내원과 함께 ‘金日成장군의 노래’ ‘赤旗歌’ 등을 불렀다고 보도했다. 해당 기사는 98년 당시 언론보도 등을 근거로 작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兪청장은 20일 국회발언을 통해 98년 자신의 행적은 당시 언론의 오보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金日成장군의 노래’ 金正日애창곡 ‘金日成장군의 노래’와 ‘적기가’는 북한의 대표적 혁명가요이다. 북한의 체제찬양사이트 ‘우리민족끼리’ 2004년 12월17일자는 ‘金日成장군의 노래’를 ‘불멸의 혁명 송가(頌歌)’로서 金正日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고 소개하고 있다. ‘金日成장군의 노래’는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 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욱. 오늘도 자유조선 꽃다발 위에 역력히 비춰주는 거룩한 자욱. 아아아 그 이름도 빛나는 우리의 장군. 아아아 그 이름도 빛나는 金日成 장군”이라는 가사를 담고 있다. ‘적기가’는 “민중의 기 붉은기는 전사의 시체를 싼다. 시체가 식어 굳기 전에 혈조는 기발을 물들인다. 높이 들어라 붉은 기발을 그 밑에서 굳게 맹세해 비겁한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기를 지키리라”는 가사를 담고 있다. 해마다 벌어지는 KBS 북한노래 방송사고 ‘金日成장군의 노래’와 ‘적기가’는 KBS의 방송음악으로 삽입되기도 했다. 이는 鄭淵珠씨가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인 2003년과 2004년 각각 8*15광복절 직전 벌어진 사건이었다. ‘金日成장군의 노래’는 2003년 8월13일 KBS 1TV의 ‘140년의 유랑, 고려인’ 편에서 방송 중간과 마지막 두 차례에 걸쳐 내보내졌고, ‘적기가’는 2004년 8월14일 ‘미디어포커스’에서 40초가량 배경음악으로 삽입됐다. KBS측은 두 번 모두 단순한 방송사고였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장군님의 위대한 음악정치” 2005년(주체 94)출판된 북한의 노동당학습제강은 주체혁명위업을 완수하기 위한 이 같은 혁명적 노래의 중요성을 아래와 같이 역설하고 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우리는 혁명의 노래, 투쟁의 노래를 높이 부르며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나가야 합니다.’...이렇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노래로 주체의 한길을 끝까지 가자고 호소하시였다...이 세상에 가장 강한 것이 사람의 사상이라면 그 사상을 분출시켜낸 장군님의 음악정치야말로 가장 위대한 정치이다...” ........................................................................................... 92년 조선로동당사건 ‘黃仁郁지령문’에 鄭淵珠사장 거명 “안기부內査 중이니 행동조심하라” 등 지령, 93년 언론 보도 “간첩 혐의자라고 적혀 있는 것은 아니잖은가” 鄭씨 반론 KBS 鄭淵珠사장은 이철우(李哲禹) 前의원이 연루됐던 지난 92년 조선노동당중부지역당사건 주동자인 황인욱(黃仁郁)의 지령이 적힌 ‘비밀메모’에 거명됐던 인물이다. 이 같은 사실은 2003년 10월2일 국회 문화관광위 KBS국정감사에서 당시 한나라당 李元昌의원에 의해 확인된 바 있다. 93년 5월 13일 당시 조선노동당중부지역당사건으로 10년刑을 구형받고 수감 중이던 黃仁郁은 교도소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풀려나는 고한석(高漢碩)을 통해 비밀지령문을 몰래 반출하려다 적발됐다. 高漢碩은 석방 시 신체검사를 받던 도중 1cm크기의 녹색캡슐 2개가 교도관들에게 발각됐는데 이 캡슐 안에는 7~8명의 이름 등 돋보기가 없으면 읽을 수 없을 정도의 깨알처럼 쓴 글씨가 적힌 종이가 들어 있었다. 高漢碩은 교도관들의 추궁에 이 메모가 같은 해 4월 중순 黃仁郁으로부터 넘겨받은 것임을 자백했다. 黃仁郁은 “안기부가 내사 중이니 행동에 조심하라”는 경고와 함께 안기부 수사과정에서 알게 된 간첩수사방법 등 조직원들에 대한 구체적 지령을 적어 高漢碩에게 전달했다고 당시 조선일보 등은 보도했다. 그러나 당시 기사에는 지령문에 적힌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채 안기부가 수사에 착수할 것이라는 내용만 보도됐다. 시간이 지나 중부지역당사건이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黃仁郁지령문사건도 사실상 유야무야(有耶無耶)됐다. 10년이 지난 2003년 10월2일 한나라당 李元昌의원은 93년 黃仁郁지령문에 세 번째로 거명된 인물이 鄭淵珠사장이라며 鄭사장이 간첩혐의로 안기부와 검찰의 내사(內査)대상이었다고 주장했다. 93년 당시 鄭淵珠사장은 미국영주권자인데다 인지도가 낮아 수사가 진척돼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李元昌의원은 이날 鄭사장의 중부지역당사건 연루의혹을 지적하면서 “모든 사건 관계자들이 鄭사장의 관련 내용에 대해 증언했으며 鄭사장이 중부지역당 사건의 黃仁郁과 같은 노선을 걷고 있는 사람으로 추정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고 밝혔다. 鄭淵珠사장은 자신이 黃仁郁지령문에 언급됐다는 사실을 시인하는 한편 그렇다고 해서 간첩혐의자는 아니자 않느냐며 반박했다. 鄭사장은 ‘黃씨를 만났느냐’는 질의에 “93년 한 차례 국내에서 만났다”고 답했으나 ‘黃씨는 93년 구속 중이었다’는 보충 질의에 “91년인지 92년인지 연도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겠다”고 고쳐 답했다. 鄭사장은 “黃씨는 동아투위 선배 딸의 가정교사여서 미국서 일시 귀국했을 때 그 가족들과 함께 만났다”며 “黃씨가 ‘미국에 돌아가면 아프리카 관련 서적과 미국 국방보고서 내용을 보내달라’고 부탁해 아프리카 관련 서적만 사서 부쳐준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鄭사장은 “93년 일시 귀국했을 때 한겨레신문의 한 간부가 (황인욱 리스트에) 내 이름이 거론됐다고 알려줬다”며 “(黃씨가 작성한) 그 문건에 내가 간첩 혐의자라고 적혀 있는 것은 아니잖느냐. 억울하다”고 말했다. 당사자인 黃仁郁씨는 당시 國監 도중 KBS에 전화를 걸어 “鄭씨의 이름을 적은 것은 나와 만난 사람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당부하기 위해 했던 행동으로 鄭씨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고 KBS측은 밝혔다. 김성욱기자 2005-06-29 오전 11: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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